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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6일
말씀: 엡6:12
제목: 악한 세력과의 싸움
우리의 길과 우리의 목적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정해진 길로 가야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목적은 분명하기에 삶이 그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결단과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나라를 목적으로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성령께서 도와주지 아니하면 걸어갈 수 없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악한 영들의 유혹과 방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번 주에도 디지털휴먼 복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빼앗는 세상의 문화와도 싸워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통치자와 권세자들 있데, 이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목적 된 삶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악한 세력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승리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십자가의 승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그 분의 능력을 소유하고 그 분의 권세를 소유하고 그 분의 열쇄를 소유한 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그래서 승리가 보장된 삶입니다. 문제는 이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철저히 하나님 임재가운데 삶을 살아가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반복해서 구주예수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일서5:18-1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이 말씀은 온 세상이 악한 자의 품에 들어있다고 말합니다. 이 악한 자는 사람들을 꼭 붙잡고 다른 데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쟁이나, 경제나, 온난화문제나, 화재나 이런 것들은 사람에 의해서 저질러 진 결과라고 말합니다. 물론 주요한 책임을 따진다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솔린, 히틀러 김일성과 같은 인물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사람이 그렇게 했습니까? 왜 이렇게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하면 우리는 혈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21세기에 우주시대가 활짝 열려 있는 오늘날 교육과 도덕으로 세워진 나라, 인권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왜 날이 갈수록 잔인한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까? 왜 사람들이 광적이고 무지한 방식을 믿습니까? 자기편이 아니면 들을 생각도 안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적대적 관계를 형성합니까? 자기 신념이 광적이고 독단적이고 무지합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내용들을 세상에서는 해답을 던지지 못합니다. 세상 문제는 세상이 풀어낼 수 없는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은 이런 모든 것이 인간본성에서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습니다. 우리 모두는 미련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으로 개개인들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잘 못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개선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개선한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하는 구호아래 어떤 일을 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산주의’는 이 땅을 사회주의로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 땅에 파라다이스를 만들려고 시도한 모든 부분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공해문제, 온난화 문제, 미세먼지 문제, 저 출산 문제, 청소년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완벽하고 해결할 수도 없고 더 나은 제도도 사실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인간의 애씀이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실패의 요인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성경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본성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은 언제나 무섭고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 뒤에 있는 마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세상의 고통은 마귀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세계의 이야기라 믿는 것도 싶지 않겠지만, 영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모르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외교 안보 등의 모든 부분이 쓸모없고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한 이치라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을 사실로만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활동하고 계획하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이지 않은 세계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는데요, 그 세계는 주로 두 부류로 되어 있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세계며, 또 다른 부류는 마귀의 세계입니다. 마귀의 세계는 마귀가 다스리고 조종하는 권세들입니다. 이들이 왜 심각한 문제냐 하면 이들은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의 탐욕과 우상숭배와 시기와 질투와 살인 등은 마귀와 권세 자들의 역사와 활동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사실 마귀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언급한 것 외에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간이 창조된 순간 마귀는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들입니다. 이 천사도 하나님의 창조영역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완벽하게 창조했지만, 천사가 큰 권능을 부여받고 교만하여 무례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배역한 자로 이 땅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동등 됨으로 인정받기 위해 모반을 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이제 마귀에게는 한 가지 야망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보기에 좋았더라.’는 이 창조세계를 무너트릴 계획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아담에게 찾아와서 마귀가 타락한 방법을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시켜, 사람이 주인 될 수 있다는 유혹으로 말미암아 인간 또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고통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말을 듣는 자들은 마귀의 노예가 됩니다. 그때부터 마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갑니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성경은 마귀를 ‘공중 권세 받은 자’‘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마귀의 손에서 붙들려 노예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의 능력이 엄청나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세상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성도들이 마귀에 대한 존재를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고통거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하면 인간이 잘 못해서 받는 아픔으로 해석하고 더욱더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마귀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만일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면 천국은 있는데 지옥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저번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강한 자가 무장하여 자기의 집을 지키고 자기의 소유를 안전케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엡6:12절에서 말씀을 다시 확인해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것이 바로 세상 구조와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귀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 말은 마귀의 능력은 대단하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인간으로 태어난 어떤 사람도 마귀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구약에서 매우 위대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족장, 선지자, 경건한 사람들 등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도 다 범죄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마귀에게 넘어가고 무너지고 했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완전한 사람으로 창조되었지만 아담조차도 이 유혹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마귀의 강교 함은 누구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롬1:10, 23‘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라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됩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느냐하면 우리를 지배하고 조종하고 주인 노릇하는 이 마귀의 무서운 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고후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 진 것이라’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고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 목적은 이 세상만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끝이다. 