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침공은 1231년에 예케몽골울루스의 2대 칸인 우구데이가 금나라 정벌을 시작함과 동시에 사르타크에게 3만의 군사를 준 것을 시작으로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1258년 훗날 원종이 되는 왕전이 몽골에 입조하면서 입니다. 하지만 전란이 끝난 것은 그 때뿐이지 이후 긴장관계와 삼별초의 저항(1270년~1273년)까지 감안한다면 42년간 고려-몽골은 전쟁과 긴장 상태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1차 침입 - 총사령관: 사르타크(살리타이), 총병력: 3만명
2차 침입 - 총사령관: 사르타크(살리타이), 총병력: 1만명
3차 침입 - 총사령관: 탕구, 총병력: ?
4차 침입 - 총사령관: 아무간, 총병력: ?
5차 침입 - 총사령관: 예구, 부장: 아모간, 홍복원, 총병력: 1만명
6차 침입 - 총사령관: 차라다이, 부장: 홍복원, 총병력: 5천명
인터넷 사이트, 카페, 가지고 있는 책들에서 발췌해서 몽골의 고려 침입 병력을 적어보았습니다. 사실 고려-몽골의 전쟁은 고려가 일방적으로 몽골에게 당했다고 봐야할 정도입니다. 비록 각지에서 몽골군을 격파한 일들은 있었지만 소규모가 많았고 전세를 역전시킬 발판을 마련하지도 못했습니다.
첫댓글 참 많이도 처들어 왔군요 6차례 씩이나..국토가 완전히 황폐해 졌겠네요
겨우 1~3만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섬만 지키고 있던 최씨무인정권의 무능함과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정권욕이 몽골군보다 더 큰 문제였죠 고려가 황제와 백성이 힘을합쳐 11세기 거란전쟁때같이만 싸웠어도 몽골과의 강화가 좀더 빨리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 졌을지도 모르죠
거란전쟁은 11세기 무렵 아닌가요?
아 이런 실수 ZARD님 지적에감사^^;;;
1~3만명은 순수몽골병력입니다. 당연히 몽골에겐 항상 따라다니는 포로병들은 안나온 숫자죠. ㅡㅡ;; 게다가 몽골군의 경우는 회회포, 화포등 최신의 무기들이 고려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몽골은 분명 고려에서만큼은 힘들어하긴 했습니다.
순수몽골병력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4차 침입 같은 경우 몽골병사는 소수였고 대부분은 남송에서 항복한 병사들이 주축이었습니다. 오히려 고려 침공에서 역시 몽골병사는 소수였고 다른 부족이나 국가의 군사들이 주축이었을 것입니다. 칭기스칸 당시 몽골울루스의 병력은 25만명 정도였고 그 중 순수 몽골인으로 구성된 칭기스칸의 친위대는 12만명 정도였습니다(이것도 거란이 추가되서). 그런데 오직 고려 하나를 정복하기 위해 순수몽골병력의 상당부분을 투입하려고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