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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이선규
초인종을 누르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동시에 발꿈치를 살짝 들었다. 그러자 발끝에 힘이 모여들었다. 온몸의 실핏줄이 팽창하며 터져버릴 것 같았다. 덩달아 호흡도 가빠졌다. ‘딸그락’, 자물쇠 풀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문이 열렸다. 빠끔히 열린 문 사이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콧날이 날카롭고 하관이 가파르다. 경계심이 가득한 시선이 매우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순간, 먹이를 낚아채는 포식자처럼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내의 동공이 우물만큼 커졌다. 주먹을 움켜쥐고 울대를 가격했다. 바닥에 나가떨어진 사내가 재빠르게 방어자세를 취하며 일어섰다. 다시 얼굴에 강력한 일격을 더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사내는 주춤거리며 일어서지 못했다.
대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재빨리 집안을 둘러보았다.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후 사내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내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렀다. 사태를 파악한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에서 고함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입을 향해 매서운 주먹을 날렸다. 연이어 이어지는 주먹세례에 사내의 입과 코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사내가 얼굴을 감싸고 엎어졌다. 흘러내린 혈액이 천천히 바닥에 고이며 마치 빨간색 칠피를 펼쳐놓은 것처럼 번질거렸다. 단전에 힘을 모으고 오른쪽 다리에 전신의 무게를 실었다. 폭발적인 힘으로 사내의 옆구리에 발차기를 가격했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헉’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웅크리고 바닥을 구르는 사내가 여러 모습으로 변신했다. 오야지 최씨의 비만한 몸이 네거티브 필름처럼 잠깐 드러났다. 이내 빈정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공구리 박씨와 철근 김씨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발끝에 힘을 모아 그들에게 골고루 발차기를 가격했다. 최씨가 아랫배를 잡고 뒹굴었다. 공구리 박씨와 철근 김씨도 마른새우처럼 웅크리고 바닥을 기었다.
입에서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터진 포대처럼 사내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시 최씨와 박씨, 그리고 김씨의 얼굴이 변검의 검보처럼 차례차례 사내의 얼굴에 겹쳐졌다.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어가는 사내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차고, 차고, 또 찼다. 가슴 한구석에서 활활 불꽃이 피어올랐다. 거침없이 타오르며 온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마음 놓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포효하듯이, 산이라도 깎아내릴 것처럼, 가슴 전체를 비워내 깡그리 남기지 않을 함성을 터트리고 싶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숨을 골랐다. 사내는 피 칠갑을 한 채로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큰대자로 뻗었다. 두 손을 사내의 목에 가져갔다. 점차 강해지는 악력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지를 버둥거렸다. 사내의 두 손이 팔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가히 초인적인 힘이었다.
거친 공방이 계속되었다. 사내의 두 손이 격렬하게, 발악적으로 달려들었다. 그에 맞서 땅끝에라도 묻어버릴 듯 있는 힘을 다해 내리눌렀다. 사내의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핏대가 불룩불룩 솟아올랐다. 어항에서 뛰쳐나온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비명은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모든 사물을 냉동시킬 것 같은 차디찬 적막이 찾아왔다. 거대한 암석 같은 엄청난 무게의 적막. 죽음은 살아있다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 잠들듯이 깨어난 꿈, 어떤 모습일까.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공기, 공기와 같은 꿈. 꿈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무엇과 조우했을까. 사내는 살아있다는 꿈에서 깨어난 것을 알기는 할까.
잠에서 깼다. 어둠은 채 가시지 않았다. 방안의 사물이 하나씩 윤곽을 드러낸다. 방바닥에는 널려지거나 어지럽혀진 것 하나 없이 말끔했다. 창틀 옆에 세워놓은 옷걸이에 전날 입었던 등산용 상의와 면바지가 반듯하게 걸려있다. 책상 위에도 지갑과 소지품들이 제자리에 놓여있다. 미심쩍어 다시 한번 찬찬히 살폈지만 기우였다. 모든 것이 전날과, 그 전날과 다름없었다.
