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미리보기 맛보기
2018. 6. 금계
2. 갓바위
세계적인 해양관광지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목포는 2007년 북항에서 평화광장에 이르는 7킬로의 해변을 목포해양문화관광특구로 지정하였다. 그 중에서도 학생들이나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갓바위권’ 관광특구다.
그러니까 갓바위 언저리는 목포 관광의 핵심, 목포 문화 발전의 산실이라 할 만하다.
나는 심심하면 자전거를 끌고 해변 길을 따라 갓바위 동네에 들어선다. 6월 20일, 맨 처음 나를 반기는 건물은 ‘목포문화예술회관’이다. 이곳에서는 각종 공연이나 전시회가 열린다. 그러니까 목포 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문화예술회관 앞뜰의 조각상. 예술작품은 조각가가 만들지만 해석은 보는 사람 자유다. 코가 치솟은 사람 형상인 것도 같고....... 예술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게 아니라 살짝 기이하게 비틀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다.
예술회관 정원에 세워진 ‘목포 제2개항선언’ 상징 기념탑. 다섯 명의 젊은 남녀는 목포의 희망찬 미래를 상징한단다.
갓바위 부근의 유일한 가게 예술회관 매점. 이른 아침부터 산책 나온 중늙은이들이 탁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국토론에 열을 올린다. 나는 귀찮아서 손전화도 놔두고 와서 시간을 알 수 없다. 건너편 탁자 손목시계를 찬 젊은이한테 몇 시냐고 물어본다. 내친 김에 내 똑딱이 사진기로 사진도 한 장 찍어주라고 부탁한다.
갓바위산(200m)은 산 남동쪽 끝자락에 갓바위가 있기 때문에 갓바위산 - 입암산(笠岩山)이라고 부른다.
81년인가 82년 항도여중 근무할 때 이 산으로 소풍을 왔다. 막 앉아서 도시락 뚜껑을 열려는데 소낙비가 쏟아졌다. 변변찮은 나무도 드물어서 비를 피할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학교까지 2km 넘게 비를 철철 맞고 돌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끔찍한 추억이었다.
입암산 아래 자연사박물관. 2004년 개관. 공룡 화석 등 3만 6천 점 소장 전시, 지구 46억 년의 자연사를 담고 있다.
자연사박물관 정원에 전시된 공룡 모형. 중생대 (2억5천만 년 전 - 6천5백만 년 전)에 살았던 공룡은 그러니까 거의 2억 년 가까이 지구를 지배했는데, 인류는 과연 몇 년이나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죽고 난 뒤의 일일 터니 자못 안타깝고 궁금하다.
오메, 자연사 박물관 정원에 자귀나무가 꽃을 피웠네! 하늘하늘 선녀가 입은 야회복을 연상시키는 저 꽃을 나는 눈물 나게 좋아한다.
입암산 아래 가장 먼저 세워진 건물, 1983년 개관. 원래 향토문화관이라 불렀는데 곁에 세운 자연사박물관과 연계시켜 문예역사관으로 바뀌었다. 화폐, 수석, 산호 등 진기한 볼거리가 많다.
자연사박물관 왼쪽에 있는 목포 생활도자 박물관. 2008년 개관.
생활도자박물관 왼쪽에 남농 기념관, 평생 목포에서 활동한 남종화의 대가 남농 허건 선생이 진도 운림산방 3대(소치 허련, 미산 허형, 남농 허건)의 작품과 평생 수집한 수석, 목물, 자기 등을 목포시에 기증하여 전시.
남농 기념관 왼쪽 멋진 다리 뒤의 목포문학관. 2007년 개관. 4인 복합 문학관.
1층은 소설가 박화성 관과 극작가 차범석 관.
2층은 극작가 김우진 관과 평론가 김현 관.
극작가 김우진은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과 비련에 빠졌다가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중간쯤 세워진 정자가 입암산 산책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마나님과 나는 저 산책로를 몇 번 걸었다. 경사 심한 곳이 별로 없어 가뜬하고 특히 여름이면 수풀이 우거져 산책로로 그늘이 져서 좋다.
예술회관 정원, 매점 가까운 곳에는 ‘이난영 탄생 백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매점 가까운 곳에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수차례 해저유물 발굴 조사와 과학적 보존 처리, 전시 및 사회교육 활동.
대형 목선 연구와 해양문화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해양유물전시관 뒤뜰에서 전시를 기다리는 해동호.
갓바위 들어가는 길.
드디어 ‘갓바위’의 프로필.
드디어 갓바위의 진면목. 두 스님이 나란히 삿갓을 쓰고 있는 형상. 풍화작용과 해식 작용의 결과. 천연기념물 제 500호.
목포 8경 중 하나. 입암낙조 (笠巖落照 - 갓바위로 지는 햇빛)
도 높은 스님이 영산강을 건너 나불도 닭섬으로 건너가려고 잠시 쉬던 자리에 놓아둔 지팡이와 삿갓이 갓바위가 되었다는 전설.
예전에는 배를 타야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부교를 놓아 쉽게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갓바위 입구의 통닭집. 목포 시민단체가 함께 모일 때는 가끔 이 집을 이용했다. 식당이 넓어 50명 100명쯤은 너끈히 한 자리에 들어가고도 남았다.
출어를 준비할까. 작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
뒤에 보이는 배경이 아산. 목포 8경 중 가운데 하나.
아산춘우 (牙山春雨 - 아산에 아슴푸레 봄비 내릴 때)
해양유물전시관 앞바다의 돛단배. 옛날에는 이런 배가 짐을 가득 싣고 돛폭 가득 바람을 팽팽하게 보듬고 영산강을 오르내렸을 터였다.
하루의 일과를 싱그럽게 시작하는 요구르트 아주머니.
사진 찍으며 갓바위를 한 바퀴 빙 도는데 서너 시간이나 걸렸능갑다. 해가 중천에 뜨고 이마에 땀이 돋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태 학원을 들여다보았더니 체육시간인가 보다, 여학생들이 잔디밭으로 쏟아져 나왔다.
저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다. 수십 년 후에도 우리 손자가 토종 신부를 맞이하는 데에 별 지장이 없을는지, 인구가 자꾸 줄어들 예정이라던데 아이들은 많이 태어날는지 조바심이 앞선다. 늙으면 괜한 걱정이 많아진다. (끝)
갈대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