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도상에서는 부엉산(392.2m)으로 나오는 무학산 학봉.
마산에선 부엉산보다 학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학봉(鶴峰 392.2)’은 이름 그대로 학(鶴)과 관련된 봉우리이다.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서 천년을 장수하는 영물로 인식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친숙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런 학을 닮았을 수도 있고, 또는 산수화에서 보았듯 학이 날개를 접고 커다란 소나무에 앉아있는 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학산 학봉은 학이 춤추는 형상인 무학산(舞鶴山 761.4)의 머리부분에 해당된다는 것.
따라서 학봉은 무학산의 아주 중요한 중심봉이자 풍수상으로도 아주 길하게 여기는 곳이다.
학의 부리 앞에 놓여진 자산동은 살기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그런지 이곳에는 10개가 넘는 암자가 산재해 있다.
한편, 마산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학봉 고스락을 또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고운대(孤雲臺)’라고도 일컫는다.
‘고운(孤雲)’이란 신라 때의 문장가 최치원을 말하며, 창원은 고운의 발자취가 즐비하다.
학봉 옆에는 ‘무학산 십자바위’가 있다.
‘십자바위’는 사방이 훤히 트인 암봉(약390m) 돌출된 한 평 남짓한 암반에 선명하게 십자(十字)로 틈새가 갈라진 바위를 말한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운동을 펼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1897~1944)가 명상수련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1931년 마산문창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시절 무학산에 올라 나라를 위해 기도를 올렸는데, 그 장소가 십자바위였던 것.
진해구 웅천 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는 3ㆍ1운동에 참가한 후 1926년 평양의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마산·평양에서 목사로 활동했으며,
1938년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안타깝게 옥사했다.
마산은 오랫동안 산악동호회에 참여하며 발품을 넓혔던 곳이지만 지금은 십 년을 넘게 연(緣)이 끊어져 낯선 도시다.
마산하면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곡 ‘가고파’가 먼저 떠오르지만 뒤이어 그 파란 물 위에 4·19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으로 떠올랐다.
이 산을 찾은 것은 ‘한우아파트’에 사시는 마산형님을 찾아보기 위한 것.
마산형님은 올해 여든 일곱 세이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치매든 형수님을 케어하고 계신다.
산에서 만나 이십여 년을 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코로나로 대중교통 기피증이 생겨 자차를 이용하였고, 따라서 술도 마시지 않고 공원벤치에 앉아 이야기만 나누다 헤어졌다.
코스: 자산공원-육교-고개마루(체육공원)-(서원곡)-백운사-배나무고개-십자바위-부엉산(학봉)-정자전망대-둘레길-자산공원
무학산은 김형수 님의 '한국400산행기'를 들고 다니던 시절부터 오르내린 곳.
<산길샘>.
약 6km를 형님을 만나는 약속시간까지 천천히 걸었다.
춤추는 학의 모습에다 무학산의 지형을 덧입혔다.
네비엔 '은솔사우나(마산합포구 자산동 324-3)'를 입력하여 '자산공원' 주차장에 차를 댔다.
자산공원은 '한우아파트' 앞에 있어 나중에 형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 옆이 '은솔사우나'이고...
자산공원은 소나무가 우거진 데크가 설치된 소공원.
우측 서원곡 입구로 내려가...
도로를 가로 지르는 육교를 건널 참이다. 이는 동선을 크게 그리기 위한 것.
육교 위에서 산길은 육교와 한 몸통.
도솔사 입구 이정표에서 무학산과 학봉을 가리키고 있다.
좌측에 임마누엘수도원을 지나면...
곧 체육공원이 있는 널따란 고갯마루.
이정표는 학봉입구.
학봉은 곧장 오르면 가까이에 있지만 나는 서원곡으로 둘러서 오를 참이다.
창원과 고운 최치원의 흔적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게시판.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뒤 과거에 합격하였고, 이후 문명을 떨쳤다.
해인사에 은거하다 홀연 사라져버렸으니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창원시와 관련한 최치원의 유적 지도.
서원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무학산둘레길.
무학산둘레길에...
'창원둘레길 스템프투어'가 있다.
무학산 서원곡에 내려섰다.'서원곡(書院谷)'은 등산로 입구에 회원서원(會原書院)이 있었다하여 지어진 이름.
조선중기의 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선생을 추모하는 뜻으로 그의 문하생인 장문재(張文哉)선생이 지은 것.
현재는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의 ‘관해정(觀海亭)’과 ‘취백당(聚白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창원 둘레길 안내판.
더 위로 오르면 마지막 주차장이 있고, 데크로드는...
무학산둘레길이다. 계단 위에 있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한 뒤...
백운사(白雲寺)를 지나며...
난마처럼 얽힌 '무학산 등산로 종합안내도'를 일별한다.
팔각정자가 있는 쉼터를 지나고...
나는 배나무고개로 오를 계획이지만 이곳에서 십자바위로 질러가는 길이 있다.
