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쿨러닝은 잘 알듯 열대 자메이카 선수들의 동계 올림픽 봅슬레이 출전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 이다. 경기 전 날 한 선수가 어떻하든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하자 코치가 이렇게 말한다.
"금메달이 없어서 만족하지 못하면 금메달을 얻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이 끝난 뒤 우리 선수단장이 기자회견 장면도 떠올려 본다.
"금에달 4개 목표 달성에 실패한데 대해서 밤낮으로 열심히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심석희 선수도 소치에서 은메달을 딴 뒤에 "금메달을 기대하셨는데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17살 앳띤 소녀의 눈물을 보면서 내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심석희 선수가 고통스러운 용기를 내서 가족에게도 숨겨 온 상처를 드러내 보였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금에달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려 보았다.
도대체 금메달이 무엇이기에 꿈 많은 어린소녀를 그톡록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게 만들었을까 싶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가 앞장서서 엘리트 선수로 키우는 스포츠 국가주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육 특기자 제도를 만들어서 진학 때 우대하고 선수촌을 지어서 합숙훈련 시키고 금메달에 병역 면제와 포상 연금까지 내걸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선수가 감독과 코치 체육단체에 무조건 복종할 수 밖에 없다.
한번 눈밖에 나면 선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갖은 굴욕과 심지어 폭력까지 견뎌내야 한다. 심석희 선수도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느냐는 협박을 수시로 받았다고 했다.
체육계 안밖에서는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우리 체육계에 침묵의 카르텔이 깨졌다는 말도 나왔다.
침묵의 카르텔... 이럴 줄 알면서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지만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건 통열한 반성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스포츠 국가주의에 대한 국민적 재검토가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메달 색깔과 숫자 등수가 곧 국력이라는 착각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