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란 소설을 읽고 크게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미들 생태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고, 공룡시대 이전부터 살아왔던 개미와 인간이 서로 소통하며 유익한 정보를 교환한다는 그 발상이 돋보여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저는 어린 시절 장난의 대상으로, 혹은 증오의 대상으로 개미 종족에게 가했던 나의 수많은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자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집 뒤로 돌아가면 뒷벽과 땅이 맞닿은 좁은 곳에 개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를 물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까만 개미들의 행렬이 있습니다.
그 행렬을 쫓다 보면 그들의 집이 보입니다.
그들의 집이 궁금해, 꼬챙이를 들고 그 개미들의 보금자리를 파내봅니다.
그 작은 구멍 속에 얼마나 많은 개미들이 살고 있었던지, 무수한 개미들이 뛰쳐나와 허둥대는 걸 보며 깔깔 웃고 즐거워했던...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때 파괴한 수많은 개미들의 보금자리...
집을 잃고 허둥대던 그 많은 개미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좀 더 자라서는 개미들의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빈 사이다 병만 보이면 고운 모래 담아서 개미 감옥을 만들었습니다.
개미들의 행렬을 찾으면 개미들을 포획하여 병 속에 가두었습니다.
놀란 개미들은 위로 위로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 애타는 탈출은 번번이 저의 저지로 무산됩니다.
뚜껑을 잘 여며두고 자고 일어나면 저는 늘 그들의 놀라운 생명력을 목도하게 됩니다.
탈출을 포기하고 밤새 만든 그들의 세상. 작은 굴들의 흔적들이 사이다 병 표면에 군데군데 보입니다.
신이 난 저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제 응원에 힘입어서인지 그들은 열심히 굴을 만들어 갑니다.
하나하나 모래 알갱이를 물어 나르는 그들의 끈기와 근면에 놀랍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용서를 받기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이 애써 만든 집이 어느 정도 완공되면 저는 그들의 전투능력을 배양코자 집게벌레를 잡아 그들만의 공간에 떨어뜨립니다.
긴장한 집게벌레와 개미들의 신경전이 끝나면 개미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개미들과 이를 어떻게든 뿌리치려는 집게벌레의 사투는 의외로 싱겁게 개미들의 완승으로 끝이 납니다.
이것저것 작은 곤충들을 잡아넣고 전투구경을 하다가 호기심이 다하면 저는 또 용서받지 못할 죄를 그들에게 범합니다.
그들의 집에 난데없이 가해지는 홍수 폭력.
한 컵 정도의 물이면 그들의 집은 완전히 물에 잠깁니다.
제 호기심에 어이없이 죽어간 그들의 넋에 용서를 빕니다.
그들의 고통을 보며 웃었던 저, 가증스러운 살의자인 저를 감히 용서해 달라 사정해 봅니다.
부엌에도 어김없이 개미들이 살았습니다.
단 음식이나 고소한 음식이 있으면, 항상 바글대던 개미들...
냉장고나 보관시설이 좋지 않던 시절, 개미는 공포스러운 적이었습니다.
어느 하루 부엌에 나가신 어머니는 경악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급하게 달려가본 부엌 바닥엔 목하 개미들의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부엌 바닥에 떨어진 몇 톨의 밥알을 두고 저의 눈으로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피아가 없는 전쟁이 부엌바닥에서 폭넓게 진행 중이었습니다.
신문지 한 장을 펼쳐 덮고 성냥을 그은 저로 인해 그들은 몇 번의 쓰레받기로 쓸어 담긴 재들이 되어 버려졌습니다.
전쟁의 승패도 없이, 소망한 어떤 것도 얻지 못하고, 그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갔습니다.
저는 그들이 같은 곳에 살면서 왜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관찰과 추리를 통해 제가 알아낸 것은...
