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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일교포 2세 사업가
신 반장은 그 다음으로 후론트 담당 직원을 마났다.
"어제 밤 12시가 다 돼서 4층의 1407호실 여자 손님
과 함께 들어오시는 걸 봤습니다."
"1407호실 여자 손님? 새벽에 떠났다는 여자손님 말
인가요?"
"네."
"그 여자는 언제 투숙했지요?"
피살된 한기훈을 중심으로 하나씩 형성되기 시작하는
망(網)을 뚜렷이 의식하며 신 반장이 물었다.
"23일 정오가 좀 지나 투숙했습니다."
"죽은 한기훈 씨와 처음부터 어울렸던가요?"
"그건 모르겠어요. 어제 밤 자정이 다 돼 두분이 함
께 들어오길래 그저 그렇게 됐나보다 생각 했지요."
후론트 직원은 전혀 흥미로울 것이 없다는 듯한 기색
이었다.
"모닝콜을 부탁했던 시간은?"
"12시가 거의 다 됐었습니다."
"그의 방인 1521호실에서 전화를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1407호 여자손님은?"
"1521호실 손님보다 5분쯤 전에 부탁을 해왔습니다."
"1407호 자기 방에서 였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각기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는 말이 되는데."
신 반장은 조금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정리된 그대로이
던 1521호실의 침대를 떠올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같은 5시에 깨워 달라고 부탁했다? 아침
배로 같이 떠나려고 그랬을까? 아니지. 같이 떠날
계획이었다면 각각 부탁할 필요 없이 한 사람이 부탁
해 일어난 다음 다른 사람을 깨워 같이 떠났을 게 아
닌가 그보다 같이 떠날 계획이었다면 그 여자가 한
기훈의 살해사실을 당연히 알게되었을 텐데, 그렇게
됐다면 그 여자가 한기훈을 죽이고 도망갔을 가능성
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래, 두 사람이 같이 떠날
계획이었을 거라는 추측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워! 가
만있자 그렇다면'
신 반장은 왼손으로 턱을 고인 채 골똘히 생각을 굴
려갔다. 이때,
"아, 참!"
하는 소리와 함께 마주 앉아있던 후론트 직원이 무릎
이라도 칠듯한 기세로 입을 열었다.
"새벽 2시가 넘어 다시 한번 전화가 걸려 왔어요."
"누구, 한기훈 씨가 말입니까?"
생각에 잠겨있던 신 반장이 급하게 물었다.
"네, 신호가 울리길래 이런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인
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전화기가 잘못됐나 생각하고, 그런 일이 가
끔 있거든요, 내려 놓으려 하는데 저쪽에서 딸까닥 하
고 끊는 소리가 나잖아요?"
"저쪽에서 끊는 소리가 나요?"
"네에, 뭐 부탁을 하려다 시간이 너무 늦어 미안해
그냥 끊었나 보다 하고 흘러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좀 이상해서."
후론트 직원은 갸웃한 머리 그대로 눈으 깜빡였다.
"새벽 2시가 넘어 전화를 하고서는 말도 없이 끊어
버렸다. "
신 반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늘게 뜬 눈으로 허
공을 응시했다.
24일 오후 6시부터 25일 오전 9시까지 야간근무를 맡
았던 후론트 직원으로부터는 더 이상의 단서가 되 만
한 얘기가 없었다.
새벽에 떠난 1407호실의 여자 투숙객이 서울 목동에
사는 32세된 회사원 '서윤희' 라는 것을 체크한 신 반
장은 송 형사를 불렀다.
"호텔서 불렀다는 택시 회사를 찾아가 그 운전사부터
만나봐야겠어."
그 운전사로부터 서윤희를 내려준 장소를 확인하면 그
녀가 몇 시 배를 타고 어디로 갔는지는 쉽게 알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다녀 오겠습니다."
송 형사가 후론트 직원으로부터 서윤희의 인상착의를
대강 듣고 호텔 밖으로 나가자 신 반장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시계는 오전 8시 35분을 가리키고 있
었다. 서둘러 일을 끝내고 경찰서로 돌아가 사건보고
서부터 작성해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신 반장은 박 형사와 함께 투숙객들을 체크하고 있는
강 형사를 불렀다.
