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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강해 사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요한복음 20장 24-요한복음 20장 29
요절 요한복음 20장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어찌하여 우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마리아의 증거를 믿지 않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 평강을 주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세상에 보내서 죄사함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도마가 없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자신이 직접 만저 보지 않고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도마에게 나타나 부활의 예수님을 만져 보고 믿음을 갖게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보고라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보지 않고 말씀에 기초하여 믿으면 더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신뢰할 때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지 않고 믿는 복된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도마는 예수님을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왔을 때 디두모라는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디두모는 쌍둥이라는 말입니다. 쌍둥이 한 명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쌍둥이라도 한 사람은 믿을 수 있고 한 사람은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유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제자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들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면 내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어보면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 도마가 제자들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첫째, 도마는 자신이 없을 때 예수님이 오신 것에 대해서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계시므로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는 혼자 있을 때라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이 생겼습니다.
둘째, 도마는 실증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직접 만저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실증적인 자세는 좋은 것입니다. 실증적 자세가 과학의 이론을 실험하여 확실하게 하였고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탁상이론을 없앴습니다. 실증은 이론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검증하는 좋은 과정입니다. 예수님을 실제 만나보고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가 실증해보려고 하는 것은 무리한 것입니다.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실증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연구하고 실증한 것은 검증된 것이므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적 이론은 대부분 내가 실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실증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도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많습니다. 나는 모스크바에 가보지 않았지만 모스크바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실증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인류는 몇천 년 동안 태양이 지구를 도는 줄로 보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집단적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중심적으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 중에 착각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심하면 정신병입니다. 특히 조현병 환자나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 듣기도 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이런 경험의 한계를 알 때 우리는 겸손하게 모든 것을 내가 다 경험하고자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경험보다 다른 여러 사람의 경험에 의해서 검증된 이론인 패러다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경험한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도마에게 예수님을 보고 믿게 하셨습니다.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도마 한 사람을 위해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와 함께 있고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문을 따지 않고 그냥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오사 서서 다시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참 신비롭습니다. 몸에 못자국도 창자국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십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예수님을 경험해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도마는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져 보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나쁘게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이해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경험하게 도우십니다. 찾아오셔서 만져 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먼저 경험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경험한 후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기드온을 삼백 용사로 모래 같이 많은 미디안 사람과 싸울 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두 번의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한번은 양털에 이슬이 내리고 다른 곳에 이슬이 내리지 않는 표적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한번은 양털 밖에 이슬이 내리고 양털에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것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그에게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3백 용사와 함께 미디안을 쳐서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의 아하스왕에게 친히 하나님을 경험해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남유다를 쳐들어오고자 하였습니다. 그전에도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에 의해서 유다 사람들은 12만 명이 죽고 20 만명이 포로로 잡혀가는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아합왕과 유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쳐들어오면 또 다시 그런 피해를 받을까봐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표적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증거를 주시고자 하였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고 표적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스가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불신을 책망하셨습니다. 그가 불신하면 그는 굳게 서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불신하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친히 처녀가 아기를 낳는 표적을 주셨습니다. 아하스 왕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불신으로는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불신으로 표적을 구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도 불신으로 표적을 구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표적을 구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표적을 구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종교지도자들의 박해를 받은 후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손을 내밀어 병이 낫게 하시고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적이 행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을 충만히 주십니다.
최선규 아나운서는 원래 대대로 독실한 불교 집안 출신으로, 대학 시절 불교 학생회장을 맡고 예수님을 전도하는 이들과 다툴 정도로 개신교에 반감이 컸습니다. 그에게 세 살이던 딸 혜원이가 골목길에서 후진하는 트럭에 치이는 대형 사고를 당했습니다. 아이의 숨이 끊어져 가는 절박한 순간, 그는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고 있었습니다. 평생 부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본 적 없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차 안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이 딸을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믿고 당신을 위해 살겠다"며 절규하듯 기도했습니다. 기도 직후 차가웠던 아이의 몸에 온기가 돌아오고 기도 막힘을 유발하던 피덩어리를 토해내며 기적적으로 호흡이 돌아왔습니다.
