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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수술 중 발견한 것에 대해 설명할 때, 얼마나 정확하길 기대하십니까? 말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계약서를 보실 때는 어떻습니까? 조건, 의미, 금액, 비율 같은 것들을 꼼꼼히 따지실 건가요?
오늘 한 이야기와 이틀 뒤에 약간 다른 말을 하는 자동차 판매원이나 보험 판매원과 거래할 때 마음이 편하십니까?
같은 이야기를 매번 다르게 말하는 남자와 데이트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과 결혼을 생각하면 좀 불안해지지 않습니까?
성경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걱정할 필요 없다며 대충 넘어가도 된다고 말하는 목회자나 상담자는 어떻습니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라는 구절 하나하나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면요?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소통하시는 방식에는 애매함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에게 “아프도록 직설적으로, 아주 명확하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정확히 십계명을 주셨지, “열두 개 정도 되는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요나에게는 “니느웨로 가라”고 정확히 말씀하셨지, “네가 보기 괜찮은 도시로 가라, 친구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의 ‘요점만’이 아니라, ‘일점일획’까지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에게 순종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은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메모만 남기고 주말 여행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무오한 말씀의 보존은 존중하는 태도와 정확한 전달을 전제로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성경을 이상하고 무의미한 소리들로 뒤섞기 시작했을 때, 바울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는 음악의 비유를 들며 이렇게 질문합니다.
“피리나 거문고가 소리를 낼 때에도 소리의 분별을 주지 아니하면 그 나거나 무엇을 피리는 알게 되리요? 다시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아니하면 누가 전쟁을 준비하리요?”
(고린도전서 14:7–8)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나팔수의 ‘명확한 소리’**가 절실한 때는 없습니다.
당신이 정보를 전달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입술을 단단히 다물고!
정확한 음을 치고!
메시지를 흐리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