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산악회 등산 가는 날이다. 10여년을 해온 예전의 산악회는 이제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서 동년배사람들은 거의 없고, 새로 들어오는 젊은 사람들만 잔뜩오니 언제부터인가 멋적어서 가기가 싫어졌다. 가끔 나가보면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친구가 없으니 어디 앉아야 하나하고 두리번 거리는 것이 싫어서 그 산악회를 빠지니 먼데 산에 갈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 일년 쉰 후에 오십대 부부동반인 금오 산악회에 들었다.
남편과도 상의하고 같이 산악회에 들어 가기로 했는데, 지난 달에도 자기는 바쁘다고 가지 않아서 나 혼자 갔다 왔는데, 이번 달에도 자기는 못 간단다. 어느 가정마다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겠지만 우리 집은 남편과 나의 직업이 다르니 같이 놀수가 없는 것이 최고의 문제이다. 나는 공무원이어서 주말이 휴일이고, 더구나 작년부터는 주 5일제 근무이니 휴일이 이틀이다 되고, 남편은 비료장사를 하니 비 오는 날이 공치는 날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릴때는 아이들이 하루종일 아빠를 기다리니 휴일이면 오후라도 식구끼리 어디 나가곤 했는데 이제 애들도 커서 집에 없으니 같이 나가자고 채근할 사람도 없다.
글쎄, 한달에 한번이라도 부부가 같이 산에라도 같이 가길 사정하는 내가 잘못인지.............
더군다나 남편은 어렸을 때 여러 형제가운데 어렵게 커서인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놀줄을 모른다. 자기 말대로 먹고 살려고 애쓰는 사람한테 같이 놀자고 하는 내가 잘 못인지..............
엊저녁부터 하루만 쉬고 같이 산에 가자고 ,더구나 산악회에 들고 처음이니 우선 남편이 인사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고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새벽 일찍 일어나 혼자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 나는 속이 터져서 도저히 갈 마음이 아니어서 모이는 장소인 역전 시장앞을 가다가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마침 역전 장날이어서 일찍 나온 장사꾼들이 물건을 내려 놓느라고 부산하다. 요즘은 자두가 한창인지 과일전에는 싱싱한 자두가 많이 나왔고, 장마끝이어서 채소는 잘 안되어서 그런지 아직 시골 아주머니들이 다라이에 이고 내오시는 나물,호박, 오이, 배추등을 파는 채소전은 한산하다. 채소전에는 평생 장을 보시는 팔십넘은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데 시골에서는 그렇게 채소, 나물들을 팔아서 잔돈을 갖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꽤 부자여서 손주들의 학용품이나 과자, 학원비들을 대시곤 한다.
어디로 갈까? 한참 망설이다가 딴산 가는 길로 들어선다. 딴산은 옛날 홍수가 크게 났을 때 상류인 홍성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있는 산으로 그곳을 이용하여 예당저수지가 있기 때문에 예산사람들은 그냥 딴산이라고 부르는데 딴산이라면 저수지쪽을 말한다.
새로 산 트래킹화는 간편하고 좋으니 걸을만 하다. 전에 산 k2등산화는 너무 크고 단단해서 히말라야를 가도 괜찮을 정도이니 여름에는 이렇게 간편한 트래킹화를 신으니 좋다. 언젠가 땅끝에서부터 백두산까지 걷기를 꿈꾸는 나는 이렇게 짬짬이 하루종일 길을 걷는 연습을 해야한다.
예당저수지 물을 옆에 끼고 걷는다. 여고때에도 걷던 길을 지금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강산이 세번, 네번은 변했나 보다. 그 때는 꿈도 많았던 것 같은데 사실 오늘은 마음이 쓰라리다. 마음 속으로는 자꾸 억울 하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물위를 떠도는 바람에 흩날려 버리려고 애쓴다. 얼만전에 만난 친구 남편은 부인한테 얼마나 잘 해주던가.............어찌 우리 남편은 저리 무뚝뚝해서 이렇게 내 가슴을 헤집어 놓을까를 생각하니 참으로 야속했다.
