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는 거미의 경우
이수명
이동하는 초록 속으로
이동하는 거미의 경우
초록의 벽을 살려두려 한다.
모서리가 없는 벽의 배치
자신의 몸에서 움직이는 도해들을 건드리기 위해
이동하는 거미의 경우
가장 힘 있게 어긋나는 초록이 된다.
동요하는 구조들을 배열해보자.
거미에서 뛰어내려 보자.
거미와 섞이지 않고
거미와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이동의 경로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더 큰 거미 뭉치로 머물러 있는 것처럼
이동하는 거미의 경우
거미에서 거미로 던져진다.
다시 거미로 멀어지는 생각들
-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P34~P35
● 은유 없이 온전히 시를 쓸 수 있을까. 사물을 태워버리는 자아(주체)라는 렌즈 없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까. 수직이 아닌 수평적 시선으로 세계의 넓이에 조응할 수 있을까. 마치 미다스 왕의 손처럼 시인이 건드리면 비유가 벙글고 마는 시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일회적이고 무한한 세계를 일회적 무한으로 맞이하는 일은.
시가 어떤 것도 정의하지 않고, 연결하지 않고, 이 세계를 지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물과 인간을, 사물과 사물을, 인간과 인간을 묶지 않기를 바란다. 짝짓기하지 않고, 의미로 구획하지 않고, 관념으로 포획하지 않기를, 은유가 없는 시를 바란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면, 그와 반대로, 차라리 불가능한 연결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처럼* 인간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연결이어서, 결코 은유가 될 수 없는 것 말이다. 이것은 결단코 만남이랄 수 없는 만남이다. 슬픈 만남이다. 은유 없는 세계에의 반증이며, 역설이다. 현대시는 이러한 불가능한 만남을 통해 은유를 무력화시키며, 인간을 피하고, 관념의 조작을 제어한다. 이 세계에서의 적절한 만남이라는 인간의 의지를 배반한다. 이것이 초현실주의의 진정한 자리이다.
- 이수명 시론집 「표면의 시학」 중에서
*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차용..
이 시는 꿈속처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물들을 한데 결합하는 무의식적 연상 작용을 보여준다 ; 데페이즈망이라고 하죠..
'우산'과 '재봉틀'.. 생뚱맞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번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