"한기훈의 본가 주소, 알아 놨겠지?"
"네, 문수리 던데요. 그의 부모님이 그곳에서 과수원
을 하고 있는데 제주도 여행 중이라 지금 안 계시답니
다."
"문수리?"
문수리는 D시에서 내륙 쪽으로 17 쯤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었다.
"그런데 한기훈의 부인 오유란이 두어달 전부터 그곳
에 내려와 있다는데요."
강 형사가 상당히 흥미있다는 투로 말했다.
"부인이 두어달 전부터 내려와 있다고?"
반문하는 신 반장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렇다면 한기
훈의 이번 방문은 십중팔구 업무차가 아닌 크리스마스
휴가일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부인이 있응 고향집엘 가지않고 이곳
호텔에 묵었을까?'
신 반장은 들고있던 볼펜으로 수첩을 툭툭 두들기며
아까부터 풀리지 않고 있던 의문을 다시 한 번 굴려
보았다.
"그런데 그 부인이 어젯밤 다 늦게 전화를 받고 나간
후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가 형사가 한가지 사실을 더 보탰다.
"누구에게 들었어?"
신 반장의 얼굴에 심상찮아 하는 빛이 짙게 떠올랐다.
"그 댁 친척이라고 하던데 아마 가정부 일을 맡고 있
는 것 같았습나다."
"강 형사. 지금 곧 문수리로 가 죽은 한기훈과 그 부
인에 대해 자세한 내용들을 알아 와야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황이 생길 때마다 보고하는 것 잊지 말고."
문을 나서는 강 형사에게 신 반장이 당부했다.
그는 이어 투숙객들을 만나보고 있는 박 형사를 불러
들였다.
"어느 정도 진행됐지?"
"거의 다 끝나갑니다."
박 형사가 비로소 숨돌릴 틈을 얻었다는 듯 담배를 피
워 물었다.
"건질만 한 게 있어?"
"현재로서는 별로."
박 형사가 심드렁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것 참!. 하여튼 체크가 끝나는 즉시 '강'이라는
오 의원 지구당 사무국장을 만나보도록."
9시 30분까지는 경찰서로 들어가 있을테니 수시로 연
락을 하라는 지시를 끝낸 신 반장은 1518호실로 문영
도를 아갔다.
"문영도 씨지요? D경찰서 신 반장입니다."
문을 연 사내의 아래위를 빠르게 훑어보며 신 반장은
일순 주춤했다. 재일교포 사업가라기엔 예상 밖으로
젊고 탄력있어 보이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제가 문영도 입니다만."
약간 혀가 짧은 듯한 사내의 말소리를 들으며 신 반장
은 교포 2세일 거라고 대충 단정지었다.
"저에게 볼 일이라도."
교포 특유의 발음이긴 했지만 그는 모국어를 퍽 자연
스럽게 구사하고 있었다. 상당히 철저한 가정교육을
받은 모양이라는 생각을 얼핏 하면서 신 반장은 다시
한 번 문영도르 살펴 보았다.
검의틱틱하고 거칠어 보이는 피부와 각진 턱, 굳게
다물은 입술이 완강해 보이는 문영도는 40대 중반쯤으
로 보였다. 얼굴에 비해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이 균형
잡힌 몸집이 20대 젊은이처럼 날렵하고 탄력이 넘쳐보
이는 그는 얼핏 사업가라기보다 숙련된 스포츠맨을 연
상케 해주었다. 그 눈빛 또한 형형하게 빛난다는 표현
이 어울릴 만큼 예리했다. 전체적으로 빈틈이 없어 보
이는 인물이었다.
돈은 많은지 모르겠지만 총지배인 정두호가 표현했듯
이 젊잖은 신사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갓
을 빠르게 접으며 신 반장은 문 앞으로 한걸음 다가섰
다.
"1521호실에 투숙한 한기훈 씨 피살소식을 들으셨지
요?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 네. 들어오십시오."
문영도가 옆으로 비켜서며 신 반장을 들어오게 했다.
"방이 아주 좋군요!"
들어 선 신 반장은 큼직한 더블 베드가 중앙에 자리한
크고 호화로운 내부시설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한 마디
했다. 1518호실은 죽은 한기훈이 쓰고 있던 1521호실
보다 훨씬 넓고 호화로웠다.
