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구미장애인부모회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테츠유키 어머니의 강의 요약 [1]
박현주(팀장) 추천 0 조회 42 11.08.25 17:2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아래 글은, 2002년 5월에 부산에 강연회를 오셨던

일본인 환경직공무원 29살의 자폐인 테츠유키 어머니의 강의를 제가 요약해놓았던 것입니다.

 

 

[테츠유키와 그의 어머니]- 1 -

 

 

자페아 태츠유키와 그 어머니의 강연회를 듣고 왔습니다.

얼마전 TV에서, 일본인 자폐아 테츠유키가 공무원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제 주위 친구들이랑 아는 분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제게 전화로, "너 그거 봤니?"하고 연락을 주시곤 하셨지요.
다음에 인터넷으로 꼭 한번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제 부산대 본관에서 그분을 직접 모시고 강연회를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옳지!"하고 참석했습니다.

29살의 미남 청년 테츠유키^^*....
강단위의 좌석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가끔 손가락 스틱을 보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몇백장은 될 듯한 종이에 쉴새 없이 그림이나 글자를 쓰며, 4시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에 갑자기 나가버려, 몇 사람이 따라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아마 화장실에 다녀온 듯..^^;;)
한번씩 일어나서 자신의 카메라로 관중석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기도 했습니다.
참석한 수백명의 사람들 중 반수 이상이 대학생들이었는데, 테츠유키의 작은 행동하나하나에 같이 웃어주고,
박수도 쳐주는 등, 그날 테츠유키는 그야말로 '스타'였지요.
물론 쉬는 시간 틈틈이 싸인을 받아 가는 학생들도 있었구요. ㅎㅎㅎ

세련된 매너나, 어른스러운 근엄함이나, 자발적인 멘트는 전혀 없었지만,
4시간의 긴 강연시간을 끝까지 참고 앉아있었고, 나름대로 그 분위기를 견디려고
그림을 그리거나, 스틱행동을 보이며 스스로 긴장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허공을 응시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손톱을 물어뜾곤 할 때, 저는 영빈이의 제스츄어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테츠유키가 바로 내 아이인 듯 사랑스런 마음이 들더군요. (테츠유키는 나보다 겨우 4살 어린데...^^;;)

테츠유키와 그 어머니의 삶은, 이론으로만 그려오던 특수교육과 사회복지의 실천, 그 자체였습니다.
20년 전엔 일본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폐에 대한 의학지식이나 교육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상태였고,
(물론 지금도 풀지 못한 숙제가 많이 남아 있지요...)
자폐아는 그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으로 생긴 정서장애라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상황가운데서, 정신지체를 동반한 자폐아에게 최선은 시설에 보내는 것뿐이었지요.
교육의 불모지와 같은 그 시대 상황에서, 테츠유키의 어머니는 홀로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역사회와의 통합을 거의 완벽하게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연중에 소개된 테츠유키 어머니의 교육 프로그램 몇가지를 간단히 적어보겠습니다.


1. 물에 대한 집착


그 당시 의사나 교사들은 집착행동을 문제로만 보았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제재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제로 못하게 했을 때 테짱(테츠유키의 애칭)이 보이는 panic 상태를 지켜볼수만은 없었습니다.
(panic 상태: 아마도 제 경험으로는 한시간 이상의 심한 울음과, 사소한 것에 대한 심한 거부감등의 정서상태를 보인거라 추측됩니다. 전문 용어에 대한 설명은 차후에 더 설명해드릴께요^^)
그래서, 어머니는 테짱의 집착행동을 이용해,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화장실청소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유리창 한 장을 6등분해서, 1,2,3,...으로 기호를 정하고, 나눠서 구석구석닦도록 반복훈련시켰습니다.
화장실청소를 완벽하게 가르치는데에 5년이 걸렸답니다...와우,,,,^^*
그렇지만 그후로는 한번도 어머니가 화장실을 청소한 적이 없다는군요..ㅎㅎ


2 숫자에 대한 집착


숫자 기호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것의 양에 대한 개념은 익히기가 어려운 이가 자폐아들이지요.
반복해서 양과 숫자의 개념을 가르쳤더니, 자동차 한 대와 사탕 한 개를 같은 가치로 알더라는 군요.^^
핫케잌을 반으로 나누면, 180도, 네식구가 나눠 먹으면 90도라는 식으로 계속 생활속에서 인식시켰답니다.
숫자가 생활속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테짱의 관심이 집밖으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가게에 가서 사탕을 그냥 집어오고 할때,
계속해서 돈을 주고 사야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산법을 가르쳤답니다.
그랬더니,... 나중엔 엄마지갑, 학교선생님 동전도 허락없이 가져가더라네요, 에고고... ㅎㅎ
그럴 땐 그 분들에게 아이가 남의 것을 인식할 때까지만, 돈간수를 잘해주십사 부탁했답니다.
물론 남의 것에 대한 인식도 오직 반복훈련뿐이지요, 자발적인 인식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돈은 노동의 댓가'라는 패턴을 익히고 나서는, 친척이 용돈을 줘도 그 보상으로 꼭 그 집의 화장실을 청소하더랍니다.


