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부부가 나이 들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정으로 산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한참 젊었을 때는 손만 잡아도 가슴이 두근거려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사랑과 기쁨이 충만했지만
서로 아껴주며 아름다웠던 시절은 소리 없이 흘러 세월이 내려앉은 아내나 남편의 모습은
가슴 띄게 했던 젊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살면서 지지고 볶고 험하게 소리도 많이 질렀지요
동네에서 콩나물 제일 싸게 파는 가게만 찾아다녔고
좌석버스는 엄두가 나지 않아 일반버스만 애용하지 않았습니까
식구들 먹다 남은 반찬이랑 식은 밥을 함께 양푼에 쏟아서 볶아 먹기도 했는데
살림 아끼느라 우리들은 모두 그랬을 겁니다
그랬더니 그 곱던 우리의 시절은 어느새 저버리고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감정을 우리는 우리만 가지는 특이한 정(情)이라 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유독 정이 많은 민족이라고 하지요
사전에서는 정(情)을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설명하였으니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은 참 모호합니다
사랑 기쁨 미움 원망 슬픔과는 달리 손에 잡힐 듯 그려지지 않는 막연한 감정이지요
그래서 부부 사이의 미운 정 고운 정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의 정(情)보다는 애증(愛憎)이 아닐까 합니다
식구들과 같이 밥을 먹는 저녁입니다
어릴 적이지요
저는 아버지와 따로 겸상을 했지만 어머니와 누나 동생들은 모두 함께 동그란 밥상에서 밥을 먹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겸상하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아버지 눈치를 보아야 하니까요
먹기 싫은 미나리 무침도 먹어야 하고
동네 친구들과 오늘 어떻게 지냈는지도 일일이 고해바쳐야 합니다
어머니 누나 동생들은 커다란 찌게 냄비를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동생들은 좋아하는 반찬만 먹어도 어머니께 꾸중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불쑥 찾아옵니다
'아이고 뭐씨 이리 맞있는걸 묵노, 이집은 운 반찬이 이리 많노?'
'어서 오소, 요기 아직 안했능갑네 같이 묵읍시다'
아주머니는 어머니 옆에서 털썩 주저앉아서 같이 밥을 먹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눈치는 슬쩍 보는 듯했습니다
동생들이 먹을 반찬을 염치도 없이 마구 집어먹는 아주머니가 저는 뵈기 싫었지요
눈치는 커녕 남의 집에서 스스럼없이 이렇게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아마 정(情)이었을 테지요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부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이니 오랜 전의 일입니다
방학이면 부산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고향을 찾아갑니다
세 시간쯤 걸리는 여객선을 이용하지요
버스는 요금이 비싸기도 하고 뱃멀미보다는 차멀미가 고통스러워 버스는 잘 이용하지 않을 시절입니다
여객선 선실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객선이 출항하면 한편의 남자들은 마른오징어를 뜯으며 커다란 병소주를 마시고
또 한편에서는 화투를 칩니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은 주섬주섬 보따리에서 간식거리를 챙겨서 꺼내 놓지요
신문을 커다랗게 펼쳐놓은 위로
삶은 고구마도 내어 놓고
강냉이 찐 것도 나오고
김밥도 나오고
찐 계란도 나오고 별별것을 내어놓습니다
한 할머니가 우두커니 않아있는 나를 손짓으로 부릅니다
'야야 이리와서 이거 좀 묵어봐라'
'계란 주까 고매 주까 김밥도 묵어볼래'
어쩌다 떠오르는 따뜻한 오래 전의 기억입니다
젊은 여인이 자지러지게 우는 갓난아이를 안고 힘들어합니다
낡은 선실 내에서 남자들이 담배를 피워 탁해진 공기와 배까지 흔들리니 갓난아이가 불편한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한 할머니가 그럽니다
'저 인간들이 운 담배는 저리 피워대노
보소 문을 좀 열어 놓고 그 노무 담배 피우등가 말등가
갓난 아가 메워서 이리 울어쌌는기 안보이나'
'야야 새색시야 너거 아가 배가 고픈갑다 젓을 좀 멕이봐라 그라몬 괜찮을끼다'
'그라고 니도 이 김밥좀 묵어 봐라, 아무끼나 묵어야 젓이 잘 나온다'
'하모 하모, 아무끼나 잘 묵어야 갓난 아한테 좋다' 옆 할머니도 함께 참견을 합니다
젊은 여인은 앞가슴을 열어젖히고 갓난아이에게 젓을 물리고
할머니가 권하는 김밥도 같이 먹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젖을 빠는 갓난아이가 대견한지
'하 그놈 참 자알 생깄다
누구 닮았노, 서방 닮았나? 너거 서방은 뭐하노?
