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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향 이기철 시인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며
발표된 시 중에서 추천된 몇 편의 시로 시 낭송회를 가지려 합니다.
이기철 시인이 참석하신다는 전갈을 받아서 더없이 기쁩니다.
시를 통해서 시인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도 좋지만 시인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새 봄에 어울리는 시를 낭송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있다 하겠습니다.
이웃에 시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면 모시고 봄나들이 하십시오.
-2008년 3월 21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대구 MBC방송국 맞은편 삼선화재 빌딩 지하 1층 카페 '스타지오'
-참가회비 1만원(저녁식사 제공, 시하늘 봄호, 낭송책자, 다과 등)
-주차 3시간 무료
-시하늘 운영자 올림
산골에 오두막을 짓다
-이기철
산골에 오두막을 짓다
달빛으로 기둥을 세우고
바람으로 지붕을 덮었다
우우우 몰려오는 서풍의 축하객
손님처럼 찾아온 아카시아 잎 방문 두드리는 소리
배추잎은 아직 어려 잠에 빠져 있고
수수이삭은 저 혼자 시간을 먹고
가을만큼 자랐다
얘들아 얘들아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놀러간 개울물
오소리들이 물고 간 밤톨은 찾아볼 수 없다
전기밥솥에 쌀 안쳐놓고 사립문 열면
후욱 끼쳐오는 꿀밤나무들의 푸른 살 냄새
엄마 젖무덤 같은 산등엔
돌 지난 아이의 하얀 젖니 같은 별이 뜨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기철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내 밟고 온 길,
내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내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이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이웃들에 사죄합니다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내 짧은 지식, 신념 없는 말로 강요한 학생들에
사죄합니다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내 한 포기 꽃나무를 심지 않고
풀꽃의 아름다움만 탐한 일 사죄합니다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았던 일 사죄합니다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초록의 힘
-이기철
낙하의 곧고 빠른 힘은 나무의 직립 때문이다
비라고 부르면 입 안 가득 고이는 빗물
나무라고 부르면 환히 귀가 트이는 나무들
구를 때마다 지구를 뭉치는 힘은 초록으로 솟구친다
나무의 언어 속에 들어가면
사람의 언어는 사라지고 나무의 언어만 남는다
발이 시려도 신 신지 않은 나무
오래 비장해 두었던 초록의 힘
낮은 데서 신생을 준비하는 나무들
그 잎을 적시는 곧고 우아한 빗줄기들
비 그치면 흰 타월로 걸릴 햇볕 폭포들
청도 지나며
-이기철
이만큼서 그치기로 한다
여기까지 온 물이
이제 어디로 갈까 숙고하는 청도에서
낙과처럼 이제 그만 혼자 내리기로 한다
내 발은 백 켤레의 신발을 길 위에 버리면서
너무 많이 걸었거나
너무 멀리 와버렸다
산들은 모두 높낮이를 달고
나무들은 경사에서도 평화롭다
모든 기다림에 나는 익숙해 있다
세상은 낯익어 들판 끝에 단추꽃이 돋고
그것마저 새로움이 아닐 때
잎들은 땅으로 진다
누워 있다고 논들이 다 무사하겠느냐
새 이름 몰라 그저 무명새라 쓴다
모든 저자가 문을 닫고 완행들이 사라져가도
청도는 물과 함께 남는다
울며 나는 새들을 노래한다고 고쳐 써도
새들은 즐거워하지 않는다
어둠에 익숙한 나무는 또
얼마나 많은 말들을 감추고 있는가
정신의 열대
-이기철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거기 슬플 것 다 슬퍼해본 사람들이
고통을 씻어 햇볕에 널어두고
쌀 씻어 밥 짓는 마을 있으리
더러 초록을 입에 넣으며 초록만큼 푸르러지는
사람들 살고 있으리
그들이 봄 강물처럼 싱싱하게 묻는 안부 내 들을 수 있으리
