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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세라세라] 09
S#1. ‘패션인의 밤’ 파티장 (밤)
시간이 경과하고 파티가 무르익으며 사람들 분위기도 좀 더 들뜬다.
파티 내내 은수와 준혁 커플에 신경이 쓰이는 태주와 혜린.
은수, 어색한 파티 분위기도 힘들지만 태주 때문에 더욱 불편하다.
준혁에게 끌려 이리저리 인사를 다니다 슬그머니 파티장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은수.
은수에게는 이 화려한 세계가 온통 별세계처럼만 느껴지는데 어느 사이엔가 태주가 다가와 있다.
태주 : 너 오늘 참 그럴싸하다?
은수 : (돌아보고 얼굴 확 굳는다)
태주 : (노골적으로 은수의 아래위를 훑어보는) 생각보다 몸도 아주 좋은데?
은수, 태주를 비켜 걸어간다.
태주, 여유 있게 은수를 따라 걸어가며 계속 얘기한다.
태주 : 신준혁이랑 본격적으로 발동 걸렸나 보지? 축하해. 결국 신데렐라 꿈을 이룬 거 아냐.
은수 : (경멸의 시선으로 태주를 본다)
태주 : 왜, 내 말이 틀렸냐?
은수 : (시선 돌리며 지나가던 술잔을 받아 급히 마신다)
태주 :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충고하는 건데, 너 이거 하난 생각해 봐라.
은수 : .....
태주 : 신준혁이 널 왜 좋아하겠냐, 저런 자식이 뭐가 아쉬워서 너 같은 애 상대할 거 같아?
은수 : !
태주 : 술집에 있을 때 신준혁이랑 만난 거라며? 그런데서 만난 여자 진지하게 생각할 남자 절대 없거든. 한번 데리고 놀려고
달콤하게 접근할 수야 있지. 그런데 그 달콤함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마. 주제 모르고 덤볐다간 너만 상처 받거든.
은수 :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얼굴이 싸늘하게 식는다)
태주 : 남자는 한번 놀아보자는 건데 그거 가지고 괜히 부풀어 올랐다간...
은수 : 나도 같이 놀아주면 되잖아요.
태주 : ! (은수를 본다)
은수 : 그렇게 하면 되는 거죠?
태주 : 네가 놀 줄이나 알어?
은수 : 알아요, 아주 잘 알아요. 아저씨도 나 갖고 놀았잖아요. 한번 놀았는데 두 번 못 놀겠어요?
태주 : 너 또 술 마셨냐?
은수 : 내가 길바닥에 지렁이만도 못해 보이죠?
태주 : 무슨 소리야?
은수 : 아니면 사람한테 이런 식으로 할 순 없어요.
태주 : 또 흥분한다, 야, 그만해.
은수 : 아저씨 말이 맞았어요. 난 요즘 아저씨 말을 두고두고 절감하고 있어요.
태주 : 무슨 말 하는 거야!
은수 : 사람 좋아하는 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좋은 거니까 창피할 것도 없고 자존심 상할 것도 없고,
세상 모두에게 드러내 놓고 자랑할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태주 : .....
은수 :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어요. 아저씨 말처럼 그건 정말 자존심 하나 없는 짓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자존심도 없이 아저씨 좋다고 쫓아다닌 거, 정말 후회해요. 아니면 이렇게 나 업신여기지 않을 거 아니예요.
태주 : 야, 오버 좀 하지 마. 대체 또 얼마나 마신 거야!
은수 : (태주를 본다) 이제 나 신경 쓰지 말아요.
태주 : !
은수 : 더 이상 아저씨 안 좋아하거든요.
태주 : !
은수 : 그리고 이제부턴 새로운 상대랑 놀아볼려구요. 아주 제대로, 신나게!
은수, 가려는데 태주가 은수의 손목을 잡는다.
은수, 태주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저 앞에서 사람들과 담소하고 있는 준혁을 향해 간다.
준혁에게 다가가 준혁의 팔을 잡는 은수, 준혁이 돌아보자 그 순간 준혁의 입에 입술을 댄다.
태주의 경악 어린 시선과 은수의 단호한 시선이 마주친다.
은수, 시선을 돌리며 준혁을 보는 순간 정신이 나는 듯 아차 싶다.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뒤로 빼려는데 준혁의 손이 부드럽게 은수의 뺨을 감싼다.
그대로 은수에게 키스하는 준혁.
은수, 잠시 놀라지만 준혁의 키스에 몸을 맡긴다.
주변 사람들 웅성이며 준혁과 은수를 주시하고,
한 켠에 있던 혜린도 사람들의 소란에 돌아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태주를 돌아보는 혜린.
준혁과 은수의 깊은 키스를 보는 태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은수에게서 입술을 떼는 준혁.
은수,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내리깐다.
준혁, 부드럽게 은수를 감싸 안 듯 팔을 두르고 걸어간다.
주변 사람들, 준혁에게 격려의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흐뭇하게 웃으며 속닥거리기도 한다.
준혁, 사람들의 시선에 어색한 미소로 답례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출구쪽으로 향한다.
은수에게는 준혁과 걷는 길이 아득하고 멀기만 하다. 정신이 없다.
준혁, 혜린의 비난과 의문 섞인 시선과 마주치지만 무시하고 은수를 데리고 나간다.
혜린, 가는 준혁과 은수를 못마땅한 듯 보다가 한 켠에 굳은 얼굴로 있는 태주와 순간 눈이 마주친다.
태주, 못 본 척 시선 돌리며 술을 마시는데 혜린이가 태주에게 다가간다.
혜린 : 대단한 쇼다, 그치?
태주 : .....
혜린 : 처음부터 기획된 건가... 어떻게 생각해?
태주 : .....
혜린 : (약간 날카로운) 내 말 안 들려?
태주 : 뭘?
혜린 : 방금 두 사람 일, 어떻게 생각하냐구?
태주 : (혜린을 짜증스러운 듯 본다) 무슨 생각? 신준혁한테 목매고 있는 건 너 아니었어? 생각이라면 네가 많을 거 아냐?
혜린 : (태주 똑바로 보며) 그러게. 머리 복잡하네. 설상가상도 유분수지. 왜 또 하필 상대가 한은수냐구.
태주 : (시선 돌린다)
혜린 : (던지듯) 당신, 괜찮아?
태주 : !
혜린 : (본다) 아무렇지 않냐구?
태주 : ..... (혜린 본다) 내가 너냐! (자리 옮기는데)
혜린 : (태주를 따라 걸으며) 다행이네. 당신까지 지금 나 같은 기분이면 어떡할 뻔 했어.
태주 : .....
혜린 : 한은수 신준혁이랑 우리 둘, 아주 거지같이 엮일 뻔 했잖아.
태주 : .....
혜린 : 내 눈엔 별 볼 일 없는 그저 그런 애로 보이는데 한은수 걔, 남자들 보기엔 뭔가 있긴 있나 보지?
태주 : .....
혜린 : 도대체 뭐야, 한은수 매력이?
태주 : .....
혜린 : 한은수 뭐 땜에 준혁 오빠 같은 사람이 저러는 거냐구.
태주 :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혜린 : 당신도 알 거 아냐. 한은수랑 알고 지낸 사이니까. 남자가 보기엔 어떠냐고 묻고 있는 거야.
태주 : (걸음을 멈추고 혜린을 본다) 모르긴 몰라도 너보단 나은가 보지!
혜린 : ! 뭐?
태주 : 딱 결과 보면 몰라? 신준혁이 너 싫고 한은수가 좋다잖아.
혜린 :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하니!
태주 : 먼저 시작한 건 너야. 그렇게 궁금하면 지금이라도 너네 오빠 쫓아가서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왜 엄한 사람 쫓아다니면서 들들 볶는 건데, 피곤하게!
태주, 홱 돌아서 가버린다.
혜린, 몹시 자존심 상한 듯 가는 태주를 본다.
S#2. 도로 / 준혁의 차 안
달리는 준혁의 차, 은수와 준혁, 어색한 분위기로 말없이 있다.
잠시 후.
준혁 : 왜 그랬어요?
은수 : !.....
준혁 : 또 제정신이 아니었나요?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은수 :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준혁 : 만약 그런 거라면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은수씨 나, 제대로 망신 준 거예요. 오늘.
은수 : 사..상무님...
준혁 : 아니면 공개적으로 사랑고백이라도 한 건가...
은수 : !
준혁 : 알고 있었죠?
은수 : ?!
준혁 : 은수씨가 다가오면 내가 받아줄 거라는 거요.
은수 : .....
준혁 : 그런 확신 없이는 그렇게 대담한 행동 할 수 없거든요.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은수 : (어쩔 줄을 모르겠다)
준혁 : 강태주 때문인가요?
은수 : ! (시선 피한다)
준혁 : .....너무하네요. 은수씨에 대한 내 호의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은수 : ...죄..죄송해요.
준혁 : .....
은수 : 그런데...꼭...이용하려고 그런 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었어요.
준혁 : .....
은수 : 저... 상무님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데요. 그런 분을 어떻게...
준혁 : 알아요. 은수씨가 전혀 맘에도 없는 남자한테 입을 맞출 정도로 비윗장 좋은 여잔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알아요.
은수 : .....
준혁 : 그 정도 호감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거 어때요?
은수 : ! 네?
준혁 : 우리, 사귀어 보자구요.
은수 : !......
준혁 : 오늘처럼 나 이용하고 싶을 때 이용하고 기대고 싶을 때 기대라구요. 마음껏.
은수 : ...사...상무님 같은 분이 왜 저한테...
준혁 : 은수씨 오늘, 나 제대로 꼬셨어요.
은수 : !
준혁 : 일 저지른 사람이 그런 무책임한 소리 하는 거 아니죠.
은수 : .....
준혁 : 기다릴께요. 생각해보고 대답해요.
은수, 어쩔 줄 몰라하며 준혁을 본다.
S#3. 은수네 오피스텔
경진, 들뜬 얼굴로 거울 앞에서 은수가 벗어놓은 드레스를 몸에 대보고 있다.
지수는 공부하던 자세 그대로 경진을 보고 있고, 은수는 구석에서 실내복을 입고 있다.
경진 : 웬일이라니? 이걸 정말 공짜로 얻었단 말야? 이 질감, 이 디자인! (스스로 반한 듯 거울 속 모습 보며)
어쩜! 세월의 풍파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이 미모! (지수 돌아보며) 지수야, 잘 어울리지? 섹시하지? 우아하지?
지수 : (단호한) 유치해!
경진 : (확 흥 깨지는) 저 놈의 주둥아리 저거!
지수 : (진지한) 드레스에 구두에 파티에..., 너무 유치할 정도로 똑같단 생각 안들어?
(확 시선 돌려 은수를 보며) 재투성이 아가씨의 뜬금없는 변신! 뭔가 냄새가 나!
은수 : (신경도 쓰지 않고 얼굴의 화장을 닦기 시작한다)
지수 : (은수에게 다가가) 그 상무님이란 사람, 언니한테 흑심 있는 거지, 그렇지?
경진 : (지수 머리통 때리며) 그 상무님이 미쳤다니? 허구 많은 여자 놔두고 쟤한테 뭐 볼 거 있다고!
지수 : 아, 왜 때려! 그럼 파티엔 왜 데리고 간 건데!
경진 : 회사 여직원 몇몇 뽑혀서 간거라잖아. 현장실습차원으로다.
지수 : 그게 말이 되냐고요!
경진 : (지수 밀어내며) 저리 비켜! (은수에게 드레스 내민다) 꼼꼼히 살펴봤는데 얼룩하나 없더라.
주름도 안가는 거라 완전 새 거 그대로야, 완벽해!
은수 : (옷 챙기며) 네.
경진 : 내일 당장 가서 환불해갖고 와. 그런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거든.
은수 : ! 환불이라뇨?
경진 : 그런 옷 다시 입을 일 있어? 쳐박아 두면 뭐하니? 돈이 얼만데?
은수 : 엄마...
경진 : 못해도 몇 십만원은 될걸?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고, 굼뜨고 어리숙한 줄만 알았는데 네가 이런 재주도 부릴 줄 알고,
참, 사람 오래살고 볼 일이다, 얘. 무조건 우겨, 한 번도 안 입은 거라고 박박...
은수 : (얼굴이 싸늘하게 굳은) 굼벵이라뇨? 내가 왜 굼벵이에요?
경진 : !
은수 : 내가 왜 굼벵이냐구요!
경진 : 아..아니 얘가 왜 이래?
은수 : 엄마가 이러니까 남들도 나 무시하잖아요. 엄마가 자기 딸을 그딴 식으로 생각하는데 생판 모르는 남은 오죽하겠어요?
경진 : (몹시 당황한) 아..그..그래.. 너 굼벵이 아니라 사람이야, 사람! 너처럼 사지 멀쩡히 달린 굼벵이가 어딨다니?
아, 누가 뭐랬냐구!
은수 : .....환불 안할 거예요! 절대로 안해요! (욕실로 간다)
경진 : 쟤...쟤 왜 저러니? 쟤 미친 거 아니야?
지수 : 콩쥐의 반란이 시작된 거 같아.
경진 : 뭐?
지수 : 팥쥐 엄마, 조심 좀 하셔.
경진 : !
S#4. 백화점 매장 / 샤샤 매장 (다른 날, 낮)
칸막이가 쳐진 실내에서 매장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혜린,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다가 착잡한 듯 실내를 둘러본다. 영 맘에 차지 않는 표정이다.
핸드폰을 꺼내 태주의 번호를 누른다.
혜린 : 나야..... 왜긴, 약속 있는 거 잊었어?
S#5. 동, 복도 / 엘리베이터 앞
나란히 걸어가며 엘리베이터 앞에 서는 혜린과 태주.
혜린 : 옷 몇 벌 걸어놓는 게 전부야. 얼마나 좁은지 인테리어고 뭐고 할 공간도 없다니까.
이래서 시장판 점포랑 다를 게 뭐가 있냐고.
태주 : 콘테스트로 입점 되는 매장규모는 첨부터 정해진 거잖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이제와서 투덜대?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는 두 사람.
S#6. 엘리베이터
혜린과 태주.
혜린 : 알고 있었던 거랑 실제로 겪으면서 느끼는 거랑은 달라. 아무래도 안되겠어. 아빠한테 말하던지 해서 무슨 조치를...
태주 : 웬만하면 좀 가만있지? 너 혼자 난리쳐서 매장 넓히면 콘테스트로 들어온 다른 브랜드는 뭐가 되고
우리 백화점은 또 뭐가 되냐? 형평성이라는 게 있거든.
혜린 : 그런 거야 잠깐 시끄럽고 말텐데, 뭘? 내 매장이 죽게 생겼는데 뭣하러 그런데 신경 쓰니?
태주 : 하여간, 입으로만 아니다아니다 그러지 가만 보면 지네 아버지 딸인 거 엄청 티내고 다녀요.
혜린 : 뭐?
태주 : 백화점 따님 유세 좀 그만 부리시라구요. 눈꼴 시어 죽겠어요.
