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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kbs10957
눅16;22두 사람의 죽음 저편20200329
눅16;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0200329도곡교회 김백수목사 .................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눅16;22말씀으로[두 사람의 죽음 저편]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사랑과 축복으로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코로나19우한 폐렴으로 우리나라가 어렵고 교회들마저 사람들이 모임을 갖는다고 어려가지 조건을 내세우면서 모임을 자제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폐렴이 발생하며 벌금을 물리고 치료비를 2천만원정도 구상권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료진 위한 토탁토탁 팀플스테이19일를 부터 2천명을 대상으로 불교에서는 시행 중입니다.
22일 코로나 19퇴치 기원 제를 무속 인들에게 허락하며 수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민속촌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정권이 잘못된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중국우한에서 시작된 폐렴 이것을 막지 못한 것이 정부에 있는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합니다.
이단 신천지로 인하여 우리나라에 퍼진 것처럼 언론도 대서특필합니다. 정부의 잘못은 말하지 아니하고 정부 눈치 보기하며 교회를 희생 제물로 삼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잘못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성도 개인들이 잘못이 있는 것을 회개하지 아니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닮아가려는 생활입니다. 예수님 닮은 삶을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말씀을 듣기 전에 성령님 감동하심으로 본문이 기록된 눅16장에 나오는 거지나 부자의 삶도 두 사람 에게 똑같은 죽음으로 이 세상 삶이 끝난 것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흔히 의로운 사람의 복된 죽음에 대하여 세 가지로 표현하였습니다. 첫째, ‘에덴동산으로 간다고 합니다. 둘째, ‘영광의 보좌 밑에 간다고 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품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이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충성된 사람의 영은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늘 잔치에 참여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입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부했던 성도나 가난했던 성도나 하늘나라에는 한 자리에서 만납니다. 세상에 살 때 나사로는 부잣집 대문밖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는 영광스런 궁성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축복을 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장 복된 죽음저편에서 하늘나라영광의 나라에 도착한 그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로 생명의 양식을 주십니다.
*첫째로 나사로 거지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라.
*둘째로 부자의 죽음은 저주요 슬픔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도 나사로처럼 부자처럼 죽음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은 후 즉시 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깁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음부의 고통 속에 빠지게 됩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천국 아브라함 품에 안기는 생활이요 부자는 이 세상에서 천국처럼 살다가 죽어 지옥 가니 저주의 죽음입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생활한 불신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생활하며 하나님 위로를 받는 자로 생활하였습니다, 나사로 이름의 뜻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위로로 세상에서 살면 저 하늘나라 위하여 생활하다 하나님 만날 수 있는 믿음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만나는 복된 죽음을 준비하면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말씀에 이끌려 따라가면 성령님 감동으로 하나님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나사로 거지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라.22상
본문성경 눅16;22말씀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지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거기에는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 있는 동안 너무 고독했습니다. 그는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하나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 위로를 받으면 살았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생명이 끝나자 천사들이 영혼을 받들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했습니다.
본문성경 눅16;22말씀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왜죽는가? 죽지 아니하는 불로초는 없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사후세계란 존재하며 있는 것인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음에 대하여 많은 물음을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물어오고 있지만 그 해답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성경을 왜면하면 찾을 수 없는 영원한 문제 해답을 모르는 문제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오게 된 것을 말씀하십니다.
창2;16-17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3;17-19말씀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선악과를 먹으므로 죽음이 온 원인을 알려줍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고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이란 삶의 반대말로 생물적인 생명의 끝을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들의 도덕적이며 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 생물적인 죽음은 시련의 끝입니다. 새롭고 더 나은 세계에 들어가는 다른 세계의 이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죽음에 대하여 들려줍니다.
사57;1-2말씀에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2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자녀 성도의 죽음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가는 것을 깨닫는 자가 없도다. 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은 장인어른이 92세로 돌아가시면 평소에 성경을 암송하는 것을 즐기시던 장인어른이 죽음을 알고 1997년1월26이 말씀을 암송하고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그 때 이 나라에 IMF가 왔습니다.
죽음이란 헬라어 원어는 <네크로스>는 가장 소망이 없는 상태, 즉 ‘시체’와 ‘죽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이후의 세계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우리들이 멸망 받을 죄를 지고 십자가상에서 죽음으로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하늘나라 천국을 주셨습니다.
예수 믿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은 지옥을 준비하셨습니다.
말씀은 분명한 해답을 말씀하십니다. 사후세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후에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천사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기 유대교 사상에 의하면 의로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을 선한 천사들이 받들어 모셔갑니다. 악한 자가 죽으면 악귀들이 데려간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나사로는 죽음은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사로의 영이 몸과 함께 죽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혼은 다른 세계로 옮겨갔습니다. 영의 세계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주셨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은 우리 영혼의 고향입니다. 사람의 영은 이렇게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그 영을 옮겨갑니다. 천사들의 사명은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을 이 땅에서 저 하늘로 옮겨갑니다.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갑니다.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영원한 안식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예수 안에서 구워 받은 이들입니다. 그들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본향을 찾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히11장은 잘 들려줍니다. 히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 명단은 하늘나라 간 조상들 이름들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 성경은 히11;8-10,16말씀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 죽음은 언제인가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들로 구원 받은 놀라운 죽음을 살아 있는 지금 오늘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 대신 죽음으로 우리들 죽음은 죽어도 사는 영생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도 믿음으로 언제가 죽을 준비를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우리들 죽음의 시간 장소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르지 주님 앞에 우리들은 믿음으로 날마다 시간
속에서 삶의 축복 속에 생명의 복음을 전하면 주님 나라 잊지 아니하고 늘 생활해야 합니다.