ㄷ 자 부엌 바닥에서 서로 맞은편 벽에 붙어사는 개미들은 같은 종족이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밥알 한 톨을 가지고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제 관찰의 결과는 그들 두 종족들에게 엄청난 비극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제가 먹을 밥이나, 참기름 병 주위에, 혹은 아껴두었던 사탕에 접근한 흔적이 보이면 저의 가차 없는 보복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먼저 밥알에 설탕을 묻혀 그들 두 종족의 대문 앞에 한 두 개 가만히 놓아둡니다.
입구를 지키던 보초 개미는 얼른 이 사실을 일개미들에게 알립니다.
곧 그 작은 대문 위로 일개미들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그 일개미들을 모종삽으로 담뿍 떠서 다른 종족 개미집 입구에다가 내려놓습니다.
빠르게 비상 경계령이 내려지고 병정개미들이 줄줄이 달려 나옵니다.
저는 또 그들을 떠서 상대방 개미집 입구에 내려놓습니다.
몇 번 반복하면서 그 전쟁의 장소를 조금씩 부엌 중앙으로 옮겨 갑니다.
중앙으로 전투가 확대되면... 그 후로는 자동입니다.
그 작은 구멍 안에 어떻게 그 많은 개미들이 살고 있었는지...
개미들은 층층이 쌓여 전투를 합니다.
나중에 방송을 보니 개미들은 한 종족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싸운다더군요.
그 전투가 무르익었을 때,
많은 개미들이 큰 전투로 인해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
저는 펼친 신문 한 장으로도 덮기 부족한 개미들의 전장을 불태웁니다.
끔찍하지요?
그 당시의 저는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어머니께 칭찬도 받고 개미 퇴치의 노하우를 안다며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근데 지나고 돌아보니... 제가 저질렀던 그런 장면들이 뇌리에 남아 잘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어릴 적 모르고 그랬다고 덮기엔 너무도 생생하게 개미들과 저와의 악연이 떠오릅니다.
제 마음속에 도사린 잔인한 일면, 살의자의 속성이 저를 빤히 지켜보며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 저를 괴롭힙니다.
어찌 용서를 바랄 수 있으리요마는 지구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개미들이여~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한 그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날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제발 개미여 날 용서해 다오~
첫댓글
ㅎ 호기심이 많은 어린시절이었네요.
호기심으로 끝내는 어린이가 아니라
탐구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개미를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 보는 관찰이라면
다른 곤충도 관찰하여 곤충 학자,
생명공학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철들어 생각하니,
개미들의 생활과 생명에 까지 관심이 가는
마음자리님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돋보입니다.
'개미야, 나도 용서해다오' ^^
감사합니다.
어릴 때 별 생각없이 한 일들이
꼭히 사람들에게 한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스스로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라도 표현해서 사과하고 용서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ㅎ
전략가 기질이 다분하십니다.
머리도 좋으실 테고요,
사랑스런 소년입니다.
읽으면서 약간 소름이 돋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미물이라도 죽을 때의 공포는
다 있으니까
이심전심이겠지요.
저도 파리 잘 잡습니다.
파리채로 때리면 거의 죽입니다.
처음에는 못 잡았어요.
기다릴 줄을 몰랐지요.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렇지요?
제 스스로 했던 일이었지만
소름이 돋는...
베르베르가 소설에서 표현했던 개미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실제로 있으면 사과하고 용서 받고 싶어요.
저도 어릴적에 개미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놀던 일이 많았습니다 .
그들의 합심에 놀라기도 했었지요 .
그때는 저는 마음자리님처럼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
날씨만 조금 더워지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개미떼와 전쟁을 치룹니다 .
음식 피난 시키기, 개미 퇴치기를 곳곳에 놓기 ,
때로는 개미죽이는 약을 살포합니다 .
제발 제 집의 실내를 넘보지 말기를 바랄뿐입니다 .
저도 살생을 피하고 싶거든요 .
개미들이 엉뚱하게 저는 놔두고 관찰은 하되 괴롭히지는 않은 아녜스님을 힘들게하고 있군요.
