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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민수기 6 : 22 - 26
새해가 되면 모두가 다 복을 빕니다. 그러나 문제는 빌어야 할 곳에 빌어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을 줄 수 없는 존재에게 복을 비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새해 첫날 아침에 뜨는 해를 보고 복을 빌기 위해 많은 인파가 동해안 쪽으로 몰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를 보고 복을 비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짓입니다. 해가 우리에게 복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정월 보름날 달을 보고 복을 빌지만 해나 달은 복을 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큰 산이나 이상한 바위, 또는 고목에게도 복을 빌지만 결코 그러한 것들은 사람에게 복을 주지를 못합니다.
성경은 그러한 피조물에게 복을 빌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4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복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존재도 복을 주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외에 복을 비는 것은 우상이요 미신에 불과할 뿐입니다.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 선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배를 마칠 때 목사님들이 두 손을 들고 축복을 합니다. 성자와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을 할 때 ‘있을 지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부 교단에 목사님들은 ‘축원하나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원상 신학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축복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리는 간구입니다.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것이므로 ‘축원하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사도들이 편지를 쓰고 마지막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있을지어다’라고 축도를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축복을 할 수 있는 자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구별하여 세운 제사장들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아론과 그의 아들들)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리라”(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이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오늘에 목사입니다. 합법적인 목사에게 성도들을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공식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축복 할 수 있는 그 대상자 역시 정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에게나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국가 조찬기도회를 할 때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부 중요 요직에 있는 분들을 모시고 각 교단 대표들이 모여 국가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할 때 설교와 국가를 위한 기도를 하고 마지막에 축도를 합니다. 축도는 연세가 많고 교계에서 존경 받는 목사님이 합니다. 그때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고신 교단에 모 목사님이 축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자리에 모인 중요직 인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축도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상당한 비판적인 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축복 할 대상자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선민들입니다. 각 구절마다 ‘여호와는 네게 .. 여호와는 네게 ... 여호와는 네게’라는 말씀에게 ‘네게’라는 대상자들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에 사도들의 축복 역시 ‘너희 무리(성도들)에게 있을지어다’(살후3:18)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에게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밖에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축복은 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공식적으로 축복권을 부여 받은 자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배 후에 축도는 성도들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불가피한 일로 예배에 참석을 못해도 마지막 축도는 받는 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무엇을 축복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축도문입니다. 24-26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축도 입니다.
목사님들이 하는 축도는 신약에 사도들이 사용하였던 축도입니다. 사도들이 사용했던 축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합당합니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누구에게와 아무개에게, 어떤 단체나 기관장 이름 위에 있을 지어다’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이 넘치는 것 같지만 엄밀하게 분석하면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가르쳐 준 이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절 초두에 ‘여호와는 ... 여호와는 ... 여호와는’ 이란 말씀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언급한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 축복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예감케 하며, 세 번 거듭 언급됨으로써 그 축복이 얼마나 아름답고 지고하며 온전한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원하며, 여호와는 ... 원하며, 여호와는 ... 원하노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지금도 성도들인 나와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떤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복’이란 과연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받기를 원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고 어떤 복을 빌었느냐고 물었을 때 한결같은 대답은 ‘건강을’, ‘사업을’, 미혼 남녀는 ‘결혼을’, 또는 ‘장수’ 등등을 빌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빌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복은 영육간에 복입니다. 먼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지킨다’는 것은 해치려고 하는 대적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성도 여러분을 해치려고 하는 악한 대적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막아주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적들로부터 지켜 주시기를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지키시기를 원하며’란 하나님의 품에 안아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 축복입니다. 시편 121편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성도를 지키실 때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육신도 지켜 주실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지켜주십니다. 어떤 악한 것들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5)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여호와의 얼굴을 돌려지거나 숨겨졌다면 버려진 존재가 되어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태가 될 것입니다. 마치 햇볕에 가려져서 병들어 죽어 가는 동식물들에게 햇볕이 비취게 하므로 싱싱하게 자라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얼굴이 비춰진다는 것은 생명과 구원과 복의 상태를 암시합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네게로 비추신다’는 것은 어둠과 절망을 거두고, 생명력 넘치는 은혜와 회복과 기쁨을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란 하나님의 얼굴이 비춰질 때 그 영혼들에게 주어질 선한 영향력을 가리킵니다. ‘은혜’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향해 상체를 구부리다’는 뜻으로 낮고 천한 인간을 향해 내미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죄인들을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낮아지셔서 죄인처럼 되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신 은혜가 가장 큰 은혜입니다. ‘여호와는 ...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란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용서 받기를 원하는 축복입니다.
실로 이 은혜야말로 우리 생존의 유일한 열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는 복이야 말로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무한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는 축복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란 말씀은 앞 절에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란 표현보다 훨씬 특별하고도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특별한 관심을 열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의 얼굴을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평강’은 ‘솰롬’으로 ‘온전’, ‘완전’, ‘평안’, ‘우정’, ‘건강’, ‘번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원수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도 ‘평화’를 포함하는 축복입니다. 이러한 ‘평강’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세상의 그 어떤 지복보다 우월한 복입니다. ‘평강’은 최고의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평강을 매일 맛보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셨습니다(요20:21;26). 제자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부활하셔서 평강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하면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2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특별한 자녀로 삼으신 백성에게만 임할 뿐임을 증거 해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신앙하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 자손을 포함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들이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는 절대자 이십니다. 하나님 외 그 어떤 존재로 복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새해는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을 비추사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드사 여러분에게 평강주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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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