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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30 노무현 빼고 역전 없던 대선 D-100… "이번엔 예측 어렵다"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르면 대선 D-100일 민심이 선거 때까지 그대로 이어질 확률은 85.7%다.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1987년 13대 대선부터 2017년 19대 대선까지 선거 D-100일 전후로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와 최종 대선 결과를 비교한 결과다. 지난 7번의 대선에서 D-100일 전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1위였던 후보가 대선에서 최종 당선된 경우는 6차례다. 막판에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켜 이회창 후보에게 역전했던 2002년 16대 대선이 유일한 예외 사례다.
이런 확률적 경향은 내년 3월 치러지는 20대 대선에서도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달리 예측이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우선 대선 D-100(11월 29일)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확실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11월 26~27일 조사한 결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은 38.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36.1%를 기록했다. 오차범위 내 접전이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1월 22~24일 합동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35%, 32%로 백중세였다.
D-100 민심이 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진 과거 6차례 대선의 양상은 이번 대선과는 달랐다. 최종 당선된 후보가 D-100일 여론조사에서도 2위 후보와 상당한 격차를 유지하며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과거 대선 D-100일 전후의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2017년의 경우 문재인 후보가 안희정·반기문 후보 등을 20%포인트 이상 차이로 앞섰다. 2012년에도 박근혜 후보가 당시 바람을 일으키던 안철수 후보에 15%포인트 차로 앞섰다. 2007년 대선의 경우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강하게 불어 약 50%포인트 차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2002년 대선을 제외한 그 이전 선거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특히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1, 2위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좁아지는 모습이 항상 나타났다. 이 때문에 D-100일 여론조사에서 1, 2위 지지율 격차가 작은 이번 대선은 예측이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28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과거 선거는 D-100일 땐 ‘1강(强) n중(中)’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처럼 양강 구도가 빨리 형성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차이가 적은 현재 지지율보다는 후보간 연대가 가시화될 D-30일 여론조사 추이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의견 유보’ 비율이 높다는 점도 대선 결과를 단정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월 16~18일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를 물은 결과 21%는 ‘의견 유보’를 선택했다. 과거 대선의 경우 D-100일 전후 ‘의견 유보’ 비율은 대체로 10%대였는데, 상대적으로 이번에 높은 것이다. ‘의견 유보’ 비율이 높을수록 실제 결과와 오차는 커진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찍을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는 20·30세대 비율이 유독 높다. 중앙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연령층에서 ‘(지지 후보) 없다’와 ‘모름·무응답’을 합한 비율은 11.3%였다. 그런데 20대(18·19세 포함)는 그 비율이 24.8%까지 올라갔고, 30대는 15.9%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11 월 16~18일 조사에선 ‘의견 유보’ 비율이 20대 42%, 30대 29%였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대선이 D-100엔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있더라도 선거 당일엔 박빙의 승부를 겨루기 때문에 부동층의 표심이 중요하다”며 “20·30세대의 투표율은 높아지는 추세고, 이들은 4월 재보선을 통해 자신들의 표심 영향력을 체감한 세대다. 이들의 표 방향이 대선 결과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직업군과 지역의 지지율이 대선 결과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예컨대 한국갤럽이 1987년부터 대선 직전에 한 여론조사 자료를 분석해보면, 자영업자의 지지율 1위 후보와 당선 후보가 7차례 모두 일치했다. 대선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변수가 경제 기대감인데, 자영업자가 경제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갤럽 조사(11월 16~18일)에서 자영업자 지지율은 윤석열 후보가 45%로 이재명 후보(27%)를 앞서고 있다.
