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때 대문장가 주지번(朱之蕃)은 1606년 황태손이 탄생한 경사를 알리기 위해 사절단의 최고책임자인 정사(正使)의 자격으로 조선에 왔다. 주지번 일행이 조선에 도착하기 전에 한양에서는 임금과 대신들이 함께 모인 어전회의에서 그 접대 방법을 놓고 고심할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서울에 오니 국왕인 선조가 교외까지 직접 나가 맞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지번은 조선으로서는 매우 비중 있는 고위급 인사였던 것이다. 그러한 주지번이 교통도 매우 불편했을 당시에 한양에서 전라도 시골까지 직접 내려온 것은 오로지 표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사적인 이유에서였다. 주지번은 전주에서 서북쪽으로 50리 떨어진 왕궁면(王宮面) 장암리(場岩里)에 살고 있던 표옹을 일생의 은인이자 스승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공식 업무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챙겨 표옹의 거처를 방문하였다. 표옹과 주지번 사이의 아름다운 사연은 ‘표옹문집’에 기록돼 있다.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耉, 1555∼1620년)는 임진왜란이 발생한 다음해인 1593년에 송강 정철의 서장관(書狀官) 자격으로 북경에 갔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때 조선의 사신들이 머무르던 숙소의 부엌에서 장작으로 불을 지피던 청년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무언가 입으로 중얼중얼 읊조리고 있었다. 표옹이 그 읊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장자의 남화경(南華經)에 나오는 내용이 아닌가. 장작으로 불이나 때는 ‘여관 뽀이’ 주제에 남화경을 외우는 게 하도 신통해서 표옹은 그 청년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너는 누구이기에 이렇게 천한 일을 하면서 어려운 남화경을 다 암송할 수 있느냐?”
“저는 남월(南越)지방 출신입니다. 과거를 보기 위해 몇 년 전에 북경에 올라왔는데, 여러 차례 시험에 낙방하다보니 가져온 노잣돈이 다 떨어져서 호구지책으로 이렇게 고용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과거시험 답안지를 어떻게 작성하였는가 종이에 써 보아라.”
표옹은 이 청년을 불쌍하게 여겨 시험 답안지 작성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청년이 문장에 대한 이치는 깨쳤으나 전체적인 격식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으므로, 조선의 과거시험에서 통용되는 모범답안 작성 요령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고 나서 표옹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중요한 서적 수편을 필사하여 주고, 거기에다가 상당한 액수의 돈까지 손에 쥐어주었다. 시간을 아껴 공부에 전념하라는 뜻에서였다. 그 후에 이 청년은 과거에 합격하였다. 바로 이 청년이 주지번이었다.
주지번이 왕궁면의 장암에 위치한 표옹의 집을 방문해서 남긴 흔적은 현재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망모당(望慕堂)이라는 편액이고, 다른 하나는 표옹의 신후지지(身後之地, 묘자리)를 택지해준 것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기를 도와준 은인의 양택에는 망모당이라는 글자를, 은인의 편안한 사후를 위해서는 음택 자리를 잡아줌으로써 은혜에 보답한 셈이다. 현재 장암에 있던 표옹 저택의 본채와 사랑채는 사라지고 없다.
망모당은 1607년에 표옹이 선친이 묻혀 있는 선영을 망모하기 위하여 지은 별채이자 공부방이다. 현재 이 망모당 건물만 남아 있는 상태다. 망모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망모당 터는 풍수적인 안목에서 볼 때 학업으로 치면 국·영·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명당이다. 대개 국어와 영어를 잘하면 수학이 시원찮고, 수학을 잘하면 영어를 못 하는 수가 있는데, 장암에 자리 잡은 표옹 고택은 국·영·수 삼박자가 모두 탁월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국어는 집터 뒤로 연결되는 내룡(來龍)을 말하고, 영어는 집 앞의 안산(案山)이고, 수학은 물(水)의 흐름이다.
망모당은 교통이 매우 편리한 지점에 있다. 망모당 전방 500m 앞에는 조선시대 파발마가 다니던 길인 호남대로가 놓여 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가는 호남대로 가운데 전주를 거쳐 여산, 논산으로 가는 구간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도 이 길은 호남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망모당은 풍수적인 입지뿐만 아니라 교통도 편리한 요지였다. 고택의 내룡을 추적해 올라가면 소조산(小祖山)에 해당하는 산이 대추산(大楸山)이다. 그런데 이 대추산은 해발 300m 정도의 평범한 산이지만, 풍수적으로는 천호산(天護山)쪽에서 내려오는 맥과, 용화산(龍華山) 쪽에서 내려오는 두 줄기 맥이 합쳐진 산이다. 그러니까 대추산의 근원인 천호산과 용화산이 함께 태조산(太祖山)이 되는 셈이다. 물도 양쪽에서 내려와 합수(合水)한 곳을 선호하듯이, 산 역시 양쪽에서 내려온 맥이 합쳐진 곳을 높이 평가한다.
