사실 독서량이 일천하다 보니 나온지 40여년만에 읽었던 책이 있어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
# 코스모스
20대 때 TV 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시리즈를 챙겨본 적이 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몇해 전 TV <알쓸신잡>에서 '무인도에 책 한권을 가져가야 한다면.....' 이란 질문에 유시민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꼽았다.
그렇게 책이 나온지 40여년만에 코스모스를 손에 잡았다.
깨알같은 글씨에 두꺼운 책이었지만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 칼 세이건은 특이하게 인문학 학사 - (이과로 넘어가)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박사가 된 독특한 학력의 소유자 답게 이 책은 단순히 우주에 관한 과학서가 아니라 '지구, 생명체, 진화, 인간, 우주를 소재로 한 저자의 철학을 담은 인문서라 하겠다.
"생명의 기원, 진화,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등을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근원과 관계된 인간 정체성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일"이라는 저자의 철학처럼 읽다보면 무한하면서 유기적인 자연, 우주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역시 영상으로 볼 것이 있고 책으로 봐야 할 것이 있다!
문체와 내용 모두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유시민은 이 책이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덕분에 예전에 정치인 처칠이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납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정치인은 과연?ㅎ
# 이기적 유전자
그 뒤에 역시 우리나라에서 30년전에 출판되었던 <이기적 유전자>의 40주년 기념판(학계 반론에 대한 재반론 추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책은 자기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경제논리, 수학적 계산도 포함되어 있어 읽기에 좀 팍팍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당시 불편한? 제목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자도 책 제목이 염려스러웠던지 본문에서 이 '이기적' 이란 단어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몇차례 강조한다.
처음에 책 제목으로 <협력적 유전자, 불멸의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등을 놓고 고민하다가 '이기적 유전자' 로 정했다고 하니 저자의 취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의 네이밍은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면....
1. 유전자는 어떻게 죽지 않고 영생하는가?
2. 개체(하나의 생명체, 한 사람)는 선대에게 받은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중간)운반체에 불과하다!
다윈 이후 지금까지는 진화의 주체를 종種이나 개체(하나의 생명체, 한 사람)로 보는데 이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의지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기도 하고 그 생각이 과하면 교만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동안 학자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런 통념을 180도 바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진화의 주체는 종種이나 개체가 아니며 유전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노력, 사랑, 희생)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그 전에 '유전자의 작용'라는 것이다.
생물학계의 코페르니쿠스, 아인슈타인적 발상이다.
즉 모든 유전자는 생물체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유전자)을 영속시킬려는 이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생물은 그것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개체의 이타적인 행동 또한 유전자의 그런 이기적인 계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체는 유전자를 안전하게 다음 세대에 운반하는 기계 (유전자의 자기복제를 위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된 맹목적인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의 주인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의 의지, 신체, 행위 등은 단지 유전자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물론 유전자는 의지라는 것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인간의 언어 중에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차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사람처럼 이기적이거나 어떤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유기체가 아닌데 어떻게 유전자가 개체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일까?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자연계에 성비性比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도 유전자의 작용이고
(다음 해에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지만) 향후 태어날 새끼의 먹이량이 풍부할지 부족할지를 미리 알고 한 배에 나오는 새끼 수(알 수)를 조절하는 것도 유전자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기타, 바다거북 새끼가 육지에서 부화되자 마자 바다로 향한다거나 아직 눈도 못 뜬 새끼가 (학습하지 않고도) 어미 젖을 찾아서 빨 수 있다거니와 같이 본능적인 행위 역시 유전자의 작용이라는 것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先七(유전자, 호르몬, 선천적 능력) + 後三(환경, 노력) 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튼 先七後三이 수긍이 가면 겸손할 것이요, 先三後七이라고 고집하는 사람은 교만할 확률이 70%일 것이다!)
마지막에.... 그렇지만 그런 유전자의 지배와는 별개로 인간은 자유의지와 문명을 통하여 유전자의 독재를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이 구절은 왠지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하면서 펼친 논리구조와 비슷하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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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관계없이 흥미로웠던 것은 다윈학파라고 하지않고 다윈주의자(Dawinism)라고 하는 것이다.
보통 한 분야에서 터닝포인트적인 업적을 이룬 학자의 이름을 붙혀 케인즈학파라는 등의 <~학파>라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주의자>라는 말은 생소하다.
그러고 보니 다윈은 그 분야에서 획기적인 터닝 포인트를 이룬 사람(中祖)이 아니라 아얘 새로운 분야를 연 사람(開祖)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대단한 과학자라고 해도 물리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연 사람이 아니라 기존 물리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람(中祖)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대척점에 있는 서양의 오랜 기독교 사상도 한 몫 했으리라.
문득,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기만 해도 경끼를 일으키는ㅎ 칼 마르크스는 서구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 경제학자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or 사상가라서 그런지, 마르크스 학파라고 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자(Marxism)라는 말은 들어본 것 같다.
마르크스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대부분의 후진국 권력자들이 제사보다 젯밥에 눈독을 들이듯이..... 마침 시대 상황을 이용하여 마르크스 사상의 구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데 더 관심이 있지 않았나 싶다.
반대로 아이러니하게 자본주의가 중간에 수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지속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마르크스라는 것이다.
문득.... 지금의 승려, 신부, 목사들은 부처나 예수를 억울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ㅎ
나무아멘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