뙤약볕에 말린 가죽 같은 단단한 피부가 감지하는 새벽, 언제나 이 시간이면 잠에서 깬다. 늦잠을 자려던 계획이 어긋난 것이 아쉽다. 그러나 다시 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습관이 쉽게 바뀔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실망도 잠깐이면 족하다. 툭툭툭, 벌레들이 유리창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며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오늘은 현장에 작업이 없다. 어제 타설한 콘크리트가 양생되길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다. 노가다들은 이런 날을 닭 잡는 날이라고 했다. 비가 와서 일을 할 수 없는데다가 현장에 작업이 없는 날이니 일당에 손해가 없어서 다들 반가워했다. 일당을 생각하니 갑자기 명치끝이 뻐근해졌다.
어제 콘크리트 타설이 끝난 후, 최씨는 오늘 아침결에 함바집으로 모이라고 인부들에게 일렀다. 작업이 없거나 비가 오는 날, 최씨는 자신이 거느린 일꾼들을 모아놓고 아침녘에 식사를 냈다. 대개 길어지는 일은 없고 얼큰한 해장국에 안주 몇 점과 소주 몇 순배가 고작이니 오야지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듯싶었다. 최씨에게 붙어서 일감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일꾼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석했다. 불참이 초래할 불이익을 피하는 것이 상책임을 그들은 체험을 통해 알았다. 최씨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노임을 정산하거나 전달사항을 주지시켰다. 빠질 수도 없었지만 오늘은 반드시 최씨를 만나야 했다. 그 일을 생각하자니 미간이 바싹 좁혀졌다.
천천히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순간 오른손 손가락 뼈마디 전체에서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은 예상보다 심했다. 상대의 저항이 워낙 격렬했다. 마르고 작은 몸집이었지만 매우 거칠었다.
염려가 없지 않았으나 일은 매끄럽게 마무리되었다. 시작했고 결말이 있었다. 혹시 이성을 잃지 않았을까, 이성과 감정 사이에 균형이 파괴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동물적인 행동과는 거리를 두고 싶었다. 정연하고 치열한 몰두, 이성과 감정이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오가기도 했지만 돌출된 행동거지는 없었다. 성취감, 가슴 전체에 벅차오르는 황홀한 성취감. 비로소 명치끝이 조금 편안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조금 열었다. 틈사이로 맹렬하게 빗줄기가 쏟아져 들어올 기세다. 장마가 지났는데도 무색하게 자주 내렸다. 창문을 닫고 방을 나섰다.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를 지나다가 미홍의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문은 굳게 닫혀있다. 사흘 전 보았던 그녀의 얼굴은 구타의 흔적 때문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보이는 얼굴이 그 정도인데 옷으로 가려진 몸은 오죽할까. 상상하는 내가 매를 맞은 듯 온몸이 욱신거렸다. 낮고 작은 목소리였다. 기적을 기다리며 살았던 삶과 증발된 희망에 대하여 말했었다. 말문을 닫고 한참 동안 고개 숙였던 그녀가 치를 떨었다.
어제 출근길에 미홍의 방문을 두드려 안부를 물었다. 힘겨운 그녀의 음성이 간신히 대답했다. 누구의 관심도, 어쭙잖은 위로도 불편했으리라. 어제처럼 안부를 물을까, 망설였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녀는 이제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다시 희망과 새로운 삶을 찾기를 응원했다. 미홍의 방문을 지나쳤다. 오른손 뼈마디에서 간헐적으로 전해지는 통증이 거슬렸다.
지난해 고시원으로 이사하던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오 층 꼭대기의 방 한 칸에 이삿짐을 풀었다. 라면박스 예닐곱 개가 전부인 이삿짐이라 시간이 걸릴 일도 없었다. 대강 정리를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주인이 조선족 동폰데 한국에서 오래 산 사람이야. 그럭저럭 사귀어두면 이러저러 편리할 걸세.’ 부동산 소개업자의 귀띔이 생각났다. 나는 일 층 꼬치구이집으로 내려갔다.
고시원 건물은 공단 근처에 위치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거주지역이어서 그들을 위한 온갖 편의시설들이 즐비했다. 거주지역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범선 같았다. 낮에는 닻을 내린 듯 움직임이 없는 범선, 그러나 밤이 되면 어둠에 대어들 듯 불을 환하게 밝혔다. 여러 인종들과 그들이 떨구는 제각각의 언어들이 넘실대며 거대한 범선을 단단하게 감쌌다.