"앉으시지요."
문영도가 침착한 자세로 신 반장에게 안락의자를 권했
다.
"죽은 한기훈 씨에게 방을 빌려 드렸다구요?"
자리에 앉은 신 반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문영도는 일본산 담배를 꺼내 신 반장에게 권하고 자
신도 피워물며 대답했다.
"두 분이 그전부터 잘 아시는 사이 입니까?"
"네, 지난 10월달에 한국에 왔을 때 인사를 했습니
다."
"지난 10월달에요?"
"네, 강형준 씨라고 자한당(自主韓國 ) 오재윤 부총
재 지구당 사무국장으로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 소개
로 알았습니다."
"아, 강형준 씨요?"
신 반장은 그제서야 명확하게 떠오르는 강형준의 이름
을 기억해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얼마 전서부터 사업관계로 알게 된 사람입니다."
"강형준 씨와는 사업관계이시고 그렇다면 죽은 한
기훈 씨와는 어떤 관계이시죠?"
문영도는 나무랄데 없는 모국어 구사에 신 반장은 내
심 감탄하며 질문을 계속했다.
"무슨 뜻입니까?"
문영도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죽은 한기훈 씨가 사용한 방값이 하루에 4만 8천 원
이라지요?"
그런 호의를 베푸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것 같
아서입니다."
"글쎄요 이유를 굳이 대자면 강형준 씨의 친구분
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문영도의 얇은 입술에 애매한 미소가 베어 나왔다.
"그런 인연 때문이시라 ?"
신 반장의 가늘은 두 눈이 납들할 수 없다는 빛을 역
력하게 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일에만 열중해 있는 듯 보였다.
"설명을 꼭 해야합니까?"
신 반장의 눈 빛이 부담스러운지 문영도가 한참만에야
먼저 말을 꺼냈다.
"해주셔야 합니다."
"별다른 뜻이 없는데도 말입니까?"
"사람이 살해됐습니다. 피살 예상시간 전후로 피살자
와 관계된 모든 상황을 저희들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
다."
"좀 복잡합니다."
"상관 없습니다."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닌 듯한 인상처럼 딱딱한 어
투이긴 했지만 문영도는 결국 자신이 한기훈에게 호텔
방을 제공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24일 오후 6시경, 짧은 겨울해가 스러지고 창 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을 때 서울로부터 그에게 전화가 걸
려왔다. 건축설계사무소를 갖고 있는 1급 건축사 윤상
진(尹相鎭) 이었다.
문영도가 이곳 사업계획을 위해 잠정 선정한 건축사
인 윤상진은 이날 오후 이곳에 내려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25일과 26일 이틀간 인근 주변들을 살피
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윤상진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내일 오후에야 내려오겠다는 약속 취
소의 전화 였다.
감이 별로 좋지 않은 전화기 속에서 거듭 사과의 말
을 하는 윤상진의 전화를 끊은 다음 문영도는 곧바로
강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다른 계획이 없으면 저
녁이나 함께하자는 문영도의 제안에 강형준은 고맙다
면서 곧바로 호텔로 가겠노라 대답했다.
20분 후쯤 문영도는 1층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에는
크지 않은 키와 균형잡힌 몸집에 잘 어울리는 자주색
콤비차림의 강형준이 이미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
다. 그의 곁에 청년부장 정석철이 함께 서 있었다.
"오늘 오기로 했다는 건축설계사는 몇 시에 도착합니
까?"
강형준이 내미는 문영도의 손을 마주 잡으며 인사말로
물어왔다.
"급한 일이 생겨 오늘은 못 내려오고 내일 온다는군
요."
"크리스마스인 데도 바쁜 모양이지요?"
"글세 말입니다."
"예약해 두신 방은 어떻게 취소를 하셔야겠군요?"
"지금 시간에 취소하기도 그렇고, 내일 온다니깐 그
냥 놔주지요, 뭐."
문영도는 별로 대수롭잖다는 투로 말하더니 이내,
"그것보다 어디 멋진데 있으면 안내를 해요. 날도 날
이고 하니 내 근사하게 한턱내고 싶소."
하고 제안했다.
"교외로 나가면 좋은 곳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
같은 날 예약도 안 하고 가기가 좀."