혜린, 발끈하듯 보는데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혜린의 표정이 굳는다.
은수가 서 있는 것.
혜린과 태주, 은수 세 사람 사이에 순간 긴장감이 흐르는데.
혜린 : 안녕하세요? 한은수씨.
은수, 말없이 탄다.
혜린, 서로 모른 척 외면하고 있는 은수와 태주를 번갈아 본다.
혜린 : 두 사람, 생판 모르는 남처럼 왜 아는 척도 안하지? (태주에게) 옛 이웃사촌에 현직 장동료잖아, 안 그래?
태주 : (본다)
혜린 : 왜 이렇게 썰렁하냐구.
태주 : 넌 사무실에서 동료 직원들 마주칠 때마다 서로 아는 척 하고 인사하냐?
혜린 : (쉽게 수긍하는) 하긴.
잠시 침묵이 흐른다.
혜린, 은수를 본다.
혜린 : 한은수씨는 무대체질인가 봐요.
은수 : ?!
혜린 : 길바닥에서 지폐뭉치를 던지지 않나, 공개석상에서 남자한테 입을 맞추질 않나.., 웬만한 사람이 할만한 일은 아니죠.
은수 : .....(불쾌하다)
태주 : (난감하다)
혜린 : 대단해요, 정말. 어떻게 준혁오빠한테 그런 식으로 프로포즈할 생각을 다 했어요?
은수 : 제가 원래 무대가 체질이라서요.
혜린 : 아아. ...우리 지금 준혁 오빠랑 점심 약속 가는 건데 같이 갈래요?
은수 : 됐어요, 전.
혜린 : 왜요, 준혁오빠도 좋아할텐데.
은수 : 밥맛 없어요. 속이 안 좋아서요.
혜린 : (잠시 사이 두고) 준혁 오빠랑은 엔조이(enjoy)죠?
은수 : !?
혜린 : 은수씨 과거 경력을 봐도 그렇고, 역시 엔조이가 맞겠죠, 그쵸?
은수 : (혜린을 돌아본다)
혜린 : 왜요, 아니예요?
은수 : 한국말 하려면 좀 똑바로 하시죠. 되지도 않는 영어 섞어서 하니까 무식한 전 뭔 말인지 모르겠네요.
혜린 : 서로 즐기는 사이냐구요. 진지한 관계는 아닐 거 아니예요.
은수 : (혜린과 태주를 보며) 두 분은 어떤데요?
혜린 :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이봐요, 한은수씨..
은수 :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나요? 즐기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한 거, 그게 연애잖아요.
(태주를 똑바로 보며) 안 그런가요, 강대리님?
태주, 은수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러운 듯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 당돌한 눈길로 태주를 보는데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태주 : (혜린에게) 안내려? (내린다)
못마땅한 눈길로 은수를 힐끗 보더니 태주 뒤를 쫓아 내리는 혜린.
잔뜩 굳은 얼굴로 걸어가는 태주.
은수,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S#7. 일식집 룸
식사 중인 준혁, 혜린, 태주.
혜린 : 요즘은 백화점에 가도 오빠 얼굴 보기 너무 힘들더라. 무슨 용무가 그렇게 많은 거야?
준혁 : 지금 내 자리가 좀 그래. 밖에서 사람 만나는 일이 태반이거든. 매장은, 정리 잘 되가고 있어?
혜린 : 정리랄 게 있나, 워낙 좁아놔서... 그것 땜에 태주씨한테 된통 욕 먹었잖아. 어떡하든 매장 좀 넓혀야겠다고 했더니
백화점 딸 유세 그만 떨고 가만 있으라네.
준혁 : (웃으며 태주를 본다) 말 잘했네.
혜린 : 안 그러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나봐. 반성했어.
준혁 : (태주에게) 앞으로도 계속 지적해 주지. 혜린이한텐 자네 말이 먹히는 거 같은데.
태주 : 앞으로도 오늘만큼 잘 알아먹을지는 자신 없는데요.
혜린 : 알아먹게 얘기하면 다 알아먹어. 너무 기분 나쁘게만 하지 마. (준혁에게) 그 날 파티장 일은 어떻게 된 거야?
준혁/태주 : !
혜린 : 그렇게 사람 놀래켰으면 뒷수습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준혁 : 무슨 뒷수습?
혜린 : 명확한 해명, 한은수와의 관계 정의.
준혁, 태주를 본다. 태주, 못 들은 척 시선 피한다.
혜린 : 두 사람, 사귀는 거야?
준혁 : 그럴려구.
태주 : !
혜린 : 아직은 아니란 얘기네.
준혁 : 시작단계야.
혜린 : 그만둬, 그럼.
준혁 : (기분 상한 듯 혜린을 본다) 무슨 소리야?
혜린 : 오빠랑 맞지 않는 상대야. 어울리지 않아.
준혁 : 전에 나도 같은 소리 한 적 있었지.
태주 : (준혁을 본다)
준혁 : (태주를 힐끗 보고) 네 말이 맞아. 꼭 어울리는 상대랑 사랑에 빠지는 거 아니야.
덧붙이자면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거고.
혜린 : 어쨌든 안돼. 한은수는.
준혁 : 네가 뭔데 그런 소릴 해?
혜린 : 오빠 여동생이자 강태주 약혼녀.
태주 : (밥맛 떨어지는 듯 숟가락 놓는다)
준혁 : 그게 왜?
혜린 : 몰라서 물어? 태주씨랑 한은수 관계, 짐작할 거 아냐.
태주 : 관계는 무슨 관계? 걔랑 내가 뭘 어쨌다구!
혜린 : (침착한) 이것 봐. 한은수 얘기 나오니까 흥분하잖아.
태주 : 야!
혜린 : (태주에게) 당신 말처럼 별 거 아닌 관계가 됐든 아니면 대단한 관계든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지금 현재 신경 쓰인다는 게 중요한 거지.
태주 : !
혜린 : 까놓고 말하자, 우리. 오빠나 나, 태주씨, 다들 마음 불편한 거 사실이잖아. 가족끼리 지저분하게 이게 무슨 짓이니?
준혁 : 그래서 한은수는 안된다구?
혜린 : 시작단계라며, 더 복잡해지기 전에 그만두는 게 낫잖아.
준혁 : 니들이나 헤어져, 그럼.
혜린 : 오빠!
준혁 : 난 상관없거든. 상관있는 사람들이나 피하라구.
혜린 : 사리 분명하고 잘난 사람이 왜 이렇게 미련하게 굴어?
준혁 : 맺고 끊는 거 정확한 넌 왜 지난 일에 연연하는데? (태주와 혜린 번갈아 보며) 이미 다 끝난 관계잖아, 뭐가 문제야?
혜린 : 찝찝하지도 않아? 이 사람 좋다고 쫓아다니던 애야. 게다가 술집까지 나갔었다며? 오빠가 뭐가 모자라서 하필 그런...
태주 : (버럭) 그만 좀 하지 못해!
준혁과 혜린, 태주의 갑작스런 큰 소리에 놀라 돌아본다.
태주 : 어리석은 거냐, 미련한 거냐? 너네 오빠가 네 말 들을 사람으로 보여?
나도 뻔히 알겠는데 평생 같이 산 너는 아직도 그걸 몰라서 되지도 않는 생떼 쓰고 있냐고!
혜린 : 이것 봐, 태주씨!
태주 : 너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체력이 남아돌아? 도대체 가만 있는 사람들은 왜 들쑤시고 다니는 건데?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사람 속 박박 긁어대는 그 버릇, 제발 좀 그만 둬! 이제 아주 질려버리겠다, 내가!
태주, 벌떡 일어나 나간다.
황당하고 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혜린.
준혁, 혜린의 반응을 보며 혜린이가 태주에게 감정이 있음을 눈치 챈다.
S#8. 백화점 사무실, 마케팅 팀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 태주.
팀장이 태주에게 말을 건다.
팀장 : 사은품 샘플조사, 강대리가 가기로 했지?
태주 : 네.
팀장 : 쌈박한 걸로 잘 좀 골라 봐, 사은품에 따라 백화점 매출이 왔다갔다하니 세상 이거 되겠어?
요즘 사람들 공짜 너무 좋아한다니까.
태주 : .....
팀장 : (입구쪽을 보며) 한은수씨 여기요!
태주, 팀장의 말에 고개 들어 보다가 깜짝 놀란다. 은수가 다가오고 있는 것.
은수도 태주를 보고 어색하게 있는데.
팀장 : (은수에게 태주 가리키며) 강태주씨랑 같이가면 돼요. (태주에게) 지금 출발할거지?
태주 : ! 네?
팀장 : 인턴사원 대동하는 거 몰랐어? 지침 내려졌잖아. 업체 미팅이니, 팀별 회의니, 시장조사까지
인턴사원들 다 돌아가면서 참여시키라구. (태주의 어깨를 치며) 인턴 유망주 한은수씨야. 잘 좀 지도해 드려. (일어나 나간다)
태주와 은수, 난감하다.
S#9. 동, 지하 주차장 / 태주의 차 안
어색한 분위기로 서로 떨어진 채 주차장으로 나오는 은수와 태주.
태주가 먼저 차에 올라타고, 은수도 뒤따라 보조석에 탄다.
태주,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려다가 마음이 쓰이는 듯 은수쪽을 본다.
태주 : 밥은 먹었어? 속 안 좋다며?
은수 : .....
태주 : 배, 안고파?
은수 : .....
태주 : (차 안에 있던 과자(ex>포테토칩)를 들어 보이며) 과자 있는데.., 먹을래?
은수 : .....
태주 : 야! 사람 말 안 들려?
은수 : (쳐다보지도 않은 채 퉁명스런) 먹기 싫어요.
태주 : (과자 놓고 삐진 듯 시동 걸며) 너 배 고프지, 내 배 고프냐!
태주, 거칠게 차를 출발시킨다.
S#10. 생활 소품 매장 (쌈지길)
각종 아이디어 상품들과 생활소품들이 있는 곳이다.
상품들을 흥미롭게 만지작거리며 보는 은수.
태주, 그런 은수를 힐끗 보면서 상품들 사진을 찍기도 하고, 몇몇 물건들은 샘플용으로 골라 장바구니에 넣기도 한다.
두 사람, 상품에 대해 의견도 나누고 같이 살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큰둥한 분위기다.
가끔 재밌는 상품 때문에 우연히 함께 웃기도 하지만 서로 눈이 마주치면 다시 어색해지는 일이 반복된다.
S#11. 도로 / 태주의 차 안
태주와 은수. 서로 쳐다보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대화를 나눈다.
태주 : 둘러보니까 어때? 사은품으로 할만한 거 있는 거 같아?
은수 : 예쁘고 신기한 건 많지만 백화점 사은품은 실용적인 게 먹히잖아요.
태주 : 맨날 그 상품이 그 상품, 지겹잖아. 다른 데랑 별다를 것도 없고.
은수 : 그래도 아줌마들은 실용성을 제일 따져요.
태주 : 새봄맞이 집단장 컨셉은 어때?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 묶어서 패키지로.
은수 : 괜찮긴 한데... 그러면 단가가 세지지 않나요?
태주 : 업체랑 상의해 봐야지.
은수 : .....
태주의 차, 신호에 걸린다. 바로 앞에 백화점이 보인다.
태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은수쪽을 본다.
은수, 태주를 외면한 채 창 밖을 보고 있다.
태주, 잠시 망설이다가 갑자기 차선을 바꿔 유턴을 한다.
깜짝 놀라 돌아보는 은수.
S#12. 한강 고수부지 주차장 / 태주의 차 안
태주의 차가 선다.
은수 : 여긴 왜 온 거예요?
태주 : 너 한강 좋아하잖아. 구경하라구.
은수 : (황당한) 장난해요?
태주 : 너랑 나, 얘기 좀 해야 되지 않냐?
은수 : !... 나 강대리님이랑 할 말 없어요.
태주 : 내가 있어.
은수 : 안 들을래요. (벨트 풀고 나가려는데)
태주 : 야, 어디가?
은수 : 사무실이요. 한강 구경 혼자 잘 하다 오세요.
태주 : 너한테 못할 짓 많이 한 거 알아.
은수 : ! (멈춘다)
태주 : 사과하고 싶어서 그래...
은수 : (순간 왠지 찡하다)
태주 : 그러니까 잠깐만 시간 좀 내줘.
은수 : .....
S#13. 선착장 레스토랑
마주 앉아 있는 은수와 태주.
태주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어색하게 컵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은수, 그런 태주를 바라보다가.
은수 : 할 얘기 있다면서요, 안해요?
태주 : .....
은수 : 강대리님.
태주 : (본다) 일단... 내가 그동안 널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대한 거 같아.
은수 : .....
태주 :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심한 농담도 좀 한 거 같고... 그런데 그거 정말 너 무시해서 그런 거 아니거든.
은수 : 그럼 왜 그랬어요?
태주 : ...너무 편했나 봐, 네가. 너 마음 상하게 할 의도는 정말 없었어.
은수 : .....그래서요?
태주 : .....자존심 상해하지 말라구.
은수 : .....
태주 :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은수 : .....얘기 다 끝난 거예요?
태주 : 더 있어.
은수 : (본다)
태주 : 너 말이야.
은수 : ?
태주 :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돼.
은수 : 뭘요?
태주 : 너... 요즘 애들답지 않게 전혀 때도 안 묻고, 순수하고, 순진하고, 착하고 맑은 애잖아.
은수 : (무슨 소리 하나 싶다)
태주 : 어려운 환경 꾸려가면서 동생도 잘 돌보고 회사 일도 열심히 하고 있고, 게다가 꽤 능력도...
은수 : 지금 뭐하세요?
태주 : (본다)
은수 : 이상한 소리 그만 하고 그냥 하던 대로 해요. 자연스럽게.
태주 : 너는 좋게 말해도 시비냐?
은수 :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가식적으로 들린단 말예요. 더 기분 나빠요.
태주 : 그럼 입도 뻥끗하지 말까?
은수 : 말 안 할 거면 그만 가죠. (일어서려는데)
태주 : 너 그런 거 홧김에 하는 거 아니야!
은수 : !?
태주 : 네가 너무 순진해서 세상을 아직 잘 모르는 거 같은데 홧김에 할 일이 따로 있지 겁도 없이 그런 짓 했다가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냐?
은수 : 그런 짓이 뭔데요?
태주 : .....
은수 : 네? 뭐냐구요?
태주 : ...신준혁이랑 사귀지 마.
은수 : !
태주 : 사람 사귀는 거, 신중해야 돼!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사귀는 애 아니잖아, 너. 그런데 그렇게 즉흥적으로...
은수 : 상무님이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예요?
태주 : !
은수 : 능력 있고, 성격 좋고, 잘 생기고 게다가 사려 깊고 어른스럽기까지 해요. 아저씨보다 훨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태주 : 왜 여기서 사람을 갖다 비교하고 난리냐, 기분 나쁘게?
은수 : 그러니까 상무님이 왜 아무나냐구요?
태주 : 지금 그 말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은수 : 그럼 뭔데요?