“오늘 입주하는 것 같던데, 이사는 잘 마치셨나?”
주인이 불룩한 배를 내밀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대뜸 출신지를 묻던 그의 얼굴에서 살짝 실망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것도 잠시, 그가 곧 밝게 웃으며 구석자리를 가리켰다.
“저기 젊은 여자분이 형씨와 같은 고향이오, 그 옆에 있는 내 마누라도 그렇고. 고향 사람들 반갑지요? 보아하니 일행이 없는 것 같은데 함께 드시구려. 혼자 먹는 음식은 살로 가지 않는 법이라우.”
양꼬치와 이과두주 한 근을 주문하고 그네들과 합석했다. 젊은 여자는 미홍이었다. 좁은 어깨와 작은 몸집, 그녀의 갸름한 얼굴에 짙은 그늘이 돋아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고향인데다가 동갑들이니 타향에서 이것도 인연이이예요.”
주인 아내가 미홍과 나를 번갈아 보며 살갑게 말했다. 미홍의 거친 손끝과 초췌한 행색이 눈길에 걸렸다. 객지생활의 쓰고 단 이야기를 풀어내던 주인 아내는 나의 눈길을 가로채더니 미홍을 화제로 삼았다. 그녀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막힘이 없었다.
“지금은 그래도 좀 평온한 편이지. 다만 언제 그 작자가 또 나타나서 개 끌고 가듯 끌고 갈지 몰라서 걱정은 되지만.”
남편처럼 수더분하게 생긴 아내가 목청을 높였다.
“꽃 같은 나이에 몇 푼 벌어보겠다고 객지생활 시작한 애를 그렇게 못되게 망가뜨리는 놈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몽달귀신 신세를 면하게 해줬더니 헛소리만 삥삥거리고. 낼 모레가 오십인 자식이 이렇게 젊고 예쁜 색시한테 도무지 감사할 줄도 몰라.”
주인의 아내는 분이 차올라 콧김을 뿜었다.
“미홍아, 어서 몇 푼 더 모으면 훨훨 날아가. 이 지긋지긋한 곳 떠나서 고향으로 기러기처럼 훨훨 날아가라고.”
이과두주와 꼬치구이가 몇 차례 추가되었다. 정수리를 살살 건드리는 술기운이 간지러웠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희망에 부푼 삶을 시작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술기운이 매우 빠른 속도로 온몸을 회전했다. 그녀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쳐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취기가 사라졌다.
“멀쩡하지 못한 미홍이가 숨어있을 곳이 마땅했겠어? 만만한 곳이 식당이나 노래방 같은 곳이지. 잘 알다시피 우리 처지에 그런데 밖에 갈 곳이 또 없잖아. 그럭저럭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용케 그 놈을 잘 피해있었는데…”
주인이 간판에 불을 켰는지 바깥이 환해졌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아련하게 스쳐지나갔다. 거대한 범선은 밝은 빛을 쏘아대며 다시금 어둠에 대어들었다.
“아! 그런데 그 염병할 놈이 귀신같이 찾아내는 거야.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맞고 숨도 못 쉬고 벌레처럼 엎드려 있다가…”
간헐적인 두통이 머리를 쿡쿡 쏘아댔다. 주인 아내의 음성이 귓가에서 맴돌다가 더러는 귀지처럼 떨어져나가고 더러는 물방울처럼 고막에 스며들었다.
“지금은 우리 남편이 떡 버티고 있으니까 그 미친놈이 주변만 빙글빙글 돌고 있지. 치도곤을 한번 당했었거든.”
주인 아내가 남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주인은 파리채를 들고 무심한 표정으로 계산대의 이곳저곳을 툭툭 쳐댔다.
쥐어짜듯 비가 뿌린다. 출근 시간임에도 거리는 괴괴하도록 한산하다. 평소라면 차와 행인들로 번잡했을 거리였다. 굵고 거친 비에 모두가 움찔하기라도 한 것인가. 비어버린 거리는 마치 정지된 그림처럼 하늘 담벼락에 걸려있다. 그래서일까, 공포심마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숫자라도 세려는 듯 뚫어지게 빗줄기를 바라본다. 어제 타설한 콘크리트가 이 비에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잠깐 생각했다. 뒤이어 오야지 최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명치가 뻐근해진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그의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깊은 한숨이 새어나오니 유리창이 부옇게 변했다.