하루의 삶을 마지막 날로 살아가는 축복된 삶으로 살아가면 천국복음 전하는 증인으로 날마다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부자의 죽음은 저주요 슬픔이라.22하
본문성경 눅16;22말씀에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음에는 빈부격차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부자는 요사이 말로 재벌 중에 재벌처럼 호화롭게 생활하며 낭비하며 사치하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 장례식은 너무도 화려하고 웅장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죽음의 저편에 가보니 장사되어 음부에 가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 보았습니다(23). 부자의 형편이 이제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옥에 있습니다. 하데스에 있습니다. 육신은 훌륭한 무덤에 묻혀 있었으나 그의 영은 음부에 있습니다.
본문성경 눅16;22말씀에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부자도 죽었다고 들려줍니다. 이 말은 죽음이 누구든지 공평하며 공정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일에는 공정과 불공정이 혼돈되어 있습니다. 사망 죽음은 가차 없는 절대 공정합니다.
평소부터 부자는 생각하기를 죽음이란 원래 영양실조 당한 거지에게나 올 것이지 나같이 물질이 풍성하여 산해진미를 먹으며 보약을 먹는 자에게야 오겠는가? 하고 호언장담하며 생활한 그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마치 죽음의 천사가 애굽의 처음 난 사람 장자 누구든지 가리지 아니하고 찾아 와 바로 왕의 장자가 함께 죽음을 당하는 심판의 밤 유월절 밤이 있은 것처럼 부자에게도 죽음은 오고 말았습니다.
죽음은 확실히 오는 것이고 날마다 밤이 오고 해마다 겨울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습니다.
부자의 죽음에 대하여 간단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천사가 온 것도 없으며 세상 사람들 조문 자들이 많이 왕래 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죽음에 대하여 전12;1-5말씀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2.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 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부자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아니하고 기억하지 아니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잠간 머물 세상인 것을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영원한 집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기억하지 아니합니다. 자신의 생명이 끝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삶을 살았습니다.
부자의 선택은 겉보기에 좋아 보이나 심한 갈등 속에 살다가 안개와 같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부자 친구 권력자들이 와서 울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저편의 삶은 영원한 저주의 삶이요 불행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요?
전12;6-8말씀에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7.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생명이 귀하고 귀한 생명 줄 은줄이 풀리고 마지막 생명의 줄이 끊어집니다.
자신의 육체 금 그릇이 깨어지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신 육신이 술래바퀴처럼 잘 굴러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깨어져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잊어버리려 매일같이 술과 향락에 빠져 생활하면 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그가 죽어 간 그곳 죽음 저편은 너무 너무 고통스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외면하면 나 자신을 최고로 사랑하면 나를 위하여 사는 삶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생활은 헛되다는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산 삶은 이처럼 비참합니다.
나사로의 선택 거지의 선택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위로 속에 살았습니다.
평안할 때 우리 신앙을 지키지 못한다면 힘들고 어려운 환난 때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지요?
세상에서 육신의 안락과 향락, 그리고 방종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어디 갑니까? 두말할 것 없이 음부 행입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멸망입니다.
세상에서 굳은 마음으로 자비 없이 가난한 사람을 대했던 이 부자는 저 세상에 가서 하나님께 자비 없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어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부자는 죽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러나 죽음은 똑같이 왔습니다. 죽음만은 거지나 부자나 공평합니다. 성경 말씀을 보니까 부자는 장사되었다고 했는데 거지는 어떻게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거지 나사로의 소원은 빨리 죽음 저편을 생각하면 죽음이 가장 복된 것으로 생각하면 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죽음에 장례식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아니했습니다.
나사로의 장례식은 가만니 한 장이면 족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장례식을 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동원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죽음 저편을 생각하면 생활하는 믿음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니 천군천사가 나사로를 데리려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생활을 죽음 저편에서 위로해 주십니다.
부자의 죽음은 화려하고 사람들이 많지만 죽음 저편에서는 고통과 저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죽음 저편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자녀를 가르치면 손자 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마지막 소원이어야 합니다.
이곳 주민들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한 우리들 구령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보시고 죽음 저편에서 갚아 주십니다.
상급으로 채워 주십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 은혜를 입어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 생활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들은 앞서거니 뒤따라 죽음 저편에 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 만날 준비를 잘하면 복음으로 무장하고 생활하고 있는지요?
주님 우리들에게 맡기신 일 땅 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한마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생활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나사로 거지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라.
*둘째로 부자의 죽음은 저주요 슬픔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으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 원하여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 끝날 죽음도 자신이 원하지 아니하지만 하나님 부르심에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실 때 육신은 흙으로 가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들은 죽음을 생각하고 열심을 품고 사랑하고 그의 의를 구하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잘했다 칭찬받아야 합니다. 내세에 나사로처럼 위로받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눅12;5말씀에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상에서 죽어주심으로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습 니다.
죽음 저편에서 웃음으로 기쁨으로 주님 만날 믿음으로 남은 생애 생활해야 합니다.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 하나님나라에서 인정받는 남은 생활 되어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0329도곡교회 김백수 목사
눅16;22두 사람의 죽음 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