문영도의 의향을 살피듯 주춤거리던 강형준의 시선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향해갔다. 아는 사람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넙춘 곳은 밖의 어둠으로부터 마
악 호텔의 회전도어를 밀고 들어서는 키가 큰 사내에
게서 였다.
회색의 후란넬 양복이 잘 어울리는 그는 희고 단아한
얼굴이 돋보니는 드물게 잘생긴 젊은 사내였다. 사내
의 손에는 작은 서류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한기훈 이
었다.
"저,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강형준이 문영도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후론트를 향해
가는 기훈에게로 급히 다가갔다.
"아니, 기훈이 자네."
형준의 부름에 사내는 몸을 돌렸다.
"과수원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형준의 물음에 기훈은 씁슬한 표정을 지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 저 사람, 한 비서관 아닙니까?"
형준과 기훈의 댓거리를 보고있던 문영도가 곁에 서
있는 정석철에게 물었다. 지난 10월 한국에 왔을 때
형준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그도 기훈을 알
고 있었다.
"네, 그렇군요."
석철이 별로 호감을 보이지 않는 낯으로 짧게 대답했
다.
"여긴 언제 내려왔습니까?"
"오늘 오후에 내려 왔다고 조금 전에 사무실에 들렀
더군요. 문수리 과수원에 간다고 했었는데."
"문수리 과수원?"
"한 비서 고향이예요. 그의 부모가 거기서 과수원을
하는데 두어달 전부터 그 부인이 정양차 내려와 있다
나 봐요. 부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온 것
같던데 호텔엔 웬 일인가?"
석철이 대강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강형준이 한기훈과
함께 문영도와 정석철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문 사장님, 지난 번에 인사 나누신 한 비서관 기억
하시지요?"
형준이 문형도에게 자신을 새삼 소개하는 곁에서 기훈
은 모여선 세 사람을 살피듯 둘러 보았다.
"기억하고 말고요. 정말 반갑습니다."
문영도가 미소와 함께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기훈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본댁이 근처 어디시라던데 여긴 어쩐일로?"
문영도가 관심있게 물었다.
"내일 오후에 올라 갈건데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을
예정이라는군요."
강형준이 곁에서 설명했다.
"여기서 묵을 예정이라? 예약은 하셨습니까?"
"예약은 안했지만 방이야 있겠지요."
기훈이 낮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일 오후에 떠나신다고 하셨지요?"
문영도가 다시 물었다.
"네."
"그럼 이렇게 하시면 되겠네요. 제가 마침 제 옆방을
하나 예약해 둔 게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방을
쓰시지요."
"네에? 방을요?"
문영도의 제의에 기훈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이 반문했다.
"아, 네. 사업관계로 오늘 서울서 사람이 오기로 했
는데 사정이 생겨 내일 오후에나 오겠다는 연락이 왔
지 뭡니까."
"아 참, 그렇군요. 그 방을 쓰면 되겠군요.'
강형준이 잘됐다는 듯 거들었다.
"아,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기훈이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사양했다.
"어차피 예약이 된 겁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시다
면 사양하지 마십시오."
문영도는 너그러운 미소를 띄우며 한기훈의 대답도 기
다리지 않고 후론트로 가 1521호실의 키를 받아다 그
에게 내밀었다.
"바로 제 건너편 방입니다. 올라가셔서 가방을 두고
내려 오시지요. 마침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던 참인데
함께 가십시다."
문영도는 엉거주춤 키를 받아 든 한기훈의 어깨라도
툭툭 쳐주듯 붙임성 좋게 말했다.
"아, 저는 할 일이 좀 있어서. 그럼 방은 고맙게 쓰
겠습니다."
한기훈은 문영도에게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으나
표정은 조금도 고마워 하는 빛이 아니었다.
"그럼 좀 있다 술이나 같이 한 잔 하시지요."
문영도는 그런 한기훈의 기색을 읽지 못한 듯 다시 제
의했다.
"감사합니다. 시간을 맞춰보도록 하지요."
마지못한 듯 그렇게 약속한 기훈이 그들에게서 한발짝
물러서자 형준이 곧 그를 붙들었다.
"저녁 먹은 후 방으로 연락하면 되겠나?"