장군깜이네
요놈 고치 한번 따 묵어보까'
생천 처음 보는 이 할머니의 수다스러운 참견, 아마 정(情)이었을 테지요
정은 사람이 사람에게서 느끼고 스스럼없이 내보이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부자이던 가난한 사람이던 모두 그냥 가지고 있는,
사람을 향해서 푸근하게 감싸주는 그런 자연적인 행위일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우한 이들을 위한 기부를 하기도 합니다
기부, 즉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지요 아름답고 고운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아름다운 5060 한 게시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안양 교도소에 수감 중인 가족 없는 수형자들을 위하여
한 회원이 아끼던 고가의 여럿 물건을 경매하여 수익금 전부를 영치금으로 보내기 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알려졌지만
그 회원은 여럿해 동안 수형자들에게 나눔을 했다고 합니다
보기 드문 일이지요
아름다운 마음, 고운 정(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위의 경우와는 아주 대조적인 그림이 보입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는 해어진 양말을 카메라에 내보이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양말이 헤어지도록 아껴서 1500억 원을 기부했다고 하더군요
평소의 신조와 철학이 근검절약이라고 합니다
다만, 양말이 해어지도록 아껴서 마련한 거금을 기부했다는 사족을 붙이지 말고
굳이 방송에서 해어진 양말을 내보이지만 않았다면
당연히 존경받아야 할 분일 텐데요
왜 거북하게 보였는지 모를입니다
화면의 그림과 그분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제가 그만 순간적으로 유치원 아이가 된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첫댓글 아껴서 기부 대단하신분입니다
저양반 왜저러죠 ?ㅎㅎ 디숭
ㅎ 저도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
정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감정이라고
저는 그렇게 여깁니다.
사랑 ! 좋은 것이지요.
세상살이가 복잡다단해 지고 나니,
아무 것에나, 아무에게나
'사랑한다'란 말로 친밀을 나타내드라구요.
고향을 떠난지 오래지만,
아직도 요즘 사람들의 그 달아빠지고
매끄럽고, 찰나의 사랑이 아직도 익숙지 않습니다.ㅎ
글속에서 정이란 것에 마음이 찡합니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갑니다.
사랑이 무척 흔한 세상입니다
전부 모두가 사랑한다고 하니까요 ~
그런데 또 전부 사랑 하지 않는것 같아 보이니 이상한 세태입니다 ~
그때는 개인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것이 싫었는데 . 지금은 그립습니다
오잉~ 그때는 전부 그렇게 살았어요
노크도 없이 방문 벌컥 열고 그래서 팬티 갈아 입을때 식겁했어요~
글를 읽으며 어린 시절이 그림으로 그려지네요
요즘은 세상이 무섭습니다
나눔도 어려고요
십년을 매달 자동이체로 10400
를 보냈었는데 어느날 누구의 통장으로 들어 간다는 소식에
배신가에 멈춤이 되었네요
요즘은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 세상으로 ㅡㅡㅡ
세월이 흐르면 더 좋아질까요
나뻐 질까요
글 잘 봤습니다
말씀하신 그런 경우가 무척 많더군요
작은 나눔도 쉽지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동그란 밥상을 저희 집에선 '두리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두리상에 어머니, 누나 둘과 가람형 제가 앉아서 같이 먹었지요.
단풍들것네님처럼 네모상에 아버지와 큰형이 따로 먹었고요.
옛생각이 많이 납니다.
ㅎ 자개박힌 검정 밥상은 아버지
그냥 갈색뿐인 커다랗고 동그란 밥상은 어미니와 동생들 ~
일부러야 그랬겠습니까.
습관이라 뚫어진 양말을 신었고
무심코 보인 거지요.
저 뉴스를 못 봤습니다.
대단한 분인데요.그 많은 돈을 내 놓다니요.
우리는 인정이 많은 민족이지요.
이전의 시골은 대문도 안 걸었어요.
오가다 밥 같이 먹는 건
예사였지요.
그 민족성은 아직 모두들
내장하고 있을 겁니다.
저희는 상 하나에 모두 밥을
먹었습니다.
핵가족인데다 아버지가 평등주의자예요.
딸이라고 차별 두지 않으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와 식구들 모두 함께 식사하셨으니
제글이 공감 안될낀데요 ~ 우헤헤
몇번 저런 모습을 보였다고 하데요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하니
존경스럽기도 해요 ~~~~~~~~ ㅎㅎ
@단풍들것네 아니요.
공감이 갑니다.
할배 밑에서 조심조심
밥을 한 2 년 먹었습니다.
우헤헤~~~
뉴스 검색해서 이제 막 봤습니다.
안철수씨네요.
저는 무명의 기부자인가 했습니다.
제가 그 분 지지자는 아니고
요즘 정치가 너무 복잡해 뉴스를
안 뵈요.스트레스거든요.
헤어진 수양딸 로 읽혔습니다 언뜻
아니구나 ~~^^
그나저나
님 정치성향 이젠 다 드러났어요
긴장 백배 !!