좌측 데크를 통해...
무학산기도원으로 오르다...
직전에서 다시 우측 목교를 건넌다.
중봉 방향으로 오르다...
좌측 잡목사이로 뽕긋한 암봉을 올려다 본다.
십자바위다.
고갯마루는 배나무고개. 나는 배나무고개 벤치에서 요기를 하였다.
그런 뒤 우뚝한 암봉을 쳐다보며 학봉을 오르기 전에 먼저 십자바위를 오르게 된다.
십자바위를 우회한 지점에서...
돌아 오르면 사방 트인 암봉에서 시야가 뻥 뚫린다.
해발 약 390m 암봉에서 무학산 방향으로 돌출된 지점에...
한 평 남짓한 자연석 암반이 '십자바위'다.
아무렇게나 생긴 바위 중앙에 '십자(十字)'로 틈새가 갈라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바위에서 주기철 목사가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마산 시가지와 남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무학산의 스카이 라인.
'주기철목사 성지 순례길' 안내판이 있고...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산만과 돝섬.
건너편의 부엉산(학봉).
학봉 좌측의 마산풍경.
학봉은 직등할 수 없어서...
계단을 통해 우회하여야만 한다.
그렇게 오른 학봉에서도 역시 마산시가지가 훤히 들어온다.
북쪽 천주산 방향.
암봉엔 자연석으로 된 학봉 표석이 세워져 있다.
지형도에 올려진 이름은 부엉산이어서 표지기에 '부엉(鶴)산392.2'라고 써서 걸었다.
사람도 호적상 이름을 바꿀려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듯 산도 산림청에 등록된 이름을 바꿀려면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
표석 아래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은 고운대.
고운대(孤雲臺)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수양한 곳이어서 붙은 이름으로 고려·조선의 많은 학자들이 즐겨 찾은 곳이란다.
스토리텔링은 '최치원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셀프 카메라. 도심지에 있는 산이라서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아 마스크는 필수.
좌측 좁은 수로에 봉암다리, 마산만 건너 뒷산과 새방골산, 그 우측에 삼박골산, 작은 섬은 돝섬. 맨 우측엔 마창대교.
한 화면에 다 들어차지 않아 파노라마로 잡았다.
가까이 섬처럼 둥 뜬 녹색동산은 '추산근린공원'으로 '회원현성지'가 있으며, '창원시립마산박물관'과 '문신미술관'도 있다.
그 뒤의 자그만 녹색동산은 산호공원이 있는 용마산(龍馬山85.5), 그 좌측의 녹색지대는 마산종합운동장이 있는 반월산(101.5).
내려오는 길의 육각정자에서도 조망은 전과 동이고...
조선후기 문인 김시겸(1764~1827)의 '고운대(孤雲臺)' 시판(詩版)이 세워져 있다.
데크계단을 내려서서 돌아본 모습.
삼거리에서 좌측길은 아까 체육공원이 있는 곳이고, 우측길이 둘레길로...
만날고개로 이어진다.
산허리길은 잘 닦여진...
무학산둘레길.
고운 선생의 '범해(泛海)' 시판을 만난다.
- 泛海(범해) 바다에 배 띄우고 -
掛席浮滄海 (괘석부창해) 돛 걸고 바다에 배 띄우니
長風萬里通 (장풍만리통) 시원한 바람 멀리서 불어오네.
乘槎思漢使 (승사사한사) 뗏목에 오르면 한(漢)나라 사신 생각나고
採藥憶秦童 (채약억진동) 약초 캘 땐 진(秦)나라 아이들 생각나네.
日月無何外 (일월무하외) 해와 달은 허공을 가르고
乾坤太極中 (건곤태극중) 천지는 태극에 맞물리는구나.
蓬萊看咫尺 (봉래간지척)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
吾且訪仙翁 (오차방선옹) 나 또한 신선을 찾아가리.
<孤雲 (고운) 崔致遠(최치원)>
광명사가 있는 곳의 이정표.
침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울타리쳐진 무덤에서 좌측으로 내려섰더니...
띄엄띄엄 공동묘지가 나오더니 조금 더 내려서자 우측으로 잘 지어진 주택들이 보인다.
아스팔트 도로에 나오면...
대명사와 상선암 안내판이 뒤돌아 보인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자...
큰 길가의 '마로니에카페'에 불이 밝혀졌다.
횡단보도를 건너...
뒤돌아보는 마로니에 카페.
도시 한가운데의 사찰인 종문사를 지나...
좌로 90도 꺾어 돌아가면 '은솔사우나'가 있는 곳으로 원점회귀를 이룬다.
형님과 솔숲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는데, 뵌 지 2~3개월은 된 성싶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하며 크리스트교 문명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고, 사람들에게 삶의 허무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설 것을 요구했다.
'더 기뻐하라. ...부끄러워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기뻐하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도 옅어진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할 만큼 기뻐하라.'
-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극도의 슬픔은 우리들을 하느님과 다시 맺어준다." - 단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