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도 도장에서는 상대를 메치고, 누르고, 조르는 법을 배운다. 기술만 놓고 보면 사람을 제압하기 위한 전투 기술에서 출발했다는 흔적이 분명하다.
그런데 가노 지고로는 자신이 만든 체계를 ‘유술(柔術·Jūjutsu)’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1882년 고도칸을 세우면서 그가 선택한 이름은 유도(柔道·Judo)였다.
‘술(術)’이 기술이나 기법을 가리킨다면, ‘도(道)’에는 길과 방식,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인간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가노가 살았던 일본은 사무라이의 시대에서 근대 국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과거의 전투 기술이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것을 배우는 이유부터 달라져야 했다.
가노가 바꾸려 했던 것은 싸우는 방법만이 아니었다.
무술을 배우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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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라이의 시대가 끝나고 있었다 //
가노 지고로가 태어난 1860년의 일본은 거대한 변화 직전에 있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봉건적 신분 질서는 해체되고 일본은 서구의 제도와 과학, 교육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유술 역시 이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에도 시대에 여러 유파를 통해 전해지던 유술에는 던지기와 관절기, 타격 등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존재했다. 하지만 사무라이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사회가 사라지면서 전통 무술의 위치도 흔들렸다.
당시 일본의 학교 체육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는 서양식 체육이 빠르게 도입되는 한편, 전통 무술을 학교교육에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던 가노가 처음부터 무술을 교육 체계로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유술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체격이 작았던 그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대응하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유술을 배웠다.
1877년 후쿠다 하치노스케에게 수련을 시작한 뒤 다른 스승과 유파를 거치며 유술을 깊이 연구했다.
그러나 수련이 계속되면서 그의 관심은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유술의 기술과 원리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훈련을 사람을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유술과 유도를 가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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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노는 기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다시 설계했다 //
1882년 가노는 도쿄의 에이쇼지라는 작은 사찰 공간에서 고도칸을 열었다.
그가 만든 유도는 전통 유술과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격투기가 아니었다.
가노는 자신이 배운 여러 유술 유파를 연구하고 기술과 원리를 선별해 새로운 체계로 구성했다. 특히 텐진신요류와 기토류에서 받은 영향이 컸고, 기존 기술 가운데 교육과 지속적인 수련에 적합한 요소들을 체계화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전투 상황에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위험한 기술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매일 서로 기술을 걸고 저항하며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면 조건이 달라진다.
가노는 심각한 부상 위험이 있는 일부 기술을 유도 자체에서 없애기보다 자유대련에서 제한하고, 낙법과 수련 방식을 정비해 서로 저항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란도리, 즉 상대가 실제로 저항하는 상황에서 기술을 시험하고 수정하는 자유연습이 교육 체계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었다.
기술의 위험을 통제하는 일은 전투성을 없애기 위한 작업만은 아니었다.
더 많이, 더 오래, 서로 저항하며 연습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기도 했다.
규칙과 수련 방법이 바뀌면서 무술을 사용하는 목적도 넓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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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유술’이 아니라 ‘유도’였을까 //
가노가 ‘도’라는 글자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니다.
유도라는 명칭과 ‘도’의 개념에는 그 이전 일본 무술과 사상적 전통이 존재했고, 특히 가노가 배운 기토류에서도 ‘유도’라는 표현의 선례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가노가 유술의 ‘술’을 단순히 ‘도’로 바꾸어 새로운 단어를 발명했다고 설명하면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가노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 명칭에 어떤 내용을 부여하느냐였다.
그는 기존 유술에서도 기술을 넘어선 정신적 가르침이 존재했음을 인정했다. 다만 그것이 충분히 체계화되지 않았다고 보았고, 자신의 유도에서는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길’을 연구하는 것을 더 중심적인 위치에 놓았다.
이러한 생각은 가노가 교육자로 살아간 과정과도 연결된다.
