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중음악은 흔히 유행가(流行歌), 창가(唱歌) 또는 가요(歌謠)라고 하며, 그 본격적인 시작은 주로 뽕짝이라는 별명의트롯트, 즉일본식 발음인 도롯도에서 시작한다. 뽕짝이란 표현은 쿵짝쿵짝하는 드럼(drum) 소리가 중심이 되니 부르게 된 이름이다. 한국에서의 대중가요(大衆歌謠)는 1928년부터 레코드 제작이 본격화 되면서 많은 일본가요들이 한국말로 번역되고, 한국가요도 일본에서 녹음되는 과정에서 일본인이 편곡을 담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결과 일본 가요와 한국 가요의 선율이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광복(光復)될 때까지 엔카풍의 대중가요가 유행하였다. 일본식 유행가나 외국의 가요를 번안하여 부르던 당시, 우리나라 창작 대중가요 1호는 1929년에 나온 "낙화유수"(落花流水)였다. 이어서 32년 이애리수의 황성옛터, 33년 고복수의 타향살이, 35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36년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등이 히트하게 된다. 가사 내용은 고단한 삶이나,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광복 후 왜색의 잔재를 없애고 건전 가요의 제작과 보급, 팝송과 재즈기법이 도입되면서 엔카풍의 가요도 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 일명 "뽕짝"으로 불리는 트롯 (또는 트로트, 도롯도)이 그것이다. 2종 3종 교배로 탄생한 트로트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대중음악을 지배했던 최초의 주류음악이었다. 1960년대 독자적인 음악 장르의 하나로굳어지기 전까지 왈츠, 블루스, 탱고 맘보, 룸바, 부기우기 등과 더불어 리듬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1970년대부터 폭스트롯의 4/4 박자를 기본으로 하되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꺽기 창법을 구사하는 가요형식으로 완성된다.
70년대 청년문화, 80년대의 10대 문화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났지만 20세기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장르였다.
10대에 힙합(hiphop)을 했더라도 30, 40대에 직장생활에서 노래방 문화를 접하거나 성인 유흥업소에 접속하는 한 트로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트로트라고 할 때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서민, 성인, 농촌이다.
그러나 트로트가 탄생했을 때는 농촌 서민의 음악이 아니라 교육 받고 교양 있는 중산층인대도시 엘리트의 음악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음악 가사를 접한 사람이라면 가사의 문학적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음악가인 윤심덕(尹心悳, 1897~1926)과 그녀의 최초이자 마지막 스완곡인 "사의 찬미" (1926)가 대표적이다. 아깝게도 번안곡이라 우리나라 창작가요 1호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곡이다.
이렇게 도시의 식자층이 만들어낸 음악이 시간이 흐른 뒤 지방의 성인 서민의 취향에 부합하게 된 것은 트로트에 원죄(原罪)처럼 따라다니는 왜색혐의(倭色嫌疑)와 관련되어 있다.
이 혐의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어찌되었든 트로트는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서민의 생활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60년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트로트의 선율은언제나 애틋한 마음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서민 대중의 정서와 닮아 있었다. 타관살이의 서러움을 이겨내고, 배고픔과 아픔을 달래주는 것은 흔히 유행가(流行歌)라 불리는 트로트였다.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민족정서를 관통하며 애환(哀歡)을 같이 해왔다.
한국인에게는 울음과도 같은 음악이며 하염없이 떨어지는 절망과 슬픔을 연소시키면서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고 가사를 보면 분노를 폭발시키기보다 슬픔을 새기는 체념적(諦念的)인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ctharsis, 淨化, 排泄)가 아픔을 감쌌고 삶의 난관을 극복하는 버팀목이 됐다.
한국의트로트는 망국의 한(恨), 전쟁으로 인한 이합집산, 가난과 도시화로고향을 등진 실향인의 슬픔을 담아낸 고향노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트로트는 한국인 최고의 발라드였으며, 국민으로부터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들만 해도 이미자, 나훈아, 남진 오기택 등 주로 트로트 가수였다.
트로트의 생명력은 선율에 한국인의 정서가 들어가 있으므로 누구나 마음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아무리영미의 pop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30대가 넘으면 뽕짝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노래방 문화 등이 워낙 뿌리가 깊은 데다 나이가 들 수록 가사를 음미(吟味)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사보다 박자를 중시하는 댄스음악과는 달리 부르다 보면 인생의 의미를 담은 가사를 음미하게 되고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건드리며 때로는 햇솜처럼 따뜻한 온기와 정감이 배어있다. 90년대 이후 주현미, 현철, 이용석 (일명 이박사, techno trot) 등이 나오면서 트로트는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트로트의 창법과 반주법의 익숙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장윤정, 박현빈 등의 상업적 성공은 젊은 취향의 트로트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고, 이제 젊고 밝고 경쾌하고 발랄한 트로트는 시대의 대세다.
그런데 신세대 트로트가 기성 트로트를 계승해 진정한 트로트의 부활을 가져오고 있는지, 아니면 기성의 트로트와 단절하고 제3의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논란이 있다, 이른바 정통(正統)과 이단(異端)의 논쟁인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10대용 음악과 성인 음악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트로트가 다시 주류로 진입했다는 사실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트로트의 활성화가 아니라 가요시장의 다양화로 보는 견해도 있기는 하다. 일부 몰지각한 식자들 특히 성악가들의 일부가 뽕짝이라는 용어를 저속하다고 비하(卑下)하며, 음악계에서도 잘 쓰지 않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과 진리를저버리는 사대적(事大的)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에서 탈피할 때 한국은 세계로 쭉쭉 뻗어 나가게 된다.
70세가 넘는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트로트와 생사고락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이보다더 친숙한 음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가요(歌謠)와 가곡(歌曲)을 구분하여 달리 취급한다. 가요를 대중음악 (popular song)이라고 하면, 가곡은 예술음악 (art song)이다.
다양성과 대중성이 부족하다면 예술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늘날 주로 성악가가 부르는 가곡은 대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대중음악가도 성악가도 아닌 crossover 창법의 가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추세이다.
첫댓글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