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중 더운 날씨에 '방콕'해 있자니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래서 영화를 한편 다운해 보았다.
불법 다운에 익숙해서일까? 3500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불법다운로드는 죄악이란다. 하지 말자!
'내 깡패같은 애인'은 박중훈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라해서 가볍게 골랐는데 어라? 내용이 만만지가 않다
각본 감독을 김광식이란 신인이 맡았는데 국문과 출신이란다. 문학을 전공했다면 날로 먹으려 들진 않을 것이니.
삼류깡패 박중훈이 살고 있는 반지하 단칸방 다세대 주택에 세진이란 아가씨가 이사를 온다.
이사 비용을 아끼려 인부도 쓰지 않고 혼자서 짐을 옮기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짐을 쏟아버리고 만다.
다리를 쪼그려 짐을 쓸어 모으고 있는데 맞은편 현관문이 열리면서 세진의 엉덩이를 쿵 치고 만다.
깡패 인상을 빡빡 쓰고 보기에도 없어보이는 츄리닝을 입은 박중훈이다. 둘은 그렇게 조우한다.
그런데 남자는 대뜸 반말로 말을 붙여온다. 여자는 불쾌했지만 혹시나 짐이라도 좀 옮겨주려나싶어
말을 받아주지만 이 남자 깡패답게 매너가 꽝이다. 이삿짐에 꽃혀있던 입사지원서까지 불쑥 꺼내보곤 그냥 가버린다.
그뿐 아니다. 동네 분식점에서 우연히 만나 라면을 같이 먹고 라면값을 지불하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하는데
먼저 나가 있던 남자가 손을 내민다 "내놔! 라면값 이천 오백원." 악착같이 받아내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문앞에 잠시 세워놓았던 우산을 동철이 들고 가버려 면접시험을 보러 가야만하는 세진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만날때마다 부딪치는 둘은 사실 동병상련을 가진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들이다.
동철은 조직의 차세대 에이스를 꿈꾸며 누명을 쓰고 감방을 다녀왔지만 조직은 그를 배려해주기는 커녕 늘 뒷전이다.
같은 서열이었던 친구는 보스가 되어 사사건건 무시하며 전봇대에 전단지나 붙이라는 둥 허드렛일만 시킨다.
손님으로 룸살롱 찾은 합기도 사범들이 가짜 양주 아니냐며 시비를 걸기에 손을 봐주려다
오히려 개 맞듯이 맞고는 "씨발, 깡패라고 안 맞냐?"며 주절거리는 어리버리한 깡패다.
지방대를 나온 세진은 상경하여 어렵사리 취직을 하지만 곧 회사가 부도가 나고 만다.
수없이 입사지원을 하지만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면접관이 말을 붙이지도 않는다.
어떤 면접관은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 노래를 불러보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임시방편으로 편의점 알바로 연명을 해가는 막연한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전형이다.
이런 둘이 현관문을 마주보는 단칸방에 각각 살면서 사사건건 부딪치다가
가까워지는 계기가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영화는 박중훈을 위해 만들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박중훈의 캐릭터와 맞아 떨어진다.
실제로 영화를 만든 김광식 감독은 박중훈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뻔하게 진행될 뻔한 이야기를 잘도 끌고간다. 그런데도 별로 작위적이지도 않다.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도 맛깔나게 잘 버무렸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이다.
잘 만든 영화이면서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을보면 역시 평론가와 관객의 시각은 다른 모양이다.
깡패영화치고 욕설도 젊잖은 편이고 액션도 스펙터클하지 못하다. 모범적이지만 자극적이지는 못한 것이다.
차라리 어느 쪽을 확실하게 택했더라면하는 생각도 든다.
깡패 영화인지 코미디 영화인지 멜로물인지 모두 잡으려다 다 놓친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비록 동철이 단순무식한 깡패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물씬 풍긴다.
잘난 척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도저히 할수없는 일들을 그는 일상적으로 해낸다.
담배 좀 사달라는 불량 고삐리들에게 "아직 우유나 더 처먹어라!"며 우유팩으로 머리통을 갈기는 장면은 통쾌하다.
우리들 중 누가 길거리 불량 청소년에게 호기롭게 그런 호통을 칠수있단 말인가.
사랑하는 여자를 저만의 무식한 방법으로 도와주고는 유유히 떠나는 모습은 차라리 멋있기까지 하다.
사랑하는 여자가 헤어지자고하면 쿨하게 보내기는커녕 못 헤어진다면서 울고불고 난리부르스를 치는게 인지상정일진대.
조폭의 세계를 동경하며 조직에 뛰어든 풋내기에게 주먹을 날려가며 조직에서 쫓아내는 모습은
영락없는 의리의 사나이 전형이다. 누가 인생 후배의 장래에 대해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해준 적이 있단 말인가.
안도현의 시가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는 시커먼 연탄으로 살았지만 뜨거운 사람이었다. 우리모두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는지?
첫댓글 새달샘님글 오랜만이네요.... 근데 시리즈글이 그리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