3. "아이스..."라는 아이의 중얼거림.


걷기시작할때부터 테짱은 달리기가 엄청 빨라서, 집밖으로 나가버린 아이를 찾아다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합니다.
대부분 이웃집의 화장실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곤 했지요.^^
초등학교 다닐즈음, 테짱이 "아이스...아이스..."하고 자꾸 요구하길래,
어머니는 "아하, 이 아이가 아이스 스케이트를 배우고 싶어하는 모양이다!"라고 추측하고,
지역사회에 봉사자들을 요청하고, 강사들에게 도움을 구해서 테짱 뿐 아니라,
다른 장애아와 일반아들이 같이 아이스 스케이트를 배우도록 스케이트 교실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물론 운동능력이 좋은 테짱은 신나게 아이스스케이트를 즐겼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테짱이 정말 원했던 "아이스..."는 얼음과자"아이스케키"였다더군요.ㅎㅎ
어쨌든, 아이의 말 한마디라도 교육에 응용해서 실천한 어머니의 열성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지요.


4, 채소가게 '아오조리하우스'를 개업하다.


아들에게 숫자와 돈의 개념, 그리고 사회적 관계들을 접하게 해주기 위해
체소가게 '아오조리(푸른 하늘)'를 동네한가운데에 개업해서, 장사를 가르쳤답니다.
물론 점원들은 테짱 외에도 중증의 장애인들을 같이 채용시켰습니다.
물건을 개수대로 정리시키고, 거스름돈을 계산하게 하고, 손님에게 인사를 시키고.....
어머니는 이 모든 활동에, 지역의 대학교와 봉사단체에 도움을 요청해, 자원봉사자를 구해서 참여토록 했습니다.
학교 내의 축제라든지, 지역행사를 할 때마다, 아오조리 점원들은 항상 참여해오고 있답니다.


5. "오하이요 (안녕하세요)" 인사 가르치기.


테짱은 인사 잘 하는 것으로 상을 받은 적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오하이요"라는 한마디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수백번의 반복과 수많은 이웃의 도움이 있어야 했습니다.
'100번, 200번 반복하면 느끼겠지...'라고 믿고, 아버지와 동생, 어머니는 계속 테짱을 향해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언어가 인사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웃주민들에게 부탁을 했답니다, "테짱과 마주칠 때마다, '오하이요'라고 한마디만 해주세요..."라고.
이웃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20번 인사해줬는데, 테짱이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50번 했는데, 테짱이 미소를 짓는 것 같더라..." 등등...


6. 자기소개 카드를 항상 들고 다니다.


" 나는 자폐아입니다.
나는 사회성을 배우고 싶습니다.
혹시 제가 당신에게 폐를 끼치면, 여기로 전화를 주십시오. TEL.~~~"
테짱이 혼자 나가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될 즈음부터, 이런 카드만을 가지고 혼자 다니게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7통의 피해 전화가 오기도 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이 아이가 이웃들과 이렇게 많이 사귀면서 살고 싶어했구나...'라고 여겼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테짱의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장애인들의 소식을 실은 신문을 만들어서,
이웃에게 지금까지 20여년동안 계속 전달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7. 7가지의 아르바이트.


고등학교 때부터 테짱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와 도로를 정확히 익힐 수 있었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주소지까지 배달을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물건을 전달하고, 도장을 찍고, 돈을 건네고, 영수증을 찍는 것 등은 이웃의 주민들이 다 도와주었습니다.
테짱의 신문을 통해, 그리고 갖고 다니는 카드를 통해, 이미 이웃들은 테짱을 돕는 방법들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지요.
문방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재고정리를 했습니다.
진열대에 노트를 항상 10권이 되도록 채워두었고, 거의 틀림없이 개수를 맞춰 놓았기 때문에
주인이 남은 재고품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필요한 물건들을 즉시즉시 주문해서 채워 넣을 수 있었답니다.
테츠유키가 공무원이 되어서 그 문방구를 그만두게 된 후론, 재고정리에 일대 혼선이 왔다네요. ㅎㅎㅎ


테츠유키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처음 IQ검사를 했을 때, 20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정상의 범위인 100 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아들은 IQ 50까지 도달했습니다.
나머지 50은 이웃의 도움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신체장애인은 그 나머지 50을 휠체어의 도움으로 채우지만,
정신장애인들은 이웃의 이해와 지원으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

 
다음검색
댓글
  • 11.08.26 19:23

    첫댓글 가족의 노력이 강조된거 같아 좀 걸리네요. 그래도 사연 올려주셔 잘 보고 갑니다.

  • 11.08.30 19:34

    아이에 대한 편견과 상실감으로 무뎌져 있을 때 이런 글을 접하고 나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노력이 성과와 비례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