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학자들은 MBTI를 안 좋아한다. 단언컨대 그렇다. 아는 사람의 70% 정도가 심리학자지만 MBTI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MBTI가 그렇게 형편없는 도구라면 대학심리상담소에는 왜 갖다놨을까? 필자가 심리학과에 입학해서 제일 처음 접한 성격검사가 MBTI다. 그렇게까지 비과학적인 검사를 미래 심리학의 동량들에게 시키고 있었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MBTI는 그렇게 나쁜 검사가 아니다. 나름의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임상 자료도 풍부하다. 적어도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충분한 검사다. 문제는 그 이상의 목적에 이용하려 할 때다. 회사에서 특정 유형의 사람들을 뽑지 않겠다든가 특정 유형의 사람들은 사귀지 않겠다는 등 MBTI로 사람들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일은 MBTI의 개발 목적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러한 경우에 대해서는 명확한 검사 사용 지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은 MBTI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알러지 반응을 보이며 누군가가 MBTI 유형을 물어보기라도 할라치면 영조 임금께서 그랬던 것처럼 귀라도 씻어낼 것처럼 군다. 심리학계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게 그 정도까지 그럴 일인가 싶다.
심리학자들이 MBTI에 대해 보이는 거부감은 MBTI의 유형론적 속성에 기인한다. 유형론이란 히포크라테스의 체액론 성격이나 현대의 혈액형 성격, 그리고 MBTI 성격처럼 사람들의 성격을 유형으로 분류하는 이론을 뜻한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도록 사람들을 이해하는 틀로서 활용되어 왔지만 유형론은 사람 수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유형의 수와 과학적 근거의 부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심리학자들이 MBTI를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80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성격을 기술하기에 MBTI의 16개 유형은 너무 적으며, 무엇보다 빈도분석 수준 이상의 과학적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Big 5와 같은 특성론적 성격이론을 채택하여 많은 연구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특성론적 성격이론이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특성(특질)이 있으며 개인의 성격은 이들 특성의 비율로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통칭 Big 5이론은 외향성, 원만성(친화성), 성실성, 개방성, 정서안정성(신경증)의 5대 특질을 다룬다.
심리학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학술 연구는 이 Big 5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특성론적 접근도 한계는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특성론의 결정적 단점은 기존의 성격특성 외의 원인에서 비롯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성격장애는 주된 특징에 따라 A, B, C 세 그룹의 총 10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A군의 편집성, 조현성, 조현형 성격장애와 B군의 반사회성, 자기애성, 연극성, 경계성 성격장애, 그리고 C군의 강박성, 의존성, 회피성 성격장애가 그것이다.
이 중 A군의 조현성 성격과 C군의 회피성 성격은 둘 다 사회적 교류가 없고 내향적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내향적인 행동을 보이는 동기는 서로 다르다. 조현성 성격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내적 세계에 머무는 것을 즐긴다면 회피성 성격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게 평가할까봐 불안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교류를 꺼리고 내면에 침잠하는 것이다.
내향적이며 원만성이 낮은 조현성 성격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문화적 성격 유형으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있다. 이 개념은 본래 문화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되었으나 최근에는 이를 개인이 가진 특질(문화성향)로 보고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개인주의 문화란 개인주의적 특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주류인 문화이고 집단주의 문화란 집단주의적 특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문화라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문화적 성격을 이해할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같은 집단주의 문화로 분류되는 한국과 일본 중 집단주의가 더 강한 쪽은 어디인가. 심리학자들은 한국이 더 집단주의가 더 강하고 일본은 개인주의가 강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서구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개인주의화가 더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그러나 조현성 성격과 회피성 성격의 예에서처럼 개인주의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집단주의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서로 다른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참조: 한중일 중 가장 집단주의적인 나라는?https://brunch.co.kr/@onestepculture/417).
한국과 일본의 성격 유형을 연구해 온 필자의 견해로는, 일본인들의 개인주의적 행동에는 회피적 동기, 한국인들의 개인주의적 행동에는 자기현시적 동기가 작용하며, 일본인들의 집단주의적 행동에는 집단의 규범에 따르려는 동기가, 한국인들의 집단주의적 행동에는 공감의 동기가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나라 사람들의 행동은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단일 차원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참조: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929007>
무엇보다 MBTI와 Big 5는 목적이 다르다. 유형론의 목적은 성격의 분류에 있고 특성론의 목적은 성격을 구성하는 성분의 비율과 다른 행동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데 있다. MBTI가 상담 장면에서 개인 이해를 위해 활용되고 Big 5가 학술 연구에서 사용되는 이유다. 애초에 목적이 다른 검사를 두고 비과학적이니 타당도가 모자라니 비판하는 건 상당한 모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드러진 행동 특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유형을 이해하고 싶을 뿐, 준거 타당도가 어떻고 신뢰도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까지는 알고 싶어하지 않고 또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과일을 사러 간 사람이 진열된 과일의 모양과 색깔을 보고 고르지 과일들의 구성 성분과 화학 작용을 알고 고르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물론 과일을 고를 때도 성분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감에는 탄닌 성분이 있어 변비를 유발하고, 사과 씨에는 아미그달린이 있어 경련이나 호흡 곤란을 야기할 수 있어 환자나 어린이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주의사항은 TV 건강 프로에 나오는 의사 선생님이 철마다 한마디씩 해 주시면 충분하다. 달라는 과일은 안 주고 과일의 구성성분과 섭취시 주의사항을 끊임없이 읊어대는 과일가게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