만일 이 비가 멈추지 않고 끝없이 내린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도시가 물에 잠기면 사람들은 높은 건물이나 산꼭대기로 피신하겠지. 더러는 비행기를 타고 높디높은 고도로 숨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치지 않고 대기권을 감쌀 정도로 비가 내린다면 어찌될까. 지구는 물에 잠길 테고 출렁거리는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제대로 할까. 중력이 버텨내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 지구에 담겨있던 물들이 일제히 우주로 쏟아져 버리지는 않을까. 결국 내린 비를 되돌려주고 말겠지. 땅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비.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짜릿한 통쾌함이 전신을 휘돈다.
도로 건너편 공지에 금세 물이 고였다. 워낙 세찬 비다. 패인 곳이 없는 공지가 담아내기엔 한참 부족했다. 붉은 진흙탕이 점점 불어나더니 뿌리가 뽑힌 풀포기들이 둥둥 떠다녔다. 공지의 한편에서 햇살을 받으며 간신히 뿌리내리며 존재의 기쁨을 맛보았을 풀들이다. 창문에 코가 닿을 듯 바투 다가섰다. 넘치는 흙탕물에 풀포기들이 쓸려 내려갔다. 고랑을 이루며 흐르는 빠른 물살에 실린 채 경계석 옆을 따라 떠내려갔다. 그나마 진흙탕에 남아있던 몇 더미의 풀포기들도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부유하다가 불어난 빗물과 함께 휩쓸려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객지, 고향, 아주 먼 곳. 머릿속을 맴돌던 단어들이 두서없이 튀어 올랐다. 이곳과 그곳의 거리감이 붕괴하고 그곳과 이곳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공간 인지능력에 혼란이 온다. 이곳이 얼마나 먼 곳일까. 멀고 가까움은 원점이 전제되어야 할 테니 이곳이 ‘먼 땅’이 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원점’이 있어야 한다. 그 원점이 어디일까. 태어난 곳이 숙명적인 원점으로 기능하는 것일까. 고향. 수구초심. 거기에 그리움이란 단어를 덧붙여 버무리면 완성되는 곳.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입국해서 사출공장에서 몇 달을 견뎠다. 그 후 브로커의 소개로 최씨를 만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최씨의 수하로 들어가 콘크리트 패에 합류했다. 비자가 사라지고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는 위험한 결행이었다. 비자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할 수수료와 연로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브로커의 말대로 높은 수입이 불안을 어느 정도 상쇄해줄 것임을 굳게 믿었다.
“하나씩 하나씩 열심히 일을 배우거라. 젊은 몸뚱이가 뭔들 못하겠어. 내가 자식처럼 거두어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낯설고 불안한 모든 상황에서 최씨의 말은 복음처럼 들렸다.
“기술이 없으니 처음엔 노임이 많지 않을 것이야. 그러나 기술이 붙으면 차차 많아질 테니 부지런을 떨어라.”
최씨는 일꾼들에게 두 주일에 한 번씩 노임을 지불했다.
“용돈만 받아라. 나머지는 내가 따로 저축했다가 네가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한몫으로 줄 것이다.”
나는 전액지급을 요구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너희 고향에서는 일 년 치 급여를 춘절을 맞아 한꺼번에 지급하지 않더냐? 매달 최소 용돈만 지급하면서 말이다. 다 너희들 관습을 따르는 것이니 군말하지 마라.”
“이제는 농촌이 아니면 그런 관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건 다 옛날이야기예요.”
그가 맨땅에 쐐기를 박았다.
“쓸 거 다 쓰고 언제 저축하겠어? 모두가 다 너를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런 줄 알아라.”
공구리 박씨가 끼어들었다.
“어이, 독립군 양반! 조심조심해. 전화 한 통이면 오야지에게 맡긴 돈도 다 날아가 버려. 무얼 모르는군. 후회하고 땅을 치기도 전에 보따리도 못 싸고 비행기에 실려 꼴~인 한다고. 고향 앞으로 말이야! 알기는 해?”
