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의 여제가 탄생했습니다. 올해 스무살인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세번째 도전만에 드디어 그랜드슬램 첫 우승컵에 입맞췄습니다.
현지시간 7일 오후 3시에 필립 샤트리에 코트에서 디나라 사피나(러시아)와 롤랑가로스 타이틀 결정전을 치렀던 이바노비치는 6-4 6-3으로 자신의 첫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손에 넣었습니다.
당초 이바노비치와 사피나가 결승에 올랐을 때 둘 중 누가 우승하더라도 각자의 첫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이기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었는데요.
지난해 바로 이자리에서 첫 그랜드슬램 결승 데뷔전을 치렀고 올해 호주오픈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던 이바노비치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이었습니다.
붉은 앙투카의 롤랑가로스에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 결승전을 치렀던 사피나는 그 동안 여섯번의 승리를 거두는 동안 '기적' 같은 풀세트 접전을 펼쳤던 장본인입니다. 허나 결승에서만큼은 그 믿기 힘든 대 역전극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파이널1만5천명의 관중 앞에서 시작된 첫세트, 이바노비치는 내리 서비스게임을 따내 4-1로 앞서갑니다. 첫서브가 안 좋았던 반면 공격이 상당히 적극적이었고 스트로크에 파워가 실리면서 여러 위닝샷이 터졌습니다. 느린 공에도 차분히 다음 공격을 준비하며 멘탈에도 강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샤라포바와 엘레나 데멘티에바(이상 러시아)를 상대로 2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극적인 역전을 거둔 사피나의 저력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뿐 숨을 내쉬며 수준급의 코트 커버능력을 보인 사피나는 브레이크에 성공하면서 내리 4게임을 따라잡았습니다.
하지만 이바노비치의 역공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랠리 접전에서 드롭샷을 놓거나 네트에 대시하는 등 공격권을 쥐고 흔들었던 이바노비치가 마침내 45분 만에 첫세트 선취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바노비치는 마치 우승을 예감한듯 힘찬 파이팅과 모션을 취해 결승전의 긴장감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었지요. 사피나의 뒷심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무기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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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트에도 듀스 접전이 계속되자 이바노비치의 첫서브 성공률이 78%에서 57%로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더블폴트도 나왔고요. 하지만 사피나 역시 계속 되는 에러에 속을 태웠습니다. 찬스볼은 네트에 박히거나 사이드라인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사피나의 얼굴은 앙투카 색깔처럼 붉게 타올랐으며 이바노비치의 기합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마침내 5-3 사피나의 서비스게임에서 이바노비치의 40:0 매치포인트, 백핸드로 네트 앞에 떨어뜨린 볼을 사피나가 넘기지 못하자 이바노비치는 얼굴을 감싸고 우승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이바노비치는 "지난 2번의 결승전이 나에게 큰 경험이었다. 내 나이 스무살에 3번째 결승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부담이 나를 압박했다. 그럴수록 더 즐기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의 동요가 심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포인트가 나자 그동안의 고생은 다 사라졌고 행복감이 나를 벅차오르게 했다.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그랜드슬램 우승을 이뤄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세계 1위에 오르는 이바노비치이바노비치의 현재랭킹은 2위입니다. 이번 대회 역시 2번시드를 받았습니다. 당초 2주 전까지 저스틴 에넹(벨기에)에 이어 2위를 마크했던 이바노비치는 그러나 샤라포바가 단 몇십점 차로 2위에 오르면서 2번시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바노비치는 샤라포바가 16강에서 사피나에게 격침당하고 자신은 우승까지 차지해 오는 9일에 발표되는 WTA랭킹에서 생애 첫 1위에 오르게 됩니다.
스무살을 갓 넘긴 아가씨가 세계 정상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랜드슬램 최고성적이 8강이었던 사피나 역시 이번 준우승으로 랭킹포인트 700점을 확보해 작년 5월에 이어 자신의 최고랭킹인 9위에 다시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넹결승전을 사진에 담기 위해 기자석에 앉은 순간 낯익은 얼굴이 베이스라인 바로 뒤 좌석에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은퇴한 저스틴 에넹이었죠.
롤랑가로스 개막 열흘 전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에넹이 여자 결승전을 위해 파리를 찾은 것입니다.
파리에 와서 롤랑가로스의 영원한 히로인인 에넹을 못 본다는 게 저로서는 굉장히 아쉬웠는데 이렇게 에넹이 모습을 드러내다니요. 에넹은 프랑스테니스협회장과 나란히 앉아 결승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다음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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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단지 이바노비치와 사피나에게 "Keep going(계속 나아가요)"이라고 속삭였을 뿐입니다.
자신의 7개 그랜드슬램 타이틀 중 2003년과 2005년부터 작년까지 4개의 우승을 안았던 롤랑가로스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 자신의 전부였던 테니스의 찬란한 역사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년 이자리에서 나란히 서있던 이바노비치에게 트로피를 전달해 주는 에넹의 모습이 많이 낯설었지만 그만큼 에넹의 영광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리=이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