오늘 아침 배춧잎처럼 빛나던 靑衣를 물고
날아간 새들이여
네가 부리로 물고 가 짓는 삭정이집 아니라도
사람들이 사는 집들
南으로만 흘러내리는 추녀들이
지붕 끝에 놀을 받아 따뜻하고
오래 아픈 사람들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는
아이 울음처럼 신선한 뜨락 있으리
저녁의 고전적인 옷을 벗기고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
살아서 깊어지는 노래 한 구절 보탤 수 있으리
오래 고통을 잠재우던 이불 소리와
아플 것 다 아파 본 사람들의 마음 불러 모아
고로쇠 숲에서 우는 청호반새의 노래를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말로 번역할 수 있으리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시를 쓰는 저녁
-이기철
염원은 꽃이 되어 피어나지 않는다
길가에 핀 초롱꽃의 갈망을 읽을 수 있기까지에는
내 마음의 녹을 백 번 은빛 칼로 닦아내야 한다
내 곁의 나무도 풀도 쉰 번 옷 갈아입은 세월
이제는 내 삶을 은유로 노래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새들의 지저귐이 살이 되어
마음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간다
참회하라, 나는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고
나와 내 아내와 자식을 위해 기도했다
살아 있는 날의 무거운 짐이 집과 쌀의 안식이라면
한 칸 방 한 통의 쌀이
내 잠을 편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지폐를 향해 드리는 경배를
서슬 푸른 날로 베어낼 수 없음이 슬픔이다
시라는 이름으로 씌어지는 이 색동의 마음 조각에도
안식은 끝내 나를 덮어주지 않는다
열흘을 고심한 내 말 한마디
흰 종이 위에 옮겨놓을 때
푸른 물은 바다에서 출렁거리지 않고
잠들지 않는 내 마음 안에서 파도친다
우리, 수채화 같은 꿈꾸면 안 될까
-이기철
들길 걸으면 내 발이 향기로와진다
햇빛 밝은 날은 눈 감아도 보이는
다년생 풀의 초록빛 생애
꽃들은 한 송이만 피어도 들판의 주인이 된다
그리울수록 얼굴 환해지는 풀꽃들
세상은 결코 재가 된 것 아니다
부르면 달려와 은빛 단추가 되는 삶도 있다
햇살의 매질이 아픈 지
풀잎들이 자주 종아리를 흔든다
어린 벌레들은 아직 잠깨지 않았는지
물소리가 먼저 깨어나 들판의 길을 연다
풀꽃 말고는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아는 사람 없다
숲을 나는 새는 부리마저도 초록이다
나는 신발에 몸을 얹고
무참히도 쉰 해를 걸어왔구나
계절이 다하면 꽃들은 차례로 순교한다
나비와 벌들의 주소가 거기 있다
이제 우리 수채화 같은 꿈꾸면 안 될까
우리 한 번 시내 같은, 놀 같은 삶
꿈꾸면 안 될까
마음속 푸른 이름
-이기철
아직 이르구나
내 이 지상의 햇빛, 지상의 바람 녹슬었다고 슬퍼하는 것은,
아직 이르구나, 내 사람들의 마음 모두
잿빛이 되었다고 탄식하는 것은
수평으로 나는 흰 새의 날개에 내려앉는
저 모본단 같은 구름장과
우단 같은 바람 앞에 제 키를 세우는 상수리나무들
꿈꾸는 유리 강물, 햇볕 한움큼씩 베어 문 나생이 잎새들
마음 열고 바라보면 아직도 이 세상 늙지 않아
외출할 때 돌아와 부를 노래만은
언제나 문고리에 매어 둔다
이제 조그맣게 속삭여도 되리라
내일 아침에는 이 봄에 못 피었던 수제비꽃 한 송이 길 옆에 피고
수제비꽃 옆에 어제까지 없던 우체국이 하나
새로 지어질 것이라고,
내 귓속말로 전해도 되리라
오늘 태어나는 아이가 내일 아침에는 주홍신을 신고
마음속 가장 따뜻한 말을 싸서 부치러
우체국으로 갈 것이라고
마흔 살의 동화
-이기철
먹고 사는 일 걱정되지 않으면
나는 부는 바람 따라 길 떠나겠네
가다가 찔레꽃 향기라도 스며 오면
들판이든지 진흙땅이든지
그 자리에 서까래 없는 띠집을 짓겠네
거기에서 어쩌다 아지랑이 같은 여자 만나면
그 여자와 푸성귀 같은 사랑 나누겠네
푸성귀 같은 사랑 익어서
보름이고 한 달이 같이 잠들면
나는 햇볕 아래 풀씨 같은 아이 하나 얻겠네
먹고 사는 일 걱정되지 않으면
나는 내 가진 부질없는 이름, 부질없는 조바심,
흔들리는 의자, 아파트 문과 복도마다 사용되는
다섯 개의 열쇠를 버리겠네
발은 수채물에 담겨도 머리는 하늘을 향해
노래하겠네
슬픔이며 외로움이며를 말하지 않는
놀 아래 울음 남기고 죽은 노루는 아름답네
숫노루 만나면 등성이서라도 새끼 배고
젖은 아랫도리 말리지 않고도
푸른 잎 속에 스스로 뼈를 묻는
산노루 되어 나는 살겠네.
