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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사우나 불가마에 들어갔다가 숨지기도…취한 동료 그냥 두지 마라
화물차 운전자인 1959년생 A씨는 술을 마시고 인천 소재 사우나의 섭씨 74℃나 되는 불가마에서 잠이 든 후 이튿날 아침 종업원에 의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유족들이 부검을 원하지 않고 타살 혐의도 없어 경찰은 불가마의 높은 온도로 인한 질식사로 결론짓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청 강력부에서 조직폭력ㆍ마약범죄 수사를 담당했던 J씨도 약혼녀 집에서 술을 마시고 거실 소파 위에서 잠을 자다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그는 약혼녀의 부친과 40도짜리 양주 2병(1700ml)을 나눠 마셨다.
술자리에서 과음한 후 나타내는 반응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말이 많아지는 수다형, 고성방가로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음주가무형,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폭력형, 그리고 조용히 잠들어 버리는 취침형 등 여러 가지 행태를 보인다. 그런데 과음 후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을 방에 옮겨 혼자 잠들게 하거나 술에 취했다고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 2012년 6월 1일 새벽 서울 홍대거리에서 취객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과음 후 구토 시 토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하거나 심장에 대한 과도한 부담으로 심근이 마비되면서 돌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취해 잠든 경우에는 반드시 구토하는 지를 살펴보고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돌봐야 한다. 음주 후 구토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은 있지만 몸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의사표현 자체가 힘들 수 있다. 수면 중에 구토를 하면 깨워 기도를 확보해주고 따뜻한 물을 소량이라도 먹여야 한다.
음주 후 사망하게 되는 또다른 원인은 추락이나 실족사이다. 최근 7년간 대학신입생 환영회나 MT에서 발생한 15건의 사망사고에서 10명이 음주 후 실족이나 추락으로 인한 사고를 당했다. 사망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음주 후 찬바람을 쐬기 위해 숙소 베란다 난간에 기대거나 만취상태로 귀가하다가 실족해 의식을 잃거나 이차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초 회사 회식에서 많은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귀가한 박모씨(50대 남성)는 다음 날 사망한 채 발견되었는데 경찰은 박씨가 집 앞에서 내린 뒤 5m 높이 옹벽 아래로 추락해 동사(凍死)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렇게 음주 후 귀가하다가 집 근처 계단이나 육교, 공사장 웅덩이 등에서 실족 후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알코올이 소뇌의 작용을 둔화시켜 판단력이나 균형, 운동협응 능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 2012년 5월 26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의 유흥가가 취객들로 넘쳐났다. 인근에 한 남성이 만취해 길에 주저앉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위험을 인지하는 능력도, 발견하고 대처하는 판단력도,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하는 상황에서의 반응도 늦어져 쉽게 사고를 당하게 된다. 만취상태에서 계단을 오르거나 난간에 기댈 때는 옆에서 부축해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평소 같으면 전혀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던 환경들과 행동들이 만취상태에서는 치명적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만취한 사람을 귀가시킬 때는 가족에게 연락해 마중나오도록 요청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집까지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또 단시간에 과음한 경우에는 충분히 물을 먹인 뒤 귀가 시 운전자에게 도착지를 정확히 설명해주고 안전하게 도착했는지 확인전화를 하는 것이 좋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대리운전대신 술자리 모임 시 그날의 지정운전자(designated driver)를 정해 나머지 사람들의 안전한 귀가를 책임지도록 하고 그날 지정된 운전자에게는 술집에서 술 이외의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할인해주는 문화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리운전과 비슷하지만 만취한 동료나 친구를 안전하게 귀가시킬 수 있는 좋은 문화로, 음주운전이나 음주 후 사고를 줄이는 예방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정을 나누고 친분을 표시하며 대접한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어 술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웃어른이나 상사가 술을 권할 때는 받아 마실 수밖에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체질적으로나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술 자체보다 술자리를 즐기는 문화가 필요하다.
필자 약력 - 방형애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E-mail : ibang64@hanmail.net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나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천연물과학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대사연구센터에서 독성학관련 연구를 수행했고, 지금은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한보건협회에서 음주폐해예방사업을 맡아 알코올교육, 음주폐해모니터링, 캠페인사업 등 전국민 대상 절주(節酒)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 건강증진사업지원단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KBS 시사토론, 열린토론, MBC 여성토론 등 방송에 출연하고 각종 매체에 기고도 하고 있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안 먹는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사회만들기를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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