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산업은 올해 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거칠 것 없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회계 관련 이슈였다. 잘나가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정부가 상장과정에 비리가 없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소식에 단번에 무너졌다. 4월 중순 장중 주당 60만원 고지를 찍었던 주가는 불과 며칠 만에 반 토막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자체 성장성을 시장이 의심한 건 아니었다. 다만 상장과정에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 처리를 어떻게 했느냐를 놓고 감독당국이 들여다보기로 한 게 투자심리 근간을 흔들었다.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폐지 절차까지 밟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리스크를 싫어하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가는 표면적으로 수급의 함수이기 때문에 쏟아지는 매물을 받아내려면 주가가 하방으로 급격히 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바이오산업에 한번 분 악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연구개발비라는 회계 이슈가 또 한 번 증시에 상장된 바이오 기업을 강타했다. 바이오 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쓴 돈을 자산으로 볼 것인가 비용으로 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를 자산으로 보면 비용이 확 줄어들기 때문에 결산 시 이익 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반면 이를 비용으로 보면 좀처럼 높은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다. 다수의 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한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 ‘분식회계’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던 게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 바이오 주식에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장의 실적보다는 장래 성장성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회계 기준은 당장의 성적표를 기록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아무리 ‘꿈을 먹고 사는 기업’이라도 수차례에 걸쳐 ‘회계’ 이슈가 불거지자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우세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굵직한 바이오 기업이 잇따라 신규상장에 나서면서 기업공개(IPO) 시장을 중심으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바이오 투심이 살아나는 움직임이 속속 관측되고 있다. 8월 20일 코스닥 상장에 나선 바이오솔루션이 대표 주자라 할 만하다. 이 기업은 무려 5수 끝에 증시 입성에 성공했다.
수요예측에 몰린 기관투자가만 600여 곳에 달한다. 경쟁률이 올라가니 공모가 역시 올라가기 마련이다. 희망밴드 최상단에서 형성됐다. 8월 2일과 3일 동안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총 115만 주 모집에서 174.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모가는 희망밴드(2만4000~2만9000원) 가장 높은 곳에서 결정됐다. 이 주식은 상장되기도 전에 장외시장에서 주당 4만원이 넘는 가격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마디로 ‘대박’을 쳤다는 얘기다. 이 회사는 올해 반기 기준 매출액 30억838만원, 영업이익 5억5242만원을 기록해 흑자전환까지 성공했다. 이익을 내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은 ‘기술특례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했는데, ‘흑자전환’이라는 플러스 효과까지 함께 낸 셈이다.
이 회사는 줄기세포 기술을 기반으로 여러 재생의학 제품을 만들고 파는 회사다. 화상치료세포치료제인 케라힐(KeraHeal)과 케라힐-알로(KeraHeal-Allo) 등이 대표상품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수요예측을 진행한 제약·바이오 기업 7개 중 6개 기업이 밴드 최상단 이상에서 공모가가 결정됐다. 알리코제약이 밴드 최상단에 근접한 주당 1만2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동구바이오제약,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아이큐어, 올릭스, 한국유니온제약은 모두 밴드 최상단을 넘는 가격으로 공모가가 정해졌다.
8월 이후부터는 더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이 주식 공모에 돌입한다. 상반기 회계 이슈로 몸을 사렸던 IPO 기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최소 12개 기업이 증시 문을 노크하고 기다리고 있다. 하나제약, 셀리버리, 파멥신 등이 주요 대상이다. 코넥스 대장주로 불리며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툴젠도 기대주로 꼽힌다. 파멥신 역시 장외에서 기업가치가 약 30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중 가장 기대를 모으는 기업은 역시 툴젠으로 손꼽힌다. 이 회사는 8월 16일 기업가치제고와 원활한 자금조달 및 주식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코스닥시장 이전상장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툴젠은 연일 코넥스 거래대금 1위를 기록하며 코넥스 대장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코넥스 시가총액 1위기업이다.
툴젠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유전자 교정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김진수 박사가 1999년 창업한 회사다.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기업이 주목받기 시작해 1년여 전 주당 3만원 부근에 머물렀던 장외주가가 12만원대로 안착한 지 오래다.
유전자 가위란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고 새로운 유전자를 재결합하는 기술이다. 한마디로 정교한 가위로 문제가 되는 DNA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다.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 특정 암은 유전자 자체를 치료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하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툴젠은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카스나인(CRISPR Cas9)’ 기술을 보유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벌일 만한 원천기술이 있다.