"아냐. 2시간 후 커피숍에 있겠네."
기훈은 그 말을 끝으로 가벼운 목례와 함께 큼직한 걸
음걸이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문영도는 그런
그에게서 어딘지 강형준을 무시하는 듯한 내음을 어렴
풋이나마 맡아낼 수 있었다.
"저 친구, 제 아내에게 문 밖에서 쫓겨난 모양이군!"
베푼 호의에도 불구하고 냉냉한 태도를 풀지않고 있던
한기훈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형준이 엘리베이터 속으
로 사라지는 그의 등뒤에 대고 한마디 덧 붙였다.
"그래, 함께 술을 하셨던가요?"
문영도의 설명을 듣고 난 신 반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강 국장이 저녁 8시경 커피숍으로 갔는데
아는 여자와 함께 나가 더랍니다. 그래 강 국장, 정
부장과 함께 나이트클럽에서 새벽 2시 넘어서 까지 술
을 마시고 놀았지요."
"나이트 클럽에는 몇 시서부터 계셨습니까?"
"12시 좀 못 돼서부터 였을 겁니다."
"그 전에는요?"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양주를 한 잔
씩 했습니다. 거기서 한 비서관과 함께 술을 마실 생
각이었지요.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가버렸다는 얘길
들으니깐 기분이 좀 좋질 않더군요. 그래 내 방으로
올라 왔는데 강 국장하고 정 부장이 그런 내 기분이
마음에 걸렸던지 돌아가지 않고 함께 따라오질 뭡니
까? 그래 내 방에서 함께 고스톱 인가 뭔가 하는 화투
를 했습니다. 그것도 싫증이 나자 정 부장이 나이트클
럽에서 밤을 세우는 것도 괜찮다고해 그곳으로 옮긴
겁니다."
문영도의 설명은 상당히 장황했다.
"그럼 세분이서 새벽 2시까지 내내 함께 계셨습니
까?"
"네, 그렇습니다."
"5층 담당 종업원에 의하면 12시 40분경 강형준 씨가
1521호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하던데요?"
"아, 그랬을 겁니다. 강 국장은 사실 어제 저녁 내내
자신을 무시하는 듯했던 한 비서관의 태도 때문에 매
우 언짢아 햇었습니다. 아무래도 만나봐야 겠다면서
밤 11시 넘어서부터 전화를 몇 번 걸었지만 통화가 안
되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그예 올라갔다 오겠다고 나
갔다 온 적이 잇습니다."
"얼마 정도 걸렸었나요?"
"한 20분 정도? 네. 아마 그 정도 됐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침식사 전 이신 것 같은데 시간을 너
무 많이 빼앗은 것 같습니다."
문영도의 얘기를 들으며 간간히 수첩에 메모를 하기도
하고 몇 가지 되묻기도 하고 하던 신 반장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갑자기, 그리고 그렇게 험하게 죽었을 까요?"
문영도는 내민 신 반장의 억센 손을 잡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우울하게 물었다.
"글쎄요. 수사를 해보면 알게 되겠지요."
"아 참!"
손잡이를 돌리려던 손을 내린 신 반장이 생각났다는
듯이 돌아섰다.
"언제 출국하시지요?"
"28일, 그러니깐 3일후 오전 11시경 출발할 겁니다.
김포에서 오후 5시 비행기를 탈 예정이거든요."
"그러십니까? 도움 말씀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는
데."
신 반장이 잠시 생각하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여기 있을 때는 언제든지."
"언제쯤 다시 나오십니까?"
"정확하게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대강 두어달 후쯤
다시 나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로?"
"이곳에 일을 하나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네에."
신 반장은 골똘한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신 반장은 이제 그만 돌아가기
를 기다리는 듯이 서있는 무영도에게 서둘러 작별을
고하고는 복도 밖으로 걸어나갔다.
야당 중진 국회의원인 오재윤 의원의 비서관이자 사
위인 한기훈의 피살 사건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킨 가
운데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야당 중진 오재윤 의원 비서관 피살(被殺)."
"X-마스이브 호텔서 살인극."
25일자 석간신문들은 하나같이 사회면 톱으로 이 사
건을 대서특필했다.
"아내 만나러 귀향한 남편, 호텔서 시체로 발견."