“그렇고말고. 어디 한둘이야? 괜히 깝작대다가 한칼에 날아간 놈들이 부지기수야. 잘 알아서 눈치껏 해야지. 적당히 국으로 지내는 게 장땡이라고.”
철근 김씨가 거들고 나섰다.
“내 듣자하니 그쪽 사람들이 전부 독립군 후손이라던데, 자네도 그런가?”
공구리 박씨가 째진 눈을 치뜨며 물었다. 둘러싸고 있던 인부들이 히죽히죽 웃었다.
“워낙 짝퉁이 많은 나라니 혹시 이 친구도 짝퉁 독립군이 아닌지 몰라.”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할아버지를 생각해라. 험한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 먼 땅까지 오셨어. 오로지 독립운동에 매진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뜻을 펴신 분이야. 너는 그 자손이다. 훌륭한 기개를 물려받았다는 걸 잊지 말거라.”
어머니는 눈가를 훔쳤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애국심이 강했을지는 몰라도 가족과 자손에 대한 책임은 형편없었어요. 그러니 어머니와 우리들이 이런 고생을 하는 겁니다. 나라면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자식 잘 키우겠어요. 그러면 적어도 밥을 굶거나 헐벗지도 않았을 테고 자식들이 기죽어 살지는 않았겠지요.’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어머니보다도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충격을 견디지 못할까봐 몹시 두려웠다.
나는 공구리 박씨의 말대로 일거에 돈이 다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추방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감히 최씨에게 대거리를 하지 못했다. 최씨가 쥐고 있는 돈을 포기하고 차라리 뛰쳐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주워들은 대로 다른 곳도 사정은 썩 나아보이지 않았다. 용역사무실에서 하루짜리로 일한다면 적으나마 노임을 다 받을 수는 있겠지만,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생기는 일로 생계를 꾸리기는 어려웠다.
이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최씨가 맡아둔 돈도 액수가 불어났다. 이제는 포기할 수도 없는 액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 돈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불법체류자가 재입국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일보다 어려웠다.
빗줄기가 점차 거세지더니 공터에는 시뻘건 흙물이 철철 넘쳐났다. 빗속으로 뛰어 내려가고 싶었다. 맨발로 첨벙거리는 기분 좋은 상상, 좀 더 바싹 유리창에 다가가 섰다.
미홍의 몸집은 작고 기품이 있었다. 이름을 닮아서일까. 옹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새의 모습을 닮았다. 그녀가 선녀와 같은 자태로 손짓했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깊은 계곡으로 들어섰다.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고 향기가 가득한 계곡엔 아름다운 화초가 자라고 폭포에서는 맑고 투명한 물이 시원스레 떨어져 내렸다.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를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점점 더 멀어졌다. 기를 쓰고 따랐다. 하지만 닿을 듯 닿을 듯 또다시 멀어졌다. 급기야 그녀가 물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찾을 길이 없었다. 계곡으로 안개가 겹겹이 밀려들어왔다. 종일토록 계곡을 헤매고 다녔다. 꿈이다. 번번이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계곡을 헤매다 깨어나는 꿈이다. 미홍을 만난 이후 같은 꿈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꾸었다.
사흘 전 퇴근 무렵, 꼬치구이집 주인 아내가 전화로 수선을 떨었다.
“퇴근했소? 미홍이가 우리집에 있는데 이리로 좀 오시구려. 이거 도무지 참을 수가 없는 일이네.”
서둘러 꼬치구이집으로 갔다. 미홍의 비번 날이 아닌 줄 알았기에 불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그녀를 보는 순간,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래. 내 이 잡놈을 능지처참을 해도 분이 안 풀리겠어.”
주인 아내가 앞섶을 추어올리며 손부채를 연신해댔다.