투자자들이 툴젠을 눈여겨보는 것은 10여 년 넘는 ‘고난의 행군’ 기간을 이겨낸 저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9년 창업 당시 이 회사에 쏠리는 기대는 상당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김 박사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해 다수의 VC들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회사는 오랫동안 적자 늪에 빠지며 VC들을 실망시켰다. 김 박사는 2005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회사 경영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2006년 1세대 유전자 가위 ‘징크핑거’와 2011년 2세대 유전자 가위 ‘탈렌’을 내놓았지만 추가 투자를 받는 데 실패했다. 2006년 추진한 우회상장은 실패로 돌아갔다. 시장 신뢰가 더 떨어진 것이다. 이 와중에 글로벌 유전자 가위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툴젠 입장에서는 자금을 수혈해 첨단 실험을 거쳐 트렌드를 앞서가야 하는데 따라가기도 버거운 수준이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툴젠 유전자 가위기술은 조용히 수면 아래로 묻힐 판이었다. 하지만 2011년 두루넷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경험이 있는 김종문 현 대표가 회사에 합류하며 툴젠은 재무적으로 틀을 잡기 시작했다. 회사 합류 당시 고작 1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2년 6억원, 2013년 10억원까지 늘었다. 2014년에는 매출 15억원에 1억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VC들은 툴젠을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 LB인베스트먼트가 툴젠에 30억원을 투자한다. 이후 LB인베스트먼트가 다리를 놔 총 470억원의 신규 자금을 수혈받는 데 성공한다.
툴젠은 수백억원의 자금을 토대로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등록한 데 이어 기술 상용화 단계까지 급속도로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막연하기만 했던 기술의 베일이 걷히자 기업가치가 급속도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농업 바이오기업인 몬산토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툴젠의 핵심 사업은 크게 두 가지 분야로 집약될 것으로 보인다. 몬산토와 유전자 가위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은 향후 그린바이오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교두보로 평가된다. 툴젠은 유전자의 특정 분야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응용하면 농산물 분야에서 여러 쓰임새를 찾아낼 수 있다. 병충해에 강한 과일을 만들거나,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로 업그레이드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물이 별로 없는 건조 기후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용 식물 개발에 나선다면 기업 차원을 넘어 인류가 당면한 식량 부족 문제의 일부를 해결할 수 있는 큰 판을 벌일 수도 있다. 툴젠이 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새로 열릴 수 있는 셈이다.
기존 유전자 치료 분야도 유망한 것은 마찬가지다. 툴젠은 앞서 두 번에 걸쳐 코스닥 입성에 실패한 바 있는데 원인 중 하나는 과연 툴젠이 실효성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였다. 최근 툴젠은 한국과 호주에서 특허 등록을 마치며 이 같은 우려를 상당부분 해소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특허 등록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3월 이병화 엠지메드 전 대표를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비슷한 행보다. 이 부사장은 엠지메드 대표 당시 엠지메드를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시켜 성공한 경험이 있다.
코스닥 상장 3수에 나선 파멥신도 주목을 끄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악성 뇌종양을 치료하는 항암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아직 완성 단계라 볼 수 없지만 개발에 성공하면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아바스틴’을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회사는 지난 2015년 초 기술특례상장을 시도했다가 기술심사평가를 통과했다. 하지만 내부 검토 끝에 상장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해 말 또 한 번 상장을 추진했고 기술심사평가 역시 통과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에서 주력 항암제인 ‘타니비루맙’의 미래 매출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지적해 문제가 됐다. 당시 타니비루맙은 임상2a상이 채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동안 상황이 많이 진척됐다. 지난해 말 호주에서 타니비루맙 임상2a상을 끝낸 것이다.
이 약품은 정상세포 대비 빨리 자라는 암세포 특성을 응용한 항암제다. 암세포는 빠른 성장을 위해 새롭게 혈관으로 가는 길을 뚫어 영양분과 산소를 확보하려고 한다. 타니비루맙은 암세포가 만드는 신생혈관을 억제하고 암세포에 달라붙어 암 성장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한국거래소에서 코스피 시장 상장예비심사 문턱을 넘어선 하나제약은 보수적인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기업이다. 실적이 나오는 탄탄한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복제약(제네릭)을 주로 판다. 지난해 매출 1393억원, 영업이익 319억원을 올렸다.
주 제품은 마취·통증관련 복제약 260여 개다. 이 회사 전략은 ‘패스트 폴로워’ 전략으로 요약된다. 최대한 일찍 복제약 허가를 받은 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선점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프로포폴 마취제인 ‘아네폴주’가 시장점유율 선두를 다투고 있다. 소화기 등 처방 시장에서도 탄탄한 저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2.9%로 업종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하나제약의 R&D투자비가 낮은 점을 들어 성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회사 연구개발비는 매출의 3% 수준이다.
매년 매출의 10%를 훌쩍 넘는 목돈을 신약개발에 들이는 제약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하나제약은 진정수면마취제, 조영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신약 등을 연구하고 있는데 아직 임상에 돌입하지 않은 초기단계인 것들이 대다수다.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얘기다.
따라서 이 회사 투자는 ‘꿈을 먹고사는’ 관점보다는 안정된 파이프라인 기반의 ‘실적’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바이오 산업 투자를 마냥 장밋빛으로만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상장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상장한 EDGC와 7월 상장한 한국유니온제약, 아이큐어는 공모가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특히 아이큐어는 상장한 지 한 달 만에 주가가 30% 이상 떨어지며 우려를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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