태주 : 나 땜에 화 난다고 맘에도 없는 남자한테 가봤자 그거 잠깐이야. 결국 너만 더 괴롭고 너만 더 힘들어져.
비극과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구.
은수 : 내가 마음에도 없는 남자한테 키스한 거라구요?
태주 : !
은수 : 아저씬 장난으로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예요, 못해요! 아저씨 말처럼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거든요, 난.
태주 : 그래서, 네가 신준혁을 좋아하기라도 한다구?
은수 : 왜요, 그러면 안돼요?
태주 : 신준혁이 내 약혼녀 오빠라서가 아니고?
은수 : !..뭐..뭐요?
태주 : 네 속을 모를 줄 알아? 일부러 나 피 말리려고 이러는 거잖아.
은수 : 내가 아저씨 땜에 일부러 상무님이랑 가까이 지낸다는 거예요?
태주 : 그럼 아니야?
은수 : 내가 그런 짓을 왜 하는데요?
태주 : 그야..... (잠깐 말이 막히지만 이내 의기양양하게) 내 관심 끌려고!
은수 : ! (어안이 벙벙해진다)
태주 :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신준혁한테 키스하는 거 보니까 아주 가관이더라. 그런다고 내가 질투라도 할 거 같냐?
너 아무리 그래봤자 나 꿈쩍도 안해. 전혀 승산 없는 싸움이라구. 그러니까 다 관두라는 거야. 너만 다치고 너만 상해.
아무 소득도 없이!
은수 : 이 아저씨가 완전히 미쳐버렸나...!
태주 : 뭐!
은수 : 당장 병원부터 가보세요. 과대망상 증세가 심각하네요. (일어서려는데)
태주 : (거칠게 은수의 손을 잡아끌어 앉힌다) 어떻게 할 건데, 신준혁이랑?
은수 : 내 마음대로 할 거예요.
태주 : 좋은 말로 할 때 그만둬라.
은수 : (확 뿌리치며) 제발 착각 좀 그만해요. 내가 말했죠? 더 이상 아저씨에 대한 감정 없다고.
태주 : 웃기지 마. 지금껏 내가 사귄 여자가 몇인데 네 속마음 하나 모르겠냐. 그런 거 척하면 그냥 척이거든.
은수 : !
태주 : 내가 너무너무 좋다며? 온 몸 구석구석 사무치게 좋다며? 손톱 끝까지 사무쳤다는 감정이 그렇게 쉽사리 빠져나갈 리 있겠어?
은수 : (분한 듯 야속한 시선으로 본다) 왜 지난 얘긴 들춰내요?
태주 : 지난 얘긴 무슨...! 야, 날 좋아하는 거야 네 마음이니까 내 알 바 없다 쳐! 하지만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아야할 거 아니야.
나 요즘 혜린이 닦달에 아주 짜증 만빵이거든. 그게 다 누구 때문이겠냐.
네가 신준혁 핑계로 내 주변에 스토커처럼 알짱거리는데 걔 성질에 가만히 있겠냐구!
은수 : .....
태주 : 내가 너랑 잠이라도 잤냐? 네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댄 적 있어? 도대체 무슨 죄를 졌다고 사람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은수 : .....
태주 : 별 것도 아닌 인연에 연연하면서 스토커 짓 하는 거 제발 좀 그만 둬! 그러다 네 인생만...
순간, ‘욱’하며 한쪽 다리를 감싸 안는 태주.
은수가 테이블 밑으로 태주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냅다 찬 것.
태주 : 야, 왜 사람을 치고... (은수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춘다)
은수, 분노에 찬 눈으로 태주를 노려보고 있다.
은수 : 미쳤지, 내가!.....누굴 탓하겠어. 당신 같은 남자 좋다고 한 내가 미친년이지.
순간, 참았던 눈물이 은수의 눈에서 뚝 떨어진다.
태주, 할 말을 잃고 은수를 보는데 은수 돌아서 간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꼭꼭 닦으며 분을 누르며 걸어가는 은수.
태주는 뒤에서 그런 은수를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태주, 착잡한 듯 가는 은수를 보다가 바지의 차인 부분 먼지를 툭툭 털어낸다.
태주 : (혼자 중얼대는) 기껏 사과했는데... 말짱 도루묵이네... 본전도 하나 못 건지고... 괜히 애나 울리고...
아, 왜 이러냐... 나 자꾸 왜 이러냐...
태주, 자꾸 어긋나는 상황도 미치겠고 알 수 없는 자신의 마음도 답답하다.
S#14.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방 (밤)
늦은 밤, 사무실 불은 모두 꺼진 채 텅 비어 있고, 준혁의 방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준혁의 방, 스탠드 불빛 아래 준혁과 정보가 마주 앉아 있다.
준혁, 심각한 얼굴로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정보 : 시공당시에는 쇼핑몰 건립이 목적이었는데 공사 중간에 소유주가 바뀌면서 용도가 변경됐다고 합니다.
준혁 : (서류에 시선 둔 채) 그런데요?
정보 : 처음에 쇼핑몰을 지으려 했던 사람이... 팔레스 백화점 차형민 회장입니다.
준혁 : ! (잔뜩 굳어진 얼굴로 고개 들어 정보를 본다) .....17년 전이면... 아직 팔레스 유통 시긴데...
공사 중간에 건물을 넘긴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정보 : .....
준혁 : (본다)
정보 : (굳은 얼굴로) 그게... 사고가 있었습니다.
준혁 : ?
정보 : (서류 내밀며) 90년 공사 당시 팔레스 유통의 직원 한명이 공사 현장에서 실족사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고 직후 공사 중인 건물을 헐값에 넘겼다고 합니다.
준혁 : (서류를 보던 표정이 눈에 띄게 창백해진다)
정보 : .....사고 당한 직원은 당시 경리부에서 근무하던...
준혁 : (서류에 눈을 둔 채) 아버지네요.
준혁, 예상치 못한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S#15. 도로 / 준혁의 차 안
비오는 밤, 잔뜩 굳은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준혁. 충격으로 인해 도저히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달리는 차창에 빗줄기와 네온사인이 뒤섞여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다.
정보(e) : 자살이냐, 타살이냐, 실족사냐를 두고 한동안 꽤 시끄러웠던 모양입니다. 당시 고인이 많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자살에 무게가 실리긴 했지만 명쾌하게 결론 나진 않았던 거 같습니다.
윤여사(e) : 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있니?
차회장(e) : 넌 내 아들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아들이 사위가 될 순 없는 법 아니냐?
윤여사(e) : 너한테 그토록 끔찍한 회장님이 왜 한 번도 널 사위로 맞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그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니?
S#16. 서울 모처, 모 건물 앞 / 건물 옥상
건물 앞에 멈추는 준혁의 차.
차에서 내린 준혁, 비를 피할 생각도 않고 건물로 다가가 한참을 올려다본다.
준혁, 건물에 시선을 둔 채 뒷걸음질치다가 발을 접지르는 바람에 살짝 균형을 잃는다.
균형을 잡으려 시선을 내리는 순간 건물 사이 난간에서 한 소년(13세, 어린 준혁)이 건물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발견한다.
거의 그와 동시에 준혁의 눈 앞에 떨어지는 준혁의 부친.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치는 준혁. 하지만 다시 보면 소년의 모습도 부친의 모습도 없다.
불안과 의혹에 담긴 시선으로 건물을 돌아보는 준혁.
S#17. 준혁의 오피스텔
컴퓨터 작업 중인 은수, 문득 고개 들어 비 내리는 창을 바라본다.
우울한 얼굴로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일을 시작하려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현관으로 나가는 은수.
은수 : 오늘은 일찍 오시네요.
은수, 들어서는 준혁의 젖은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란다.
은수 : 어머, 무슨 비를 이렇게...
준혁, 대꾸도 없이 소파에 가 앉는다.
은수, 준혁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다.
생각난 듯 급히 수건을 가져와 준혁에게 갖다 주는 은수.
은수 : 옷부터 갈아입으셔야 할 거 같은데...
준혁 : .....
은수 : 상무님.
준혁 : (수건으로 머리 닦으며)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은수 : 네?
준혁 : 그만 들어가라구요.
준혁, 일어나 침실 쪽으로 간다.
은수, 책상으로 가서 가방을 챙기지만 준혁이 맘에 걸린다.
준혁,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는데 찻잔세트를 들고 주방에서 오던 은수와 마주친다.
은수 : 추우실까봐... 차 좀 드시라구요.
준혁 : (말없이 은수를 본다)
<시간 경과>
준혁과 은수, 차를 마시고 있다.
은수, 준혁이 맘에 걸리는 듯 그의 눈치를 본다.
준혁 : 아버지는 뭐든 나쁜 일만 있으면 다 당신 탓을 했어요.
은수 : .....
준혁 : 어머니가 긴 병치레 끝에 돌아가신 것도, 그 때문에 넉넉찮은 살림이 더 어려워진 것도 다 당신이 못나서래요.
...보기, 싫었어요.
은수 : !.....
준혁 : 내가 공부 잘하는 것도 아버지한텐 스트레스였죠. 내 아버지인 게 한스럽다고 했어요.
잘난 아들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해주는 못난 애비라서. (일어나 창가쪽으로 간다) 짜증났어요, 그런 소리 듣는 거.
은수, 걱정스러운 듯 준혁을 보다가 일어나 그에게 다가간다.
준혁 : 그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 인생이 확 변해버렸죠. 아버지 다니던 회사 사장님이 날 잘 보셨거든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은수 : !
준혁 : 그 후로 완전히 잊어버렸어요, 아버지를.
은수 : 그런데.. 지금은 왜 생각하세요?
준혁 :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 : 잊어버렸다면서요.
준혁 : (은수의 시선을 외면한다)
은수 : 보기 싫어한 적도 없고 짜증 낸 적도 없어요 상무님은.
준혁 : !
은수 : 상무님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 정도는 알거든요.
준혁 : 은수씬 날 너무 좋게만 보네요.
준혁, 은수를 비켜 가려는데 은수가 준혁의 팔을 잡는다.
은수를 보는 준혁.
은수 : (안타까운 눈길로 보는) 자책하지 마세요...네?
준혁 : .....(은수를 잠시 보다가) 내가 괜한 소릴 했나봐요. 미안해요, 마음 쓰게 해서. (돌아서는데)
은수 : 왜 그런 식으로 말해요? 사람 무안하게... 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단 말예요.
준혁 : !....
은수 : ...상무님도 기대고 싶을 때 기대세요. 이용하고 싶을 때 이용하구요.
준혁 :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 : 어떻게 저만 그러냐구요..... 그게 뭐가 사귀는 거예요?
준혁 : !
은수 : 속상한 거 다 얘기하세요. 제가 다 들어줄께요, 네?
준혁, 은수를 보다가 감정에 겨운 듯 옅은 미소를 짓는다. 은수도 미소를 짓는다.
천천히 은수의 뺨에 손을 대며 부드럽게 키스하는 준혁.
두 사람, 따뜻하게 서로를 포옹한다.
S#18. 호영의 오피스텔
지수, 데스크탑 컴퓨터 앞에서 워드를 치고 있고,
슬비는 뾰로통한 얼굴로 호영 앞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호영, 거만한 표정으로 슬비를 내려다보다가 갖고 있던 뿅망치로 슬비의 머리통을 친다.
슬비 : 아, 왜 때려요?
호영 : 있는 그대로 뺄 거면 분수의 덧셈 뺄셈은 왜 따로 배우겠냐? 아, 자식 보기보다 참 둔 하네.
먼저 분모부터 통분하라고 했잖아, 몇 번을 말해?
슬비 : (억울한 얼굴로 지수를 돌아본다) 나 왜 이 아저씨한테 배우는 거예요? 약속이 틀리잖아요!
지수 : (컴퓨터에 시선 둔 채) 내가 수학은 쥐약이라 널 가르칠 주제가 못되거든. 싫으면 가방 싸고 가든가.
슬비 : (분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지수 : (돌아본다. 호영에게 싹싹하게)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그 골칫덩어리 해결해주셔서.
호영 : 이웃끼리 이 정도야!
슬비 : (못마땅한 듯 본다)
호영 : (눈 부라리며) 풀어, 안 풀어!
이때 문이 열리며 태주가 들어선다.
태주를 보고 깜짝 놀라는 일동.
호영 : 넌 왜 퇴근을 일루 하냐?
태주, 말없이 다가와 호영에게 서류봉투를 던져준다.
태주 : 부탁한 상반기 이벤트 플랜.
호영 : (의아한) 이거 갖다 주러 여기까지 온거야? 자식, 겁나게 친절해졌네.
태주, 대꾸 없이 지수쪽을 힐끗 본다.
지수, 새침하게 시선 돌리고 컴퓨터 작업을 한다.
태주, 주방에 가서 물을 꺼내 마신다.
호영, 태주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슬비의 머리통을 치며.
호영 : 야...야, 딴 데 정신 팔지 말고 풀라니까! 풀어!
슬비, 인상 쓰며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온 신경은 태주에게 쏠려 있다.
태주, 물병을 들고 실내를 어슬렁거리다가 슬쩍 지수 뒤로 다가가 지수 하는 양을 본다.
태주 : 넌 왜 니네 집 놔두고 여기서 이러고 있냐?
지수 : 우리 집엔 컴퓨터가 없어요.
태주 : ...집엔... 다들.. 있어?
지수 : ? (돌아본다)
태주 : (찔끔하는) 너네 엄마, 들어오셨냐구.
지수 : 아직이요.
태주 : 언니는?
지수 : (날카로운) 남이사! 무슨 상관이에요?
태주 : (지수의 머리통을 툭 친다) 퉁퉁거리긴. 알바까지 구해줬구만 고마운 줄도 모르냐?
지수 : 아저씨 죄의식 땜에 그런 걸 내가 왜 고마워해야 하죠?
태주 : 나 죄의식 같은 거 없거든.
지수 : 그럼 알바자린 왜 구해줬는데요?
태주 : !
지수 : 죄의식 만빵이면서 시치미 떼기는! (다시 컴퓨터쪽으로 고개 돌리고 몰두하는 척한다)
태주 : 아유 요게 그냥!
태주, 다시 지수의 머리통을 치려고 손을 드는데 이때 태주의 팔목을 잡는 손.
보면 언제 왔는지 슬비가 다가와 태주 손목을 잡고 애써 위협적인 시선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슬비 : 다 큰 어른이 왜 십대 소녀한테 폭력을 휘둘러요?
태주 : 넌 이게 폭력으로 보이냐?
슬비 : 네.
태주 : (지수에게) 이 꼬마는 여기 왜 있는 거야?
지수 : 내 제자니까요.
태주 : 제자?
슬비 : 우리 선생님한테 함부로 하지 마세요!
태주, 팔을 내린다.
태주 : 터가 안 좋은가, 이 동넨 크나 작으나 어린 것들이 하나같이 버르장머리가 없어!
(가방 챙기며 호영과 눈 마주치자) 애들이랑 노니까 좋냐? 나이 값 좀 해라. (나간다)
호영 : 저 자식 저거 형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슬비 : 저 아저씬 물만 먹고 가네.
