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카락이 많이 늘더니 이제 눈썹도 제법 하얗게 탈색이 된다.
아내가 염색을 해주는데, 손가락 끝에 묻혀서 눈썹과 귀옆머리를 조심스럽게 한 다음, 윗머리와 뒷머리는 대충 손바닥으로 문질러 염색을 해준다.
아직도 나를 젊게 만들어주고 싶은 그 마음이 고맙다.
염색을 하다 보면 꼭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
"준비 됐다~"
큰방에서 엄마가 나를 부른다.
하던 일을 멈추고 큰방으로 건너가면...
엄마는 목둘레에 수건을 두르고 두 손 앞으로 곱게 모은 채 정좌하고 계신다.
엄마 옆에는 까맣게 착색된 유리 사발에 역시나 까맣게 착색된 칫솔 한 개와 플라스틱 빗 한 개 가지런히 놓여있다.
"우리 어무이 이뿌게 함 해볼까나~"
양귀비... 염색약.
물과 희석되어 까맣게 변한 염색약을 눈대중으로 대충 네 부분으로 나눈다.
가장 먼저 신경이 많이 가는 앞머리부터...
빗으로 엄마 머릿속을 헤집으면 뿌리 쪽이 하얗게 센 머리카락들이 올올이 드러난다.
"고단새 요놈들이 많이 자랐네~"
칫솔에 양귀비 액을 살짝 묻혀 하얀 뿌리에 대고 살살 문지르면 고동색 물감으로 하나하나 채색이 된다.
눈 동그랗게 뜨고 빗으로 이리 넘기고 저리 넘기고...
뿌리가 하얗게 센 머리카락들은 요리 숨고 조리 숨고...
앞머리가 끝나면 귀를 중심으로 한 옆쪽.
옆쪽도 남들 눈에 쉬이 드러나니 조심조심 세심하게...
엄마는 중간중간 거울 보시면서,
"여기 덜 먹었다... 저기 덜 먹었네~"
"예.. 예~ 금방 갑니다. 기다리세요~"
"우리 아들 꼼꼼하게 잘도 하네..."
"기다리 보이소. 금방 양귀비 만들어 드리께예"
"아들한테 이런 거나 시키고 미안해서 우짜노..."
"그라마 얼른 장가보내주이소. 며느리 시키게. 헤헤~"
"데끼 이놈~ 고등학생 주제에..."
"아이구~ 옛날에는 아 아바이 될 나이구만..."
"어느 며느리가 이런 일 좋다 카겠노~?"
"보내마 주이소. 참한 사람 구해오께예~ ㅎㅎ"
두런두런 이바구 사이로 양 옆머리가 끝나고 뒷머리로 옮겨갈 즈음엔, 칫솔로 머릿살 부비는 느낌이 좋은지 엄마는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조시고...
등뒤에서 예술하던 나는 괜히 울컥해진다.
'우리 어무이 언제 이래 늙어셨나...'
뒷머리도 마치면 마무리 수색 작업.
요기조기 헤집어서 덜 먹은데 덧칠하고...
남은 것은 앞머리에 골고루 한번 더~
"쨘! 어무이~ 얼른 머리 감으이소~ 양귀비 되게."
꾸벅꾸벅 졸던 엄마. 잠든 게 미안해서 화들짝 놀라면서,
"아이고 우리 망내이~ 수고했데이~"
머리 감고 경대 앞에 앉아 까맣게 염색된 머리 이리저리 살펴보는 엄마 뒤에 있다가 불쑥 내미는 손.
"수고비 주이소~"
"ㅎㅎ 옛다 천 원~"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엄마 맘 편하라고...
ㅎㅎ 믿든 동 말든 동.
엄마를 양귀비로 변신시키던 그 마술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군에 갈 때까지 계속되었던...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장 오래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어머니와 나만의...
양귀비 사랑이었다.
첫댓글 양귀비가 염색약 이었군요
기억이 납니다
요새 대부분의 나이든 여자분들은 머리 염색을 합니다만
나는 아들들 결혼할때 가족들 요청에 의해서 두번 만 염색을 해봤습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염색을 안하는데?
마음자리님은 염색을하시니 멋쟁이 인가봅니당 우하하하하하
여자분들도 염색약이 자기와 맞지 않아서 염색을 안하는 사람도 있습디다
재미있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제가 아내의 거울이라도 되는지
제 얼굴이 나이들어 보이면 싫은가 봅니다. ㅎㅎ
덕분에 젊어 보이고 좋지요.
마음자리님
양귀비 염색약 기억 납니다.
어찌 그리 소상하게 기억을 하시는지요.
지금 제 막내 집에서 글을 읽습니다.
사랑스러운 막내
보고싶고 그리운 막내
그냥 애잔하게 예쁜 막내아들
무뚝뚝 퉁명스러워도
제 안에 막내는 사랑입니다.
