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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출애굽기 17:8-16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오늘 본문 이야기는 모세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시내산까지 가는 여정 가운데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시내산까지 가는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이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하는 놀라운 기적을 여러 차례 체험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전쟁의 기적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이라는 곳에 장막을 치고 머물러 있을 때입니다. 갑자기 아말렉이 행군 대열에서 뒤쳐진 사람들을 쳐들어왔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들로서 광야에서 초지가 있는 곳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들입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약탈행위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아말렉의 공격 소식을 듣고는 여호수아에게 급히 군대를 조직하여 나가서 맞서 싸우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세의 손이 높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의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도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팔을 들고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왔습니다. 우선 돌 위에 모세를 앉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모세의 한쪽 팔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자 해 질 때까지 손을 계속 들고 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무찌르게 된 것입니다.
모세가 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서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 ‘여호와는 나의 승리’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덧붙여서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적전쟁의 승리의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싸울 때에 승리할 수 있는지,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에서 지혜를 얻으시고 여호와 닛시의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1.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이며 성도는 영적 군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시는 배혁 목사님께서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시민권 준비를 하면서 서류상의 질문 중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만약 법적으로 요구한다면, 당신은 미국을 위해서 무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만약 한국과 미국이 전쟁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올림픽에서 한국선수와 미국선수가 경기를 할 때에 자연스럽게 한국을 응원하게 되는 판에, 미국을 위해서 싸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을 위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곧 그 나라를 위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상하게도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전쟁했지요. 모세도 전쟁했지요. 여호수아는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다윗도 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이게 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까?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전쟁은 신약의 영적 전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전쟁 가운데 놓였던 것처럼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은 항상 영적 전쟁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부르셨습니다. 출 12:41을 봅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는 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군대였습니다. 에수님을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인구를 셀 때에는 인구 전체를 세지 않았습니다.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숫자만 셌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군대로 부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군대생활이 힘이 들까요 안 힘들까요? 당연히 힘들죠. 왜 힘들죠? 이유는 훈련과 군기 때문입니다. 왜 군대에서는 훈련을 할까요? 왜 군기를 잡을까요? 전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전쟁만 없다면 훈련도 필요 없고 군기도 필요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왜 고난이 있는 것일까요? 영적 전쟁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 2:3을 보겠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는 고난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군사로 부르셨습니다. 군인이 조국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약 40년 동안 형통신앙, 번영신앙을 가르쳐왔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 된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자녀들이 축복을 받는다.’ 이런 믿음이 필요하지만 여기에 치우치면 그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하고 그런 신학을 번영신학이라고 합니다. 번영신앙은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슐러 목사님이 주창하였습니다. 로버트슐러 목사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그 교회는 이단에 매각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용기 목사님이 번영신학을 전파하였습니다.
번영신학이 한 편으로 맞는 말이지만 사실 문제가 심각합니다. 신앙생활 한다고 다 잘 되는 것이 아니고 다 형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고난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이게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번영신학에서 배운 대로라면 뭐든 잘 되어야 하고 뭐든 형통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신앙생활하면 복 받는다는 부분에 집중을 하면 신앙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왜요? 번영신학의 설교대로라면 물질적이고 세상적으로 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고 신앙이 흔들립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일 때 신앙의 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의 군인들입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는 영적인 군사입니다. 그리고 계속된 훈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 형통하고 복을 받기도 하지만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이해해야 고난 중에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믿음 생활은 지치고 뒤 떨어진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에 무턱대고 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말렉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지쳐서 뒤쳐지는 사람들이 생길 때에 그들을 공격하며 쳐들어왔습니다. 신 25:18을 봅니다.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성도가 공격을 당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성도가 지쳐있고, 믿음이 낙오되어질 때에 그 약점을 가지고 공격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도 뒷걸음 칠 때도 있습니다.
