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국수공장과 부흥국수를 책임지고 있는 권완구 대표는 11년 전 이 국수공장을 이어받았다. 친구가 하던 공장을 맡아 운영하던 이길훈 옹에게서 이어받은 것. 권 대표는 원래 부흥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받아다 장을 돌며 파는 장돌뱅이였다. 그런데 한번 국수를 사간 고객 대부분이 다시 찾는 것을 놓치지 않고 봐뒀다. 권 대표가 이어받기 전까지 부흥국수공장은 없어져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영세공장이었다. 이길훈 옹이 체력 저하 등의 이유로 공장 문을 닫자 권 대표는 “내가 이어서 해보겠다”고 달려들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권 대표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경북 영양군에서 서울로 왔어요. 배운 게 없으니까 먹고 살려고 무작정 올라온 거죠.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어요. 공예품 공장에도 다니고 술집 웨이터, 카페 DJ, 구두닦이, 우유배달, 고추농사, 신용카드 판매원, 가방장사, 시계공장, 지갑공장, 휴지걸이공장…. 일은 고됐지만 돈은 꽤 벌었어요.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까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부흥국수 공장이 보였죠.”
각 분야에서 영업사원을 할 때마다 실적이 특출했다는 그의 입담은 구수했다. 말에 강약을 줄 줄알았고, 유머감각도 상당했다. 국수공장을 이어받은 그는 여러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녹여 사업 감각을 발휘했다. 우선 면발을 더 쫄깃하게 하고, 빠른 속도로 생산해내는 방법을 찾았다. 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익반죽한 후 국수기계 롤러에 여러 번 감아서 포개는 것. 예전에는 찬물로 반죽해 시간 대비 생산량이 턱없이 적었다. 밀가루를 익반죽하자 생산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다른 국수공장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반죽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비결은 40년 넘은 기계에 있기 때문. 최신식 기계에 익반죽을 넣으면 롤러에 들어가지 않고 반죽이 따로 돈다고 한다. 또한 소금을 밀가루에 바로 넣지 않고, 물에 가라앉혀 둥둥 뜨는 불순물을 걸러내고 넣어 반죽한다. 그래야 지저분한 성분과 잡내가 빠져 국수 맛이 깔끔하다고 한다.
40년 넘은 국수기계로 뽑아야 쫄깃한 맛 살아나
의정부 경의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부흥국수’ 1호점 내부. |
재래식 기계를 쓰다 보니 최신식 기계보다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단가가 높은 건 당연지사.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국수가게들이 처음에는 이 공장 국수를 쓰다가 자리가 잡히면 단가가 싼 다른 국수를 쓰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판매를 유통업자한테만 맡기면 나중에 어려워질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국숫집을 열어보자 결심한 겁니다. ‘내가 뽑은 국수 면발로 최대한 맛을 살려 내놓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마른 국수 거래처를 끊었죠. 끊는 데만 3년이 걸렸어요.”
부흥국수공장은 의정부 경의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부흥국수’ 1호점에서 5분 거리에 있다. 마른 국수와 젖은 국수를 하루 600~1000kg 생산하는데, 젖은 국수는 ‘등촌칼국수’와 도곡동 ‘우미각’ 등에 납품한다.
이곳의 보물 1호는 40년 넘은 국수기계. 다른 부분은 최신식으로 교체해도 쫄깃함의 비결인 롤러 부분은 애지중지 다루며 절대 교체하지 않는다. 국수기계로 뽑은 면발은 절단 후 건조실에서 2~3일간 자연 건조시킨다. 이 과정에서 마른국수의 생사가 갈린다. 국수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축축 늘어져 상품 가치가 상실된다.
부흥국수의 대표 메뉴인 비빔국수. |
“국수는 아기 다루는 것과 같아요. 꺼내야 할 시간을 놓치면 1~2분 사이에 국수가 퍼석퍼석해져서 맛이 떨어져요. 이건 감으로 하는 거예요. 국수는 비와 상극이에요. 비가 오면 못 해요. 다 처져버리거든요. 예고에 없던 비가 갑자기 오면 난리가 납니다. 난방하고 선풍기로 말리고 환풍기로 빨아내고….(웃음)”
그의 하루는 일기예보 확인으로 시작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당일 날씨와 주간 날씨를 확인한다. 국수 절단은 얼마 전까지 작두를 사용해서 일일이 손으로 했지만, 이제는 권 대표가 직접 개발한 수동기계로 한다. 작두와 비슷한 절단 효과가 있는 기계로, 본인이 직접 설계한 후 기계 제조회사에 발주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8개월 된 딸을 포함해 소띠생 띠동갑 자녀 셋이 있다. 스물여섯 살 큰아들 권한사 씨가 가업을 물려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한사 씨가 중학생일 때부터 국수공장 일을 가르치고, 국숫집을 오픈한 이후로는 틈나는 대로 서빙 등을 시켰다고 한다. 올해 말 동두천시에 부흥국수공장을 하나 더 열 예정인데, 한사 씨가 공장장을 맡는단다.
부흥국수공장에서 생산한 마른국수 단면. |
열 가지 넘는 직업을 전전한 뒤 국수공장에 정착한 권완구 대표. 예전에는 툭하면 ‘이 일은 내 일이 아닌가 보다’ 하면서 그만두기 일쑤였지만, 이젠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 더 나아가 부흥국수공장과 부흥국수를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100년 넘는 명소’로 만들고 싶단다. 그는 연신 싱글거리며 “재밌어 죽겠다”고 말한다.
“실컷 놀아도 봤는데, 이 일이 노는 것보다 더 재밌어요.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힘든 줄도 모른다니까요. 아무리 아파도 공장에 안 나가는 일이 없어요. 국숫발이 눈에 삼삼하게 밟히거든요(웃음).”
사진 : 진구
‘보물 1호’인 40년 넘은 국수기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