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 단상 10/벌초]왕년의 졸문을 찾아 읽는 재미
추석을 보름여 앞둔 일요일, 아버지와 둘이 하루종일 뒷밭 땅콩을 캐다. 귀향하여 2년여 살면서 번번이 놀라는 것은 식물(농작물)의 세계이다. 참말로 땅콩 한 알을 심었을 뿐인데, 넉 달만에 캐보니 굼벵이와 떼까지들의 습격을 판판이 받아가면서도 이러저리 뻗은 가느다란 뿌리에 매달린 땅콩들이 '줄줄이 사탕' 1백개쯤 달려있는 게 아닌가. 솔직히 이건 ‘기적奇績’이다. 물론 지금 한창 영글어가고 있는 들판의 벼이삭도 마찬가지. 어떻게 볍씨 하나에 저렇게 몇 백, 몇 천 개의 낱알이 송알송알 맺힐 수 있을까. 마치 65년 인생을 살며서 숱하게 봐왔지만, 늘 처음 본 듯, 날마다 놀랍다. 그저 심상尋常한 일이거늘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원래가 감탄感歎을 잘 하는 체질이어서 그런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건 그렇고, 1년에 한번 온 산에 예초기 소리가 진동하는 날이다. 이른바 가족마다 연례행사인 ‘벌초伐草’ 때문이다. 온갖 잡풀은 대체 왜 이리 잘 자라는 것인지, 초벌 벌초를 하지 않는 묘소는 풀이 사람키를 거의 넘는다. 당연히 예초刈草가 힘들 수밖에. 다행히 나는 7월초 우거진 풀들을 일단 베어 눕혀놓았기에 다음주쯤 벌초를 할 때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95세 아버지는 내가 영 미덥지 않은지, 일꾼 사서 같이 하라며 품삯 20만원을 슬그머니 내놓으셨다. 횡재橫財다. 흐흐. 그래도 1년에 한번 조상님들의 ‘이발理髮’은 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구시대 풍습 중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미풍양속美風良俗일 듯하다. 모처럼 마을회관 너른 마당에 낯선 승용차들이 나래비를 섰다. 이미 고향故鄕은 고향이 아닌 집안도 많은지라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들도 생판 모르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어색해 하는 듯하다. 그들은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최소의 ‘의무義務’만 끝나면 휑하니 떠나면 그뿐이다.
저녁을 먹고 사랑방에 내려와 피곤한 몸을 눕히는데, 불쑥, 수 년 전 벌초와 관련한 글을 쓴 게 생각났다. 이런저런 자료를 다 뒤지다 마침내 찾아낸 졸문을 전재한다. 이것도 지난번 논산 어느 파평윤씨 가정의 ‘충견忠犬 이야기’처럼 완전히 실화實話이므로 느낌이 조금 있을 듯하다. 2003년 7월 28일, 당시 인기 폭발이었던 지하철신문 <메트로>에 생활칼럼으로 실린 것이다. 참으로 무상한 게 달구름(세월歲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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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알 지킨 어미꿩 보며 ‘막가는 우리 사회’가 부끄럽다
최영록<성균관대학교 대외협력팀 홍보전문위원>
최근 카드빚 등으로 인한 인면수심의 범죄가 날뛰고 있는 가운데,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한 사건까지 있었다. 심지어 10대인 딸을 둔기로 내려친 뒤 자해한 30대 가장도 있었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어쩌면 그렇게 믿기 어려운 존속살인사건이 일어나다니, 사회가 그냥 막 가자는 것일까. 어린이 유괴, 여대생 납치, 주부 성폭행 등 …,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보아도 사회가 요즘 흉흉해도 너무 흉흉하다.
얼마 전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고향을 찾은 김에 산기슭 신작로 아래 감밭의 무성한 잡초를 제거하려 난생 처음으로 예초기를 들고 나섰다. 한창 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푸드득하면서 기계 앞에 쓰러지는 게 있다. 깜짝 놀라 작동을 멈추고 들여다보니 까투리(암꿩)였다. 그 작은 새 머리 한쪽이 예리한 예초기 날에 스쳐 잘려나간 것이었다. 현장에서 금세 숨진 까투리를 보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 꿩은 왜 도망가지 않은 것일까. 사람이나 동물이나 위험물체가 오면 본능적으로 일단 자리를 피하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주변을 둘러보니, 풀숲에 꿩 둥지가 있었고 알이 11개나 들어 있지 않은가. 아아, 그렇구나! 이 어미꿩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의 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알을 보호하려 했던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 그 자체였다.
참으로 무서운 모성본능母性本能에 온몸이 떨렸다. 순간 몇 해 전인던가, 모주망태인 나에게 따끔한 경종警鐘을 주려고 콜라도 마시면 취하시는 어머니가 양주를 두어 잔 거푸 마시고 한동안 혼수에 빠졌던 일이 생각났다. ‘도대체 이 놈의 술이 얼마나 맛있길래 우리 아들이 그렇게 마셔대냐’며 ‘나도 한번 먹어보자’는, 일종의 데몬스트레이션이었던 것이다. 혼수의 엄마를 보며 형들이 '너 때문'이라며 나를 원망했었다. 그 충격요법도 얼마 가지는 못했지만, 당시는 죄송스런 마음에 몸둘 바를 몰랐다. 미물微物인 새조차 자식 사랑이 이럴진대,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금수禽獸보다 못할 일들을 밥 먹듯이 저질러대는지?
그 일이 있은 뒤 오후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겨울방학때 꿩이나 토끼, 심지어 노루까지 잡아먹던 기억이 있지만, 꿩알 11개와 머리가 살짝 베어져 죽은 까투리 생각에 종일 우울했다. 처마밑 참새집에 손을 댈 때, 어미새가 근처에서 계속 맴돌며 슬프게 울어대는 것은 여러 번 봤아도, 그날처럼 제 알을 지키려 죽음으로 맞선 것은 처음 본 때문이었다.
저녁 밥상에 나온 수제비 꿩국에 도저히 숟가락을 담글 수 없었다. 그 애처로운 모정母情을 생각하자니 속이 다 뒤집혔다. 그냥 그 자리에 알과 같이 묻어줄 것을, 어쩌자고 덜렁덜렁 그것을 가져왔을까,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대체 죽어간 어미꿩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무심한 ‘유월 개구리’만 어둠을 가르며 지칠 줄 모르고 밤이 깊도록 노래를 불러제키고 있었다. 개골 개골 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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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이 아니고, 글쓴이의 진심이 담긴 글은 졸문拙文이래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나의 오랜 지론이다. 위의 글만 보아도 ‘한 느낌’이 있지 않은가. 2003년이니 벌써 8년 전의 일이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글을 찾아내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래서 기록記錄은 소중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