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문호(一代文豪)
한 시대의 걸출한 문학가
一 : 한 일
代 : 시대 대
文 : 글월 문
豪 : 호걸 호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 선생은
근세 우리나라가 낳은 아주 걸출한 문학가다.
45세에 늦게 등단하여 80여 종의 소설을 창작했는데,
한 달 평균 원고 1000장씩 썼다.
그가 쓴 소설은 200자 원고지 10만장에 이른다.
이렇게 소설을 많이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폭 넓은 독서였다.
어려서부터 책을 매우 좋아해 많이 읽었다.
보통학교 때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진주농업중학교에 재학 중일 때,
프랑스어 실력은 일본에 유학 갔다 온 교사를 능가했다.
불어뿐만 아니라 일어, 영어에도 정통했고,
한문도 혼자 책을 읽을 정도가 됐다.
장서가 4만권에 이르렀다.
책을 알아보는 눈이 매우 뛰어났다.
국회의원을 지낸 남재희(南載熙) 씨도
책을 좋아해 많이 소장하고 있다.
하버드대학에 연수 갔다 오면서
책을 300권 정도 사왔다.
이병주씨에게 새로 사온 책 자랑을 하게 됐고,
이병주씨가 졸라 집으로 책 구경을 하러 갔다.
"저가 인심 쓸테니, 한 권만 골라 가지십시오"라고 했다.
이병주씨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한 권 뽑았다.
남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주면 절대 안 되는 책이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영어 원본이었다.
그런데 그 작품은 몇 달 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안목도 물론이지만 국제적인 최신
지식정보를 정확하게 갖고 있었다.
필자가 경상국립대학교에 근무할 때,
그의 장서를 기증받는 데 조금 관여했다.
4만권이라고 했다.
일어, 영어, 불어 등의 책이 반쯤 됐고,
중국 한국 등 한문고전 책도 상당히 있었다.
그 뒤 필자가 도서관의 책임을 맡아 다시 알아보니,
4만권은 어림도 없고, 1만 5000권 밖에 안 됐다.
그가 만년에 곁에 두고 자주 보던 책은 다 없어졌다 한다.
그는 1921년 하동군 북천면(北川面)에서 태어났다.
진주농림중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하고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근무하다가 1946년 돌아왔다.
그해부터 진주농림중학교에서 영어, 윤리 등을 가르쳤다.
1948년 진주농과대학 교수가 돼
영어 불어 철학 등을 가르쳤다.
그 뒤 해인대학(海印大學)에서 교수로 지냈다.
1955년부터 부산 국제신보 편집국장 및 주필로서
활발한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군사법정에 회부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년 7개월간 복역했다.
'국제신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며
논설을 통해 민중폭동을 선동하고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혐의였다.
감옥에서 300여권의 책을 독파했고,
그 내용을 분류 정리해 책의 여백에 빽빽이 적어 모았다.
소설가로서 대성하는 데 큰 밑천이 됐다.
출옥 후 후배에게 "감옥에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네.
앞으로 내 역할은 소설을 통해
현대사의 진통과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그 함정들을 메우는 작업을 해야겠어"라고 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金允植) 교수는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사상이 깊고
지식의 양이 많은 분이었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병주 정도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하지"라고 주장한다.
올해는 그의 탄생 103주년 되는 해다.
한 시대를 휩쓸던 대 문학가를 위한 기념행사
하나 없이 쓸쓸하게 한 해를 보낸다.
더구나 진주(晋州)는 그가 학교를 다니고
교사와 교수로서 지내던 곳인데도...
-옮긴 글-
첫댓글 맑은 날씨를 보이는 목요일날 아침시간에 음악소리와.
교훈글을 읽으면서 머물다 갑니다 오늘도 대체로 맑은날씨에 낮시간은 덮다고 합니다.
조석으로는 시원한 날씨에 코로나 감기에 조심하시고 오늘도 행운이 가득한 즐거운 하루를 보내세요..
문학을 좋아합니다
백장 / 서재복 시인님의 좋은글 "일대문호(一代文豪)"와 아름다운 영상과 좋은 음악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최고로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