성도가 낙심이 되고 영적으로 지칠 때 필요한 것은 영적인 복원력입니다. 마치 오뚝이를 넘어뜨리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인 복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도 낙심 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마귀가 그 틈을 노리고 공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되고 지친 상태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빨리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영적인 복원력이라고 표현합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독수리 중에는 ‘뱀잡이 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독수리가 있습니다. 이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다가 뱀이 기어가는 것을 보면 쏜살같이 내려와서 그 뱀을 쪼아서 잡아먹습니다. 그렇게 속도가 빠른 독수리인데 사자에게 쉽게 잡혀 먹습니다. 일단 땅에 내려와서 뱀을 먹다가 사자가 오면 날아서 공중으로 올라가면 되는데 나는 것을 잊어버린답니다. 그냥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잡아먹힌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고 땅에 것에 미혹 되어 영적으로 날아오르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마귀의 밥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도 영적으로 지키고 뒤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지체하지 말고 영적인 복원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하고 지쳐서 이스라엘의 대열에서 뒤 떨어졌던 사람들이 아말렉이 공격을 받았던 것처럼 마귀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예전에 유리겔라라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숟가락을 문지르면 부러지는 마술로 온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마술이 사기라는 것을 제임스 렌디라는 사람이 밝혀냈습니다. 유리겔라는 ‘형상기억 합금’으로 특수 제작된 숟가락을 사용하거나 미리 부러뜨려놓고 마술을 했던 것입니다. 형상기억합금은 열을 가하면 원래의 모양대로 돌아가는데 유리겔라는 손가락으로 열을 가해서 숟가락이 휘어지는 트릭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복원력을 회복하려면 영적인 열을 가해야 합니다. 그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생기는 것입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영적으로 좋다는 것을 다 해도 영적인 복원력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활동들 때문에 더 지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찬송, 기도, 예배가 종교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심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그분의 임재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그 순간 영적 복원력이 생깁니다. 지키고 피곤하다가도 날개치며 올라가는 독수리처럼 새 힘을 얻게 됩니다.
3.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모세는 아말렉과의 싸움을 위해 여호수아와 군대를 보냅니다. 여호수아와 군인들은 싸움의 경험도 없고 무기도 없습니다. 그들은 싸움에 나아가면서 부엌칼을 가지고 나갔는지 농기구를 가지고 나아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에 아말렉은 지금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작정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훈련된 군인들입니다. 무기도 있습니다. 싸움에 능한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쟁터에 보내놓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섰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시고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기도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기도록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손을 드는 것이 승리의 열쇠임을 시청각 교육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칼과 창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의 손을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우리가 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조지 뮬러는 60여 년의 사역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서도 약 6천 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자녀 교육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자식을 낳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죠지 뮬러는 6천 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대학 공부를 시켰다니 정말 놀라운 기적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죠지 뮬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그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십니까? 그 많은 돈은 도대체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그러자 죠지 뮬러는 그 사람들을 자기의 기도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날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던 자리에 놓여 있는 방석을 가리켰습니다. 그 방석은 구멍 뚫린 방석이었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저 방석이 돈구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뮬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어려운 경제를 초월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으로 그 많은 돈을 공급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여호와 닛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그 때 승리가 있습니다.
‘변화(Transformations)‘라는 제목의 기독교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교회에서 봤던 영상입니다. 기억나실 것입니다. 남미의 과테말라의 한 작은 도시가 복음으로 놀랍게 변화된 이야기를 담은 비디오였습니다.
과테말라의 알모롱가라는 도시는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마약과 알콜중독 그리고 죽음의 신 ‘마시몽’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아이들은 버려졌고, 길거리에는 마약과 술에 취해 늘어져있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도시에 술집이 무려 36개나 되고, 하도 싸움이 많아서 감옥도 4곳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시에서 사람들 80%가 예수 믿고 변화되었고, 사람들이 음주습관을 떨쳐버려서 술집이 33개나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약이 사라지고 폭력이 사라지면서 감옥 4곳 모두 폐쇄되었습니다. 우상숭배도 사라지고 곳곳에 교회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 도시는 ‘교회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과테말라에서 가장 깨끗하고 잘 사는 도시로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이런 변화는 이 도시 출신의 마리아노 목사님의 목숨을 건 중보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자신의 고향을 더 이상 이런 어둠의 땅으로 둘 수 없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3-4일씩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금식기도의 결과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불치의 병을 앓던 사람들이 기도로 치유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 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함께 도시를 위해 금식하며 중보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보기도 사역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도시에 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땅도 변화되었습니다. 갑자기 토질이 개선되면서 농작물의 크기가 달라지고 맛도 좋아졌습니다. 수확량이 무려 1천배가 늘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정밀하게 조사했지만 별다른 원인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하나 기도라는 이유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알모롱가에 일어난 기도의 기적을 우리 교회에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업장에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기적은 기도로 일어난 기적입니다.
