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중국전은 한국이 5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것 외에도 중국 축구의 ‘공한증’이라는 화두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중국축구는 지난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26년 동안이나 이어져온 공한증이 단순한 심리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냉엄한 실력차를 보여주는 단어임을 실감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중국 축구인들은 10여년 전부터 브라질에 어린 선수들을 유학시키는 등 선진축구를 체득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필사적인 몸부림과 한달이 넘게 창사 현지에서 한국을 표적으로 진행한 ‘밀봉훈련’, 5만명이 넘는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2-0으로 완패하자 현실을 인정하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3월 3일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중국이 1-0으로 진 뒤 설욕을 벼르던 모습이나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준결승에 진출한 반면 중국은 3전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한국의 심판 매수설을 거론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경기 후 일부 ‘치우미’가 중국 선수들에게는 물병과 북을 내던지며 야유를 퍼부었지만 일반 관중은 한국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 뒤 담담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중국 선샹푸 감독이 ‘한국이 중국 내 한국기업의 도움으로 중국의 훈련장면을 몰래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들어 “정보전에서도 졌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축구인들은 이번 경기가 성인대표팀 간 경기가 아니라 향후 5~10년간의 양국 축구의 성패를 좌우할 23세 이하팀 간 경기였다는 점에 더욱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런 점에서 김호곤 감독이 경기 후 한국 숙소까지 찾아와 자신들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묻는 중국기자들에게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축구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그러나 당장 결실을 봐야겠다는 조급증은 버려야 한다”고 원론적인 대답을 한 것은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지적이었던 셈이다.
이번 승리로 한국축구는 또 하나의 새 역사를 썼다. 자랑스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한국축구도 언젠가 수렁에 빠질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가깝게는 월드컵 4강 이후 최근까지 한국축구가 겪고 있는 어수선함이, 멀게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강자였던 동남아축구의 몰락이 이 같은 진리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