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西歸浦) 외 1편
김늘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아서
하염없이 돌아보게 한다.
하염없어서 짓무르게 하고
달무리를 바라보게 한다.
후려치는 바람을 맞게 하고
유채꽃 노랑 꽃잎들이
어제의 그렁그렁한 눈망울들이라 상상하게 한다.
그래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아서
햇빛 아래 더 선명한 그늘을 바라보게 하고
무용한 마침표를
바닷빛 허공에 눌러쓰게 한다.
신발 수선공
거리를 걸었지 모퉁이를 지나 꺾어지던 모퉁이
홍학이 모이던 호수를 지나
꼬물꼬물 발가락이 맛보고 싶던 세계
부질없는 모국어를 데리고 나섰던 빙하의 언저리나
빈대가 들끓던 뒷골목의 삐걱대는 침대 너머로 아침이 밝곤 했지
어둠은 깊고 잠은 얕았지만 새로운 아침이었어
깨진 창을 넘나들던 바지런한 나방들은 봄의 꽃잎처럼 사방에 흩뿌려져
뽀득뽀득 겹겹의 날개를 밟고 나아가야 했어
먼지를 뒤집어쓴 머리칼은 뻣뻣하고 신발 뒤축은 얇아져
모래알도 빗물도 쉽게 머금었지
후줄근하게 나자빠진 신발이 마침내 입을 벌린 날
발가락이 내다보는 길을 따라 출가승들의 탁발을 따라가면
꽃과 생선을 파는 시장 복판에서
도둑들이 수두룩하다는 언덕 위 허름한 문 뒤에서
거리의 후미진 그늘 아래
거짓말처럼 그가 있었어
두터운 안경 너머 이 빠진 미소로 지친 신발에게 인사하며
거칠고 투박한 손끝으로 말없이 작업을 시작하곤 했지
접착제 얼룩이 놓인 무릎위에서 진창길과 빙판길을 이으며
궁지에 빠진 사람처럼 숨죽인 나를 안심시켰지
세상의 길들을 따라 걷고 걸으면
길 끝에 좁은 작업대를 가진 그가 담담하게 앉아있고
나는 항상 적당한 인사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어
그가 매만져준 신발에 발을 넣고 주머니에 거친 손을 찔러 넣고
도둑과 빈대가 삶을 꾸리는 거리로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서곤 했지
아무도 등 떠밀지 않는 거리에서 이름 없는 발자국을 쓰고 지우며
나를 기다리는 그를 만나기 위해
혹은 그를 기다리는 나를 만나기 위해
김 늘∣2017년 『애지』로 등단∣이메일 eskim-110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