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술이 미국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 알아야 할 몇 가지
한국 술은 세계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일본, 중국, 동남아에는 한국 술이 진출하여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미국에서 한국 술은 어떠한가? 미국에 진출한 한국 술의 현주소를 묻기 전에 먼저 미국의 술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뉴욕 맨해튼은 그 답을 찾기 좋은 지역이다. 맨해튼에 한국 식당이 있지만, 그곳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업하면 생존할 수가 없다.
한국이 그리워 한국 음식이나 술을 찾는 곳이 아니고, 자릿세도 비싸기에 늘 새로운 손님들을 찾아야 하는 곳이다. 맨해튼은 새로운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다문화가 용광로처럼 섞이는 곳이라, 무엇 하나를 고집한다거나 내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차별화된 다양한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 생존 게임에서 한국 술이 살아남는 해법을 찾는다면, 한국 술의 경쟁력은 생겨날 것이다.
우선 뉴욕 맨해튼에 들어와 있는 한국 술이 어떤 종류가 있는지 보자. 소주는 참이슬, 처음처럼, 참소주가 마트나 식당에서 눈에 띈다. 증류식 소주는 화요와 대장부가 있다. 막걸리는 국순당 생막걸리, 그리고 살균된 제품으로 서울탁주의 월매, 보해의 순희가 들어와 있다.
이게 전부다 싶을 정도로 한국 술의 일부가 들어와 있다. 한국 술 회사들이 한인 문화가 더 활기찬 LA를 더 좋은 시장으로 보는 것도, 뉴욕에서 한국 술을 찾기 어려운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뉴욕 맨해튼에서 통하면, 다른 곳에서도 통하니, 이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
뉴욕의 술집에서 눈에 띄는 것, 바
뉴욕의 음식점이나 술집에 들어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Bar)다. 하물며 뉴욕 한식당이라 하더라도 입구에 바(Bar)를 가지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긴 탁자의 바(Bar)가 미국에서는 술집의 대명사다. 미국 문화에서 식당은 레스토랑(Restaurant)이고 술집은 바(Bar)인 셈이다.
▲ 뉴욕 맨해튼의 한 바앤그릴, 길가쪽으로 바가 있다.
우리의 주점과 흡사한 공간 개념은 레스토랑 앤 바(Restaurant & Bar)나, 바 앨 그릴(Bar & Grill)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릴(Grill)은 고기를 통째로 구운 바비큐가 나오는 식당이어서, 자연스럽게 술이 짝을 이룬다.
영어로 옮기기 어려운 술 문화의 개념 하나는 안주(按酒)다. 안주는 고작해야 술과 함께 나오는 간편한 음식(snack served with alcoholic beverage) 정도로 통역된다. 어쩌면 와인의 페어링(pairing)이 안주의 개념과 가까워 보인다.
영어권에서 안주 개념이 없다는 것은 한국식 안주 문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술 문화는 안주 중심이고, 미국의 술 문화는 술 중심이다. 한국에서는 치킨이나 오징어 안주에 맥주를 마시지만, 미국은 맥주를 안주 없이 잘도 마신다.
미국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한국인들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다. 와인 한두 잔이나 맥주 한두 잔을 곁들이는 정도이지, 술을 먹으려고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이때 와인이나 맥주는 한국 음식의 국물이나 찌개 역할을 하는 정도다.
한국의 주점은 술보다 안주 값이 비싸고, 안주에 훨씬 더 큰 비중이 실린다. 미국의 바에서는 술을 마시는데 음식을 시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식은 레스토랑에서 먹고, 술은 바(Bar)로 마시는 분담이 이뤄져 있다. 위스키나 보드카를 병째 시켜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는 문화가 없다.
잔술을 시켜 놓고, 대화하고 노닥거리면서 안주 없이 마신다. 대낮부터 차처럼 즐기는 칵테일에는 더더욱 안주가 없다. 그래서 한국의 주점은 어떤 안주가 있느냐가 중요하고, 미국의 바(Bar)는 어떤 술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한국 주점에 한 두 회사의 소주와 맥주가 점령하고, 다양한 술이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주점과 미국의 바(Bar)를 비교했을 때, 또 다른 큰 차이는 한국은 앉아서 마시고, 미국은 서서 마신다는 점이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고, 미국인들은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간다. 우리는 온돌 바닥을 덥혀 지냈고, 미국인들은 벽난로로 공기를 덥혀 지냈다.
우리는 밥과 국물 찌개를 개다리소반에 올려놓고 먹었는데, 미국인들은 그릴에 선 채로 바비큐를 구웠다. 쪼그리고 밭농사 하고 허리 굽혀 논농사 하던 농경민족과 양치고 사냥하는 유목민족의 차이가 주점과 바의 문화 차이를 만들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 뉴욕 맨해튼 첼시에 있는 스타벅스에는 커피숍과 바가 공존한다.