꽃잎은 오늘도 지면서 붉다
-이기철
오늘 내 발에 밟힌 풀잎은 얼마나 아팠을까
내 목소리에 지워진 풀벌레 노래는 얼마나 슬펐을까
내 한 눈 팔 때 져버린 꽃잎은 얼마나
내 무심을 서러워했을까
들은 제 가슴이 좁고 산은 제 키가 무겁지만
햇빛 비치는 곳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삶도 크고 있다
길을 걸으며 나는
오늘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걸어간 길의
낙엽 한 장도 쓸지 않았다
제 마음에도 불이 켜져 있다고
풀들은 온종일 꽃을 피워들고
제 마음에도 노래가 있다고
벌레들은 하루 종일 비단을 짠다
마른 풀잎은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따뜻하다
나는 노래보다 아름다운
풀꽃 이름 부르며 세상길 간다
제 몸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
제 사랑 있어 세상이 밝다고
꽃잎은 오늘도 지면서 붉다
가야 할 길 끝없어도
-이기철
너무도 바쁘고 막막해서
발밑에 밟히는 것이 모래인지 민들레인지
모르는 날에
비비새는 혼자서 산을 넘어 날고
쓰르라미는 듣는 이 없이 혼자 울었다.
빈 골에 채워지는 것은 바람 소리와 물소리뿐
그리운 것들은 아무것도 돌아와 주지 않았다.
가야 할 길 끝없어도 발길은 十里를 갈 수 없고
봄 지나 바라보면 찔레꽃만 길가에
무더기로 져 내렸다.
별까지는 가야한다
-이기철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들인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든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쉬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쉰 해를 보냈다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반생을 보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 햇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
나뭇잎이 짜 늘인 그늘이 넓어
마침내 그것이 천국이 되는 것을
나는 이제 배워야 한다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聖事)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
마침내 어둠을 밝히는 별까지는
나는 걸어서 걸어서 가야 한다
여기에 우리 머물며
-이기철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만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 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 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느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새를 들 쪽으로 날려 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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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날은 직장에서 특별한 일이 없네요.. 많은 분들과 함께 편안하고 따뜻한 시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석할께요. 이기철 선생님의 시편들을 참 많이 좋아합니다.^^
이기철 시인께서 참석하신다니 참 다행이고 기쁜 소식이네요.
시낭송회 공지가 올라올 때마다, 대구에 사시는 분들이 부러워져요...... 시몰이 덕분에, 좀 들해지긴 했지만
저는 시몰이 공지가 올라올 때마다, 서울 사시는 분들이 부러워요^^
아흐....멀리있다는 게 이렇게 늘 아쉽습니다. 이번에도 또 좋은 낭송회가 되겠네요. ^^
저도 대구 사시는 분들이 부러워집니다.
지난 번 떡이 맛있었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에도 떡은 제가 준비해 가겠습니다
우가희님이 가지고 오신다는 떡을 언제나 맛볼 수 있으려나.갈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네요.이기철 시인의 시 저도 좋아하는데.
늘 좋은 말씀 주시는 이기철 선생님 빨리 뵙고 싶어집니다.
아, 가고싶다는 생각이 앞서네요. 이기철시인 정말 좋아하는데 ^^ 그나마 다음주라 고민을 심각하게 해볼 수는 있겠네요.
저녁에 대구행을 결심했습니다. 좋은 봄을 시낭송 현장에서 즐길랍니다. 회원여러분과 함께....
꼭 오시기 바랍니다. 기다겠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이런저런 일로 쬐금 바쁘네요. 함께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즐겁고 가슴이 찡한 시낭송회 되길빕니다.
저도 안개비 친구따라 이번에도 출석입니다^^
아쉬운것은 시 낭송을 한번해 보지 못한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당돌한건지요 ...........
아니예요~~~ 다음엔 꼭 시낭송해주세요~~~^^ *^^*
가까우면서도 너무먼 길..함께하지 못해서 늘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