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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한(嚴寒)의 이바라키(茨城) 지도(指導)’ 42주년
당당하게 사회에서 승리 인생에서 승리
“다시 한 번, 지휘(指揮)를 잡겠습니다!” - 1981년 11월,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시코쿠(四国)의 땅에서 사자후(師子吼)했다. 회장 사임으로부터 2년 반. 1차 종문사건(宗門事件)으로 고통 받는 동지(同志)들을 지키기 위해 본격적인 반전공세(反轉攻勢)가 시작됐다.
그 격려행(激勵行)은 시코쿠에서 간사이(關西) 그리고 주부(中部), 오이타(大分)·구마모토(熊本), 가나가와(神奈川)로. 이듬해인 1982년에 접어들어 아키타(秋田), 이바라키(茨城)로 이어졌다.
그 동안, 오이타의 타케다(竹田)나 구마모토, 가나가와의 오다와라(小田原)·시즈오카(靜岡)의 고텐바(御殿場), 아키타(秋田)와 종문승(宗門僧)으로부터 격렬한 박해(迫害)를 받아 온 지역의 벗과 선생님과의 기념촬영 사진이, 「세이쿄신문(聖敎新聞)」에 크게 게재되어 갔다. 그 중에서도 이바라키에서는 3500명이나 되는 남녀 청년부원(靑年部員)이 한 번에 선생님과 사진을 남기는, 역사적인 촬영회가 실시됐다.
2월 7일부터 12일까지 실시되어 지금도 ‘엄한의 이바라키 지도’로서 전해 내려오는 스승의 격려의 드라마. 선생님은 촌가(寸暇)를 아끼며 히타치(日立), 가시마(鹿島), 츠치우라(土浦로의 벗과 만남을 맺는다.
기념촬영은 11일, 도다(戶田) 선생님의 탄생일에, 미토(水戸)의 이바라키문화회관에서 실시됐다. 직전에 개최된 이바라키현(茨城県) 청년부총회. 이케다 선생님의 참석은 없었지만, 회합 중에 “종료 후, 기념촬영”이라는 연락이 들어온다. 대환성이 일었다.
회관의 부지 내에서 촬영을 실시, 선생님은 마이크를 잡았다.
“수천 명의 미래를 짊어지고 일어선 젊은이들이 모인 일은 후세의 이바라키의 역사에 크게 남을 것입니다. 당당하게 지역을 바꾸고, 당당하게 사회에서, 인생에서 승리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성장을 진지하게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청년들은 지금도,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스승의 만감을 가슴에 새기고, 사회에서, 광포(廣布)의 무대에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오사카에서 분현(分県) 서기장(書記長), 총현(總県) 사회부장 등을 역임한 장년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당시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사회에서 승리하라.”라는 지침을 생명에 강렬하게 새기고, 대학원 수료 후, 일본을 대표하는 전기 메이커에 취직해, 오사카의 본사 연구소로. 성실한 일의 자세에 신뢰는 두터워, 해외의 현지 자회사의 사장을 맡은 일도.
오랜 세월, 난치병과 싸웠고 지금도 병마(病魔)와의 투쟁은 계속된다. 스승과의 원점을 잊지 않고, 공전(共戰)을 관철하며, 광포(廣布)의 제일선에서 분전(奮戰)해 왔다. 세 딸도 창가(創價)의 뜰에서 성장해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맹세를 완수하고 싶다. - 이 순수한 마음이 불타고 있는 모습에는, 영원히 청년의 빛이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청년학회(世界靑年學會)를 구축(構築)하는 주역(主役)이다.
〈사설(社說)〉
2024년 2월 7일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항상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