큰길을 버리고 물위를 건너서 뚝길로 들어선다. 오가벌판을 옆에 낀 이 길은 한 십여년전에 아침마다 내가 달리던 길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밥만 앉혀놓고 아이들이 아직 깨기전에 이 뚝길을 달리노라면 물안개 자욱한 길에 풀벌레 우는 소리가 아스라히 들리면 꼭 아득한 꿈길을 걷는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아마 그때는 삼십대 새댁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시골길도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이슬을 털고 다니지 않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전에 보이던 집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서운하다. 노인들만 살다가 그 분이 돌아 가시면 시골의 헌 집은 없어지게 마련이다. 얼마쯤 가다보니 두 갈래 길이 나온다. 한 길은 동네로 가는 길이고, 산모퉁이로 가는 길이 가까울 것 같아서 들어 섰더니 따악 한 집만 있고 염소, 개, 닭들이 처음보는 낯선 사람을 보고 물을 듯이 집어댄다. 원래 개를 무서워 하기도 하지만 우리에 들어있는 개는 맹수같이 사나워보여서 놀라서 얼른 다시 돌아 나온다.
할머니가 텃밭에서 호박넝쿨을 들치더니 예쁜 호박 하나를 따 갖고 들어 가시며 대견한 웃음을 지으신다. 텃밭이라도 작은 땅이 있어서 저렇게 농사를 지으면 애호박이나 고추가 커가는 것이 참 예쁠 것 같다. 나도 작은 텃밭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신암에 땅을 좀 사놓았는데 사실은 좀 걱정이 된다. 항상 편한 아파트에만 살던 사람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별 걱정 없이 살다가 읍내에서 떨어진 시골에서 살 수 있을런지 아직 확신이 서질 않아서 남편한테 빨리 집 짓자고 재촉을 하지 못한다.
예당호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언덕위 마트에 앉아서 커피 한잔을 빼어 마시니 달콤하고 구수한 커피향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시계를 보니 이제 9시가 다 되어가니 벌써 두시간을 걸은 셈이어서 좀 앉아서 쉬고 싶다. 배낭에 냉동실에 넣어서 얼린 캔맥주가 생각나서 꺼내어 마신다. 두시간이나 걷느라고 땀이 턱에 닿은 상태이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넘어가니 알싸하니 기분이 좋다. 그러나 옆 탁자에 남자들이 앉아서 아침부터 웬 여자가 맥주를 마시나 하며 의아한 눈초리로 보는 것 같아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술 기운이 들어가니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고 흥얼흥얼 콧노래도 나오려고 한다.
이런 때 " 오늘도 ~~~걷는다마 ~~~~~~~는, 정처없는 이 바~알 `길~~~"하는 노래를 하고 싶다.
"가족이란 무엇인데 왜 이리 마음을 아프게 하나, 내가 잘못하는 것인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나.........."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첫댓글 수필은 보통 과거형으로 쓰는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었는데 근간에는 현재형으로 쓰는게 또 추세가 되었더군요, 산자락님은 발빠르게 현재형으로 잘 쓰셨네요. 수필을 많이 써보신듯 합니다. 부부는 영원히 만나지지 않는 기찻길 같은 사이인가 봅니다. 아옹다옹 사는 모습이 정스럽습니다. 좋은 글 자주 뵜으면 합니다.
"캔맥주를 냉동실에 넣어놓으면 터지지 않을까?""터지지"~~어제 1부만 읽고 퇴근을해서 남편에게 물어보았답니다. 냉동실에 한번도 안얼려봣거든요?? 그냥 글을 읽는거 밖에 할줄모르는 나는 혼자걸으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산자락님이 많이 생각났어요..그야말로 걸어서 하늘끝까지 가보면 얼마나 좋을가?/
향단이 님도 참 대단하십니다요, 고새 궁금증을 어쩌지 못해 물어보셨다니~ 울 남편은 고렇게 물으면 "니가 해봐, 묻지말고..." 그래서 난 애시당초 안 물어봅니다.ㅎㅎㅎ
모란님 제가 그런 사람 입니다..깡패두목같이 겁니고 고목나무같이 퉁명스런남자 10년동안 조물락 거렸더니 나근나근해 지더군요........
우데를 조물락 거렸을 가나...고개를 갸웃 뚱~
산자락님..마음 알지요...나이먹어서 갖는 우리나이에 같은 마음입니다.. 괜히 신랑이 섭섭하고..열심히 일하는 신랑 보채는 철없는 아내같고...그래도 괜히 밉고....산자락님은 혼자라도 가시네요..전안가요..그리고 헬스장에가서 목숨 건사람처럼 운동만하다 와요..씩씩 거리면서 말입나다....그러면조금 풀리더라구요...ㅎㅎㅎ사는게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