“어제 가게가 휴일이었잖아. 글쎄 이 승냥이 자식이 우리 부부가 외출한 틈을 노려서 몰래 찾아온 거야. 천하에 개백정만도 못한 놈이지,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미홍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갸름한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퉁퉁 부어올라 마치 깨진 바가지를 씌워 놓은 것 같았다. 왼쪽 눈은 퇴화된 먹장어 눈처럼 흔적만 남아있고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오른쪽 눈두덩에도 마구 붓질해놓은 물감처럼 보랏빛 피멍이 감겨있었다. 입술 역시 성하지 않아서 비에 떨어져 구르는 벌어진 자두 같았고 이마와 볼은 누런 광목에 밴 김칫국물처럼 검붉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힘겹게 의지한 채 위태롭게 앉아있었다. 마치 장마철에 빗물을 머금은 부실한 축대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녀가 한숨을 내리쉬자 ‘풀썩’하고 주저앉을 것처럼 흔들렸다.
미홍의 처참한 몰골을 대하니 매우 혼란스러웠다. 어쩌다가 저런 지경이 되었을까. 눈앞이 하얘지더니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간신히 억누르며 분노를 달래려니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작은 새가 고통에 떨고 있었다. 빙긋이 웃으며 나를 부르던 미홍이었다. 온갖 꽃과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나를 인도하던 그녀였다.
그녀의 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잔을 붙잡은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파닥이는 새의 숨결, 숨이 떨어지기 직전의 떨림 같았다. 위로하고 쓰다듬고 싶었다. 떨어지는 새의 숨을 잇고 싶었다. 무슨 말을, 무슨 일을 해야 그녀가 위로 받을까.
미홍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름다운 계곡으로 나를 인도하던 그 손이다. 고통을 녹이고 희망을 뿌려주던 손이었다.
“기운 내.”
한참의 궁리 끝에 나온 말이다. 그 이상 어떤 말도 그녀에게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기적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야.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란 생각했을 때 기적이란 것이 실재하는 줄 알았었지.”
말을 마치고 그녀가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녀의 어깨가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마주앉아 바라보는 것으로 그녀를 위로할 수는 없었다. 소란 끝에 찾아오는 차가운 정적. 중추와 말초신경이 곤두서며 차가운 정적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틀 후 현장에서는 콘크리트 타설을 할 것이고 글피에는 현장이 쉬게 되는 날이다. 그렇다면 모레가 적당했다. 일을 마친 후 그곳으로 이동하면 밤이 깊을 것이다. 그 자의 신상에 관한 것은 주인 아내가 잘 알고 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왔다. 미홍의 머리 가운데를 지르고 있는 정연하고 하얀 가르마가 눈이 시리도록 선명했다.
굵어진 비는 그칠 기색이 없다. 잡풀이 우거졌던 공터에도 지속적으로 시뻘건 진흙물이 가득 고여 넘쳐흘렀다. 뿌리가 뽑힌 풀 더미들이 빗물에 둥둥 떠다녔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부스스한 표정으로 미홍이 창가로 다가왔다. 힘없는 음성으로 그녀가 말했다.
“장미나 백합은 우아한 화병에 담겨 사람들의 눈이 많이 가는 곳에 놓이는데 저 잡초들은 왜 저곳에서조차 뿌리가 뽑힌 채 저러고 있는 걸까. 누가 너는 장미로, 너는 잡초로 태어나라고 점지해준 때문일까.”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는 없었다. 몇 차례 방안을 더 두리번거렸으나 그녀는 없었다. 문도 닫혀있고 좁은 방안에 그녀가 숨을 곳은 없었다. 그러나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그녀의 표정은 뇌리에서 생생했다.
최씨를 만나기 위해 나섰다. 노임에 대한 담판을 지어야 했다. 더 이상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미홍의 귀향과 정착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현관에서 꼬치구이집 주인을 만났다.
“어디 가? 비 오시는데.”
“현장에요. 최씨 좀 만나려고요.”
“아직 해결이 안됐지? 그 작자 쇠심줄이구만.”
그가 혀끝을 찼다.
“미홍인 어때?”
“오늘은 안 가봤어요. 쉬고 있을 테죠.”
“아침 일찍 집사람이 죽 한 사발 끓여서 미홍이 방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다고 하데. 휴대전화도 꺼져있고. 그 얼굴로 어딜 나다니기가 거북할 텐데.”
그가 말을 마치며 주위를 살폈다. 이내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살금살금 바싹 다가왔다.
