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김치 이야기
아내와 총각김치와 동치미를 담그느라 하루해를 보냈다.
아내와 알타리무우를 다듬고 무거운 것을 날라 주다 보니 옛날 김장할 때 생각이 난다.
당시 나의 가장 큰 역할은 마당 한 구석을 깊이 파고 김장독을 묻던 것이 고작이었다.
아내는 원래 약골의 체질에다가 고희(古稀)를 넘기고 보니 버거워서인지 아내가 만든 김장김치의 속 쌈을 먹어 본 지가 십여 년이 더 넘은 것 같다.
궁즉통(窮卽通)이라고 금년도 아들 사돈집에서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 담가 보내온 김치로 겨울 반 음식을 마련하기는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큰딸이 걸린다고 총각김치와 동치미를 담근 것이다.
큰딸은 생활전선에 뛰어다녀야 하는 팔자인데다가 시부모가 80도 훨씬 넘은 고령이시기 때문이었다.
김장이란 겨우내 먹으려고 입동(立冬) 전후에 김치, 깍두기, 동치미를 담가두는 것을 말한다.
오늘 우리 집에서 담그는 김치는 총각김치와 동치미로 동치미는 한자어에서 온 말이다.
“冬沈[겨울 冬(동)+ 잠길 沈(침)+접미사 ‘이’]가 붙어 생긴 파생어다.
총각김치를 담그기 위해서 아내는 알타리무우를 서너 단 사왔다.
‘나도 늙었나봐,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저기 싼 곳을 찾아 다녔는데 오늘은 동내 수요(水(水曜) 장에서 그냥 알타리무우를 사왔으니-’ 아내의 독백이다.
알타리무의 어원이 무엇인가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알타리무우→총각무우’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총각무우가 표준어요, 알타리무우는 비표준어다.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생명력을 잃고 그에 대응하는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1988년 개정된 표준어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알타리’는 순우리말 같은데 그 어원은 무엇일까?
여진족 중에 ‘알타리(斡朶里)’란 부족이 있다는데 거기서 온 것일까? 아니면 우랄 ‘알타이’에서 온 말일까? 뿌리 끝에 알이 달린다고 해 '알달이'로 발음되다가 알타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는 ‘알ㅎ(ㅎ종성체언) + 다리’로 분석하여 말하여 ‘알’은 알맹이로 ‘다리’를 식물 뿌리로 말하고 있는데 ‘다리’의 설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는 문헌이 없다.
알타리무우를 '알무', '달랑무'라고도 하는데 거기서 온 것 같다는 게 가장 신빙성 있는 말 같다.
그래서 표준어를 총각무우로 한 것 같다.
그러나 총각무가 표준어이지만, 언중(言衆)들은 ‘총각무우’보다 ‘알타리무우’를 더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을 감안하여 보면 언젠가는 ‘알타리무우’도 표준어로 인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 ‘총각무우’에서 총각(總角)이란 장가들 나이가 되고도 아직 장가들지 아니한 남자를 말하는 한자어(漢字語)로 처녀(處女)의 반대어다.
총각(總角)무우에서 ‘總(총)’의 훈(訓))에는 ‘거느리다. 모두, 모이다,’ 등의 뜻도 있지만 '총각 상투 짜다(總角束髮)'의 뜻도 있다.
‘角(각)’은 뿔 각 자라 '상투를 틀지 않고 머리를 땋은 채 위로 머리를 묶은 뿔 같은 모습이 알타리무우의 무청(무의 잎과 잎줄기)의 생김새와 비슷하다. ‘고 하여 총각이란 명칭이 생겼다는 것이 정설이라 생각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어떤 때는 뿔 모양으로 동여맸기 때문에 총각(總角)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호사가(好事家)들의 눈으로 가만히 살펴보면 그 총각무우의 모양이나 크기가 남자의 거시기 같아서 그 원뜻은 제쳐 두고 총각의 거시기 같은 무로 인식하게 된 것이 총각무우요, 그것을 담근 것이 총각김치다.
총각김치는 남도 지방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김치로, 총각무 동치미(알타리무동치미)와 함께 담가서 김장김치가 익기 전에 보다 일찍 먹는 비타민 C가 풍부한 겨울철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