"금품 등 피해품 없어 경찰 원한관계에 수사 초점."
흑판(黑板)에 백발(白髮)로 떠낸 컷과 함께 주먹만큼
씩 큰 활자로 가로 세로 제목을 몇 줄씩 뽑아 낸 신문
들은 죽은 한기훈이 오 의원의 비서관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맏사위로 그의 후계자임을 알만한 사람드른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들을 써 제꼈다. 그에 덧붙여
오 의원의 맏딸인 오유란이 심한 신경쇠약증으로 두달
전부터 시골에 있는 시댁에서 정양 중이라는 사실과
함께 오유란이 사건당일인 24일 밤부터 행방을 감추고
있다는 것까지 시시콜콜 캐내고 있었다.
검찰은 세인들의 관심도에 맞춘 듯 기동력을 발휘, D
경찰서에 임시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노련한 형사사건 해결자로 이름 높은 이항섭(李杭燮)
검사 지휘하에 관할인 D경찰서 수사과장 현호식(玄鎬
植) 경정을 책임자로, 수사계장 김상범(金相範) 경감,
형사 5반장 신영조 경위와 형사 5반 소속의 박일 경
사, 강민우 경장, 민이철(閔利喆) 경장, 송도섭 경장,
그리고 한창혁(韓昌赫) 순경 등 4명의 형사들로 구성
된 수사 전담반도 편성되었다.
25일 새벽 5시 10분경 호텔 앞에서 서윤희를 태우고
간 택시운전사를 만나본 결과 그녀는 예상대로 호텔에
서 10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는 D어항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새벽 5시 30분을 전후로 D어항을 출발한 여객선
의 승객명단을 체크한 송 형사는 서윤희가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한 여객선 갈매기호로 미호도로 간 것을
알아냈다. 미호도는 D어항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이었다.
송 형사는 그녀가 새벽 첫배로 미호도엘 갔다가 당일
오후 배로 다시 D시로 나왔을 가능성을 생각해 25일
오후 1시부터 도착하는 미호도 경유 여객선을 하나씩
꼬박 지켰다. 그러나 수사본부가 설치된 오후 5시까지
어항에 도착한 미호도 경유 여객선 5척에 서윤희는 타
고 있지 않았다.
송 형사의 보고를 받은 신 반장은 마지막 배까지 한
척도 놓치지 말고 지키도록 지시했다. 서윤희가 만약
26일 오전 배에까지도 돌아오지 않을 경우, 미호도에
있는 경찰파견소로 연락해 26일 오후까지 귀항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계획도 일러 주었다.
송 형사와 통화를 끝낸 신 반장은 곧 현장에서 챙겨
온 한기훈의 수첩과 지갑, 검정 서류가방을 끌어 당겨
한 가지씩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이미 살펴
본 것 들이기는 했지만 자세히 체크하고 분석해 보지
는 못했었다.
수십 개의 전화번호가 기록된 손바닥만한 크기의 감
색 수첩에는 군데군데 시간 약속과 장소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짙은 밤색의 길쭉한 지갑 속에는 안쪽으
로 10만 원 권 자기앞 수표 2장과 만 원권 5장, 천 원
권 3장이 들어 있었고 겉쪽에는 국회의원 비서관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 운전면허증 크레디트 카드, 그리고
그의 명함 5장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검정 서류가방 속에는 시사종합월간지(時事綜合月刊
誌) 한 권과 얇은 서류봉트, 스킨로숀 등 남성용 화장
품 3종과 면도기, 빗 등 자잘한 생활잡화들이 들어 있
었다. 얇은 공간 사이로 칸막이 구석구석까지를 뒤집
어내듯 빈틈없이 살핀 다음 오재윤 의원 사무용으로
만들어진 서류봉투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서너 장쯤
이 철(綴)된 서류가 한 통 들어 있었다. 그것은 한인
범(韓仁範)이라는 사람이 호주(戶主)로 된 호적등본이
었다. 그것은 호주인 한인범을 부(父)로, 김정님(金貞
任)을 모(母)로 1950년 2월 17일에 태어난 한기훈의
호적등본이었다.
