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무엇을 사유할까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은 자세를 반가부좌(半跏趺坐), 줄여서 반가라고 한다. 결가부좌(結跏趺坐) 곧 가부좌의 상대되는 말이다. 미륵보살반가상은 이런 반가의 자세로 앉아서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미륵의 모습을 나타낸 불상이다. 머리에는 삼면이 각각 둥근 산 모양을 이루는 관을 쓰고 있어 삼산관반가사유상(三山冠半跏思惟像)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에는 미륵신앙이 크게 행해져 많은 반가사유보살상이 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평안남도 평양시 평천리 출토의 고구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충청남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의 왼쪽 협시인 백제의 반가사유상, 그리고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조각된 신라의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예들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국보 78호, 그리고 이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83호, 고구려의 반가사유상으로 주목되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국보 118호 등의 작품이 뛰어나다. 그 외 보물이나 비지정 문화재로 보관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 중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은 일본 교토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일본의 국보 1호인 목조반가사유상과 그 양식이 매우 유사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고류지 반가사유상의 제작지에 대해서는 백제와 신라의 두 가지 설이 있으나, 고류지를 창건한 진하승(秦何勝)이 신라계의 도래인이었다는 사실이나, 신라에서 온 불상을 이 절에 모셨다고 하는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보아, 이것은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고류지의 목조반가상이 한국에 많은 적송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당시 삼국과 일본과의 교류 관계를 통해서 볼 때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예술적으로 너무나 뛰어난 작품들이다. 독일의 유명한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고류지 불상을 보고, “이 불상이야말로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어떤 조각 예술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감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 있는 예술미의 극치다.”라고 찬탄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불상의 예술적 미감에만 몰입한 나머지 정작 이 불상이 지닌 ‘사유(思惟)’의 의미에 대해서는 소홀한 것 같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륵사상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륵은 친구를 뜻하는 산스크리크어 미트라(mitra)에서 파생한 마이트리야(Maitreya)를 음역한 것이다. 자씨(慈氏)로 의역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륵보살은 흔히 자씨보살이라 불린다.
미륵블은 석가 이후에 오는 미래불이다. 불교사상이 시대를 내려오면서 발전함에 따라, 미래불이 나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사상이 싹트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등장한 보살이 미륵보살이다.
이 미륵보살은 인도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 부처가 되리라고 미리 예언함)를 받은 뒤 도솔천(兜率天)에 올라가, 현재 하늘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부처가 되기 이전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른다.
부처는 지혜의 완성자이고, 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거나 중생 구제를 위해 부처의 자리를 잠시 유보해 놓고 있는 이들이다. 미륵보살도 때가 오면 미륵부처의 몸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는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한 뒤 56억7000만 년이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여 3회의 설법으로 272억 인을 교화한다고 한다. 그때의 이 세계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는 훌륭한 임금이 나타나 다스리는데, 그때는 땅이 유리와 같이 평평하고 깨끗하며 꽃과 향이 뒤덮여 있는 이상적인 국토로 변한다고 한다.
미륵신앙은 한말로 미륵불이 내도하기를 기원하는 신앙이다. 미륵신앙은 상생과 하생 신앙으로 나뉜다. 미륵보살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미륵이 강림하는 오랜 세월을 기다릴 수 없을 때는, 현재 보살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 기원했는데 이를 상생(上生) 신앙이라 한다. 또 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 염원하며 수행했는데 이를 하생(下生) 신앙이라 한다.
이런 미륵신앙이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다. 신라의 진흥왕은 왕자를 금륜(金輪)과 동륜(銅輪)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자신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고자 하는 꿈을 반영한 것이다. 선화공주와 결혼한 이야기로 유명한 백제의 무왕도 익산에 미륵삼존을 모신 미륵사를 창건하고 스스로 전륜성왕이 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간절한 바람에 부응하여 먼 훗날 미래세에 미륵은 강림할 것이다.
이에 미륵보살은 도솔천에 머물다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즉 56억7000만 년 동안, 자신이 교화할 먼 미래를 생각하며 반가의 자세로 앉아서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대고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새긴 것이 바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