안산은 봉실산(鳳實山)이라 불리는 산이다. 대개 봉(鳳)자 지명이 들어가는 산은 여자 젖가슴처럼 둥근 모습에 정상은 젖꼭지처럼 뾰쪽하게 튀어나온 형태가 많다. 봉황의 머리 모습을 여기에 비유한다. 망모당 앞쪽으로는 봉동(鳳東), 비봉(飛鳳), 수봉(首鳳) 등 봉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봉실산의 하부구조는 젖가슴처럼 둥그렇고, 상부구조는 붓처럼 뾰쪽한 모습이다. 전형적인 필봉(筆峯)에 해당한다. 아래가 두툼한 반면 위는 선명하게 붓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손잡이 부분에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홀쭉한 필봉보다 한단계 위로 친다. 홀쭉한 필봉은 예리하고 맑기는 하지만 뚝심이 약하다고 보는 반면, 봉실산과 같은 필봉은 둔탁한 뚝심과 예리함을 겸비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망모당의 안산은 필봉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봉실산 오른쪽으로 산이 하나 더 붙어 있다. 그 형상이 마체(馬體)로 보인다. 마체란 말안장의 형상을 가리킨다. 말안장과 같이 중간이 약간 움푹 들어간 산을 마체라고 부른다. 말안장은 벼슬아치나 귀인을 상징하는데, 이들은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체의 안산은 벼슬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주지번은 또한 직접 산세를 파악해 표옹의 묘자리를 잡아주었다. 조선 사람들의 사생관에 의하면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은 뒤에 그 사람의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속의 뼈에 남는다고 보았다. 이른바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말도 원래 이런 이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뼈가 묻히는 묘자리는 백이 남아서 거주하는 집이므로 음택(陰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미 죽은 자의 관을 다시 꺼내 부관참시 하는 형벌은 사후세계의 삶까지 망가뜨리는 대단히 가혹한 형벌로 간주되었다. 주지번의 소점은 좌향이 특이하다. 내려오는 맥으로부터 약 30도 정도 틀어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법식은 고려 초기의 묘인 경북 안동의 권태사(權太師, 왕건을 가르친 三太師 중의 한 명) 묘와 그 유형이 비슷하다.
조선시대 명사들은 묘자리를 잡아줄 때 부탁하러 온 사람의 주변 평판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표옹은 평소에 어떻게 살았을까. 표옹은 56세때 경상감사를 지냈는데 관찰사 임기 동안 강직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 그가 관찰사를 그만두고 낙동강을 건너기 위해 어느 나루터에 닿았을 때의 일이다. 그를 배웅하기 위해 나루터까지 동행한 이방이 “어르신네가 경상도에 계셨다가 가지고 가는 것은 손에 쥐고 있는 부채 하나밖에는 없군요”라고 하자, 표옹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낙동강에 던져버렸다. 부채마저 강물에 던졌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낙동강을 투선강(投扇江)이라고 불렀고, 그 부채를 던진 나루터를 투선진(投扇津)이라고 불렀다한다. 이는 이후 진천 송씨들의 정신이 되었다. 강직과 청렴의 상징으로서 표옹의 후손들이 조상에 대하여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호남고속도로 익산인터체인지 부근에 진천 송씨의 선산이 있다. 선산에는 아름답게 자란 육송들이 빽빽하게 서있다. 이 소나무들은 약 400년 전에 심은 나무들로 진송들의 전통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소나무들은 진송에 시집온 며느리로부터 연유된다. 표옹의 며느리 가운데는 남원의 삭녕 최씨 집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있었다. 남원의 삭녕 최씨라면 훈민정음을 언해하고 용비어천가를 주해한 최항(崔恒, 1409∼1474)의 후손들을 지칭한다. 송씨 집으로 시집갈 때 친정아버지인 최상중(崔尙重)이 딸에게 물었다. “시집갈 때 무엇을 주면 좋겠느냐?” 그러자 그 딸은 “변산 솔씨 서말만 주세요”라고 하였다. 변산은 예로부터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던 질 좋은 소나무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였다. 인터체인지 일대의 보기 좋은 육송들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바로 이 소나무씨를 뿌려서 성장한 나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