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를 거르며 산천을 떠돌지만, 영양에서는 맛을 먼저 탐한다. 영양 두들마을 양반가에서 내려오는 ‘음식디미방’ 때문이다. 음식이 약이 되는 정갈한 밥상에는 부침 하나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담백하게 배를 채웠으면, 느긋하게 선바위 감싸는 반변천 따라 걸으며 서석지를 구경하는 길이 좋다.>
이런! 잡채에 당면이 없다. 음식디미방 코스요리에 가장 먼저 나온 잡채는 우리가 잔치음식으로 먹던 당면잡채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마른 박고지, 표고버섯, 고사리, 시금치, 가지와 꿩고기 가슴살 등을 삶아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가늘게 찢어둔다. 여기에다 꿩고기로 육수를 내고 밀가루와 간장, 참기름, 생강, 후추로 양념즙을 만들어 낸다. 준비된 갖은 재료들을 기름과 간장으로 볶아 섞거나 따로 담아 양념즙으로 심심하게 간을 맞춰 낸다. 여기에 나물을 맨드라미로 붉은 물을 들인 것이 화룡점정이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비벼 입에 넣으니 담백한 재료의 맛이 살아 있다. 두 번째 나온 음식은 이름도 희한한 ‘대구껍질누르미’다. ‘누르미’는 지금의 스프나 죽처럼 만들어낸 즙으로 부드럽게 오랫동안 따뜻하게 먹으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대구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 비늘을 제거하고 약과 크기만큼씩 썰어둔다. 석이버섯과 표고버섯 등과 꿩고기를 채소보다 잘게 다진다. 천연재료와 산초가루, 간장과 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을 함께 버무린다. 양념한 채소와 버섯, 꿩고기를 썰어둔 대구껍질 속에 채워 쪄낸다. 여기에다 꿩고기 즙과 밀가루를 섞고 골파를 넣어 맛있게 즙을 낸 누루미를 양념소를 넣은 대구껍질에 두른다. 입에 넣자 살짝 일어나는 생선의 비릿한 냄새는 곧 고소한 만두 속맛으로 바뀐다. 이어 찹쌀ㆍ멥쌀가루를 섞어 진달래 꽃잎을 함께 버무려 쪄낸 화전과 녹두살을 갈아 팥으로 소를 넣어 부쳐낸 빈자병, 장떡전이 함께 나오는 ‘삼색전’, 돼지고기를 다지고 연근을 참기름과 식초에 무쳐 함께 참기름에 구워낸 ‘가제육 연근채’, 영계를 채소와 함께 삶아낸 ‘수증계’ 등이 차례로 나온다. 요리가 끝나면 밥과 반찬으로 소박한 밥상이 차려진다. ‘음식디미방’은 경북 영양에서 살았던 장계향(1598~1680)이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다.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문(方文)’이란 뜻으로 1600년대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및 조리법과 저장법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국수와 떡 등의 면병류를 비롯 어육류, 소과류, 주류까지 그 종류도 146가지에 달해 거의 사라져 버린 우리 옛 조리법과 메뉴를 발굴·복원할 수 있는 지침서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 건강요리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음식디미방’의 저칼로리 건강식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장계향은 일흔이 넘어 침침해진 눈으로 조리법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장씨는 책 말미에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가져갈 생각일랑은 마음도 먹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라’고 훼손과 분실을 경계하며, 자자손손 가문의 전통을 후세에 전하고 싶은 마음을 오롯이 담았다. 장씨는 작가 이문열의 13대조 할머니이며 그의 소설 ‘선택’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기분 좋게 배를 채웠으면 영양의 대표 절경인 선바위를 구경하자. 선바위는 일월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반변천과 서석지 앞을 지나 반변천과 합류해 흐르는 청계천(동천)이 만나는 남이포 앞에 거대한 촛대처럼 우뚝 선 바위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에는 병풍처럼 거대한 바위가 서 있는데, 이는 자금병(紫錦屛)이다. 자금병을 선바위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선바위를 즐기는 코스는 서석지와 연결하는 것이 좋다. 선바위 주차장~석문교~서석지~선바위~입암면버스터미널 코스는 약 6㎞ 2시간쯤 걸린다. 이 길은 선바위관광지 주차장 근처의 석문교에서 시작된다. 석문교를 건너면 자금병 절벽 아래다. 여기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외씨버선길(오이도 시인의 길)이고, 왼쪽을 따르면 서석지까지 이어진다. 자금병을 끼고 강물 따라가는 환상적인 길이다. 바닥에는 나무 데크를 깔아 아이들도 쉽게 갈 수 있다. ‘바사삭~’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한동안 길을 이으면 암벽루 정자가 나온다. 정자 앞에서 길은 물줄기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나무 데크가 끝나는 지점은 오솔길로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발목이 낙엽에 푹푹 빠지며 걷다 보면,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의 애기선바위(童立岩)가 나온다. 몰래 이곳에 찾아와 기원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애기선바위에서 마을로 내려와 도로를 따라 오르면 곧 서석지에 닿는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함께 한국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는 1613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1577~1650) 선생이 지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 정원이다. 연못 바닥에 있는 돌 하나하나에 신선이 노니는 바위 선유석, 선계로 통하는 바위 통진교 같은 이름이 붙여져 있다. 물에 잠긴 돌 30여 개, 수면 위로 드러난 바위 60여 개 등 90여 개의 돌이 우리 전통 정원의 멋을 느끼게 한다. 서석지를 둘러봤으면 다시 도로를 따라 내려와 선바위 앞에서 걷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선바위가 두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우뚝한 자병금 절벽을 바라보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선바위에서 도로를 20분쯤 내려가면 입암버스터미널이다.
▨주변 명소 △두들마을과 음식디미방 음식디미방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두들마을은 재령 이씨 집성촌이다. 작가 이문열의 고향으로 그의 저서 ‘그해 겨울’ 등 많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 채가 있다. 이문열 생가에 마련된 ‘광산문학관’에서는 수시로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이곳 고택에서 한옥 체험도 가능하다. 음식디미방 체험메뉴는 소부상(3만원)과 정부인상(5만원)이 있다. 예약 필수(054-683-0028).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봉감모전오층석탑) 산해리 강가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높이 11m의 고려시대 석탑이다. 영양 지방의 유일한 국보로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으로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석탑 주변의 논밭에 기왓조각과 청자 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강변 한적한 곳의 폐허 같은 분위기와 장중한 탑의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교통과 숙식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찾아간다. 대구북부정류장에서 영양행 버스가 하루 21회(오전 6시20분~오후 9시40분)에 다닌다. 두들마을에서는 한옥체험(054-682-7764)이 가능하고, 영양 시내에 깨끗한 모텔이 많다. 선바위관광지 앞의 선바위가든(054-682-7429)은 일월산의 자연산 나물로 백반을 내온다.
<사진 설명> 선바위 앞에서 본 삼일포와 자금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