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의
꿈 속의 꿈 이야기
김광한
중국 춘추시대의 장자(莊子)는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道)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어요. 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도 안에서는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이 없다. 사물은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며 사람들은 이 상태가 저 상태보다 낫다는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환경, 개인적인 애착, 인습,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욕망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장자는 관리생활의 번잡함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의 재상직을 거절했지요. 그의 인식에 대한 철저한 상대성은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나비의 꿈'(胡蝶之夢)에 잘 나타나 있어요.
"언젠가 나 장주(莊主)는 나비가 되어 즐거웠던 꿈을 꾸었다. 나 자신이 매우 즐거웠음을 알았지만, 내가 장주였던 것을 몰랐다. 갑자기 깨고 나니 나는 분명희 장주였다. 그가 나비였던 꿈을 꾼 장주였는지 그것이 장주였던 꿈을 꾼 나비였는지 나는 모른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음은 틀림없다. 이것을 일컬어 사물의 변환이라 한다. "
나이가 드니까 옛 성인들이나 문호들이 쓴 책을 가깝게 하게됩니다.살아있는 젊은 사람들이나 인기가 있다는 작가가 쓴 글은 그 지식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글을 쓴 의도를 짐작하게 되고 그렇게 장중하게 받아드리지를 못하게 되지요.
중국의 고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거의가 꿈속에서 만나는 귀신들입니다.심기제(沈旣提)가 쓴 침중기(枕中記)에 등장하는 여옹이 준 베개를 베고 잠이들었을때 나타나는 많은 사람들, 임금을 비롯한 신하등등 모두가 꿈속의 귀신들이지요.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 역시 거기 살고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죽은 귀신들이지요.남가일몽의 주인공이 잠들어서 가본 남가국 역시 개미 귀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전등(剪燈) 신화를 리바이블한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속의 만복사 저포(箸抛)기에 등장하는 아가씨도 귀신이지요.
중(釋)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속의 조신의 꿈속에 나오는 김진사 딸 역시 꿈속에서 귀신이 되어서 등장을 하지요.
김시습의 금오신화속의 남여부주지(南焰浮州誌)에 등장하는 염라대왕과 그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가 귀신이에요.
서양에서는 어떤가요? 성서의 하나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현상들 역시 귀신들이에요.존 버넌이 감옥에서 썼다는 천로역정(天路歷程) 역시 궁극적으로는 귀신의 이야기입니다.
문학과 미술 음악 등등 예술이라 칭하는 것들은 귀신들이 살아있을때 만든 것들이지요.사람이 주어진 생애를 다하면 죽음이 오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천당에 기고 불신자는 그보다 엄청 못한 곳에 가고, 그렇다면 천당도 천당 나름일텐데 강남에 있는 천당인지 지방의 그저 그런 천당인지 세분화 되어서 잘 모르겠고 범인(凡人)은 그저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난하겠지요.잠을 자게 되면 대부분 꿈을 꾸게 되는데 어느 꿈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만화같은 꿈이고 어느 꿈은 생시에 만났거나 교제했던 사람들, 아니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꿈이에요.그런데 술이 취해 잠들었을 때는 꿈 역시 아주 고약한 내용이에요.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나타나고 어쩌다가 이들과 다툼이 벌어져 도망하게 돼 숨어있는 동안에 지쳐서 거기서 잠이 들면 제 2차 꿈이 시작이 되지요.1차 꿈과 2차 꿈의 내용이 전혀 다르지요.꿈에서 두번을 깨야만 왼정신으로 돌아오는데 그러다 보면 꿈속의 내가 진짜인가 지금의 내가 꿈속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래서 2천년전의 장자가 나비를 보면서 저 나비가 나를 내려다보는지 내가 나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같아요.생시와 꿈,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한 것, 삶과 죽음도 어쩌면 그렇다는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