지수 : (호영에게 다가와 태주가 내민 서류를 가리키며) 그 서류 급한 거예요?
호영 : 아니.
지수 : (의심스런) 내일 회사에서 주면 될 걸 왜 여기까지 와서 갖다 준 걸까요?
호영 : 그러게. 그렇잖아도 내가 내일 그 놈 사무실에 찾아간다고 했는데.
지수 : 둘이 직장동료 아니었어요?
호영 : ? 태주는 백화점으로 옮긴지 꽤 됐어, 몰랐어?
지수 : 네?
호영 : 은수씨가 얘기 안했구나. 같은 백화점 다녀, 너네 언니랑.
지수 : 뭐라구요!
호영 : 그 백화점 외동딸이 태주 걸프렌든지 피앙센지 뭐, 그렇잖냐. 자식 인생 핀 거지. 여복 하난 열나게 좋아요, 저 놈이.
지수 : .....(머리가 복잡하다)
S#19. 혜린이네 집 거실 (다른 날, 저녁)
윤여사, 새초롬한 얼굴로 앉아 있고 마주 앉은 태주는 멀뚱한 채 있다.
태주 옆의 혜린은 편안한 자세로 잡지를 끄적이고 있다.
가정부가 간단한 다과상을 들고 온다.
윤여사 : (못마땅한) 곧 밥 먹을 건데 그런 건 왜 내오나.
가정부 : (당황한 듯 태주를 힐끗 보며) 손님이 오셔서...
윤여사 : (태주 째려보고는 인상 쓰는) 손님은 무슨...!
태주 : (싹싹하게) 주십쇼. 그렇잖아도 출출했습니다.
가정부 : 아, 예.
가정부, 테이블에 다과상을 놓고 간다.
윤여사, 못마땅한 듯 태주를 본다.
태주 : (윤여사에게) 그럼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는다)
윤여사 : 참, 먹성은 좋네!
태주 : 혼자 살려면 먹성이 좋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윤여사 : .....
태주 : 어머님도 좀 드시죠.
윤여사 : 지난 번부터 자꾸 어머님, 어머님 하는데 내가 왜 그 쪽 어머님이에요?
태주 : 그럼... 사모님이라고 할까요? 제가 어머님을 사모님이라고 하면 그건 더 이상할 거 같은데요.
윤여사 : .....(할 말 없다)
혜린 : (과일을 집으며) 아빤 웬일로 태주씨까지 오라고 한 거야? 공식적으로 우리 사이 인정하시겠다는 건가?
윤여사 :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아니... (순간 치미는) 아, 과년한 처녀가 남자랑 밀월여행 갔다고 온 세상에 떠벌려놨는데
무슨 대책 있겠어? (태주를 한번 째려본다) 내가 미쳐, 정말! ..... (태주의 시선에 다시 태주를 보고)
사람은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
태주 : 혜린이가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체격이나 이목구비나, 아버님보단 어머님을 쏙 뺐네요.
윤여사 : 당연하지. 친탁 했으면 저 기럭지에 저 인물 나왔겠어.
태주 : 성격까지 어머님을 닮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윤여사 : !?
태주 : 성격은 아버님을 많이 닮은 거 같더라구요.
윤여사 : 그야 완전 판박이지. 정나미 없이 툭툭 말 내뱉는 거 하며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누가 지 아버지 딸 아니랄까봐 아주 똑같다니까.
태주 : 그러게요. 어머님 닮아서 귀염성까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혜린인 다 괜찮은데 그게 하나 부족하거든요.
윤여사 : 여자한테 귀염성은 참 중요한 건데. 그거 없었으면 내가 혜린이 아빠 그 성질 어떻게 감당하고 살았겠어?
이리 살살 저리 살살 애교도 보이고 빈틈도 보이고 그렇게 하니까 그 딱딱한 양반이...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아차 싶은 듯 말을 멈춘다)
태주 : (웃는) 아버님한테 사랑 참 많이 받으시겠어요.
윤여사 : 아니 근데 무슨 사업보고를 두 시간이 넘도록 하는 거야! 이러다 저녁 시간 꼴딱 넘기겠네.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가며) 아줌마! 식사 준비는 다 된 거예요?
혜린 : (잡지에 시선 둔 채 피식 웃는다)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띄워주는 거야?
태주 : 솔직하게 말한 거 뿐이야. 너네 엄마 귀여우셔. 넌 안 귀엽고.
혜린 : 은근히 기분 나쁘게 말하는 재주 있어.
태주 : 넌 은근히 사람 속 긁는 재주 있잖아. 피장파장이지.
혜린 : (잡지책 닫으며 태주를 못마땅한 듯 본다)
S#20. 동, 서재
차회장과 준혁,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있다.
준혁 : 요즘은 고객의 심리적 만족도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어서요, 앞으로도 이미지 메이킹에 더욱 주력할 생각입니다.
차회장 : 어쨌든 매출이 오르고 있다니 기분이 좋구나. 수고했다.
준혁 : .....
차회장 : 최이사 쪽 동향은 좀 어떠냐?
준혁 : 우려와는 달리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차회장 : 그래도 경계 늦추지 마. 나 땜에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언제라도 빈틈 보이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준혁 : ..... (차회장을 본다)
차회장 : (고개 들어 마주 보며) 뭐 더 할 얘기가 있는 거냐?
준혁 : 아뇨, 그냥... 아버님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차회장 : (웃는다) 너랑 나 인연도 참 특별하지.
준혁 : ...왜 절 거두셨습니까? 그저 회사 말단직원의 아들이었을 뿐인데요.
차회장 : .....글쎄다.. 하루아침에 애비 잃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널 보니 계속 눈에 밟히더라. 인연이 되려 그랬나, 많이 짠했다.
차라리 애처럼 펑펑 울기라도 하지, 넌 눈물 한 방울 안보였거든.
준혁 : 갑작스런 사고라... 아마 슬픈 것도 몰랐을 겁니다.
차회장 : 그렇겠지. 아침에 출근한다고 나가서 그 길로 교통사고를 당해 그렇게 됐으니...
준혁 : !.....(차회장의 거짓말을 새삼 확인하자 의구심은 깊어진다)
차회장 : 그런데 별 일이구나. 네가 네 아버지 얘기를 다 꺼내고.
준혁 : (씁쓰레하게 웃는) 이제 저도 나이를 먹나 봅니다.
차회장 : (잠시 준혁을 보다가) .....그만 내려가자! (일어난다)
S#21. 혜린네 집, 식당
차회장, 윤여사, 태주, 준혁, 혜린이 식탁에 앉아 식사 중이다.
차회장 : 들어보니 회사 일에 잘 적응하고 있다더군.
태주 : (본다) 네, 형님께서 여러 가지로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준혁 : .....
차회장 : 결혼 생각은 없다고 했던가. 아직은 연애만 하고 싶다고?
태주 : !.....(당황했다) 아..예...
차회장 : (태주와 혜린을 번갈아 보며) 혹시 너희들 진지하지 않은 거 아니냐.
혜린 : 충분히 진지해요. 하지만 결혼은 그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게 이 사람 생각이거든요.
태주 : 연애는 감정이 앞서지만 결혼은 생활이 주가 되지 않습니까. 춘하추동, 적어도 사계절 정도는
서로 겪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차회장 : 신중한 게 나쁠 건 없지.
윤여사 : 일년 안에 깨지는 커플도 부지기수고.
태주와 혜린, 윤여사를 보지만 윤여사는 태연자약이다.
차회장 : 지금 일하는 부서는 어때, 할만한가?
태주 : 전에 하던 일과 많이 다르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차회장 : 다른 일들도 경험해보는 게 좋아. 다양한 업무를 처리해봐야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이 생기거든.
윤여사 : (무심히) 그거야 경영하는 사람들 얘기죠.
차회장 : 준혁이 네가 신경 좀 써줘야겠다. 주요부서들 T.O 나는 대로 한번씩 돌려 봐.
준혁 : ! (태주를 힐끗 보고) 네..
차회장의 말에 놀라는 일동.
태주, 긴장한다.
혜린 : 아빠가 태주씨를 아주 잘 보셨나 봐요.
차회장 : 이제부터 살펴보려는 거다. 아직은 아니야.
태주 : .....
차회장 : 준혁이 너도 슬슬 짝을 찾아야지. 슬슬이 뭐냐. 너무 늦었다, 지금도.
태주/혜린/준혁 : !
차회장 : (윤여사에게) 좀 알아보라니까 왜 여태 소식이 없어?
윤여사 : 준혁이야 워낙 잘난 앤데 지가 알아서 찾겠죠. 쟤 엄청 까다로워서 내가 보이는 여잔 다 싫다고 할 거예요.
차회장 : 싫다고 하지 않을 여자 내밀면 될 거 아니야. 저 놈 눈높이 좀 맞춰주면 어때서.
윤여사 : (못마땅하다)
준혁 : 저 지금 교제하고 있는 사람 있습니다.
태주 : (눈에 띄게 얼굴이 굳어진다)
혜린 : ! (기가 막히다는 듯 준혁을 본다)
차회장 : 허허, 일만 아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 새 연애도 하고 있었냐.
윤여사 : 거봐요, 쟨 지가 알아서 다 할 거라고 했잖아!
차회장 : 어떤 아가씨냐?
혜린 : (날카로운) 설마 한은수 얘기하려는 거야, 오빠?
준혁 : (혜린을 본다)
윤여사 : 왜, 너도 아는 여자니?
혜린 : 정말 제정신 아니다! 들을 필요도 없어요. 엄마 아빠한테 따로 말씀드릴만한 여자 아니야.
준혁 : 그런 거 네가 판단할 문제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마.
차회장 : 왜들 이래? 도대체 어떤 아인데 이러는 거냐?
준혁 : 저희 회사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차회장 : !
윤여사 : (떨떠름한) 인턴? 집안은 어떤데?
혜린 : 집안이랄 것도 없어. 말도 안돼는 상대야.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데다...
준혁 : 너 가만있지 못해?
혜린 : 오빠야 말로 왜 이렇게 경솔하게 굴어? 엄마 아빠한테 말씀 드릴만큼 제대로 사귀기나 했니?
차회장 : 사내직원이라는 건 탐탁치 않구나. 정 사귀고 싶으면 회사에서 내보낸 다음에 사귀던지.
준혁 : 아버님..
차회장 : 잠깐 즐기다 말 연애라면 사내 연애는 위험해. 끝나고 나서 좋은 말 날 리 없다.
준혁 : 잠깐 즐기다 말 연애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회장 : 들어보니 진지하게 사귈만한 아인 아니야. 그런 애는 그냥 스치는 연애 정도로 그쳐라.
순진하게 젊은 혈기에 휩쓸리지 말고.
준혁 : 잘 아시지 못하면서 단정 짓지 마세요, 아버님.
차회장 : !
준혁 : (차회장을 똑바로 보며) 결혼까지 생각하는 상댑니다. 그러니 그 사람에 대해서 그런식으로 말씀하시는 거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차회장 : ! (충격이다)
모두들 준혁의 반응에 충격을 받는다.
태주, 창백하게 굳은 채 준혁을 본다.
S#22. 도로 / 태주의 차 안 (밤)
태주,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혜린이다.
태주, 전혀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S#23. 혜린의 집, 혜린의 방
초조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고 있는 혜린.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화도 나고 불안하다.
S#1. 은수네 오피스텔 앞 / 태주의 차안
태주의 차가멈춘다.
태주, 잠시 망연히 있다가 핸드폰을 쥔다. 은수번호 버튼을 누를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핸드폰을 던져버린다.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싶은 마음에 차를 출발시키려다 멈칫한다.
장바구니를 든 은수와 지수가 오고 있는 것.
두 자매, 뭐가 그리 재밋는 지 깔깔거리고 난리다. 가벼운 몸싸움과 장난도 치면서.
은수의 웃음이 태주에게 눈부시게 비쳐진다. 저렇게 밝은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은수(e) : 제발 착각 좀 그만해요. 내가 말했죠? 더 이상 아저씨에 대한 감정 없다고.
준혁(e) : 결혼까지 생각하는 상댑니다.
은수와 지수가 오피스텔 건물로 사라진다.
태주, 맥이 풀린다. 핸드폰을 들고 버튼을 누른다.
태주 : 나야, 나랑 좀 놀자.
S#2. 단란주점 룸
- 호영과 부킹녀1, 신나게 노래하고 있다.
태주는 자리에 앉아 부킹녀2와 노닥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다.
부킹녀2의 노골적인 교태에 적당히 응대해주는 태주. 문득문득 쓸쓸한 얼굴로 술을 마신다.
-호영과 태주, 어깨동무하며 함께노래 한다. 여자들까지 가세하여 흥겹게 노는 그들.
어느 틈에 태주,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리에 앉는다. 빠른 속도로 술을 들이킨다.
S#3. 동, 룸
여자들은 없고 호영과 태주 뿐이다.
태주, 상당히 취한 모습이다.
태주, 술 따르려는데 제지하는 호영.
호영 : 야 그만 마셔. 이제 좀 가자. 놀기도 지쳤다.
태주 : (뿌리치고 술을 마신다)
호영 : 재벌가가 무섭긴 무섭나 보다. 너 같은 놈도 괴로워할 줄 아냐? 그렇게 힘들어? 그집에서 막 무시하고 그러냐?
태주, 일어난다.
호영 : 어디가?
태주 : 화장실. (나간다)
S#4. 동, 복도
복도를 걸어가는 태주. 몇걸음 걷자 확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생각보다 많이 취한 듯 불안한 걸음으로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걸어간다.
S#5. 동, 홀
사이키 조명과 요란한 음악, 남녀들이 엉켜 춤을 추고 있다.
태주, 여전히 벽을 짚으며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멍한 시선으로 무대를 본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과 음악 때문에 혼란스럽다. 눈이 가물가물하다. 못 움직이겠다.
태주 : ..(중얼대는) 어떡하지..
태주, 눈이 감기며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데 누군가(웨이터)가 그를 부축한다.
S#6. 동, 룸
호영, 무료한 듯 오징어 안주를 뜯고 있다.
호영 : 이자식 이거, 왜 이렇게 안와.
소파에 던져진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호영, 힐끗 보고 무시한다. 끊어졌다가 다시 끈질기게 울리는 핸드폰 들어보면 혜린이다.
S#7. 태주의 오피스텔
어두운 실내. 문이 열리고 호영이가 태주를 부축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혜린, 뒤따라 들어오며 실내의 불을 켠다.
호영, 태주를 침대에 누인다.
혜린 : 번거롭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호영 : 이 놈이랑 이런 거 어디 한 두 번 인가요. (집안둘러본다) 야, 집 참좋네요. 완전궁궐이네. (태주 툭 치고) 치사스러운 놈,
이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구경한번 안시켜주냐? (혜린의 시선을 의식하고 웃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혜린 : 오늘은 그냥 가시고 , 담에 정식으로 초대할게요.
호영 : 저야 좋죠, (가려다가) 저, 근데....
혜린 : ?
호영 : 태주 저 놈, 적당히 풀어주세요.