지역으로 보면 인천·경기의 1위 지지 후보가 당선 후보와 모두 일치했는데, 이곳 지지율 역시 윤석열 후보가 다소 앞선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검찰 수사 등 각종 변수가 상존하고 있어 특정 직업이나 지역의 지지가 그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재묵 교수는 “검찰 수사 결과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모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고, 둘 다 여의도 정치 경험은 없어 말실수 등 사건·사고 변수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여론조사 어떻게 진행했나
이번 조사는 중앙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월 26~27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유선 임의전화걸기(RDD)와 무선(가상번호)을 결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유ㆍ무선 평균 응답률은 13.8%며 2021년 10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노소영 "아버지 모실 곳 찾았다"… 故 노태우 유산 공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 안치될 장지가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월 28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제 아버지를 모실 곳도 찾은 것 같다. 내일 동생(노재헌 변호사)이 발표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지는 통일동산 지구 내 동화경모공원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유족 측의 희망에 따라 장례 기간 동화경모공원을 포함한 후보지 3곳 중에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파주시 성동리 산림청 소유 국유지였다. 하지만 산림청에서 국유림 매각에 난색을 보이면서 논의가 답보된 상태였다.지난달 10월 26일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경기 파주의 사찰인 검단사에 임시 안치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유족들은 고인의 생전 남북 평화통일의 의지가 담긴 파주 통일동산을 장지로 희망해왔다. 파주시에 통일동산 부근을 장지로 쓰고 싶다는 뜻을 여러차례 전했지만 협의에 진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장지… 파주 통일동산 동화경모공원으로 결정
지난달 10월 26일 세상을 떠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안장될 장지가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지구 내 동화경모공원으로 결정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현재 파주에 있는 사찰인 검단사에 임시 안치된 상태다.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11월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달 10월 26일 아버지께서 작고하신 지 한 달, 그리고 나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어디에 모시는 게 좋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동화경모공원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장일은 준비가 되는 대로 곧 정해질 것이고, 이곳에서 보통 사람을 표방하던 고인이 실향민들과 함께 분단된 남북이 하나가 되고 화합하는 날을 기원하시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 유족 측 “남북 평화와 통일 염원하신 유지 받들어”
유족 측은 “남북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신 유지를 받들면서 국가와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길을 택하려고 많은 분의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이어 “조언과 협조를 아끼지 않은 파주시와 시민단체,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국가장을 엄수해 준 정부와 장례위원회에도 다시 한 번 더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파주시 관계자는 “실향민들이 조성한 동화경모공원은 이북5도민 및 파주시민(일정 기간 거주자)만 이용할 수 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른 데다 사전에 유족 측이 동화경모공원을 장지로 원했고 공원 측도 이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장지가 결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 “동화경모공원, 유족 희망에 협조 의사 밝혀”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동화경모공원은 실향민의 망향 한을 달래기 위해 1995년 조성된 묘역 및 납골당 시설이다. 이곳은 탄현면 성동리 산림청 소유 국유지를 비롯해 국가장 기간에 검토된 장지 후보지 3곳에 포함된 바 있다. 유족들은 고인의 생전 남북 평화통일 의지를 담아 파주 통일동산을 장지로 여러차례 희망한 바 있다. 파주시 측은 이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답을 내놨다. 관광특구인 통일동산에 규정상 장묘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는 이유였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고인이 평화의 땅 파주에서 남북평화와 화해·협력을 기원하며 영면하실 수 있도록 국가장례위원회 및 유족분들과 함께 안장 절차에 최대한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11월 2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제 아버지를 모실 곳도 찾은 것 같다. 내일 동생(노재헌 변호사)이 발표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노소영 관장은 “유산을 정리할 게 없어 좋다”며 “연희동 집 하나 달랑 있는데 동생에게 양보했다. 나는 대신 담요를 집어 왔다”며 곰돌이가 그려진 담요 사진 한장을 공개했다.
이어 “근 16년을 침대에 누워만 계셨는데, 이 곰돌이 담요도 내가 5년 이상 본 것 같다. 싸구려 담요인데 왜 이것만 덮어 드렸는지 모르겠다”며 “집에 들고 오니 촌스러워 어디 둘 곳이 없어 고민하다가 내 서재 의자 덮개로 안착했다. 등이 따스하고 든든하다. 아빠가 지켜줄 것 같다”고 했다. 노소열 관장은 그러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아빠, 이제 잠들 곳이 생겼네요. 아빠가 덮으시던 담요 이제 내 차지에요. 내게 비록 담요 한장밖에 안 주셨지만, 아빠, 영원히 사랑하고 존경해요. 잘 자요, 아빠”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文대통령 "일상회복 2단계 유보, 3차 접종 조기완료 총력"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9일 "정부는 지난 4주간 일상회복 1단계 기간을 면밀하게 평가해 일상회복 2단계 전환을 유보하면서 앞으로 4주간 특별방역대책을 시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어렵게 시작한 단계적 일상회복을 되돌려 과거로 후퇴할 수는 없는 일"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면서 "방역당국뿐 아니라 모든 부처가 합심해 지금의 고비를 극복하고 완전한 일상회복의 길로 나아가도록 최선 다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방역 상황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 누적 사망자 수가 3500명을 넘어섰다. 전세계 사망자수가 520만명을 넘은데 비해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수가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편이지만 그렇더라도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며 "더구나 최근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늘고 있어 더욱 마음이 무겁다. 