미국의 바(Bar) 문화를 좀 더 들여다보면, 바는 선 채로 팔을 얹힐 수 있을 정도여서 일반 탁자보다는 높다. 바텐더를 바라보고 바 의자에 앉게 되면,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게 된다. 바는 술잔 정도만 올려놓을 수 있는 정도로 좁기에, 큰 접시의 음식을 올려놓기에 옹색하다. 바 의자는 팔걸이가 없어서 취하면 추락의 위험이 있다. 바 의자에 앉아서는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게 된다.
바(Bar) 의자가 비어 있더라도 선 채로 술잔을 들고 두셋씩 짝을 지어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바가 붐비고, 바 의자에 손님들이 모두 앉아있더라도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와 술을 마실 수 있다. 이때 바는 낯선 사람과도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사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선술집이 있지만, 간단히 술 한 잔 마시고 돌아서는 곳이라는 정서적인 느낌만 담고 있지 대부분 앉아서 술을 마신다.
선 채로 마시게 되면 파티장처럼 새로운 사람과 인사할 수 있지만, 앉아서 마시게 되면 바로 옆 사람 하고만 인사 나눌 수 있다. 미국의 바는 파티 공간처럼 열린 구조이고, 한국의 주점은 지정석이 있는 닫힌 구조다. 미국의 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대형 TV 화면이고, 그곳에선 미식축구, 프로농구, 프로야구 경기가 격렬하게 펼쳐진다. 바에 앉아 요란한 스포츠 중계를 함께 보면서 옆 사람과 고개 돌려 대화할 수 있는 곳이 바(Bar)의 문화다.
한국과 미국의 술 문화의 차이는 칵테일에서 엿볼 수 있다. 뉴욕에는 낮에도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우리식의 낮술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레스토랑이나 바에서는 물 값을 받는다. 스틸 워터(Still water), 스파클링 워터(Sparkling water), 커피, 칵테일 중에서 음료 하나는 선택하게 되는데, 물 대신에 좀 더 색깔 있고 특별한 음료로 칵테일이 선택된다.
뉴욕에서 인기 있는 칵테일로 미모사가 있는데, 이는 오렌지 주스 30㎖에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 120㎖를 혼합한 것이다. 과일 신맛이 돌면서 탄산감이 있어서 브런치와 함께 마시기 좋은 저알코올 탄산음료다.
미국에서는 알코올 24도를 경계로 나뉘는 저도주(soft liquor)와 고도주(hard liquor)의 영역이 분명해서, 맥주나 와인은 저알코올로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일반 레스토랑에서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24도가 넘는 고도주는 주류전문판매장에서만 팔고, 면허를 가진 전문 바에서만 마실 수 있다.
뉴욕에서는 낮술이라 하더라도 물과 커피를 대신하는 칵테일이나, 식사 때 곁들이는 한 잔의 맥주나 와인 정도에 머문다. 이는 맨해튼 첼시의 스타벅스 매장에 커피숍과 바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위스키나 보드카를 바탕으로 한 칵테일이나 잔술 문화가 펼쳐진다.
한국 술이 세계로 나가려면
칵테일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한국의 증류식 소주인 안동소주나 문배주나 진도홍주 따위의 술들도 뉴욕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이때 소비자의 인식보다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뉴욕은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곳이라, 바텐더들을 대상으로 한국 술 마케팅을 하면 그 시장에 점진적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그래서 나온다.
한국 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미국에 도달해 있지만, 한국의 술은 미국에 미처 도달해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술을 미국에 수출하려면, 미국에 있는 수입업자가 한국 술 샘플을 미연방 재무부 산하 주류담배세금무역국(TTB)에 보내 수입 승인을 받아야 한다.
TTB 승인을 받아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한국 술 업체는 희석식 소주회사, 대형 맥주 회사를 제외하면, 꾸준하게 수출하고 있는 곳으로 국순당, 서울탁주, 가평 우리술, 배상면주가, 화요, 문배주, 한국애플리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아직은 한인 교포의 유통망에 머문 경우가 많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통은 한계가 분명하다. 미국 전역에 한국 술을 팔기 위해서는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갖춘 회사와 손잡아야 하는데, 아직 그 구조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회사를 찾기가 어렵다.
한국 술이 미국 사회에 스며들려면, 술과 음식, 주점과 바, 잔술과 병술, 칵테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이들 문화가 때로 더 차이나게 때로 과감하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국 술의 세계화도 더 쉬워질 것이다.
▲ 뉴욕 맨해튼의 한식당 돈의보감 입구에 있는 바.
오마이뉴스 허시명 기자
첫댓글 한국의 술도 세계화를 해야 더
발전할수 있습니다.스토리텔링마케팅이 필요합니다.
조선의 왕족이 사랑한술 백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