이 땅에서 만족을 누려야한다, 이 땅에 행복이 있다, 이 땅이 전부다’그래서 이 땅에서 삶에 매몰시키고 이 땅의 원리와 방법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즉, 이 땅에 묶이어 땀 흘리고 수고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은 반대로 이 땅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위한 삶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분명히 세상의 삶은 멸망의 문이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고 좁은 문은, 즉 우리가 가야할 길은 영생의 길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세기 때나 오늘날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비웃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웃음과 조롱거리로 삼아왔습니다. 성경에는 십자가가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마귀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누가 시인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십자가를 조롱하는 자들이 이런 조롱거리가 마귀의 간계에 의해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가려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하면 더욱더 비웃음의 대상만 되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마귀는 보고 듣는 것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영역에서 마귀의 간계를 파악하는 것은 영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부모가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은 순진하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죄가 즐겁고 유쾌하기 까지 합니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못된 것에 대한 소식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은 별로 소문이 안 나는데, 나쁜 소식은 얼마나 빨리 소문이 나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즐겁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모반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모반하도록 여러 가지 간계를 부린다는 것을 우리는 아셔야합니다.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결국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육신의 생각이 인간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히2:13-15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왜 인류는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죽음은 갈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정말 무서운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 만 있으면 죽음을 피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죽으면 끝이니까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죽음을 지연시키려고 합니다. 곁으로는 아무렇지 않을 듯,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고 있지만 마음에는 늘 죽음의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무당집이나, 절간이나 산당이나 이런 곳에 가보면 그림이 다 무섭습니다. 신이 무섭고 달과 해와 별들이 무서운 존재로 그리고 있고, 그들이 믿는 우상이 다 무섭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삶 자체가 두려움과 악과 죄악 된 삶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주관하는 삶이며, 마귀가 창출해 낸 혼란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창조를 끊임없이 혼란으로 바꾸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바울의 고백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소환합니다. ‘네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라.’왜 이렇게 고백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오직 그분만이 나를 속박하고 그 폭군과 사단의 지배와 죄의 지배로부터 건져 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그러니까 마귀를 멸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강하게 무장한 자와’그 보다 더 강한 자가 올 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도 바로 그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마귀는 강력한 진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의 영역에서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강력한 분이 필요한 것이며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즉 복음서를 읽을 때 예수님이 인간과 싸우는 것을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인간 뒤에 조종하는 권세와 싸우신 것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마귀와 사력을 다 해 싸우시는 주님을 보셔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을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자마자 마귀는 예수님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셨습니까? 헤롯대왕은 두 살 난 사내아이들을 다 죽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마귀의 계략은 무차별적이었습니다. 40일 금식 하든 광야에서 예수님을 넘어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아담에게 유혹했던 그 유혹을 동시에 주님에게도 한 것입니다. ‘가로되 만일 네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그러니까 너를 이 땅의 주인이 되게 하리라는 어리석은 유혹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성경에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 모든 악의 파괴에 대해서 예수님이 어떻게 싸움을 싸웠는지 살펴보시면 죄의 속박 속에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얼마나 애타하시며 건져내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후승리를 위해 겟세마네 기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최후승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야하는 길을 가야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땅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지는 사투를 하고 계신 것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시는 모습입니다. 마귀의 포악함과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 내기위한 가장 완벽하게 해 내신 것이 바로 십자가 죽음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마귀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12:31-33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일어난 일의 결과는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 세상의 임금을 쳐부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우리는 승리의 십자가와 함께합니다.
여러분 사단의 정체를 알아야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죽으심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보고 안심하거나, 방치하거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은 다면 우리는 세상과 싸우는 삶이 아니라 세상과 짝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여신 길을 걷거나 좁은 길, 생명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들을 통해 마귀가 방해하고 속이고 유혹하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마귀가 어디에 있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결론적으로 마귀의 힘과 능력을 알아야하며,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세력임을 알면, 인간이 왜 범죄 하는 삶을 사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벗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마귀를 멸하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하는 더 강력한 능력이 성령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날마다 알아가며 영적인 승리를 위해 연단과 훈련을 받으며 그 나라를 준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자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