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자 테헤란대학교 박사
“ 노루즈” 라는 단어는 새로운 (Nu)이라는 단어와 날 (Ruz)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새날, 새해를 의미한다. 이란의 새해인 노루즈는 12궁도 중 ”양“의 자리에 들어가는 봄의 날 , 즉 춘분(3월 21)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노루즈는 이란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일부 중동 지역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관습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노루즈의 기원
노루즈의 기원은 가장 유명한 페르시아 신화속의 절대군주 “잠쉬드”에서 시작되었다. 잠쉬드왕은 자신의 백성에게 무기를 제조하는 법을 가르치고 , 함께 악마를 응징하기 위해 원정길에 나섰다. 백성들과 함께 악마를 물리친 잠쉬드왕은 악마에게 크리스탈 마차를 만들어 바치라고 명령했다. 그것이 준비되자 잠쉬드왕은 그 마차에 올랐고, 이란의 최고봉 다머반드산에서 부터 바빌로니아까지 마차를 타고 날아갔다. 사람들은 그 날을 노루즈 라고 부르고 그 이후 매년 축제를 거행했다. 물론 잠쉬드왕이 신화속의 인물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야기는 구전 된 설화에 가깝다. 학자들은 실제 노루즈의 기원을 고대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일반화 되어있던 다산의식에 둔다.
노루즈의 역사적 배경
오늘날 남아있는 대부분의 노루즈 관습과 의식들은 아케메니아 왕조(B.C 550~330)와 사산왕조시기(A.D 226~652)에 정립되었다. 이란 고대왕조들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의 종교행사가 아리안족의 전통의식들과 결합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이루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노루즈 전주 수요일을 기념하는 “처허르 샴베 쑤리”와 같은 의식이 가장 대표적인 조로아스터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 “처허르 샴베 쑤리”에 이란인들은 횃불을 켜놓고 뛰어넘는 놀이를 하거나 폭죽을 터트려 잡귀를 쫓는다. 이러한 관습은 일 년의 마지막 새벽에 모든 조로아스터 교인들이 지붕에 올라가 죽은 자들을 배웅하기 위하여 불을 피우는 <거헌버르>에서 유래했다. 조로아스터 교리에서는 생명을 부여하고 그것을 보호하며 살찌게 하는 모든 것은 ‘선’과 관련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유로 만물이 탄생하는 봄을 ‘선’의 도래라고 여겨 축하하고 기념했다.
아케메니아 제국의 황제들은 노루즈 행사를 화려하게 거행했다. 아케메니아의 많은 점령국들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페르세폴리스의 가장 유명한 벽화 중 하나인 ‘공물도’에 이러한 장면이 잘 묘사되어있다. 사산왕조 시기에는 조로아스터교가 국교로 공표되었고 각종 종교의식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노루즈 의식도 이때 정립되었으며, 사산왕조시기 사람들은 6일에 걸쳐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를 즐겼다. 비록 7세기 아랍족의 침략으로 많은 전통축제와 제례, 의식이 사라지고 이슬람과 관련한 새로운 의식들이 생겨났지만 , 노루즈 만은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했다. 페르시아 시인들의 시집에서 발견되는 노루즈와 관련된 여러 시들이 페르시아인들이 얼마나 노루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고자 노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던 노루즈는 10세기 경 이란을 점령한 셀주크 투르트 제국이 이란인의 전통인 노루즈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란은 물론이고 중아아시아까지 그 전통이 퍼져나갔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노루즈를 새해의 시작으로 여긴다. 다른 한편으로 사산제국 멸망 후 조로아스터교의 승려들이 인도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노루즈의 전통은 인도 대륙 지방으로까지 퍼져나가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노루르 축제를 연다.
오늘날 고대 축제의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노루즈는 페르시아의 민속 축제로 자리 잡았다. 노루즈가 다가오면 이란인들은 집을 안팎으로 청소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 덕담을 하며 설레는 마음이로 새해를 기다린다. 고대 축제들 가운데 상당수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졌지만 노루즈가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통과 종교가 잘 융합된 페르시아 민족의 특성을 잘 반영한 축제이기 때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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