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1일 (목)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마태 9,9-13) (이근상 신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마태 9,9-10)
우리도 비슷하지만 유대인들도 밥을 나누는 건 식구가 되는 일이다. 그와 내가 하느님안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니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니 세리 죄인들과 상종하기를 꺼려하는 이들이 다른 일도 아니라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예수의 일행은 기꺼이 이들과 스스로 뒤섞여 결국 하나의 큰 몸이 되었다.
우리도 세상을 뒤섞여 사는데 삶의 거진 대부분을 뒤섞여진 사태를 벗어나려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가 서로를 떠나는 것이다. 죄스러운 이들과 결별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딱히 죄가 아닐지라도 나와 다른 이와 결별하여, 보다 선명하고 보다 덜 거추장스럽게 비슷한 이들, 비슷한 가치, 비슷한 욕구끼리 뭉치는 걸 유유상종이라 한다. 편하고 자연스럽다. 바람을 타고 이리 날고 저리 날아 메이지 않는 자유같은 것.
그런데 예수의 유유상종, 편하고 자연스러운 이치는 오로지 하나의 기준만이 있는것같다. 아래로 흐르는 모든 것은 우리편이라는 단순한 기준에 따라 하나가 되는 것. 마치 물처럼 끊임없이 아래로 모여들어 뒤섞이는 것. 색깔도 성분도 아무 것도 중요치 않다. 떨어져 아래로 내려서는 모든 것과 하나되기. 아무래도 무거워보이고 답답해 보이고, 가만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다. 떨어진 것들이, 또 썩은 것들이 아래로 더 아래로 고이는 일.
참 이상한 반전은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 뒤섞인 이들이 모든 자유로운 이들의 외로움을 위로하리란 단순한 역사. 시간이 갈 수록 또 갈 수록 모든게 늙어가고 무너져 내릴 수록... 가볍디 가벼워 영원히 날 것같던 먼지조차 내려 앉아 결국 저 아래에 다다라 신입 인사를 해야 하는 단순한 여정. 거기가 끝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서 잔치가 시작되는, 망하거나 끝날 일이 없는 잔치의 자리. 다 놓은 자들끼리 할 수 있는 가볍디 가벼운 가장 가벼운 잔치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JhMt3eE4CFt5zdzuEJTBtofhT1KR6wrbwTeE8HddSSNsPPaTge2ZQh9TZwL2bNf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