감염병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분과 가족들께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 "특별방역대책의 핵심은 역시 백신접종"이라며 "이제는 3차 접종이 추가 접종이 아니라 기본 접종이며 3차 접종까지 맞아야만 접종이 완료되는걸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부부터 이같은 인식하에 2차 접종을 마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3차 접종을 조기에 완료할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미 가장 위험도가 높은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대한 3차 접종을 서두르고 있고 2차와 3차 접종의 간격을 단축했다"며 "그에 더해 1차 접종이나 2차 접종 때처럼 긴장감과 속도감을 높여주길 바란다. 국민들께서도 1·2차 접종을 서둘렀듯이 3차접종까지 마쳐야 기본접종 마친다 생각하고 3차 접종에 적극 참여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10대 청소년들의 접종과 관련해서도 접종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세이상 성인들의 접종률 매우높은데 비해 접종연력이 확대된 12~17세까지의 접종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최근에 전면등교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있어 걱정이 매우 크다"며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수업을 위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학교로 찾아가는 접종 등 접종의 편의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 강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5~11세까지 아동의 접종도 신속하게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방역대책의 또 하나 핵심과제로 병상과 의료인력 등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라며 "정부가 지자체 및 의료계와 적극 협력하고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연계해 위증증 환자의 치료와 재택치료에 어떤 공백도 없도록 총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년 2월 도입하기로 한 먹는 치료제도 연내에 사용할수 있도록 도입시기를 앞당기고 국산항체치료제도 필요한 환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어 "의료체계가 감당하려면 방역관리에 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며 "요양시설, 노인복지시설 등 감염취약시설에 대한 방역을 강화하고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국내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도 빈틈없이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 경호" 특전사 등 53명 숨진… '봉황새 작전'을 아시나요
1982년 2월 5일, 제주 하늘에는 먹구름이 짙게 끼어있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강한 바람은 제주도의 전형적인 겨울철 날씨였다. 이날 오후 1시 30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해 제주공항으로 향한 공군 수송기 C-123기에는 특전사령부 최정예 707대대 요원들이 탑승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시계는 오후 3시 15분에 멈췄다.
특전대원 47명과 공군 장병 6명 등 53명이 탑승한 군 수송기는 한라산 개미등 해발 1060m 지점에서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 대형참사였지만 당시 정권의 보도통제로 신문 사회면에 한두차례 실렸을 뿐, 거의 보도되지 못했다. 당시 국방부는 “이상기류에 휘말려 한라산 정상 북방 3.7㎞ 지점에 추락했으며, 자세한 사고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 뒤 사망자 명단이 공개된 적도, 사고원인이 규명된 적도 없었다.
참사 당일인 2월 5일 늦은 오후 <제주신문> 사진부 서재철(75·현 자연사랑미술관장) 기자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통신사 뉴스를 수신하는 텔레타이프에서 긴급뉴스가 타전될 때 울리는 ‘땡땡땡’하는 종소리가 편집국에 울려 퍼졌다. 텔레타이프 앞으로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제주도 해역에서 군 훈련기 추락’이라는 기사가 떴다. ‘추락 예상지는 추자도 근해’라는 기사가 이어졌다.
서재철 전 기자는 지난 11월 25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텔레타이프에서 기사가 계속 이어질 줄 알았는데 더는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제주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승격하면서 활주로를 확장해 이튿날 대통령 참석 행사가 예정돼 있었어요. 공군기들이 이착륙 시험을 하느라 왔다 갔다 하고, 바다에는 해군 함정들이 모여 있었어요. 날씨는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마치 전쟁영화에 나올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됐지요.”
서재철 전 기자는 다음날 제주도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한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준공식 행사를 근접취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한라산에 군 수송기가 추락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제주공항 취재가 끝난 뒤 그날 오후, 해발 1600m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적설기 훈련을 하던 등반대로부터 ‘밤새 조명탄이 쏘아 올려졌고, 굉음이 들렸다’는 말을 들었다. 왕관릉과 개미등을 거쳐 탐라계곡을 따라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다 어두워질 무렵 사고현장을 확인했다.
다음날 현장으로 출동하던 특전사 수색대원들에게 따라잡히지 않도록 ‘마라톤 하듯이’ 눈길을 뛰어 사고현장에 도착했고 흑백필름 6롤을 찍었지만 보도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보도하지 못하니 필름을 모두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필름 5롤만 제출하고 1롤은 따로 갖고 있다가 1989년에야 언론에 공개했다. “말 그대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미 군인들이 주검들을 많이 수습한 상태였는데 군 수송기 겉면의 위장천이 나무에 걸린 채 100 ~ 200m 잘렸고, 불발된 포탄들을 늘어놓은 게 보였다. 후다닥 사진만 찍고 등산객으로 위장해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서재철 전 기자는 “1982년 5월 위령비 제막식 때 유족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우리 자식은 하늘에서 내던져도 살아나도록 훈련받았는데 그렇게 처참하게 죽을 일이 없다. 뭔가 잘못된 거다’라며 난리쳤던 게 기억난다. 사고원인을 규명하라는 요구였다”고 말했다. 숨진 장병들의 100일제를 계기로 그해 5월 15일 결성된 특전사 2·5유족친목회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인 1988년 12월 “하늘의 뜻을 무시하고 군인은 죽어도 좋다는 ‘살인마 일당’을 철저히 규명해 처벌하고, 악조건의 기후임에도 자기의 출세를 위해 권력 앞에 충성을 아부해 위험 사실을 알고도 죽음의 길로 보낸 특전사령관 이하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국회의장에게 보냈다.