딸의 치료를 위해 약 2년 동안 병원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성도들과 권사님들이 찾아와 조건을 달지 않고 정성껏 병실을 청소하고 기도하며 섬겨주었습니다. 진정성 있는 태도와 섬김에 마음의 문이 열렸고, 병원에서 도망가지 못하는 상태로 지속해서 복음을 접하면서 가족 전체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가 개신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사랑의교회에서 세례와 제자훈련을 받으며 신앙을 확립했고, CTS 기독교TV의 장수 간증 프로그램인 《내가 매일 기쁘게》를 20년간 진행하는 등 대표적인 크리스천 방송인이자 간증 사역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도마처럼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도 좋지만 보지 않고 믿는 것은 더욱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믿을 수 잇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인류역사가 변화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증거를 통하여 부활의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경험보다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말씀은 다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과학의 페러다임과 유사합니다. 패러다임은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된 신뢰할 만한 이론을 의미합니다. 페러다임은 실증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과학에서 중요한 명제입니다.
이런 패러다임이 실증보다 유선한다는 대표적인 예가 만유인력 법칙으로 해왕성을 발견한 사건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과 역학 계산을 바탕으로 그 존재와 위치를 예견하여 해왕성을 발견하였습니다. 1781년 천왕성이 발견된 이후 천문학자들은 천왕성의 이동 궤도를 관측했으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계산한 예상 궤도와 실제 관측값 사이에 오차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패러다임과 경험이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오차를 통하여 "뉴턴의 법칙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천왕성 너머에 다른 미지의 행성이 존재하여 중력으로 천왕성을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이 세워졌습니다. 영국의 수학자 존 쿠치 애덤스(John Couch Adams)와 위르뱅 르베리에(Urbain Le Verrier)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역으로 이용해 "천왕성 궤도에 이 정도 영향을 주려면 미지의 행성이 어디에, 어느 정도의 질량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냈습니다.
애덤스와는 독립적으로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위르뱅 르베리에(Urbain Le Verrier) 역시 계산을 마치고 프랑스 학계에 관측을 요청했으나, 프랑스 천문학자들 역시 "그 먼 곳에 행성이 있겠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1846년 르베리에의 계산 결과를 전달받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갈레(Johann Galle)가 망원경으로 해당 좌표를 관측하였고, 계산된 위치와 불과 1도 차이 나는 곳에서 해왕성을 실제로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패러다임이 경험을 유도한 사례입니다. 이 때문에 해왕성은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수학적 계산으로 발견된 행성"이자 뉴턴 만유인력 법칙의 위대함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그와 같이 말씀이 현실에 맞지 않을 때는 말씀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되지 않을 때는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해석이나 적용이 잘못된 것입니다. 아니면 현실에 다른 변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현실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말씀에 대한 나의 해석이 혹시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니면 말씀의 적용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때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말씀을 반드시 삶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도 말씀에 의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말씀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았고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얻었고 말씀을 통해서 삶에서 많은 증거를 얻었습니다. 병도 낫고 직장도 잡고 제자양성도 하였습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말씀으로 천안에 왔고 제자양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한 목자가 조현병이 걸린 사건입니다. 이때 하나님과 말씀에 대해서 의심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었습니다. 목자로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시간이 이 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통하여 나의 말씀 해석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제자양성이 아니라 영생을 주고 하나님 나라를 주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전도요 제자양성이요 세계선교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해석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후 다시 성경 말씀이 믿어지고 성경 말씀대로 나의 삶에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이 깨달음으로 성경 66권 강해서를 썼고 성경 66권 유튜브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양성도 이루어주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진리입니다. 다만 내가 성경 해석을 잘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보지 않고 말씀에 기초하여 믿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우리는 보고라도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경험해보고라도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표적을 구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원도 받으시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보고 만져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먼저고 경험하는 것이 나중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그렇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열한 사도와 야고보와 바울과 야고보와 오백여 형제에게 검증된 것입니다. 2000년 역사에서 검증된 것입니다. 우리는 검증된 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믿음을 먼저 갖고 순종하면 실제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낫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방언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베드로나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될까요? 그것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있으면 자신을 파멸시킵니다. 불신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합니다. 반면에 믿어주면 기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어줄 때 기쁩니다.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믿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많은 연약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기초하여 믿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믿어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바꾸어주시고 할례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허물이 있어도 그를 기도하는 선지자로 믿어주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고마워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의 외아들까지 번제로 드릴 정도로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실수가 없으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적어도 6000년에 걸쳐서 검증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기도하여 하나님을 믿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정말 살아계시고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하여 체험하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이전에 미국에서 우리에게 와서 영어를 가르쳐준 김요셉 주니어 목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번 불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리치빌에서 이사야 선교사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심방하여 오늘 말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지금은 믿음의 결혼을 하여 좋은 가정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않고 말씀을 믿는 가운데 복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20장 강해 사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요한복음 20장 24-요한복음 20장 29
요절 요한복음 20장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장 강해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