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과 구름
임 인 수
햇볕이 쌩쌩 쬐이는 골목입니다. 영선이는 을순이, 명구, 찬수랑 같이 놀고
있읍니다.
골목에는 이리저리로 가는 많은 갈랫길이 있읍니다. 그렇지만 여름도 한창 무
더운 철이 되어 그런지 전에처럼 떠들지는 않았읍니다.
만식이는 산골 아저씨네로 곤충채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은순이는 바닷가에 사는 외할머니 댁으로 조개껍질을 모으러 갔다고 합니다.
또 영선이 언니는 시골에 있는 외삼촌 댁으로 식물채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어느새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영선이는 심심합니다. 그래서 엄마를 졸랐읍니다. 무슨 장난감을 사겠다고 우
겨댑니다.
“그래, 너 무얼 사겠단 말이래? 돈 오십 환을 가지고.”
“엄마 아주 예쁜 게 있어!”
“그게 무엇이길래? 어디 말해보라니까.”
“저 골목에 난장이아저씨 있지 않우? 조그만 손수레에 아롱다롱 많이 달고 다니는 거 말야------”
“으응, 고무풍선 말이구나!”
“그래그래, 고무풍선 하나만 살래요.”
영선이는 기어코 풍선 하나를 샀읍니다. 빨간 빛 곱게곱게 물들인 풍선입니다. 둥실둥실 잘뜨는 풍선입니다.
영선이가 풍선을 사는데 맨 먼저 따라온 애가 이웃집 사는 을순이입니다. 다음에는 명구가 오고 또 찬수가 쫓아왔읍니다.
볼수록 풍선은 이뻐뵙니다. 누구나 한번 둥실 하늘위에 띄워보고 싶어집니다.
슬쩍 만져보고 싶어지는 풍선입니다.
풍선을 파는 난장이아저씨는 두 볼이 불룩하도록 입김을 불어 후후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풍선은 재미나게 커갑니다. 입김을 부는 대로 점점 불룩해집니다.
이것을 보는 아이들은 떠들지 않을 수 없읍니다.
“야, 풍선 봐라. 마구 커지는데.”
“오십 환짜리니까 더 커질 거야!”
“그래, 십환짜리는 이만 못해.”
영선이는 아저씨가 주는 풍선을 받아들고 실끝을 꼭 잡았읍니다. 풍선은 보기좋게 둥실둥실 떠올랐읍니다.
이제부터 영선이의 풍선이 된 것입니다. 영선이의 오십 환짜리 풍선입니다.
빨간 풍선입니다. 고운 풍선입니다.
영선이는 참말 신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멋들어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위에 둥실 띄웠읍니다. 실이 그다지 길지는 못했으나 바람 속에 둥실 떠올랐읍니다.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합니다.
을순이도 띄워보고 싶습니다. 명구도 띄워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따라옵니다. 영선이 뒤를 쫓아 따라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었읍니다. 아이들 얼굴이 땀에 젖었읍니다. 그래도 공중에 뜬 풍선만 열심스레 올려다보며 자주자주 쫓아갑니다.
이때 명구가 입을 열었읍니다.
“얘, 영선아! 나 한번만 띄워보자.”
“그래 영선아, 나두 한번만------”
찬수도 부탁을 합니다. 을순이도 부탁을 합니다. 그러니까 영선이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럼 정말 한번씩만 띄워봐야 해, 꼭 한번만이다, 꼭!”
“응! 그래그래.”
아이들은 모두들 좋아라고 떠들었읍니다.
명구가 맨 먼저 날쎄게 채어가지고 저쪽 좁은 골목으로 달려갔읍니다.
“야, 신난다, 정말 커다란 풍선을 타고 하늘 꼭대기를 을라가봤으면------”
“전에 신문에 났는데 미국에는 몇만 피트까지 사람이 타고 올라가는 풍선이었다더라.”
“나도 우리아버지한테 얘기를 들었다.”
명구는 이내 골목 끝까지 달음질쳐갔다가 다시 돌아왔읍니다. 이번에는 을순이 차례입니다. 풍선은 간들간들 공중에 떠서 잘도 따라갑니다. 둥실둥실 가볍게 끌려갑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섰는 영선이는 겁이 납니다. 그만 깜박할 사이에 혹시 놓쳐버릴까봐 겁이 납니다. 그래도 영선이는 참아야 했읍니다. 이번에는 찬수 차례입니다.
참말 아슬아슬한 판입니다. 영선이는 꾹 참고만 있읍니다. 풍선은 다시금 영선이 손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렇지만 영선이는 어째 그 풍선이 나는 새처럼 후르르 공중으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 여간 근심스런 게 아닙니다. 두 손으로
꼭 잡았읍니다. 아니 풍선을 머리위에 띄운 채 그 가느다란 실가닥을 꽉 불잡고 천천히 걸어갑니다. 땀을 줄줄 흘리며 걸어갑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따가운 햇볕이 쨍쨍 내려쬐여 영선이 눈앞이 당장 아뜩하고 캄캄합니다.