혜린 : 네?
호영 : 워낙 자유롭게 살던놈이라 누가옆에서 조금이라고 조일것 같으면 영 못 참아하거든요.
혜린 : 태주씨가 그러던가요? 내가 힘들게 한다고?
호영 : 그럴리가요. 보기엔 설렁설렁해 보여도 지 속얘긴 여간해선 절대 안하는 놈이에요.
오늘처럼 정신나가도록 퍼마시는 거 첨 보거든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호영, 목례하고 나간다.
혜린, 태주에게 다가간다. 착잡한 시선으로 태주를 내려보다가 주방에서 물과 컵을 가져다가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위에 둔다.
태주의 양말과 겉 옷을 벗겨주고,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서너개 풀어주는 혜린.
혜린, 어느 순간 손길을 멈추고 잠든 태주를 유심히 바라본다.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숙여 태주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혜린.
잠결에 약간 몸을 움직이는 태주를 보고 문득 정신을 차린다.
스스로 당황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 불을 끄고 가방을 챙기고 돌아서 몇 걸을 가는데.
태주 : 은수야...
혜린의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태주를 돌아본다.
S#8. 백화점 사무실 복도 / 엘리베이터 앞
기획안 우수자 명단에 있는 은수.
함께있던 주변 동료직원들 은수를 축하해준다.
S#9. 혜린의 의상실 / 혜린의 사무실 (다른 날, 낮)
혜린 심난한 듯 생각에 잠겨 있다.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서는 김실장.
김실장 : 싱가폴에서 열리는 패션 쇼케이스, 어떻게 하실지 결정 하셨나요?
혜린 : ? 싱가폴?
김실장 : 전에 초대장이랑 카달로그 드렸는데.
혜린 : (생각난듯 책상을 뒤적이며 초대장과 안내 카달로글 찾는다) 아아 깜빡했네.
김실장 : 오늘까지는 참가여부를 꼭 말씀해주셔야 한다고 하던데요.
혜린 : (카달로그 접으며) 요즘 같은 때 이런 데 갈 여유가...
혜린, 무슨 맘이 들었는지 말을 멈춘다. 카달로그를 다시 펴고 유심히 본다.
혜린 : 웬만한 업계사람들은 다 가겠네요. 그쵸?
김실장 : 아시아에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니까요.
혜린 : 참가명단 좀 수배해봐요.
김실장 : 네?
혜린 : (가방 챙기며 일어난다) 지금 매장으로 가니까 명단 입수되는 대로 그 쪽 팩스로 넣어줘요.
혜린, 나간다.
S#10. 백화점, 혜린의 매장
음료수를 마십며 매장직원과 가볍게 얘기 나누고 있는 태주.
매장에 들어서던 혜린이 그런 태주를 본다.
매장직원, 혜린을 보고 약간 당황해한다.
직원 : 어머, 사장님 오셨어요?
태주 : (돌아본다)
직원 : (태주에게 목례하고 자리를 피한다)
혜린 : 웬일이야?
태주 : (들고 있던 수첩을 덮으며) 브랜드 오픈기념 행사에 대한 판매사원들의 의견수렴.
혜린 : 판매사원이랑 쓸데없이 농담따먹기 같은 거 하지마. 보기 않좋아.
태주 : 넌 그런 이상한 말투 좀 하지마. 역시 보기 않 좋아. (가려는데)
혜린 : 다음 주에 휴가 좀 낼 수 있어?
태주 : ?
혜린 : 싱가폴에서 패션 쇼케이스가 있다는데 가볼까 해서. 같이 여행 겸해서 머리 식히고 오는게 어때?
태주 : 입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휴가를 내냐? 너나 혼자 갔다와.
태주, 간다.
혜린, 짐작했다는 듯 담담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데 이때 팩스가 들어온다.
팩스에 적힌 참가명단을 확인한다. 역시 팔레스백화점란에 신준혁과 한은수의 이름이 있다.
S#11. 동, 준혁의 사무실
혜린, 소파에 앉는다.
준혁, 뒤따라 마주 앉으며.
준혁 : 고객들 반응은 어때? 매출 좀 오를 거 같아?
혜린 : 성급하기는. 오픈한 지 아직 사흘도 안 됐어.
준혁 : 느낌이 어떠냐구.
혜린 : 나쁠거 있겠어?
준혁 : (웃는다) 자신만만한 건 보기 좋다. 그래, 할 얘기가 뭐야?
혜린 : 싱가폴 AFA, 오빠도 초대 받았지?
준혁 : 응.
혜린 : 잘됐다. 나랑 같이 가면 되겠네.
준혁 : 난 동행이 있어.
혜린 : 누구? 설마,, 한은수?
준혁 : 응.
혜린 : (웃는) 어쩜 그렇게 예상을 안 벗어나니? 너무 드러나게 편애하는거 아니야? 사내에서 말 돌겠어.
준혁 : 인턴사원 중 근무성적이 가장 우수해. 회사 포상 차원으로 견학 보내는 거야.
혜린 : 핑계 교묘하네.
준혁 : 못 믿겠으면 확인해보던지.
혜린 : 어쨌든 더 잘됐어. 태주씨도 가자고 하지 뭐. 커플끼리 가면 짝도 맞고 움직이기 더 편하지 않겠어?
준혁 : !
혜린 : 네 사람 모일 기회 쉽지 않잖아. 이렇게 해서 서로 친해지는거지. 태주씨도 분명 좋아할꺼야!
준혁 : ...
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여직원이 들어온다.
직원 : 상무님.
혜린 : (일어나며) 가볼게, 그럼.
혜린, 나가고.
직원 : 최영준이사님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저녁 약속 30분만 늦추실수 있냐고 하시는데요.
준혁 : (자리로 가며) 알았다고 해요.
직원, 나간다.
자리에 앉는 준혁, 마음이 복잡한듯 생각에 잠긴다.
S#12. 식당
준혁과 최이사 즐겁게 담소를 나눈다.
최이사 : 차 회장 그사람 나랑 강남에 술집이란 술집은 다 누비고 다녔다. (웃음) 아 옛날 일이지 뭐..
준혁 최이사에게 술 따른다.
최이사 : 참, 혜린이 약혼자가 백화점에 들어왔다며?
준혁 : 네.
최이사 : 의외다. 난 차회장이 너하고 혜린이를 짝 지어줄줄 알았거든.
준혁 : 혜린이는 그냥 여동생같은 애입니다.
최이사 : 보아하니, 별볼일 없는 친구같던데.. 차회장이 가만히 있는거 보고 놀랬어..
혜린이 걔가 좀 드세긴 하지.. 자식 이기는 부모없는거고,
준혁 : (술 한잔 마신다)
최이사 : 네 입장이 좀 불편하겠구나..
준혁 최이사 쳐다본다..
최이사 :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말이 있지 않니... 그 굴러온 돌이 다이아몬드 원석도 아니고..
갯벌에 떠다니는 자갈돌이라면 더 억울한 기분이 들수도 있지..
준혁 : (의아해하듯이) 무슨말씀을 하시는거죠?
최이사 : 20년지기한테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로 내몰려 봐서.. 내 그 기분 잘 안다..
자기 신리 앞에선 신이고 뭐고 없는게 인간이야.. 부모형제고 자식새끼도 다 팔아먹는게 사람 이기주의거든..
준혁 : 듣기 좀 거북합니다..
최이사 : 그렇게 정색할 꺼 없어. 어쨌든 차회장이 네놈한테 함부로 못할테니깐..
준혁 최이사 바라본다.
최이사 : 네놈이 워낙 잘난놈 아니냐.. 신준혁 상무의 신뢰가 이사회에 하늘을 찌르는데 별일이야 있을라고..
그게 또 네놈을 좋아하는 이유고, (술 한잔 들이킨다)
준혁에게 술잔을 주며..
최이사 : 자, 한잔해라..
S#13. 오피스텔 / 방
지수 :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은수 : 뭐가?
지수 : 그냥... 분위기가 좀 그래서.
은수 : .....
지수 : 강태주랑 백화점에서 같이 일한다며?
은수 : !
지수 : 왜 말 안했냐?
은수 : 그게 뭐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일일이 보고까지 하는데?
지수 : 너 진짜 괜찮아? 얼마 전까지 태주 아저씨 땜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은수 : 관심 없어, 이젠. (돌아서는데)
지수 : (은수 붙잡는다) 야, 한은수! (은수 들여다보며) 너 이상해.
은수 : 지수야.
지수 : ?
은수 : 나 사귀는 사람 있어.
지수 : !! 뭐? 저..정말? 누구?
은수 : 나중에 때 되면 소개해 줄께. 그러니까 이제 강태주니 뭐니 얘기 꺼내지도 마. 더 이상 기억하기도 싫으니까.
(오피스텔로 들어간다)
지수 : (가는 은수 보며) 뭐야, 그럼 지금까지 나 혼자 열 낸 거야?
(고개 저으며 은수 따라간다) 저렇게 쉽게 변할 성격의 소유자는 아닌데...
S#14. 오피스텔 / 방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전화 받는 은수.
은수 : 여보세요.
혜린(f) : 나, 차혜린이에요.
은수 : !
S#14. 바
바에 들어서는 은수. 주변을 살펴보다가 창가에 앉아 있는 혜린을 발견한다. 혜린에게 다가가 앉는다.
마주 앉은 혜린과 은수.
혜린 : (술을 따라주며) 나와줘서 고마워요. 꽤 늦은 시간인데.
은수 : 왜 만나자고 한 거죠?
혜린 : 준혁 오빠랑 사귀기로 했다면서요?
은수 : ! 네.
혜린 : 사과할께요. 그동안 경우 없이 굴었던 거.
은수 : .....
혜린 : 많이 불쾌했겠지만 은수씨가 내 입장을 이해해줬으면 해요. 사실 내가 편안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하잖아요.
은수 : 이제는 편안해지셨나요?
혜린 : 은수씨가 태주씨 많이 좋아했던 거 알아요.
은수 : !
혜린 : 하지만 그런 은수씨가 지금은 준혁오빠랑 사귀고 있다니 다 지난 과거가 된 거잖아요.
은수 : .....
혜린 : 본인이 과거로 묻었는데 나 혼자 연연하는 거 우습죠. 당연히 편안해져야지.
은수 : 다행이네요.
이때, 은수의 얼굴 표정이 변한다. 태주가 바에 들어서서 둘러보고 있는 것.
태주와 은수의 시선이 마주친다.
은수,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한다.
혜린, 은수의 눈치를 보고 태주 쪽을 돌아본다.
태주, 다가온다.
혜린 : 왔어?
태주 : (혜린 옆에 앉으며) 어떻게 된 거야?
혜린 : 우리 여자들 기사 노릇 좀 해달라고. 술, 꽤 했거든. 시간도 늦었고.
태주 : .....
은수 : .....
혜린 : 참, 은수씨도 싱가폴 쇼케이스에 간대, 준혁오빠랑.
태주 : ! (은수를 본다)
은수 : !.....
혜린 : (태주에게) 그러게 당신도 가자니까. 이번 기회에 커플끼리 가면 얼마나 좋니? 아주 재밌을 텐데.
그동안의 껄끄러움도 털어버릴 수 있고... 당신 안 간다니까 괜히 나만 뻘쭘해졌잖아. 은수씨랑 준혁 오빠 데이트에
눈치도 없이 끼어든 꼴 됐다구. (은수에게) 그래도 은수씨, 나 미워하지 않을 거죠?
은수 : 아니요...
혜린 : 은수씨가 괜찮다고 해도 역시 불청객이 된 기분이네. 막 시작한 연인들, 괜히 훼방 놓는 거 아닌가 싶어서 찜찜하다.
(태주에게) 휴가 내기 정말 그렇게 힘든 거야?
태주 : .....(은수를 본다)
은수 : (시선 피한다)
혜린 : 할 수 없지. (은수에게) 두 사람 방해 안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테니까 나 깍두기라고 너무 구박하면 안돼요?
태주 : 부장님한테 한번 말해보지 뭐.
은수 : !
혜린 : ! (태주를 본다)
태주 : (혜린을 보며) 차혜린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는데 설마 자르기야 하겠어?
혜린 : (쓴웃음이 난다) 진작 그럴 것이지. 잘 생각했어. (태주와 은수를 본다) 당신이랑 은수씨도 이제 편하게 지내야지.
어쩌면 한 식구 될지도 모르는데.
태주 : !
태주와 은수의 시선이 마주친다.
S#15. 싱가폴, 창이공항 앞 (다른 날, 밤)
준혁과 은수, 입국하는 사람들에 섞여 나란히 걸어 나온다.
그 뒤를 혜린과 태주가 오고 있다.
태주의 시선이 문득문득 준혁과 은수를 쫓고 있다.
사람들 틈으로 간혹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준혁과 은수의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 은수를 밀치며 가자 준혁이 자연스레 은수를 감싸주기도 한다.
짐을 싣고 택시1에 타는 준혁과 은수.
혜린, 태주를 본다. 태주, 택시2에 타고 있다.
택시에 타는 혜린. 두 대의 택시가 나란히 출발한다.
S#16. 호텔 로비 / 프론트
태주와 준혁, 체크인을 위해 프론트에 있다.
태주가 먼저 호텔키를 받는다. 태주의 신경은 온통 준혁에게 쏠려 있다.
태주, 키를 받은 참이라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나는데 그 순간 준혁에게 호텔키가 하나 내밀어지는 것을 힐끗 본다.
순간 굳어지는 태주의 얼굴.
태주, 혜린과 은수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태주를 보고 일어서는 혜린.
뒤따라오던 준혁이 은수에게 다가가 키를 내민다.
준혁 : 난 바로 옆방이에요.
은수 : 네.
태주, 안도하듯 긴장이 풀린다.
준혁, 은수의 방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S#17. 호텔, 혜린네 룸 / 태주의 침실, 혜린의 침실
태주, 옷을 갈아입고 있다.
혜린(e) : 응, 조금 전에 체크인 했어. 당연히 덥지... 습기도 많고.
태주, 혜린의 침실 쪽으로 간다.
핸드폰으로 통화 중이던 혜린, 태주를 힐끗 본다.
혜린 : 오늘은 저녁 먹고 그냥 쉴려구. 응, 행사는 낼부터야.
S#18. 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바.
태주와 은수, 혜린, 준혁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대화 도중 은수, 태주의 시선을 느끼거나 간혹 눈이 마주치기도 하지만 예전과 달리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무시해 버린다.
태주, 은수의 그런 태도에 점점 심사가 뒤틀린다.
혜린 : 이번 아시아 10인전에 뽑힌 디자이너들 말야, 선정기준에 대해 들은 거 있어?
준혁 : 그쪽으로는 네가 더 빠르지 않아?
혜린 : 미스테리야. 토리노가 선정된 거 보고 이리저리 말들이 많아.
은수 : ? 토리노라면 그.. 벌꿀로고 말인가요?
혜린 : 맞아요.
은수 : 꽤 유명한 디자이넌데 그 사람이 선정된 게 왜 문제가 돼죠?