웬 호적등본일까? 하는 생각으로 발행일자를 보니 바
로 하루 전인 12월 24일자 였다. 그렇다면 한기훈이
어제 고향에 가 이 서류를 떼 왔다는 말이 된다. 그날
밤 안으로 죽음을 당할 자신의 운명을 꿈에도 예상 못
하고 뭔가 일을 위해 서울서 이곳까지 와 호적등본을
뗀, 이제 겨우 35세 된 젊은 남자의 죽음이 진한 애잔
함으로 가슴에 와 닿음을 신 반장은 문뜩 느꼈다.
그는 한기훈의 출생사실과 가계(家系)가 기록딘 호적
등본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한인범이 호주라는 것과 그가 20세 되던 해에 김정님
과 혼인한 사실이 기록된 겉장에는 이어 조강지처인
김정님이 1952년 사망하고 4년 후인 1956년에 이향님
이라는 여자와 재혼을 한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겨우 세 살 때 생모를 잃었군!"
중얼거리며 신 반장은 겉장을 넘겼다. 겉장까지 모두
석 장으로 돼 있는 그 호적등본은 읽어가던 신 반장은
죽은 한기훈이 한인범의 하나밖에 없는 무녀독남 외아
들임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그 부친인 한인범도 무녀
독남 외아들임을 그 호적등본은 기록해 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손(孫)이 귀한 집안의 독자 아들 한기훈ㄴ이
단 한 명의 소생도 없이 죽음을 당했다는 건 곧 그 집
안의 대(代)가 끊겼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 참!'
결코 예사로운 죽음이 아닌 듯 싶은 한기훈의 죽어
널브러진 모습을 떠올리며 신 반장은 왠지 가슴이 답
답해 옴을 느꼈다.
언짢은 물건을 치우듯 한기훈의 호적등본을 한쪽으로
밀어놓은 신 반장은 그의 차 설합에서 꺼내온 또하나
의 봉투 속에 담긴 서류를 꺼냈다. 그것은 푸른빛의
청사진까지 맨뒷부분에 종이접기하듯 깨끗하게 접혀져
붙은 '국토개발계획서'였다.
'85년 충청남북도 개발계획서'라는 제목이 붙은 두툼
한 서류에는 삽교호와 아산만, 대청호, 그리고 서행안
지역들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발전가능성 등이 문제점
들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85라고 표시된 연도를 보면 최근에 작성된 계획서인
것 같았다. 국회건설분과 위원장의 비서관이 갖고 있
을 만한 서류였다. 별다른 느낌없이 밀쳐든 호적등본
위로 올리면서 신 반장은 얼핏 상당히 중요한 서류같
은데 왜 서류가방이 아닌 차의 설합에 넣어뒀을까? 하
는 의문이 지나갔다. 유류품 목록 위에 '85 충청남북
도 개발계획서'(승용차에서 발견)이라 써넣은 다음 신
반장은 감색 수첩을 앞으로 끌어당겨 앞장서부터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1월 1일부터 날짜별로 칸이 그어진 수첩에는 별다른
기록없이 어쩌다 드문드문 약속시간과 장소들이 메모
되어 있었다.
3월 4일 P.M 7시 리버사이드, 5월 27일 A.M 10시, 6
월 2일 12시 롯데, 9월 15일 P.M 3시 전화, 10월 1일
P.M 7시 프라자, 10월 29일 전화 등 몇 개가 급히 흘
려 쓴 글자로 기록돼 있었다. 11월 들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었으나 12월로 접어들면서는 상당히 많은 칸
에 메모들이 되어 있었다. 12월 7일 P.M 2시 전화, 11
일 P.M 7시 조선, 12일 D시, 15일 D시, 10일 D시 전
화, 23일 D시 전화, 24일 D관광호텔 P.M 7시, 이런 기
록들이 되어 있었다.
뭔가 잡히는 듯한 빠른 느낌에 신 반장은 12월 들어
서의 메모를 다시 한 번 훑어내렸다.
'12일 D시, 15일 D시, 19일 D시 전화, 23일 D시 전
화, 24일 D호텔 P.M 7시' D시로 전화를 한 것인지 받
은 것인지, 아니면 간다는 것인지 온다는 것인지 도시
종잡을 수 없는 D시 관계 메모들이 12일부터 24일까지
도합 다섯 번에 걸쳐 메모가 돼 있다는 것을 신반장을
곧 알아차렸다.