ㅋ
그렇게 보이던가요 ~~ ㅎ 수양딸
저는 정치성향 이라고 할만한 건 없습니다
제가 오래 떨어져 있었기도 했고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없는
여야 좌우 모두 전부 괴이한 사람들 뿐이니까요
정상적인 모럴을 가진 분들이 항개도 없다는 생각뿐입니다
법원 검찰 관료 특히 국회가 신기하데요
그러니 전혀 긴장하지 마시길요~
그 양말 주인공이 안철수라니 좋은 일은 했지만
약간 무언가 찜찜 ㅎ
특히 한국인은 정이 많은 민족인 것 같습니다.
정도 많고 한도 많은 우리 민족
영원히 빛나거라 ㅎ
찜찜 ~ ㅎ
저는 퍼니쇼 하는걸로 오해했습니다
우리가 정이 많다고 하는데
과연 정이 무얼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요즈음 뜸하신 듯 합니다 자주 뵙기를요~
아껴서 기부 하는 사람들은 다들 훌륭한 분들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쉽지 않은일 하는 분들에게 박수라도 보내야 할텐데요 ~
충성 ~
우리는 어릴적부터 부엌 식탁에서 함께 먹었어요.편식이 심한 저는 늘 아버지께 골고루 먹지않는다고 야단 듣기 일수.그럼 더 안 먹고.ㅎ
겨울방학때 외가댁가면 외할아버지 외삼촌과 종손인 외사촌은 한상에. 나머지 식구는 커다란 둥근상에 식사를 했는데,
저는 상이 비좁아서 그리 먹는줄만 알았지요.
어른이되고 이유를 알았지만.
저 윗분 처음 정치입문했을때 열열히 환영했었죠.
지금은 음~~~
여자 아이들이 편식이 심했지요
리진님과 식사할때는 신경쓰겠음~
해물 싫은데 일식집 가자고 부득부득 우기지 않겠습니다 ~~
ㅎ 저윗분도 재미있는 양반이지요~
맨날 검찰에 불려 다니면서 항개 잘못없다는 이도 그렇고
아들 통장에 거금 들어왔는데 괜찮다는 이도 그렇고 ~~ 기이한 세상에 살고 있어요
배타고 댕기던 시절이 다 나오고 ㅎㅎ
단풍님이나 석우나 섬 출신들이라
사노라니 이렇게 나이가 ~~
어쩌다가 머나먼 캐나다까정가서리
단풍님요
우짜던지 건강하시고 열심히 살아 봅시다요
이 생에 얼굴 한 번 마주볼일 있으려나 모르지만 ......~~
오잉~ 언제 다녀 가셨네
부산 영주동 앞 3부두를 여숫뱃머리라고 했어요
부산-거제-통영-여수까지 운항했던
어찌 그리도 가난한 냄새가 곧곧에 베였던 낡은 여객선이었는지
아련한 기억입니다
유명한 충무김밥의 원조라는 아주머니가 불알 친구의 어머니였어요
장승포에서 김밥 좌판을 이고 배에 타서 충무까지 가는 중간에 김밥을 팔았어요
이제는 세월이 바뀌어 꽤 돈을 모았다고 하데요
서울 명동에도 분점을 차리고 제가 한국 있을때 벌써 그랬어요
모르긴 해도 언제 한번은 만날겁니다
그럼요 그때까지 건강합시다~~ 흥 토라지지 말고 에효~ 삐지기는 서산 양반이 잘 삐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게요
저도 막상 정이란걸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들더군요
사람사는 곳은 마찬가지이니
우리가 정이라 하는 감정이 서양에서도 분명 있을테지요 ~ 고마워요
토요일 온양온천으로 떠나 일요일인 어제 돌아 왔습니다.
40년 전 한 동네에 살면서 연로하셨던 시부모님 모시고 살았었던 며느리들 저 포함 7명이 함께서 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변고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안타까운 일도 이번에 겪었습니다. ㅎ
어찌되었든 지난 40년 간 경,조사를 함께하며 살가운 정을 나눠 온 마치 자매같은 친구들 과의 일박이일 나드리는 좋았습니다.
천안 명물 호두과자 맛 집에서 사 온 호두과자를 지난 보름날 오곡밥과 맛있는 나물 등을 나눠 준 이웃에게 선물했더니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온 가족이 너무 맛있게 먹어 고맙다는 전화였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단독으로 이사 오기 전 오래 살았었던 아파트에서는 이웃 얼굴도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바로 이런 게 정일 겝니다.
정을 나누며 살 수 있어 전 행복하다 생각합니다.
피곤해 일찌감치 잠들었다 깨어 댓글 답니다.
60년 전 제 고향 공주에 살던 때의 기억을 일깨워 주는 좋은 글이어서 추천하고 갑니다. ^^~
늦게 보었습니다
유명한 온양온천이 아직 영업을 하나 보군요
ㅎ 아무래도 문 꼭꼭 닫고 사는 아파트에서는 정을 느끼기에는 힘들지요
이리 긴 댓글을 ~ 고맙습니다
읽고 갑니다 .
억지로 보여주려 하는것은
안 보여준것 보다 못하다는게
저의 생각 입니다 ,
ㅎ 의미심장 ~
맞아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