혜린 : 유명한 거랑 실력이랑은 다르니까요.
은수 : 그게 무슨 뜻이에요?
혜린 : 업계에서는 카피의 제왕으로 악명이 높아요. 그 사람 디자인, 여기저기서 다 베낀 거거든요.
은수 : 정말이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혜린 : 실력보다는 엉덩이가 예뻐서 성공했다고들 하죠. 우리들끼리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태주와 준혁을 보며) 아마 그쪽 세계에선 토리노 같은 타입이 꽤 어필되는 모양이야.
은수 : (이해할 수는 없지만 끄덕이는) 아아...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혜린을 본다)
남자 엉덩이가 예쁜 거랑 성공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은수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은수를 향한다.
은수 : 저... 잘 이해가 안가서...
혜린 : 패션업계 실력자들 중에 가끔 그런 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토리노는 그들이 원하는 걸 제공해 주고
그 댓가로 든든한 사업적 후원을 받았다는 얘기죠.
태주 : (술을 마시며 담담하게) 그런 식으로 빙빙 돌려 말하면 한은수씨는 전혀 못 알아들어.
직접 눈앞에 들이밀어 줘도 알아먹을까 말깐데.
혜린과 준혁, 태주를 본다.
태주 : (주변 분위기에 전혀 아랑곳 않고 은수에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죠, 한은수씨?
은수 : !
태주 : 솔직히 말해봐요.
은수 : 아..알아요... (도전적인) 그 정도도 모르겠어요?
태주 : (재밌다는 듯 배시시 웃는다) 얘기해 볼래요, 그럼?
은수 : 뭘요?
태주 : 방금 혜린이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라구요.
은수 : (자존심 상한다) 내가 그걸 왜 설명해야 하는데요?
태주 : 혹시나 잘못 알고 있으면 시정해 주려구요. 어디 가서 실수하기 전에.
은수 : 됐거든요.
태주 : (약 올리듯 픽 웃는) 거봐, 하나도 못 알아먹은 거 맞네.
은수 : 안다니까요.
태주 : 얘기해봐요, 그럼. 안다면서 왜 못합니까?
은수 : .....(분한 듯 본다)
준혁 : 그만들 하지.
은수 : 설명하기 복잡해서 안하는 거예요! 그냥 말하기 귀찮아서요.
태주 : 참 나, 복잡할 것도 많다. 같은 동성한테 인기 많은 토리노가 업계 권력자들한테 몸 팔아서 현재 자리까지 올라왔다,
섹스를 이용한 소파승진, 성로비. 이게 복잡합니까?
은수 : !! (화들짝 놀란) 그 사람 남자잖아요. 남자도 그런 걸 해요?
태주 : (웃는다)
은수 : (아차 싶다)
태주 : (혜린에게) 봐, 내가 이해 못할 거라고 했잖아.
혜린 : 은수씨에 대해서 참 잘도 알고 있네.
태주 : 내면 깊숙이 숨겨진 비밀도 아닌데 그 정도도 모르겠어.
혜린 : (준혁을 본다) 오빠, 기분 별로지?
준혁 : .....
혜린 : 나도 별로야. 오빠랑 내 앞에서 뭐하는 거니, 두 사람?
은수 : !
준혁 : 혜린아...
태주 : (전혀 동요 없이 안주 집어 먹으며) 대화 좀 했어, 왜? 사람끼리 말도 못하냐?
혜린 : 내가 보기엔 수작하는 걸로 보여.
태주 : 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불순하냐? 내가 미쳤어? 형님 앞에서 형님 여자랑 수작하고 있게?
은수 : (당황스러운) 내가 괜히 흥분했어요. 불쾌했다면 미안해요.
태주 : 사과는 잘못했을 때 하는 거예요, 한은수씨. 쓸데없이 왜 사과를 남발합니까?
은수 : !
태주 : (혜린에게) 다들 편하게 지내자고 모인 거라며. (은수 한번 힐끗 보고) 그런데 한은수씨랑 나만 서로 입 꾹 다물고 있으면
이 분위기 편해질 리 있겠어?
혜린 : (할 말 없다)
태주 : 하던 대로 한 것 뿐이야, 난. 한은수씨도 마찬가지일 거고. 있는 그대로 모습 보이는 게 좋잖아. 한 가족처럼 허물없어지려면.
준혁 : 있는 그대로 모습도 좋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줬으면 좋겠어.
태주 : (준혁을 본다) 제가 무례한 짓이라도 했습니까?
준혁 : (태주를 본다) 은수씨, 네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야. 네가 야죽거리며 말장난할 상대 아니라구. 그 말버릇 고쳐.
태주 : 그동안 하던 가락이 있어서 그렇게 쉽진...
준혁 : 못 고치겠으면 아예 말을 하지 말던가.
태주 : (준혁을 본다)
준혁 : 계속 그러려면 아예 말을 걸지 마.
태주 : (주변 둘러보고는 쓴 웃음 짓는다) 분위기 열라 썰렁하네.
준혁, 은수의 잔에서 술을 약간 따라내고 얼음과 음료를 넣고 희석시켜 준다.
태주, 다정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태주 : 한은수씨, 학원은 잘 다니고 있어요?
은수/준혁 : !
혜린 : 학원이라니?
태주 : (준혁을 힐끗 보며) 형님이 특별히 추천까지 해주셨더라구. MD 과정 밟을 수 있게. (은수에게) 수업, 재미있어요?
은수 : (준혁이 신경 쓰인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두 번 밖에 안 가봐서.
혜린 : 은수씨에 대해 나만 모르고 있는 게 많네. (태주에게) 앞으로 나한테도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래.
태주 : 뭘 그렇게 시시콜콜 알려구.
혜린 : 당신이 아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다면 그거 그림 이상하잖아.
태주 : 별 걸 다 따진다.
혜린, 못마땅한 듯 태주를 노려본다.
태주, 혜린의 시선 뻔히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무시한다.
혜린, 태주 때문에 점점 신경이 곤두선다.
혜린 : (은수에게) 학교 때 전공은 전혀 다른 분야 같던데, 어쩌다 MD가 될 생각을 했어요?
은수 : ! 제 전공은 어떻게 아세요? 학교는 얼마 다니지도 않았는데.
혜린 : 우리 오빠가 상대하는 여잔데 그 정도 기본 지식은 필수죠.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다면서요?
배 다른 동생도 있다던가... 집안이 꽤 복잡하던데요?
은수 : .....(불쾌하다)
태주 : (은수에게) 기분 별로죠?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원래 이쪽 사람들 취미가 사람 뒷조사 하는 거니까.
혜린 : (태주 본다)
태주 : 왜? 틀린 말 했어? (준혁 보고는) 나도 형님한테 똑같이 당한 일이잖아.
(은수에게) 한은수씨, 무서운 바닥에 들어온 거예요. 바짝 긴장하는 게 좋을 걸요.
혜린 : 당신 왜 이러니?
태주 : 뭐가?
혜린 : 술주정 하는 거야?
태주 : 취한 걸로 보이냐?
준혁 : 그런 자넨.. 그 무서운 바닥에 자네는 왜 들어온 건데?
태주 : (준혁을 본다)
준혁 : 모르진 않았을 거 아냐. 세상 물정에 닳을 만큼 닳은 거 같은데.
태주 : 모험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긴장감도 있고, 화려하기도 하고, 재밌겠다 싶었죠.
준혁 : 그래서, 재미는 많이 봤나?
태주 : 뭐, 초반에는요.
준혁 : 지금은 어떤데?
태주 :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준혁 : 이제는 지겨워졌다는 건가?
태주 : (잠시 침묵하다가) ...아마도요.
일순 긴장감이 돈다.
태주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얼굴이 굳어 있다.
혜린 : 그래서... 다 집어치우고 싶기라도 한 거야, 지금?
태주 : (혜린을 본다)
혜린 : (태주를 본다)
태주 : 그런 생각 아주 안 해본 건 아냐.
혜린 : 말 다했어!
태주 : 어. (아무렇지 않게 안주를 집어 먹는다)
혜린 : 너 정말...!
혜린, 화가 치민 듯 거칠게 일어나 나간다.
준혁, 태주를 본다.
준혁 : 그냥 있을 건가?
태주 : .....
준혁 : 안가 봐?
태주, 할 수 없이 일어나 혜린을 뒤따라간다.
S#19. 바 일각 / 화장실 통로 앞
한적한 곳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걸어가는 혜린, 막 뒤쫓아 온 태주가 혜린을 잡는다.
태주 : 야!
혜린 : (뿌리치려 하며) 이거 놔!
태주, 혜린을 화장실 통로 앞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간다.
태주 : 다같이 사이좋게 지내자고 네가 만든 자리잖아. 근데 네가 화를 내고 나가면 어떡해!
혜린 : 그 말이 입으로 나와! 나 열 받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태주 : 내가 뭘? 솔직하게 느낀 대로 말도 못하냐?
혜린 : 신준혁이랑 한은수 앞이잖아! 그 사람들이 우릴 뭘로 생각하겠어!
태주 : 뭘로 생각하긴, 잠깐 삐걱한다 싶겠지. 그게 뭐 어때서?
혜린 : 이봐, 강태주!
태주 : 연인이라고 허구헌 날 눈에 하트만 그리고 있으란 법 있냐? 그런 거 더 부자연스러워. 너무 설정냄새 나잖아.
혜린 : 그래서, 계속 이따위로 하겠다는 거야?
태주 : .....
혜린 : 당신, 나 망신 주려고 아주 작정했니?
태주 : .....알았어. 잘할께.
혜린 : 뭘, 어떻게?
태주 : 뜨겁게 사랑해 주면되잖아. 됐냐?
혜린 : .....(태주 너머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오고 있는 은수를 발견한다)
태주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준혁 앞인데 더욱 더 잘해줘야지, 네 자존심 세워주려면. 그렇게 한다구, 할께!
혜린 : .....
태주 : (혜린의 손을 끌며) 가자.
혜린 : (다가오는 은수를 의식하며) 방금 한 말 책임지는 거지?
태주 : 내가 빈말 하는 거 봤어?
혜린 : 지금 당장 회복시켜줘야겠어. 내 자존심!
혜린, 태주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태주를 끌고 화장실로 향한다.
S#20. 동, 화장실
태주를 끌고 화장실에 들어서는 혜린.
화장실에 있던 두 외국인 여자, 갑작스런 남녀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다.
태주 : 야, 너 왜 이래...
혜린, 태주를 벽에 밀어붙이고 다짜고짜 입을 맞춘다.
혜린의 육탄공세에 당황하는 태주.
외국인들, 놀라 어쩔 줄 몰라하며 화장실을 나간다.
태주의 셔츠를 흐트러뜨리며 애무하는 혜린, 태주, 혜린의 기세에 조금씩 반응하는데
이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은수가 들어선다.
은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 놀라 걸음을 멈춘다.
태주, 고개를 들어 은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다.
혜린, 은수가 왔음을 느낀다.
태주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돌리는 혜린. 아직 열이 식지 않은 상기된 눈으로 은수를 본다.
딱딱하게 굳은 태주, 혜린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은수를 본다.
S#21. 동, 은수의 룸
방에 들어오는 은수. 맥이 풀린 듯 털썩 앉는다. 열불이 나는 듯 벌떡 일어나 에어컨을 세게 튼다.
<인터컷>
- 화장실에서 격렬하게 애무하고 있는 태주와 혜린.
- 조금 전 한방에 들어가던 태주와 혜린
에어컨 바람에도 열이 가라앉지 않는다. 숨이 탁탁 막힌다.
S#22. 동, 혜린네 룸 / 혜린의 침실
스탠드 불만 켜져 있는 어두운 실내.
네글리제에 가운을 입은 혜린이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고 있다.
정리를 끝내고 일어나며 가운을 벗으려다가 문간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태주가 서 있었던 것.
혜린 : 뭐야, 기척도 없이. 깜짝 놀랐잖아.
태주 : .....
혜린 : 뭐, 할 말 있어?
태주 : 너네 부모님이 신준혁 반대한 이유가 뭐야?
혜린 : 새삼스레 왜 이래? 다 지난 일 가지고?
태주 : 정말 지난 일이야?
혜린 : 몇 번을 말하니?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건다)
태주 : 두 사람 아직 안 끝난 거 같아서 그래.
혜린 :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
태주 : 지나치게 한은수를 의식하는 네가 이상해서. 서로들 파트너 내세워 자존심 맞불 작전 피는 게 아닌가 싶어.
혜린 : 유치하다.
태주 : 너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언젠 고고했는 줄 알아?
혜린 : 내가 한은수 의식하는 데는 당신도 어느 정도 영향 끼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태주 : ! (혜린을 본다)
혜린 : 도대체 어디에 정신 쏟고 있느라 그렇게 둔해진 거니? 눈치 하난 빠른 줄 알았는데.
태주 : 무슨 말이야?
혜린 : 진짜가 됐든 가짜가 됐든 당신은 내 공식적인 애인이자 약혼자야. 그런데 그 애인 행동거지가 영 미덥지 않다는 거지.
미덥지 않은 애인 단속할 권리, 당연히 나한테 있는 거구.
태주 : .....
혜린 : 모르는 거 같아 한 가지 충고하겠는데.
태주 : (본다)
혜린 : 믿고 싶지 않은 거니,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거니?
태주 : !?
혜린 : 신준혁과 한은수 말야. 그 사람들 관계 우리 같지 않거든.
태주 : .....
혜린 : 그 두 사람, 진심이라구!
태주 : !
혜린 :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라, 좀! 미련 떨지 말고. (침대에 오르며) 나가! 나 잘 거야.
혜린, 스탠드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태주, 어둠 속의 혜린을 잠시 보다가 나간다.
혜린, 눈을 뜬 채 생각에 잠겨 있다.
S#23. 싱가폴, AFA (Asia Fashion Association 부제 : 10 creators in Asia)
행사장 각 부스(or 점포)마다 10인 디자이너의 브랜드 샵이 꾸며져 있다.
부스 안은 미니디스플레이, 비즈니스 상담 테이블, 피팅룸, 전신거울 등이 설치되어 있고
비즈니스 상담직원, 매장 안내원, 피팅 모델 몇 명이 있다.
행거에는 의상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각 부스마다 조금씩 차이날 수 있다)
ID카드를 부착한 패션관계자들과 일반인 등으로 붐비는 행사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준혁, 태주, 혜린, 은수(모두 ID카드 부착)의 모습이 보인다.
준혁 : (은수에게)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행사라고 보면 돼요.
중요한 패션관련 행사는 대부분 서구유럽에 편중되어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은수, 설레는 듯 둘러본다. 부스 중 세르지오 폴리네(Sergio Poline)간판이 보인다.
준혁(e) : 세르지오 폴리네는 이태리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지만 모친이 인도인이에요.
국적이나 활동무대에 상관없이 아시아계라면 누구나 AFA 회원자격이 주어지거든요.
은수와 준혁 커플, 태주와 혜린 커플이 나뉘어 행사장을 돈다.
행사장 풍경 스케치 위로 준혁의 말이 이어진다.