마음자리님 엄마도 살아생전
막내아들 사랑스럽기만 하였을거라
생각듭니다.
그런 추억들은 마치 어제 일인듯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막내 아드님 집에 가셨군요.
많이 사랑 주세요.
제 어머니도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지요.
그 댁에 딸은 없었나요?
하기사 제가 딸이라도 어머니
머리에 빗질해 드린 적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누나들은 일찍 서울로 떠났다가 시집을 갔고, 가람형도 멀리 떠나 공부를 하니 막내인 제가 가장 오래 부모님 곁에 있었지요.
살가운 막내 아들의 손길,
엄마의 마음은 천하일색 양귀비 보다
천군만마를 거느린 장수가 부럽지 않습니다.
아끼는 사람이 머리를 만지면,
세상만사가 느긋해 집니다.
엄마의 흐뭇한 시간
아들의 효심의 시간이었겠네요.
흘러간 엄마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아내와의 사랑에도 여물어진 시간입니다.
마음자리님의 행복한 시간에
어머니와의 옛시간을 추억해 봅니다.
막내라 오래 부모님과 같이 지내며
여러가지 살가운 추억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어요.
어머니 스스로 염색하시다가
제가 해드리고부터는 많이 좋아하셨지요.
어쩜 이렇게 글을 서정적으로 잘 풀어 나가시는지요...염색을 하면서 그 옛날 생각이~
TV문학관 한 장면 보는 듯 합니다..
제가 TV문학관을 열심히 많이봐서 그런가 봅니다. ㅎ
어무이....
양귀비 여사로
변신 시켜 주신 손길에
효자님 손길이
느껴 집니다....ㅎ
추천2.
어머니는 제가 하는 실없는 소리나 이야기 듣기를 참 좋아하셨어요.
지금도 제 안에서 웃고 계시지요.
대부분의 기악들이 비슷한 모양입니다.
그간 잊고 있었던 옛 풍경을
잔잔하게 소환 시켜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건필 유지 하세요.
잊고 있던 추억 되살리기가
제 글의 주재료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마음을 봄볓으로 가득 채워 미소를 만들어시더니, 종당엔 눈물까지 불러 주시네요. 덕분에 퍼석거리는 흙바닥에 봄비 한 줄기 내립니다.
집에 돌아와 편한 마음으로 추억 되살렸는데 저도 끝부분에 울컥했습니다. 입춘이 지났으니 곧 땅 위로 봄기운 올라오겠습니다.
막내가 해주는 양귀비 사랑염색
어머니는 좋으셨겠죠
이세상 엄마보다좋은건 없어요
엄마 보고싶네요
멀리 계신다 생각하면 보고싶은데
제 안에 계신다 생각하니 가슴
따뜻해집니다.
벌써 눈섶이 그래서 우얍니까 ~
잔잔한 성격에 고운 심성을 가진 분이라 여겨지네요 ~
그러게나 말입니다.
잘 기르면 신선 눈썹처럼 될 모양입니다. ㅎㅎ
어머니의 흰머리를 염색해주는 고교생 아들. 그림이 아름답습니다
어머니와 하는 놀이 같은 것이었지요.
아름다운 정경이 그려집니다.
그러고보니 울 아버지도 양귀비로 염색하셨는데,
엄니는 나이에 안맞게 너무 까맛다고 안하셨죠.
흰머리도 유전 이라고 하네요.
아무래도 염색을 하면 좀더 젊어보이긴 합니다.
그냥두고 싶은데, ㅎㅎ 같이 젊어지자고 하네요.
세상에나 이런 아들이 어디있데요.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을 것같아요.
아....맘자리님 감동했습니다.
흰머리 염색해주는 와이프 맘도 넘넘 예쁘기만 해요.
남매들이 다 떠나고 막내인
저만 남으니 아무래도 정이
더 오고갔던가 봅니다. ㅎ
어머니 염색을 해주시는 마음자리님의
모습이 보일듯 합니다 .ㅎㅎ
제 딸도 그렇게 해 주었거든요 .
요즘은 혼자서도 잘합니다 .
염색을 다 마친 어머님은 분명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마음자리님 보시기에는 요
딸과 사이가 아주 좋군요.
옆과 앞은 혼자하기 쉽지만
뒤는 어렵지 않은가요?
제 어머닌 참 고운 분이셨지요. ㅎ
새까맣게 머리를 물들이는데는
양귀비가 최고였지요.
거참, 한폭의 수채화처럼 엄마와 아들의
그림이 선명허게 그려지네요!
요즘은 양귀비가 안 나오고 비겐이라는
염색약으로 대체된지 오래되었군요!
곱슬 파마 머리를
염색하고 감고나면
양귀비가 되던 어머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