그는 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가르쳤고 여러 교육기관에서 책임자를 맡았으며, 훗날 도쿄고등사범학교의 교장을 오랫동안 지냈다.
그에게 신체 훈련은 지식이나 도덕 교육과 분리된 부차적인 활동이 아니었다.
가노는 지적 교육과 도덕 교육, 신체 교육을 함께 발전시키려 했다. 유도를 신체적·지적·도덕적 교육 방법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도’는 장식적인 철학 용어가 아니었다.
유도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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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보다 더 큰 목적을 만들다 //
가노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명확한 원리로 정리됐다.
대표적인 것이 정력선용(精力善用·Seiryoku Zenyo)과 자타공영(自他共栄·Jita Kyoei)이다.
정력선용은 정신과 신체의 힘을 목적에 맞게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원리를 뜻한다.
자타공영은 자신의 발전을 타인과 공동체의 발전에서 분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두 원리는 오늘날에도 가노 유도의 핵심적인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유도의 승부가 갖는 의미도 달라진다.
상대를 메치는 능력은 중요하다. 실제로 상대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기술의 효율성을 검증하기 어렵다.
그러나 승리 자체가 수련의 최종 목적은 아니었다.
가노의 교육적 관점에서 상대는 단순히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볼 수 없었다. 상대가 있어야 자신의 균형과 힘의 사용법을 확인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다시 기술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도에는 그래서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 이기려고 하지만, 동시에 서로가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전투 기술을 반복하는 과정이 개인의 신체 능력을 넘어 교육의 방법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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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는 근대 사회 안으로 들어갔다 //
유도의 변화는 철학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도칸의 방식은 경찰과 해군에 채택됐고 학교와 대학으로도 확산됐다. 가노가 교육계에서 활동하며 신체 교육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도 유도가 교육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
이 과정에서 유도는 과거의 전투 기술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과 다른 길을 걸었다.
일부 위험한 기술은 자유대련에서 제한하고, 낙법과 란도리를 통해 반복 가능한 훈련을 만들며 기술을 교육적 원리와 연결했다.
그렇다고 유도가 전투적 뿌리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메치기와 굳히기, 조르기와 관절기에는 여전히 상대의 신체를 통제하는 무술의 논리가 남아 있다.
자유대련에서 제한된 일부 기술도 형(가타)을 통해 보존되면서, 유도라는 체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유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하고 1964년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이후에는 경기 스포츠의 성격 역시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유도를 단순히 ‘유술에서 위험한 기술을 제거한 스포츠’라고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가노가 만든 변화의 핵심은 기술의 삭제보다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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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가 선택한 것은 싸움을 넘어서는 사용법이었다 //
유술의 기술은 사람을 넘어뜨리고 제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가노는 그 기술적 전통을 단순히 없애려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바꿨다.
사람을 제압하는 기술을 반복해서 배우는 과정이 몸을 단련하고, 판단을 개선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까지 훈련할 수 있다면 무술은 전투가 중심이 아닌 사회에서도 다른 역할을 가질 수 있었다.
‘술’에서 ‘도’로의 변화는 전투 기술을 버리고 철학만을 선택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술에서 이어받은 기술과 원리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반복 가능한 수련과 신체교육, 인간교육, 사회적 가치까지 포괄하는 체계로 확장한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보면 유도에서 상대를 메치는 순간만큼 중요한 장면은 그다음에 있다.
한 사람이 매트에 떨어진다.
낙법으로 충격을 받아낸다.
다시 일어난다.
두 사람은 옷깃을 잡고 다시 시작한다.
승부는 끝날 수 있지만,
‘도’가 가리키는 수련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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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및 근거
-International Judo Federation – Jigoro Kano / Judo History
-Kodokan Judo Institute – History and Philosophy of Judo
-Jigoro Kano, Mind Over Muscle
-International Judo Federation – Judo Values
-Olympic Historical Resources – Judo at Tokyo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