“미홍이 남편이 죽었대. 어제 살해당했다고 하더라고.”
속삭이듯 말을 마친 주인은 실눈을 뜨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지은 죄가 크니 벌을 받았나 보네요.”
“하도 얻어맞아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더군. 단단히 원한을 산 모양이야. 웬만한 원한 아니면 그렇게 하겠어?”
그가 곁눈질을 했다.
“다녀와서 미홍이가 괜찮다면 함께 들리지요.”
“아무튼 미홍이한테는 잘된 일이겠지!”
억척스레 쏟아지는 비를 피해 우산을 내려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최씨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을 불신한다면 떠나라고 윽박질렀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라는 것을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칼자루를 쥔 자와 칼끝에 올라선 자. 이리저리 구실을 붙여 간청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임을 수령한 인부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더는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제과점에 들렀다. 미홍이 좋아하는 카스텔라를 두 줄 샀다.
고시원 현관을 들어서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꼬치구이집 주인이 바쁘게 뛰어나왔다.
“이런, 이런!”
주인은 거의 울상이 되어있었다.
“자네 현장에 가고 바로 경찰들이 찾아왔어. 미홍일 찾아왔던가봐. 어쨌거나 남편이니까 그랬겠지? 그런데…”
그가 말을 더듬으며 침을 꿀떡 삼켰다.
“아, 글쎄, 방문을 뜯고 들어갔더니 미홍이가…, 글쎄, 미홍이가…, 목을 맸다잖아.”
귀를 의심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미홍이가?”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지. 도대체 어찌되는 일인지 알 수가 없네. 앰뷸런스가 싣고 갔어. 이런 날벼락이 있나, 그래!”
서둘러 계단을 오르는데 꼬치구이집 주인이 큰소리로 불렀다. 그가 명함을 한 장 건넸다.
“형사가 자네를 찾더군.”
주인의 음성이 침울해졌다.
“이 명함을 자네에게 전해달래.”
주인은 명함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텅 비었다.
“출입국관리소도 아니고 웬 강력계 형사가 찾지?”
입안에 사탕이라도 문 것처럼 우물거리며 명함을 건넸다.
나는 명함을 아무렇게나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 넣고 계단을 올랐다.
비가 갠 하늘에서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바람에 떠밀려갔다. 유리창에 맺혀있는 빗물에 투시된 도로는 구불텅구불텅 제멋대로다. 그 길을 물방개 같은 차들이 굴절된 형체로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물이 빠진 공터에는 헌데 자국처럼 군데군데 진흙물이 고였고, 뿌리가 뽑혀진 풀 더미들은 아무렇게나 진펄에서 나뒹굴었다.
나는 굳어버린 쇳물처럼 창가를 떠나지 않았다. 방안은 이미 어두워졌고 창밖에는 살얼음처럼 서서히 어둠이 잡혔다. 길게 늘어선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불빛을 받아 번질거리는 도로에 한 떼의 물방개들이 불빛의 꼬리를 물고 달려나갔다.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초록 불빛을 기다린다. 밤하늘에는 한 개의 별빛도 드러나지 않았다. 먹장구름은 쉽게 하늘을 놓아주지 않았다.
거북하다.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이 어깨를 짓누르고 폭발할 듯 밀도를 좁히는 공기가 호흡을 어렵게 만든다. 불편함을 떨쳐내려고 양손으로 목을 감쌌다. 그러나 답답함은 좀체 떨쳐지지 않는다. 창밖의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미홍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 침잠한 그녀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창백한 표정, 꿈에서 막 깨어난 듯 부스스한 모습. 그녀가 하얀 손을 뻗었다. 유리창에 그녀의 손이 닿았다.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 맞대었다. 유리창의 차가운 질감만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짙은 안개에 감싸인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물방울처럼 투명한 웃음을 머금은 그녀가 내 앞에 다소곳이 섰다. 하얀 손을 들어 나를 어루만졌다. 아름다운 계곡으로 나를 이끌던 하얀 손이다.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녀를 따라 걸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응어리가 가슴을 뚫고 빠져나왔다. 한결 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녀에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났다.
─반년간지 『시에티카』 2014년 · 상반기 제10호
이선규
서울 출생. 2012년 『시에티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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