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자민 프랭클린과 독서
벤자민 프랭클린과 독서
에릭와이너, <프랭클린 익스프레스>
프랭클린의 독서에는 은밀하고 거의 전복적인 면도 있었다. 늦은 밤 담요에 몸을 파묻고 있을 때, 아니면 모두가 교회에 간 일요일 아침 형의 인쇄소에서 그는 자신이 스파이나 반역자가 된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서적상의 도제들과 한 팀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책을 빌린 다음 책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읽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에 반납했다. 프랭클린에게 독서란 저자와 독자 사이의 음모였고, 그의 작당에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았다.
벤은 그저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책과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는 보통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공간인 책의 여백에서 이루어졌다. 프랭클린은 열심히 밑줄을 치고 메모를 남기는 여백의 거주자였다. 그의 독서는 폭넓고 현명했다. 지혜로 가득한 책을 선택하면서도 자신만의 지혜를 잃지 않았다. 희의적이지만 열린 태도로 책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가능성주의자였던 그는 창조적 재능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는 성격적 특성, 바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다. 프랭클린에게는 독서가 곧 경험이었다.
프랭클린은 책을 사랑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설명할 때 그는 친구들의 직업은 별로 언급하지 않고 그저 그들이 ‘전부 독서 애호가’였다고만 말한다. 책은 프랭클린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뉴욕의 왕립총독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인상적인 장서목록을 가졌다는 말만 듣고 젊은 프랭클린을 만났다.
프랭클린은 책에 너그러워서 빌린 책을 잘 돌려주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선뜻 책을 빌려주었다. 영국인 친구인 조너선 시플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어떤 책을 더 빨리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그 책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준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생각이 안 난다네.” 이런 일이 빈번했다. 한번은 자신이 소유한 신문인 <펜실베니아 가제트>에 자기 책을 빌려간 사람은 책을 돌려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싣기도 했다. 관대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했다.
프랭클린은 다독가였지만 자기 학식을 뽐내는 일은 드물었다. 그는 유명인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벤의 반엘리트주의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생각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원래 뒷받침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가장 효과가 좋다. 안 보이는 기둥이 건물을 떠받치고, 알아차리기 힘든 늘임표가 음표를 잇고, 방대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연구 조사가 논거를 지탱하듯이 말이다. 진정한 학식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또는 프랭클린의 말처럼 “자기 지혜를 숨기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