앗차! 정신이 드는 순간이었읍니다. 그러나 영선이 손에는 어느새 그 새빨간 풍선이 매달린 하얀 실가닥을 찾아낼 수가 없었읍니다.
풍선은 둥실 떠올라갑니다. 골목길을 지나가던 잔잔한 바람에 훌훌 불어 둥둥
멋있게 떠을라갑니다.
영선이는 풍선을 쳐다봅니다. 때는 이미 늦었읍니다. 손을 올려도 닫지 않았읍니다. 그만 〈으아------〉 울음이 터졌읍니다.
풍선은 가볍게 날아갑니다. 영선이 눈앞에서 훨훨 날아갑니다.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손을 뻗어 올려봐도 어쩌는 수가 없읍니다.
풍선은 우쭐우쭐 떠올라갑니다.
영선이는 달음질쳐 쫓아갑니다. 손을 쥐어봐도 땀이 촉촉하게 배어났을 뿐 풍선은 하늘위로 날아가고 있읍니다. 언제는 울어도 소용이 없읍니다. 끝없이 시원한 푸른 하늘에 풍선은 두둥실 새로운 세상의 꿈을 그려봅니다. 파란 꿈, 초
록 꿈을 넌지시 그려봅니다. 노란 꿈, 빨간 꿈 꽃무늬와 같이 호사스런 꿈도 담뿍 안아봅니다.
“영선아, 영선아! 잘 있어. 참 고맙다. 나는 네 손아귀에서 풀려나왔기 때문에 이 넓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거야!”
풍선은 나직한 귓속말로 지껄이듯 둥실거리며 저멀리 아득한 공중으로 떠 흘러갑니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며 풍선만 쫓아가던 영선이의 맥이 탁 풀어집니다.
아무리 쫓아가도 풍선은 이제 제멋대로 저멀리 도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영선이는 공중에 떠가는 풍선만을 쳐다봅니다. 하늘 높이 쳐다보는 얼굴은 쓸쓸합니다. 서운한 빛으로 가득찹니다. 그래도 영선이는 끝까지 지켜봅니다. 빨간 풍선이 볼수록 곱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읍니다.
풍선은 영선이의 마음을 알아줍니다. 영선이의 마음에 꿈을 던져줍니다. 파란 꿈을 던져줍니다. 빨간 꿈, 노란 꿈을 선사해줍니다. 흰구름이 활짝 꽃처럼 피는 파란 하늘 저편으로 떠올라가면서 영선이의 마음은 불룩해집니다. 풍선이 던져주는 꿈을 안고 희망을 담고 푸른 산 저 너머로 떠올라갑니다.
풍선은 깜박 몸을 뒤젖혔읍니다. 높은 바람이 쉬이 불어온 때문입니다.
“언제 얼마나 을라왔을까?”
내려다보니 서울 거리가 까마득합니다. 거리의 장사꾼들이 늘 띄워놓은 코끼리풍선, 맹꽁이풍선들이 긴 광고 쪽지를 매달고 땅위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옥상에다 튼튼한 밧줄로 잡아매어놨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붙잡혀 있읍니다.
영선이의 풍선은 더 높이 떠올라갈 기세입니다. 이때 후줄근한 바람이 불어왔읍니다. 그리고 검은 구름장이 강 건너 저편으로부터 몰려들었읍니다.
날이 갑자기 어두워졌읍니다. 영선이의 풍선은 어찌해야 좋을지 어디로 가야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하며 서둘렀읍니다. 그러나 어디 몸을 의지할 곳이 없읍 니다. 망망한 공중에 거센 기류만이 오가고 있을 뿐이었읍니다.
솨------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떼가 뭉게뭉게 엉키고 또 엉키어옵니다. 이내 소낙비가 밀려들 모양입니다.
번개가 일었읍니다. 하늘 끝에서 우르르릉 꽝 지끈지끈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났읍니다. 영선이는 더럭 무서운 생각이 들어 집으로 뛰어들었읍니다. 그리고 고무풍선을 놓쳐버린 것까지 깜빡 잊어버리고 있읍니다. 영선이의 풍선은 지금 공중에서 소낙비를 만나게 되었읍니다.
쏴아, 쏴아, 후르르르 쏴악 쏴악------
사뭇 장대 같은 빗줄기가 내려 퍼붓기 시작합니다.
꿈결 같은 순간입니다. 영선이의 풍선은 주르르 그 비를 맞아가며 어느 산길로 골짜기의 으슥한 나뭇가지에 포근히 내려앉게 되었읍니다.
영선이가 놓친 실끝이 나뭇가지에 걸렸던 것입니다. 거기서 풍선은 아직도 꺼지지를 않고 고운 빛깔을 보얗게 내리는 빗발속에 나타내고 있었읍니다.