이듬해인 1989년 9월 17일 처음으로 현재 충혼비가 세워진 한라산국립공원에서 첫 위령제가 진행됐다. 보슬비가 내리는 현장에서 유족들은 취재기자에게 매달려 관련자들을 살인 혐의 등으로 처벌해달라며, 사고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며 울부짖었다. “당시 특전사령관인 박희도가 사고가 나자 대통령 경호임무인 ‘봉황새 작전’을 조작하기 위해 다음날인 2월 6일 오전 8시 45분 5전술공수비행단 707대대장에게 임무 명칭을 ‘동계특별훈련’(대간첩 침투작전)으로 바꾸도록 지시하고, 장병들이 대간첩 침투작전 훈련 중 순직한 것으로 사건을 처리해 국민과 유가족을 기만했다”는 주장이었다. 유족들은 그해 12월 서울지검에 전두환과 당시 주영복 국방부장관, 이희근 공군 참모총장, 박희도 특전사령관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직권남용 등을 죄목으로 고소했지만, 1992년 12월 ‘혐의없음’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11월 25일 찾은 특전사 충혼비가 세워진 충성공원에는 충혼비와 당시의 군 수송기 잔해,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안내판 등이 자리하고 있다. 낙엽들이 쌓인 특수부대의 상징인 검은 베레 조형물 아래 ’안 되면 되게 하라’고 새긴 글귀가 눈에 들어왔고, 충혼비 양쪽에는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뒤쪽으로 돌아가 마주친 유리관 안에는 군 수송기의 잔해와 군인들의 숟가락 등 소지품이 진열돼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한쪽 면에는 사고수습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맞은편에는 수정 전 ‘대침투작전 훈련 중’이라는 충혼탑 비문이 수정 뒤 ‘대통령 경호 작전 중’으로 바뀌었다는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비문의 문구가 수정된 시점은 불과 6년 전인 2015년이다.
당시 참사 현장을 목격한 이들과 유족들은 53명에 이르는 장병이 몰사한 데 대한 정부의 책임있는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며 악천후 속에 무리하게 비행하게 된 경위와 작전명이 바뀐 이유 등을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 발생 뒤 군은 사건 축소와 은폐를 위해 관련 경찰관들에게도 평생 발설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사고 직후 빠른 현장정리를 위해 장병들의 주검은 마대자루에 담겨 옮겨졌고 항공기 잔해 등도 폭파처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혼탑 비문에, 유족들이 무고한 희생을 불러온 주범으로 지목한 박희도 당시 특전사령관의 글이 새겨져 있는 점은 아이러니다. 1982년 5월 15일 지은 충혼탑 비문 앞면에는 “네가 죽음으로서 / 우리가 살고 / 조국은 지켜지리니 / 검은 베레는 죽어서 영원히 산다”. 뒷면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젊은 나이에 생명을 바친 육군 특전부대 검은 베레 장병 47명과 공군 장병 6명의 거룩한 희생과 충혼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웠다”는 박희도 전 사령관의 글이 새겨져 있다.
“네가 죽음으로서… 조국은 지켜지리니”라며 억울한 특전사 요원들의 죽음을 왜곡한 박희도는 5공을 상징하는 정치군인 가운데 한 명이다. 1980년 12·12사태 당시 1공수여단장(준장)으로서 군 사조직 하나회 선배였던 전두환의 지시를 받고 휘하 병력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한 정권창출 1등 공신이었다. 전씨의 최측근 실세였던 그는 특전사령관에 올랐고, 이 사건을 덮고 넘어간 뒤 육군참모차장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에 오르는 등 5공 시절 내내 출세가도를 달렸다. 최근까지도 태극기부대로 활동하며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 때 모습을 드러냈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애국자”, “5·18은 북한이라는 불순세력이 개입한 사건”이라고 발언해왔다. 자신을 경호하기 위해 출동한 최정예 요원들이 몰살당한 이 참사와 관련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전두환씨는 지난 11월 23일 세상을 떴다. 박희도 전 사령관은 전씨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켰다고 한다.
특전사 수송기 C-123 추락 지점 .... 2015년 5월 5일 관음사 하산길에 촬영 / 담바우 이창원
조국의 부름에 이곳 한라에 깃든 특전 혼이여 백록의 정기 담아
불멸의 검은 베레로 영원히 기억되리! / 제3공수 특전여단 12대대(2010. 7. 21)
11월 끝날에 내리는 겨울비.......!!!!!!!!!!!
***** THANK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