- 비즈니스 상담을 하는 사람
- 피팅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을 꼼꼼히 살피는 사람.
- 행사장을 돌며 이것저것 메모하는 사람
- 진열된 옷들을 살피고, 자신이 직접 입어보고 옷 상태를 점검하는 혜린과
별 흥미 없는 표정으로 혜린과 함께 다니는 태주의 모습도 보인다.
- 행사장의 사람들 중에는 백인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준혁(e) : 처음엔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시작된 행사가 지금 이만큼 성장한 데엔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디자이너들
힘이 컸어요. 대강 훑어만 봐도 내놔라 하는 디자이너들 꽤 되잖아요. 이제는 굳이 유럽의 행사까지 찾아가보지 않아도
대략의 패션 트랜드 파악은 이 행사로도 충분하다고들 하죠. 유럽의 패션관계자들까지 일부러 자리할 정도니까요.
S#24. 동, 행사장, A 부스
부스를 돌아보는 준혁과 은수.
준혁 : 마음껏 골라봐요.
은수 : (의아한) 네?
준혁 : 절대로 안 사줄 거니까 걱정 말구요.
준혁, 앞장서서 행거의 옷을 본다. 은수도 함께 살펴본다.
준혁 : 본인 취향은 일단 버려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많이 좋아할 수 있는 것,
한마디로 팔릴만한 걸 고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돼요.
준혁, 은수가 고른 옷을 안내에게 준다.
<시간경과>
은수가 고른 옷을 피팅 모델이 입고 준혁과 은수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 모습을 찬찬히 살피는 은수.
준혁 : 어때요?
은수 : 걸려있을 때랑 많이 다른 거 같아요.
준혁 : (웃으며) 계속 경험하다 보면 눈이 트일 거예요.
준혁, 안내와 모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은수의 손을 잡고 나가려는데 이때, 안내방송이 흐른다.
안내(e) : (영어) 신사숙녀 여러분, AFA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10분간 아시아 10인의 창조자들의 깜짝 패션쇼가 시작됩니다.
S#25. 동, 행사장
경쾌한 음악과 함께 행사장 통로로 모델들이 등장한다.
각 부스에 있던 사람들 우르르 몰려나오고 행사장 내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도 모델들이 다니는 길 쪽으로 모인다.
리드미컬한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는 관객들 사이로 모델들이 춤을 추듯 워킹 한다.
무대 없이 관객들과 한데 섞인 채 간간이 포즈를 취해주고 때론 관객들과 춤을 추거나 어울려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는 모델들.
패션쇼라기보다는 자유로운 깜짝 파티라도 열린 분위기다.
은수, 준혁과 간간히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모습을 흥미 있게 보고 있다.
반대편 쪽에는 혜린이가 모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혜린이 옆에 있는 태주의 시선이 은수와 준혁을 쫓는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태주.
이때 준혁과 시선이 마주친다. 두 사람 모두 겨루기라도 하듯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결국 먼저 시선을 돌리는 태주.
S#26. 동 행사장 일각 쉼터
걸어오는 준혁과 은수. 행사장 내 곳곳에 구비된 벤치 앞으로 다가온다.
준혁 : 잠깐만 쉬고 있을래요? 입점 미팅이 있어서요.
은수 : 네, 다녀오세요.
준혁 가고 은수 벤치에 앉는다. 다리가 아픈 듯 다리를 두드리고 신발도 살짝 벗어 놓는다.
혜린(e) : 은수씨 여기서 뭐해요?
은수 고개 들어 보면 어느 틈에 태주와 혜린이 다가와 있다.
혜린 : 준혁 오빠는요?
은수 : 입점 때문에 미팅 있다고... 금방 오실 거예요.
태주, 은수 옆에 태연히 앉더니 편안하게 다리를 쭉 뻗는다.
혜린 : 당신 뭐해?
태주 : 몇 시간 동안 취미도 없는 여자 옷 구경하는 거 얼마나 고역인 줄 알아? 좀 쉴래.
은수 : .....(불편하다)
혜린 : (화를 억누르는) 그럼 나 혼자 다니라는 거야?
은수 : (벌떡 일어난다) 같이 가요, 나랑!
혜린 : !... 그럴래요?
태주 : 상무님 곧 온다면서 안 기다립니까?
은수 : .....
혜린 : 아마 준혁오빠도 여자 옷 구경하는 거 고역일걸? 남자들끼리 편하게 쉬고 있어. (은수의 손을 끌며) 가요!
가는 혜린과 은수를 보는 태주.
S#27. 동, 행사장 B 부스
혜린과 은수, 마네킹에 피팅된 드레스를 본다.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혜린 : 아마 이번 쇼케이스에서 가장 비싼 드레스일 거예요. 저기 단추값 하나만 해도 몇 천은 될 걸요?
은수 : 저런 걸 어떻게 입어요, 불안해서?
혜린 : 저기 박힌 게 다 다이아몬드래요. 꼭 비싼 보석이라서가 아니라 단추 디자인이 정말 독특하잖아요.
역시 대가의 작품은 다르네.
혜린, 돌아서는데 은수는 아직도 드레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때 지나던 외국인 여자 한명이 혜린에게 아는 척을 한다.
여자 : (영어) 혜린? 혜린이 맞지?
혜린 : (돌아보고 깜짝 놀란 영어로) 어머! 모니카!
여자와 혜린, 반가운 듯 서로 포옹한다.
혜린 : (영어) 얼마만이니? 어떻게 여기서 만나? 정말 반갑다! (은수에게) 은수씨, 잠깐만요.
혜린, 외국인 여자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부스를 나간다.
은수, 드레스를 좀 더 보다가 주변의 옷들을 살펴보는데 한 멀쩡하게 차려입은 외국인 신사가 드레스에 다가서는 걸 본다.
은수,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그 남자가 드레스의 단추를 빠른 손놀림으로 뜯어내는 것을 목격한다.
은수, 놀란 눈으로 보는데 돌아서던 남자와 순간 눈이 마주친다.
남자, 당황한 눈치지만 재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는데
은수, ‘저기요, 아저씨!’ 하며 남자를 붙잡는다.
은수 : 아저씨, 저기 단추 뜯어갔죠? 내가 분명히 봤거든요!
남자, 은수를 거칠게 떼어내려 하자.
은수 : (꼭 붙들며) 이 아저씨가! 어딜 도망가려구!
사람들의 주의가 은수와 남자에게 쏠리는 듯 하자,
남자 태도를 바꿔 거칠게 은수를 붙들더니 큰 소리로
남자 : (영어, 직원을 향해) 이 여자가 드레스 단추를 훔쳤어요! 도둑이라구요, 도둑!
은수 : 지금 이 아저씨가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남자의 큰 소리에 당황하는 은수, 남자가 소리치면서 몰래 은수의 가방에 단추를 넣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직원들 다가와 남자와 은수를 감싼다.
직원 : (은수에게 영어) 잠깐 가방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은수 : 네? 뭐요? 아니 그러니까 저 아저씨가... (직원이 가방 뺏으려 하자 저항하며) 왜 이래요?
직원, 강제로 은수의 가방을 뺏어서 내용물을 꺼내는데 가방에서 단추가 나온다.
깜짝 놀라는 은수.
다른 직원, 무전기로 어딘가로 연락한다.
직원들의 주의가 은수에게 쏠린 틈을 타 슬쩍 자리를 떠나려는 남자,
그것을 본 은수, 재빨리 남자에게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잡는다.
은수 : 야, 이 도둑놈아, 어딜 가려구! 네가 저거 집어 넣었지! 내가 영어가 안된다구 사람한테 누명까지 씌우냐! 이 나쁜 놈아!
너 죽었어 오늘!
남자 : (영어) 이 여자가 미쳤나, 야, 이거 못놔! 이거 놔!
직원들 남자와 은수를 떼어놓느라 난리 법석이다.
S#28. 동, 행사장 일각 B부스 앞
음료수 두 잔을 들고 유유히 걸어오던 준혁, 걸음을 멈춘다.
B 부스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와 사람들 틈을 가르고 들어간다.
준혁, 무슨 일인가 고개를 빼고 보는데 경비원과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울상을 짓고 있는 은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재빨리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S#29. 동, B 부스 / 부스 앞
행사장 외국인 남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경비원1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은수는 거의 울먹이는 얼굴이다.
은수 : 정말 저 아니라니까요, 저 아저씨가 그런 거란 말예요.
준혁 : 은수씨, 무슨 일이에요?
은수 : (구세주를 만난 듯 준혁에게 달려들며) 상무님!
경비2 : (준혁에게 영어) 일행이십니까?
준혁 : (영어) 네, 무슨 일입니까?
경비2 : (영어) 이 여자분이 절도 중에 현장에서 발각됐습니다.
준혁 : (영어) 절도요?
은수 : 아니예요. 난 억울해요. 저 나쁜 아저씨가 누명 씌운 거라구요! 저 아저씨가 내 가방에 단추를 넣은 거예요!
경비2 : (영어, 남자 가리키며) 목격자도 있고, 여자분 가방에서 증거물도 나왔습니다.
경비1과 이야기를 끝내던 외국인 남자와 준혁의 시선이 마주친다.
남자, 준혁의 시선을 피하며 경비1에게.
남자 : (영어) 이제 내 일은 끝난 거죠? 바빠서 이만... (가려는데)
준혁 : (영어) 유일한 증인이 지금 가면 어떡합니까?
남자 : ?
준혁 : (영어, 경비1에게) 목격자가 직접 경찰서에 가서 진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들이 경찰도 아니잖아요.
경비1 : (어쩔 수 없다는 듯 남자에게, 영어) 바쁘시겠지만 경찰서까지 가주셔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자 : (영어) 좋은 일 한 사람 왜 귀찮게 구는 겁니까, 나 바빠요. 당장 약속 있단 말이야!
준혁 : (강한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지만 태도는 공손하게, 영어)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드레스 주변에 설치된 CCTV를 힐끗 보고) CCTV에 범행현장도 녹화되어 있을텐데, 길게 설명할 필요 있겠어요?
그러니까 잠깐만 시간 좀 내주시죠.
남자 : .....(CCTV라는 말에 뜨끔하지만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은수 : (의기양양하게 남자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준혁 : (은수의 어깨를 안으며 경비들에게 영어로) 그럼 가죠.
남자, 애써 과장스런 제스츄어로 귀찮지만 따르겠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다음 순간, 옆에 있던 경비1을 밀어내며 도망가는 남자.
준혁,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남자를 뒤쫓는다. 순식간에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다.
곧 준혁에게 잡히는 남자, 준혁을 밀쳐내며 준혁에게 주먹을 날린다.
이에 질세라 남자를 치며 달려드는 준혁, 두 사람의 몸싸움이 시작되는데 뒤따라온 경비들이 그들을 떼어 놓는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남자에게 달려들려는 준혁을 잡는 은수.
때아닌 소란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태주와 혜린의 모습도 보인다.
태주와 은수의 시선이 순간 마주친다. 은수, 단호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다.
혜린, 먼발치서 그런 태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S#30. 호텔, 혜린네 룸 베란다 (밤)
태주, 베란다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고 있다.
잠시 후, 혜린이가 술잔을 들고 다가온다.
잠시 태주의 모습을 보다가 다가가는 혜린.
혜린 : (태주에게 술잔을 주며) 은수씨, 정말 대단하지?
태주 : .....(말없이 술잔을 받는다)
혜린 : 참 재밌어. 준혁오빠도 그렇고. 사람 많은 데서 오빠가 그렇게 흥분하는 거, 나 첨 봤거든.
태주 : .....
혜린 : 두 사람, 정말 좋아 보이지 않아?
태주 : .....
혜린 : 처음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라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괜찮아 보여. 진심이 느껴져서 그런가...
(태주의 눈빛을 보고) 왜 그런 눈으로 봐?
태주 : 꼭 연극 보는 거 같아서. 너 배우 해도 되겠다.
혜린 : 내가 거짓말 하는 거 같아?
태주 : 그럼 아니야?
혜린 : 솔직히 준혁오빠한테 여자가 생겼다는 거, 또 그 여자가 한은수라는 거, 환영할 만큼 기쁘고 좋진 않아.
그런데, 생각만큼 그렇게 쓰리지도 않은 거 있지?
태주 : !
혜린 : 이래서 사람 마음을 두고 간사하다고 하는 건가 봐.
태주 : 거 참 다행이네.
혜린 : 응. (잠시 사이 두고)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이제 그만 두자.
태주 : ?!
혜린 : 애들 장난 같은 짓, 이제 다 그만 두자구.
태주 : ...(기분이 상한다) 목적이 사라졌으니 이제 폐기처분 하겠다?
혜린 : 맞아.
태주 : 약속한 시간은 아직 남은 걸로 아는데?
혜린 :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거야.
태주 : (괜히 자존심 상한다) 잘났다. 그래! 네 맘대로 하셔. (돌아서려는데)
혜린 : 다 관두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
태주 : ! (돌아본다)
혜린 : 이제부터는 진짜로 해보자구, 한은수랑 신준혁처럼.
태주 : .....왜 그런 짓을 하는데?
혜린 : 당신이 좋아졌거든.
태주 : !
혜린 : 당신이 진짜로 좋아졌어. 그러니까 진짜로 연애해 보자는 거야.
태주 : (잠시 혜린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이 터진다)
혜린 : (불쾌한) 웃지 마. 나 진지해.
태주, 웃음을 거둔다. 혜린을 본다. 하지만 다시 웃어버리고 만다.
혜린, 화가 치미는 듯 확 자리를 나가려는데 태주가 혜린의 팔을 잡는다.
태주 : 당황하는 거 당연하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혜린한테 고백을 들었는데.
혜린 : 그렇다고 웃니?
태주 : 그럼 울까?
혜린 : (확 팔을 뿌리치려는데)
태주 : (혜린의 팔을 꽉 잡으며) 정말 진심이야?
혜린 : 그걸 꼭 되물어야겠어?
두 사람, 긴장된 시선으로 서로를 잠시 바라본다.
혜린 : 어떻게 할 거야?
태주 : .....
혜린 : 대답해.
태주 : 모르겠어... 솔직히 모르겠어. 너랑은 약속시간 되면 깨끗이 빠이빠이 할 사이라고만 생각했거든.
혜린 : 그럼 지금부터 생각을 바꿔.
태주 : 그게 그렇게 쉽냐?
혜린 : 쉽지 않으면... 당신이 언제부터 그렇게 신중했다구. 밥 먹듯이 쉽게 연애질하던 사람이 강태주 아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어렵다는 건데.
태주 : .....
혜린 : .....설마...다른 남자 품에 있는 여자 뒤꽁무니 쳐다보고 있는 거야? 천하의 강태주가 그런 초라한 짓도 하니?
태주 : 무슨 헛소리야!
혜린 : 맞아, 말도 안되는 헛소리야. 그래서 나도 안 믿어!
태주 : !.....
혜린 : (태주에게 다가서며) 짝사랑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 강태주 자존심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냐구.
태주 : .....