번쩍이는 번갯불 속에 나타내고 있읍니다.
새파랗고 환한 번갯불이 무서운 혓바닥을 널름거릴 때마다 풍선은 온몸을 후둘후둘 떨었읍니다. 함초롬히 소낙비에 젖은 채 얼굴을 번득이고 있읍니다. 한참 동안 소란스럽던 번개와 천둥은 소낙비가 몰려가자 골짜기에 돌물소리를 남겨놓고 다시 먼곳으로 사라져버렸읍니다.
산새들이 쪼로록, 찌르륵, 다시금 소리를 냅니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왔읍니다.
풍선은 밤새도록 산새들과 함께 한여름밤 꿈을 꾸었읍니다. 산골의 짐승들이 나와서 지껄이며 소풍을 하는 꼴도 보았읍니다.
여기서는 이슥한 밤을 대낮으로 삼고 숲속 나라의 별스런 식구들이 모두 나와 뛰놀고 있읍니다.
숲사이 훤하게 트인 하늘에서는 헝클어진 초록 덩굴을 타고 달님 아가씨가 내려옵니다. 골짜기의 맑게 고인 물에서 목욕을 하는 모양입니다.
별들이 깜빡깜빡 등불을 달고 신비스런 우주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영선이의 풍선은 이런 많은 이야기와 달콤한 구경을 하다가 시원한 새벽 바람에 꼬박 졸음이 오고 말았읍니다.
다시 꿈을 꾸었읍니다. 짧은 여름밤 새벽의 꿈은 유난히 찬란스럽습니다.
오색이 영롱한 무지개가 꽂히고 위에 선녀가 나타났읍니다. 선녀는 꽃묶음을 한아름 안고 내려와서는 그 꽃을 영선이에게 주라고 당부를 하며 놓아두고 사사져버렸읍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아침 햇살이 화살처럼 숲속을 들이비추고 있읍니다.
그 눈부신 햇살을 받고 풍선은 잠시 어리둥절했읍니다. 골짜기의 물소리가 어제나 다름없이 시원합니다.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바로 선녀가 영선이에게 전해
주라던 꽃다발이 가득 피어 있었읍니다.
어제 저녁 홈빡 젖었던 물기가 차츰 말라들자 풍선은 따가운 햇볕에 머리가 가물가물 어지러워졌읍니다. 영선이의 모습도 잊어버렸읍니다.
점점 대낮이 가까와옵니다. 목이 마르고 가슴이 타고 정신을 잃게 되었읍니다. 풍선은 새빨간 배를 불룩 내민 채 어젯밤 꿈이며 희망을 모조리 잃어버렸읍니다. 어제 저녁 소나기에 쫓겨온 뒤로는 다만 나뭇가지에 걸려진 채 다시는
넓고 푸른 하늘로 떠오르지를 못했읍니다.
이윽고 마지막 시간이 왔읍니다. 올려다보니 높고 푸른 골짜기의 낭떠러지 비
탈에는 시원한 바람이 일고 구름조차 흰 날개를 펴고 하늘가를 달리고 있었읍
니다.
이때 풍선은 골목길에 사는 영선이를 생각해냈읍니다.
“영선아, 이 선물을 받아라. 오늘 새벽에 꿈선녀가 보내온 저 꽃다발을 별안간 산골짝에는 난데없는 산을림이 퍼졌읍니다.
펑! 퍼엉!
이제 풍선은 찾아볼 수 없었읍니다. 산새들이 째르륵 찌르르륵 놀라는 소리를
치며 달아납니다.
구름은 그런 것을 모조리 볼 수 있읍니다. 어제는 하늘 높이 떠올라 구름과 함께 떠다니던 풍선이 오늘은 따가운 햇볕에 못견디어 터져버리고 말았읍니다.
구름은 다시 영선이가 사는 골목길을 내려다보았읍니다.
여전히 영선이가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읍니다. 을순이도 있었읍니다. 찬수도 명구도 있었읍니다.
이번에는 제각기 풍선을 띄워가지고 골목길을 달음박질합니다. 빨간 풍선이 둥실 댔읍니다. 노란풍선을 둥실, 파란풍선을 둥실 띄웠읍니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토끼차에 매달아놓았읍니다.
둥실 흰구름을 쳐다보면서
풍선은 노란 꿈을 꾸었읍니다.
둥실 하늘 위를 쳐다보고는
풍선은 빨간 꿈, 초록 꿈을
그려봅니다.
밤에는 별을 보며 이야기하고 .
낮에는 해님을 보며 속삭여보고
영선이 풍선은 영선이의 꿈을
을순이 풍선은 을순이의 고운 꿈을
명구의 풍선은 명구의 꿈을
모두모두 제각기 흰구름을 따라서
푸른 하늘에다 둥굿이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