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랑 공원/함기석
뽈랑 공원의 아름다운 정문이 열린다
꽃밭에서 햇빛과 나비들 춤추고 있다
뽈랑색 벤치들이 보인다
뽈랑새 두 마리 자유로이 공원을 날고 있다
물푸레나무 아래 꽁치처럼 예쁜 여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아기가 젖을 빨다 스스르 잠이 들자
여자는 하늘 한복판을 푸욱 찢어
아기의 어깨까지 살포시 덮어준다
찢어진 하늘에선 푸른 물고기들이 쏟아지고
여자는 유모차에서 책을 꺼낸다
아기를 위한 자장가 뽈랑송을 부르며 책장을 넘긴다
여자가 책을 보는 동안 아기는 꿈꾸고
물고기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헤엄쳐 다니다
책 속으로 사라진다
한 청소부가 후문에 나타난다
이상하게 생긴 뽈랑 빗자루로 공원을 쓴다
그러자 공원이 조금씩 조금씩 지워지면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꽃밭이 사라진다
벤치들이 사라진다
나무들이 사라진다
하늘이 새들이 빛이 시간이 차례로 빨려들어가고
여자가 사라지면서 손에 들려 있는 책이
청소부 발 아래로 떨어진다
청소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책을 주워들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말들이 피운다는 뽈랑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책을 펼친다
163페이지에 뽈랑 공원이 나타난다
함기석이라는 휴지통이 보인다
여백이 되어버린 하늘이 보인다
유모차를 끌고 행간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라진 새들은 사라진 빛을 향해 날아가고
여자가 어물던 물푸레나무 그늘 속에서
투명한 물고기들이 헤어쳐나온다
샘물이 된 아기울음 흘러나온다
<시 읽기> 뽈랑 공원/함기석
매우 명랑, 경쾌한 상상력,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또는 독일 삽화가 부흐홀츠의 그림들이 구현하는 몽환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무성영화처럼 소리가 느껴지지 않는(자장가 뽈랑송, 아기울음 등의 구절에도 불구하고)가운데, 점묘와 같은(존재와 소멸의 미분상태) 부드러운 터치를 통해 신비롭고, 눈부신 공간을 창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뽈랑’이란 맹랑하고 매혹적인 말! 이 말의 빛깔과 질감과 맛, 이 말이 지닌 아름다움과 슬픔의 뉘앙스가 이 시의 몽환의 처음이자 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꽁치처럼 예쁜 여자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곳. 하늘을 ‘푸욱 찢어 아기의 어깨까지 살포시 덮어’주는 곳. 찢어진 하늘에서 푸른 물고기들이 쏟아져 헤엄치다가 책 속으로 사라지는 곳. 쓰는 대로 풍경이 지워지는 ‘뽈랑 빗자루’가 있는 곳. ‘해리포터’의 세계처럼, 청소부의 담배연기를 쐬자 사라진 것들이 그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책이 있는 곳. ‘뽈랑 공원’. ―얼마나 행복한, 양과자 같은 몽상인가.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도서출판b,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