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목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를 통해서 인문 고전을 통해서 영성을 설명하고 영성을 살아내는 것을 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는 아타나시우스가 대항한 전선을 통해서 작가의 결연한 의지가 드러났다고 하겠다. 곧 육체는 열등하지 않으며 육체가 영이라는 주장이다. 육체의 수준이 영성이며 성육신은 열등한 육체를 입은 것이 아니라는 말을 책의 전반을 통해서 그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1. 우리의 영성은 연약함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라 했다. 이 과정을 추구하는 이는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극복할지도 알게 된다. 이것을 영성이라고 할 때 인간의 영성은 모든 관계 속에서 발견되고 실천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하늘의 영성이 구현되는 실천적 장소인 인간의 삶은 완전한 환경이 아니며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고도의 수준인 영성을 연약한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하고 구현해야 하는 역설이다.
2. 역설의 은혜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은 온통 역설이다. 내게 없는 죄의 감수성을 기반으로 죄에서 돌아서야 한다. 결국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이는 그 깨달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누리는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인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부재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히 누리는 것이다.
3.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도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은 나의 시도를 좌절시킨다. 몰리노스는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만 맺을 뿐이라고 했다. 이때 사막 교부들의 금언을 들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허영된 것을 ‘투사’할 생각은 버리고 나다운 삶 곧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찾으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이때 예수의 기도가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한 마디. “주여!”. 그거면 족하다.
4. 사랑을 살아내어 보이는 삶.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했다. 그 사랑이 보이지 않기에 엔도 슈사쿠는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썼다. 또한 예수님의 고난은 그 ‘사랑’을 극한으로 느끼게 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이 위대한 사랑을 우리는 살아낼 수 있을까? 그렇기에 표면적인 싸움이 아닌 내면의 싸움부터 영적 전쟁을 준비하고 싸운 본 회퍼처럼 우리는 거친 외부의 압력을 견대 낼 넉넉한 내면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5. 움직이려는 유혹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받는 도전과 유혹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 아닐까. 사랑하라. 복음을 전하라 등의 말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파스칼이 말한 이중적 존재는 우리가 접하는 사회에서도 평행선을 보여준다. 짐 월리스를 쫓아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은 어느새 자신이 싸우던 괴물을 닮아 버릴 수도 있다. 그럴수록 기억해야 한다. 내면을 먼저 정돈해야 한다. 안과 밖의 균형은 내면에서부터다.
6. 본적을 잊게 하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세상에 편승 되려는 유혹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우리의 본가가 어디인지 잊어버리게 된다. 레슬리 뉴비긴은 이것을 우려했고 오히려 당당히 선교사의 삶을 살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고향 없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이 땅에서 힘을 뺄 때 탕자가 첫째 아들이 되고 아비와 같은 사랑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고 나다운 삶이다. 그러면 남과는 다르지만 남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김기현 목사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를 처음 읽으면 쉬운 문체 때문에 기존에 김기현 목사의 책을 접했던 독자는 잠시 당황할 것이다. 그만큼 고전을 폭넓게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랄까. 마치 계단을 내려올 때 한 단계 남은 줄 알았다가 평지를 만나서 헛디딘 발에 힘이 빠진 느낌이랄까. 그러나 순식간에 20장을 읽다 보면 곳곳에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생각거리들 때문에 책의 부피가 더 두껍게 다가올 것이다.
최근에 쳇GPT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 끝모를 지식의 정점에 기계가 올라서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나를 붙든다. 그러나 쳇GPT와 다르게 이 책은 양질의 고서를 성경적 사고와 함께 올바른 길라잡이를 제공하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하니 느헤미야에 나오는 군사들처럼 낮에는 사역하고 밤에는 책을 읽어야 하는 사역자로서 엄선된 대중적이면서도 고급 정보에 감사를 표하게 된다.
이 책을 하루에 한 장씩 묵상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30일 묵상용으로도 좋겠다. 주 5일은 책을 읽고 주말에는 되씹는다면 이것도 깊은 은혜가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책들을 메모하고 구매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는 한 권으로 소개되어 10여 권의 실체를 남기게 한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3.23 1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