혜린 : (태주의 뺨을 부드럽게 만진다) 당신 눈 앞을 봐. 날 보라구. 내가...내가 정말로 당신이 좋다잖아.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본다.
혜린, 자연스럽게 태주의 목을 끌어다 입을 맞춘다.
하지만, 혜린과 키스하는 태주의 머릿속은 산란하다.
S#31. 동 룸, 태주의 침실
어두운 실내. 구겨진 맥주캔을 던지는 태주. 바닥에 다리 뻗고 앉아있다.
이미 몇 개의 구겨진 맥주캔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려다가 문득 시계를 본다. 거의 한시에 가까운 시각이다.
맥주 마시려던 걸 그만 두고 문득 무슨 생각이 든 듯 방 안을 서성인다.
혜린이 침실을 살핀다. 혜린,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태주,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방을 나간다.
S#32. 동, 복도
룸에서 나오는 태주. 긴장한 얼굴로 복도를 따라 걷는다. 은수의 방 앞에 선다.
신경 쓰이는 듯 바로 옆의 준혁의 방을 한번 보고는 은수 방 벨을 누른다. 반응이 없자 한 번 더 누른다.
이번엔 문을 두드리려는데 문이 열린다.
태주를 보고 깜짝 놀라는 은수.
은수 : 뭐예요?
태주 : 할 얘기가 있어.
은수 : 나중에 해요.
은수, 문을 닫으려는데 태주 거칠게 문을 밀며 방으로 들어간다.
S#33. 동, 은수의 룸
은수를 밀치며 방에 들어서는 태주.
은수 : 이게 무슨 짓이에요!
태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방 안에 준혁이 있었던 것. 술을 마시고 있었던 듯 탁자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다.
태주, 확 화가 치민다.
준혁 : 넌 뭐야! 이 시간에 약혼자 팽개치고 딴 여자 방엔 왜 들어 온 거야?
태주 : (준혁을 본다. 뻔뻔스레) 할 말이 있어서요.
준혁 : 할 말을 꼭 지금 이 시간에 해야 하나?
태주 : 지금 생각났거든요.
태주와 준혁, 서로를 노려본다.
은수 : 할 얘기 빨리 하고 나가요. 그럼.
태주 : 다른 사람 앞에서 할 얘기 아니야.
은수 : 상무님 남 아니예요!
태주 : ! (은수를 본다)
은수 : (태주 노려보며) 무슨 얘기든 같이 들어도 돼요, 상무님은. 그러니까 할 얘기 해요.
태주 : .....
은수 : (태주 밀며) 안할 거면 당장 나가던가!
태주 : (은수를 붙든다) 저 자식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거야!
은수 : !
준혁 : 그 손 놓지 못해!
태주, 준혁을 돌아본다. 은수를 잡았던 손 놓는다.
준혁 : 너 아주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 알아? 혜린인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태주 : 보고 싶어요? 불러 올까요?
준혁 : !
태주 : 얘도 알고 있습니까? 형님과 혜린이 사이?
은수 : ! (준혁을 본다)
태주 : (은수에게) 신준혁과 차혜린이 한 지붕 아래서 연애질하다 갈라선 사이라는 거 알고 있어?
은수 : !
태주 : 역시 몰랐구만.
준혁 : (화가 나지만 침착하게) 지금 와서 그 얘길 꺼내는 이유가 뭐야?
태주 : 한은수도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사귀고 있는 남자가 한 집안에서 자란 여동생 수년간 농락하다 버린
구역질나는 자식이라는 거 정도는.
태주가 말을 마치기 전에 준혁이 태주에게 주먹을 날린다.
태주, 지지 않고 준혁을 공격한다. 서로 뒤엉켜 몸싸움을 하는 두 사람.
태주, 준혁을 확 밀쳐버리고 준혁 쓰러진다.
태주, 다시 준혁에게 다가서려는데 은수가 막아선다. 멈칫하는 태주.
은수 : (싸늘한)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요.
태주 : .....
은수 : 당장 나가라구요!
태주 : 너 진짜 내 말 못 알아들어? 저 구역질 나는 자식이랑 당장 헤어지란...
은수, 있는 힘껏 태주의 뺨을 때린다. 태주, 충격이다.
은수, 잔뜩 독이 오른 눈으로 태주를 노려보고 있다.
태주, 은수의 행동이 믿기지가 않는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가는 태주.
은수, 온 몸의 힘이 빠진다.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그런 은수를 불안한 눈길로 보는 준혁.
S#34. 호텔 내 바
늦은 시간이라 한두 테이블 외에 텅 비어 있는 바.
태주, 양주 몇 잔을 스트레이트로 연속해서 마신다. 화가 나고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
S#35. 은수네 방 / 베란다
은수, 베란다에 나가 앉아 있다.
창가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혁, 베란다로 나가 은수에게 다가간다.
은수 : 미안해요.
준혁 : .....
은수 : 정말 미안해요.
준혁 : 혜린이 말인데요.
은수 : .....
준혁 : 은수씨한테 얘기 안한 건...
은수 : 알아요. 왜 그런 건지.
준혁 : !
은수 : 이미 끝난 일이잖아요. 계속 얼굴 마주할 사람인데 다 지난 얘기 해봤자 껄끄럽기만 했을 거예요. 상무님 이해해요, 저.
준혁 : (허탈하고 씁쓸한 듯 웃는다)
은수 : (준혁을 본다)
준혁 : 그렇게 금방 이해해주니까... 좀 서운하네요.
은수 : !
준혁 : 너무 쉬워서요.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준혁 : 혜린이가 다 함께 여기 오자고 했을 때 처음엔 망설였어요.
은수 : .....
준혁 : 두려웠거든요. 네 사람 함께 있는 거.
은수 : (준혁을 본다)
준혁 :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한번은 넘어야할 산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은수를 진짜 내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 꼭 넘어야할 산.
은수 : !
준혁 :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불안해요. 과연 그 산을 넘을 수 있을지.
은수 :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준혁 : 은수씨가 그 불안감 좀 떨쳐버려 줄래요?
은수 : ?
준혁 : 나랑 결혼해 줄래요.
은수 : !..... (당황한다)
준혁 : (은수의 반응을 보고) 역시... 나 혼자 너무 멀리 온 건가. (돌아서려는데)
은수 : 제가 어떻게...
준혁 : ! (은수를 본다)
은수 : 생각해 볼게요.
준혁 미소짓는다..
S#36. 호텔 내 바
텅 빈 실내에 태주만 있다.
만취한 태주,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다.
S#37. 동 호텔, 식당 (다음 날, 아침)
혜린과 준혁, 은수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어딘가 심난한 얼굴들이다.
준혁 : 강태주는.., 안 내려오는 거야?
혜린 : 자고 있어. 깨워도 안 일어나.
은수 : .....
혜린 : 오빤 오늘은 쇼케이스 못 간다고 했지?
준혁 : 응, 오후에 이쪽 백화점 사람들이랑 미팅 있어.
혜린 : 우리도 나중으로 미룰까... (은수에게) 은수씨 어때요, 오늘 같이 시내관광이나 할래요?
은수 : 전 그냥 쉴래요.
혜린 : 왜요, 여기까지 왔는데?
은수 : 몸이 안 좋아서요.
세 사람, 잠시 말없이 식사를 한다. 무거운 분위기다.
혜린, 뭔가 이상하다 싶다.
혜린 : 오늘 분위기 왜 이러냐. 두 사람 무슨 일 있었어?
준혁/은수 : .....
혜린 : 혹시 싸우기라도 한 거야?
은수 : 어젯밤에...
혜린 : ? (은수를 본다)
은수 : (혜린을 보며) 상무님이랑 한잔 하고 있었는데 강태주씨가 왔었어요, 내 방에.
혜린 : !!
은수 : 저한테 할 말이 있었대요.
혜린 : ...(애써 감정 억누르고) 무슨 말이요?
은수 : (침착하고 냉정한) 상무님이랑 혜린씨가 과거 연인이었단 얘기요.
준혁/혜린 : !
은수 : 강태주씨는 내가 혜린씨나 상무님이랑 엮이는 게 싫은가 봐요.
아마 그 얘기를 하면 상무님과 저 사이가 멀어질 거라 생각한 모양이에요.
혜린 : .....(떨리는 손끝을 꽉 움켜쥔다) 태주씨가 괜한 짓을 했네요.
은수 : 아뇨, 나도 알건 알아야죠.
혜린 : !
은수 : 사실 어젠 굉장히 불쾌했어요. 그런 얘기하러 한밤중에 내 방까지 찾아오는 건 좀 그렇잖아요.
혜린 : !
은수 :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차라리 잘됐다 싶어요.
혜린 : ?
은수 : 덕분에 상무님과 저 사이, 더 가까워졌거든요.
혜린 : ?
은수 :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상무님한테 프로포즈 받았어요, 저!
혜린 : !... (믿을 수 없다는 듯 준혁을 본다)
S#38. 동, 혜린네 방 / 태주의 침실 (낮)
커튼이 드리워진 약간 어두운 실내.
태주 잠들어 있다. 혜린, 그런 태주를 쏘아보듯 내려다보고 있다.
커튼을 여는 혜린. 햇빛이 들이닥친다.
태주, 눈이 부신 듯 인상을 쓰고, 혜린 태주를 깨운다.
혜린 : 일어나. 충분히 잤어, 일어나!
태주, 겨우 잠에서 깨어난다.
혜린 : 여기까지 와서 당신 땜에 내 일정 망치고 싶지 않거든. 빨리 정신 차리고 외출 준비 해!
혜린, 나간다.
태주,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머리를 누른다.
S#39. 리틀 인디아
잡다한 토속 상품들과 호객하는 상인들, 사람들로 붐빈다.
태주, 굳은 얼굴로 북적거리는 인파 속을 걸어가고 있다.
혜린, 독특한 물건들을 관심 있게 보며 상인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문득 문득 태주를 신경 쓰는 혜린.
태주, 혜린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눈앞의 것들이 들어올 리가 없다. 머릿 속은 온통 은수에게로 가 있다.
피가 마르는 기분이다. 자꾸만 눈앞이 아득해진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물건을 만지며 상인과 이야기 하던 혜린, 뭔가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본다. 태주가 보이지 않는다.
혜린, 태주의 이름을 부르며 왔던 길을 몇 걸음 가 본다. 역시 태주의 모습은 없다.
순간 불길한 느낌에 휩싸인다. 매장 이곳저곳을 미친 듯 헤매는 혜린. 태주가 없다.
걸음을 멈추는 혜린,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다.
S#40. 호텔, 엘리베이터 / 복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잔뜩 상기된 태주가 내린다.
태주,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간다. 은수의 방 벨을 미친 듯이 누르고 방문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잠시 후, 문이 열린다.
은수가 놀랄 사이도 없이 태주, 은수에게 달려들어 거칠게 입을 맞추며 그대로 밀고 방으로 들어간다.
S#41. 동, 은수의 방
은수, 갑작스런 태주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태주의 힘을 당해낼 수 없다.
태주, 은수의 저항에 아랑곳없이 키스를 퍼부으며 끌어안는다.
어떡하든 태주에게서 벗어나려는 은수.
두 사람, 균형을 잃으며 바닥에 쓰러진다.
S#42. 쥬얼리 샵
샵에 들어서는 준혁.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진열된 귀금속들을 살펴본다.
은수에게 청혼할 생각으로 흐뭇하다.
S#43. 호텔, 은수의 방
태주, 쓰러진 은수를 애무하며 거친 손길로 옷을 벗기려 한다.
필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는 은수, 공포에 질려 어느덧 흐느끼고 있다.
태주, 문득 손길을 멈추고 은수를 본다. 그제서야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어쩔 줄 몰라하며 오열하는 은수.
태주, 자괴감이 든다.
이때 이상한 느낌을 받은 듯 뒤를 돌아보는 태주. 깜짝 놀란다.
어느 사이엔가 혜린이 와 있었던 것.
은수, 혜린은 보지 못하고 태주의 품에서 빠져나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혜린, 다가온다. 증오와 경멸의 눈으로 태주를 노려본다.
태주, 각오한다는 듯 혜린을 보는데,
다음 순간, 혜린, 옆에 있던 은수의 뺨을 사정없이 갈긴다.
갑작스런 공격에 쓰러지는 은수.
은수가 제대로 몸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혜린. 은수에게 달려든다.
두 여자의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된다.
독이 오른 혜린에게 은수는 당해낼 수가 없다. 거의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상황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보던 태주. 혜린을 거칠게 끌어낸다.
태주 : 너 미쳤어! 뭐하는 짓이야!
혜린 :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혜린,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태주를 뿌리치며 은수를 다시 공격하려는데
이때 태주가 혜린의 뺨을 때리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충격을 받은 듯 태주를 보는 혜린.
은수도 깜짝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태주, 혜린을 노려보다가 옆에 널브러져 있던 은수의 손을 잡아 일으켜 그대로 끌고 방을 나간다.
혜린, 눈 앞에서 손잡고 가는 태주와 은수를 망연히 본다.
너무 급작스러워 어떤 상황인지 이해도 잘 가지 않는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S#44. 몽타쥬
- 호텔 복도 :
은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태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만 여의치 않자 계단으로 향한다.
- 호텔 계단 :
계단을 내려가는 태주와 은수의 빠른 발걸음.
- 호텔, 은수의 방 :
혜린, 이제야 상황이 접수된다. 배신감과 분노 질투와 절망의 감정이 뒤엉킨다.
- 호텔 계단 :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은수와 태주.
- 쥬얼리샵 :
진열장 안의 팔찌를 가리키는 준혁. 직원이 꺼내주는 팔찌를 손에 받아쥔다.
S#45. 호텔 정문 앞 (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태주와 은수, 정문으로 막 뛰어 나오다가 세찬 빗줄기를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두 사람, 거친 숨을 고르며 망연히 빗줄기를 본다.
은수는 정신이 없는 듯 멍한 얼굴로 빗줄기만 보고 있다.
태주 : 사랑해...
은수 : !
태주 : (은수를 본다) 사랑해, 은수야.
은수 : !
은수, 여전히 빗줄기에 시선 둔 채로 부들부들 떨며 태주에게 잡힌 손을 뺀다.
태주, 은수의 손을 다시 잡으려는데 은수,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비켜선다.
태주, 감히 은수에게 다가서지 못하는데.
은수, 넋이 나간 듯 빗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도망이라도 치듯 종종 걸음으로 가는 은수.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은수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태주, 겉옷을 벗어 은수를 쫓아간다.
빗줄기를 가리려 은수의 뒤에서 은수의 머리와 자기 머리를 옷으로 가리고 은수를 쫓아 걷는다.
은수는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빗물과 눈물이 엉킨다.
태주가 뒤에 따라오든 말든 은수의 울음은 점점 격앙된다.
태주 : 야, 괜찮아? 어디 가는 거야, 야..,
태주, 은수의 몸을 돌리려는데 그 순간 은수가 먼저 몸을 돌려 태주에게 달려들 듯이 입을 맞춘다.
태주, 은수를 꼭 끌어안는다.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으로 포옹하며 오래도록 입을 맞추는 두 사람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