4. 하나님의 일은 협력해야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모세가 손을 계속 들고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생각이 납니다. 숙제를 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이마에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생각납니다. 45년 전 일인데도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때는 선생님들이 매도 많이 때렸고 또 손을 드는 벌을 많이 줬습니다. 아이들이 손을 들고 서 있으면 몇 분도 안돼서 팔이 아파오게 됩니다. 그래도 팔을 들고 있으려고 몸을 비비틀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 몰래 손을 내렸다가 더욱 혼을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모세는 80세의 노인입니다. 노인 모세가 두 팔을 들고 오래 있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루 종일 팔을 들고 있을 능력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팔을 지속적으로 들 수 없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대로 두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모세의 팔을 하나씩을 잡고 들어 올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주는 것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야. 그건 네 힘으로 해야지 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실 때 아담을 돕는 배필로 만드신 것입니다. 서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하라고 하와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전 4:12을 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서로 협력할 때 힘과 능력이 더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공동체를 주신 것은 서로 협력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서로 도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호와 닛시의 승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협력할 때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힘을 합하여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남는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의 목회를 배우기 위하여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 어떻게 아름다운 목회를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들을 이끌고 기도실로 데려 가서 스펄전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중보기도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목사님의 팔을 붙드는 아론들이었고 연약한 성도들의 팔을 붙드는 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실에서 여호와 닛시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꼭 기도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 격전이었을 때에 영국의 유명한 수상 윈스턴 처칠이 탄광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칠은 광부들 앞에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먼 훗날 그대들의 후손들은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당할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잠수함을 탔소. 나는 전함을 타고 싸웠습니다. 나는 최전방에 나아가 철책선을 지키며 지뢰를 밟으며 빗발치는 총알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피흘리며 싸웠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또한 자랑스럽게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그 군인들을 전선으로 실어나르는 기차를 움직이기 위하여 나는 석탄을 캐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들의 손을 녹이기 위해서 나는 석탄을 캐고 있었다. 저들이 막사에 들어가 따뜻하게 그 밤을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깊은 갱도 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고 있었다. 먼 훗날 후세의 사가들은 그대들이 전쟁의 승리자임을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은 군인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탄광의 광부들도 전쟁에 한 몫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대입니다. 모두가 중보기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큰 사업가가 되어서 큰 돈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구역장이 되고, 모두가 교사가 되고, 모두가 목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 그리고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아가실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서로 협력하여 만드는 것입니다.
5. 기도와 현장의 양동작전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위기가 오면 기도하십니까? 일하십니까? 여러분 몸이 약해서 병이 들면 기도하십니까? 병원가십니까? 여러분의 사업에 위기가 왔을 때 기도만 합니까? 아니면 사업을 다시 재정비 하십니까?
양동작전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기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과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싸웠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 생활도 양동작전이 되어야 합니다.
몸에 병이 들면 어떤 분들은 기도보다 의료직인 조취에 치중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의료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기도에만 열중합니다. 잘못하는 것입니다.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의료적인 과정을 통해서 치료하십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의료적인 조치를 받아야 합니다. 치료의 양동작전입니다.
자녀양육을 생각해 봅시다. 어떤 분들은 기도보다 세상적인 스펙에 치중합니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기도에만 열중합니다. 역시 잘못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장래는 하나님께서 학업과정을 통해 역사하셔서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합니다. 공부도 시키고 기도도 하게 해야 합니다. 자녀 교육의 양동작전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중요한 시험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학생은 공부는 안 하고 기도만 합니다. 어떤 학생은 기도는 하지 않고 공부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학업의 양동작전입니다.
방송 중 올라온 기도사연입니다. 50세 된 아들이 서울대학교를 나왔지만 막노동 일을 하고 있답니다. 전에 직장 다닐 때 회사에서 카드가 해킹을 당했는데 지금까지 그 돈을 갚으라고 일주일에 2번씩 엽서가 날아오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견딜 수가 없답니다. 그 아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서울대학교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실력만 있다고 인생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의 현장에 있습니다. 기도와 노력, 기도와 수고가 함께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열어야 열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하고, 하나님이 도우셔야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시 127:1-2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는 집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성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헛된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와 수고의 양동작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여호와 닛시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1.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이며 성도는 영적 군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2. 믿음 생활은 지치고 뒤 떨어진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3.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일은 협력해야 합니다.
5. 기도와 현장의 양동작전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