개미집 입구나 개미들이 다니는 길에 고무줄을 태우면 촛농처럼 떨어지는 것을 한두방울 떨어뜨려 두면 개미들이 불을 겁내서 금세 이사를 가던데... 제가 쓰는 민간 처방도 한번 해보시죠. ㅎ
어릴때에는 개미 괴롭히는 일도 재미있었습니다
사실은 그거는 할짓이 아니었습니당
우하하하하하
개미뿐이 아닙니다.
잠자리도 풍뎅이도 메뚜기도...
죄가 많습니다. ㅎ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자고 했던거 같아요.
모아 모아 줄을 서서 운반하는
개미의,동원령 대단합니다.
소중한 생명이나,
때로는 인간의 삶을,방해 하기도 합니다.
어쩔수 없는 죽음을 만들기도 하는데
되도록 자중 하여야겠네요.
그냥 관찰만 하고 좋은 퇴치법이나 알아냈으면 좋았을 것을...
생명을 경시한 것에 대한 회개를 많이 하셔야 겠습니다..
ㅎㅎ
네. ㅎ 돌아보니 회개할 것이 참 많습니다.
개성만점인 어린소년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깊습니다
그 소년이 바른모습으로 자라나서
지금의 마음자리님이 되셨네요?
멋진모습 그리고 다른이가 생각지 못한 행복 또한 그려집니다
모든 생태계의 모습이 아이들 눈에 비춰지는 대로 함께 하는 세상이 되길
바래보면서
너무도 간결함과 함께 느껴지는 행복함에 아침을 여는 지금 시간이 행복합니다
건강하세요
긴 글 읽으시며 추억여행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와 ~! 마음자리님 어린 시절. 정말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군요.
한편으로는 로마의 시민들이 검투 장면을 보는 것 불편합니다.
그 호기심이 저를 지금까지
밀고 왔네요. ㅎㅎ
호기심, 지금도 참 많습니다.
저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개미를 엄청 잼 있게 읽은 적이 있어요.
맘자리 님의 개미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못지않게
기발하고 잼 있어요.
베르나르의 개미 집단생활 얘기는 왠지 소설같았는데요.
맘자리 님의 이야기는 팩트라서 더 실감이 났어요.
천상 이야기꾼입니다요.👍
예전에 502호 살던 초등학교 1학년 소년이 있었는데요. 호기심이 많은 소년였어요 학교 갔다 오는길에
화단 옅에 개미집에 쪼그리고 앉아서 개미들을 구경하곤 했거든요.
502호 엄마가 아들이 나중에 과학자가 될거라고
기특해하면서 활짝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리고 읽혀져서 베르나르가 한국 사람들에게 늘 고마워한다네요.
그의 상상력은 아주 기발하고 독특해서 저도 그의 책들 읽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 아이가 지금 과학자가 되어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대단한 통찰력을 겸비한 글을 올려주셨군요~
사실 어릴적 무심코 그것이 호기심이든 재미든
생명을 죽인것이 어찌 개미뿐일까요?
메뚜기,잠자리, 붕어, 참새,촉새, 꿩, 여치, 개구리~
심지어 뱀, 까지~ 그저 배가 고파서~
저도 참 못지않게 죄가 많구만요!
그러고 보니 요즘은 쌀 보리등 곡물과 김치에 쓰는
배추까지도~ 과연 인간이 무슨 특권으로 그것들을
맘대로 거두워 먹어도 되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한답니다.
초등학교 1~2년 정도에 생명 존중사상을 좀더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었다면 조금은 조심을 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가지고 있습니다.
암튼 매우 새로운 시각의 흥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교육이 너무 입시 위주가 되다보니
인성이나 생명 존중에 대한 교육이
등한시 되는 것 같아요.
수학이나 영어야 배움이 좀 부족해도 실생활에 큰 문제 없고, 도덕과 역사 과목은 평생 삶을 의미있게 해줄 수도 있는데, 중요과목면에서 완전히 뒤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