'이것 봐라!'
앞에 돼 있는 메모들과는 다른 형식으로 기록된 12월
12일부터의 메모들을 두 번 세 번 훑어내리는 신 반장
의 입가가 가볍게 긴장했다.
24일 D호텔 P.M 7시
12일부터의 메모를 한동안 어내리던 신 반장의 시
선이 마침내 24일 메모란에 멈춰졌다.
'P.,M 7시라면?'
24일 오후 7시라면 사건 추정 시간인 25일 오전 1시
서부터 6시간전이 된다. 그렇다면 한기훈은 죽음을 당
하기 바로 얼마 전인 24일 오후 7시 D관광호텔에서 누
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는 가설(假說)을 설
정 할 수가 있게 된다.
'가만 가만 그렇지. 24일 오후 8시 한기훈이 어
떤 여자와 호텔을 나가더라고 했었지!'
신 반장은 퍼뜩 24일 오후 8시 한기훈을 만나러 커피
숍에 갔던 강형준이 혼자서 돌아 왔더라는 문영도의
말을 떠올렸다. 그 여자는 24일 자정 가까이 한기훈과
함께 호텔로 돌와왔다던 1407호 투숙객 서윤희가 틀림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기훈의 수첩에 메모된 24일 D호텔 P.M 7
시는 그 여자와의 약속이란 말인가?"
신 반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현재로서는 그 여자와의 약속이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4개의 메모들은 무엇이란 말
인가?
신 반장은 이때 죽은 한기훈이 기혼 남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서울 목동에 사는 서윤희라는 여자가 미혼
녀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32세라는 나이로 봐
십중팔구 기혼녀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들 두 사람
이 24일의 약속을 위해 몇 번씩 연락을 하고 만나 계
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12일부터 24일까지 계속되던 한기훈 수첩의 너댓 번에
걸친 D시 관계 메모가 그런대로 설명이 되는 것 같았
다.
'그럼 그들은 불륜(不倫)의 관계인가?'
신 반장의 추측은 다시 계속됐다
불륜의 관계로 보기엔 그들의 행적이 조금 애매했다.
24일 오후 8시에 호텔을 나가 4시간 정도가 지난 자정
가까이 돌아오기까지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시간
을 보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호텔방에 함께
들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그들은 각기 자신들이 투
숙하고 있는 방으로 돌아갔고 여자는 5시간 후 혼자서
호텔을 떠났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밀회할 정
도의 농밀한 관계로 보기엔 아무래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물론 죽은 한기훈이 D시가 고향인만큼 후론트 등 호
텔 종업원의 눈을 의식해 그렇게 행동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즉, 자정이 지난 12시 5분경 자신의 방에서
모닝콜을 부탁한 다음 1407호로 서윤희를 만나러 갔을
가능성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정했을 대 12시 40분
경 몹시 화가 나 한기훈의 방을 나오더라는 강형준을
설명하기가 곤란해진다. 5층 담당 종업원의 말을 빌러
강형준과 한기훈이 언쟁을 벌였을 것이라 생각할 때
시작부터 종료가지 그 소요시간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분 정도로는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12시 5분 그
자신의 방에서 모닝콜을 부탁하고 1407호 서윤희 방으
로 내려간 것이 12시 8분에서 10분 사이로 잡고, 그리
고 강형준과 만났을 때 가장 짧은 시간만 예상해 봐도
한기훈은 약 20분이 지난 12시 30분에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있어야 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밀회를 약속해 내려 온 사람들로
는 보기 어려운 시간 배치였다.
그들을 단순히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로 단정
해 버리기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신 반
장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한기훈의 수첩메모를 그쯤에서 남겨두고 뒤의 전화번
호를 기록으로 갔다. ㄱ, ㄴ 순으로 정리된 수십 개의
전화번호는 성명이나 상호(商號)들이 또박도박 정확하
게 기록되어 있어 얼핏 주의를 끌만한 구석이 없었다.
한 가지 신 반장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곳에 서윤희의 전화번호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는 것이었다.
한시바삐 서윤희라는 여자를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돌이켜 챙기며 신 반장은 조사를 끝낸 한기
훈의 유품들을 챙겨 설합속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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