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 주말이라 그런지 기분도 싱숭생숭해서 몇 달간 못 만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 중에 한 녀석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더군요.
볼 만한 거 하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는 한국 영화가 있다더라구요.
퍼붓는 눈을 맞으며 신사동에 있는 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습니다.
보는 중간중간에 킥킥거리고 웃을 만한 부분이 많더군요.
처음 광식이의 답답한 행각이 부각될 때는 말이죠. 나중에 가면 그 답답함이 재미가 아니라 정말 짜증으로 번지는데 다행히도 그 즈음에 주인공이 동생 광태로 바뀝니다. ^^
광태의 직선적이고 솔직하기만 한(?) 애정 행각은 광식이의 답답함을 날려 버리죠. 맘에 드는 여자에게 주저없이 달라붙는 장면이나, 있는 그대로 욕구를 표현하는 장면, 이별을 선언당하고나서 매달리는 장면을 보면 요즘의 문화적 코드를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광식, 광태 형제가 연애 행각의 양 극단을 상징한다면, 일웅이는 그 사이에 있는 실제로 많이 있을 법한 남자의 모습이 아닐까 하네요. 광태의 실수 덕에 윤경이를 사귀게 된다는 설정은 일단 재미로 치고 넘어가죠. 하지만 어떻게 이성을 사귀어야 하는지 친구들에게 묻고, 그대로 따라하려다가도 윤경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주저하고, 결국 꾸준한 노력(?)으로 사랑을 받게 되는 일웅이. 그가 실제로 주인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보면 윤경이는 주변 남자들에게 휘둘림을 당하기만 하는 대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광태처럼 살을 맞대며(^^) 직접적인 애정 혹은 관심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광식이에게 여러가지 기회를 제공하죠.
그 대표적인 예가 스테이플러 침. ^^ 평생을 쓴다는 엄청난 양의 스테이플러 침을 일부만 챙기고 나머지는 광식이에게 주죠. 그런데 광식이는 골때리는 소리를 하고 윤경이와 보조를 못 맞춥니다. 윤경이는 한 발자국만 나서면 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광식이는 그 한 발자국을 못 나가죠.
그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초콜렛 바구니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칠칠치 못한 광태의 실수로 인해 엉뚱하게도 일웅이에게 전해지죠. 이걸 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
나중에 윤경이는 그 우연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사태의 책임을 통감한 광태가 묻는 말에 대답하죠.
'여자들은 짐작만 가지고 움직이지 않아요...'라면서.
성적인 주체를 구분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광식이 같은 답답한 사람에게는 좋은 약이 될 만한 말이네요.
윤경이와 일웅이의 결혼식장. 이 무렵부터 두 형제의 반전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영웅본색 주제가를 배경으로 검은 양복을 입고 식장 안으로 들어서는 광식! (총만 빼 들면 딱이죠 ^^)
'세월이 가면'을 멋지게 불러 주고 식장을 빠져나오는 광식이의 뒤를 이어,
잊지 못하는 경재의 뒤를 좇아 광태도 뛰쳐나오죠.
그런데 여기에 관문이 하나 있습니다.
'당기시오'라고 당당히 써 있죠.
문득, 광식이가 처음에 해 준 말이 떠오릅니다.
'사람들 사이의 약속 아냐?'
광태는 드디어! 당겨서 엽니다.
평소에 당당하게 밀어젖히던 문을.
그리고 그대로 마라톤 골인지점으로 달려가죠. (경재는 없었지만)
사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생각할 '꺼리'가 없어서 재미가 덜했는데
그 '당기시오'라는 메타포의 기호학적 의미는 생각해 볼 만하더군요. ^^
광태가 경재에게서 버림받고 나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제본해 준 책을 받고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죠.
그걸 보면서 '당기시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
그리고 더 나아가서 교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솔직하고 직선적인 광태에게는
속도를 낮추고 교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은 광식이 같은 '연애계의 평화유지군'은 찾아보기도 힘들죠. 아닌가?
다만 이런저런 핑계로 청춘사업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게을러서 20대를 그냥 보내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발바닥에 땀 좀 나게 뛰어 봐야겠군요.
첫댓글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도 챙기세요^^
맞아요. 그거 봐야 하는데.. ^^ 처음엔 제목만 듣고서 '너무 거창한 제목에 내용은 별 거 없는 것 아냐?' 생각했는데, 친구들 얘길 들으니 정말 좋다고 하더라구요.
'당기시오'라고 써있으면 꼭 당겨야 하는 걸까요? 가끔 밀어도 되는 걸까요? 전 그 문구를 볼때마다 고민을 해요^^
'당기시오'일때 밀어버리면 앞에 오는 사람이 불편할테니 당기는게 맞죠. 허나 저는 귀찮아서 상황봐가며 그냥 밀기도 하죠. 대체로 그냥 밀리는 문이 많습디다.ㅎㅎ 사람사이의 약속'당기시오'를 잘 지켜 광식이는 연애에 성과?가 없었던거 아닐까요.(영화 안봐서 잘은 모르고 그냥 Garian님 글만 읽고 하는 추측임)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광식이는 쑥맥중에 초 절정 쑥맥입니다. 광태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죠. 좋아하는 사람을 뒤에서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하는 암울한 캐릭터~ 제가 일부러 광식이 설명은 빼 버렸습니다. 너무 희귀한 별종이라서요. ^^ 아닌가? 하지만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는 - 자신의 일부이기도 하죠.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은 교통사고라는데, 교통사고에 룰따위가 있을리가 없어보여서요.ㅎㅎ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네요. 교통사고라... 충격적인 일이라는 의미? 여기에 쓰신 이유 말고 원래 의믜를 설명해 주세요 ^^
노희경드라마 거짓말에서 성우 엄마가 성우(배종옥 분)더러 그래요. '사랑은 교통사고이니라', 갑작스러워 오는걸 막을 수 없고 이미 알게되면 늦어버리고 사랑으로 누가 울게되어도 그것이 니 고의는 아니니라, 그런 말이 아닐지..
항상 길게 쓰시내요.. 열심히 뛰십시오. 화이링~
저도 이 영화 봤어요. 자리가 없어 맨 앞자리에서 거의 누워 봤죠.. 꼭 광식이 같은 오빠랑 봤어요. 전 책이나 공연이나 영화나 함께 본 사람과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걸 좋아하는데 그 광식이 같은 오빠와는... 광식인 마지막 이제 사랑을 알아가잖아요. 그 오빤 여전히 광식이더라구요.
여전히 광식이... ^^;;;
영화속 여자들의 심경을 하나도 모르겠다는 거에요. 그 오빠에게 Garian님의 글 보여줘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