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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빛으로 문학을 완성하다
- 고수부 수필에 나타난 존재의 성찰과 희망의 미학
권대근
문학박사, 중) 하북미술대학교 객좌교수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되어질 때 비로소 이해된다.“
- 폴 리쾨르
Ⅰ. 로그인
현대수필은 단순한 체험의 기록이나 신변잡기의 차원을 넘어 존재를 성찰하는 문학으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 독자가 수필에 기대하는 것은 사건의 흥미가 아니라 삶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통찰이며, 경험의 나열이 아니라 일상을 철학으로 전환하는 사유의 힘이다. 평범한 삶을 낯설게 바라보고, 사소한 일상을 인간 존재의 보편적 의미로 확장시키는 데 현대수필의 문학적 가치가 있다. 따라서 좋은 수필은 체험의 진실성 위에 사유의 깊이와 예술적 형상화가 더해질 때 비로소 문학으로 완성된다. 특히 현대수필은 정보와 속도의 시대일수록 인간의 내면을 회복시키는 문학으로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수필은 거창한 사건보다 작은 일상에 주목하고, 사회적 담론보다 한 인간의 양심과 기억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하여 일상의 사물과 풍경, 가족과 자연, 시간과 기억을 통해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고 삶의 본질을 탐색한다. 수필의 진정한 힘은 '무엇을 경험했는가'보다 '그 경험을 어떻게 성찰했는가'에 있다.
고수부의 수필은 이러한 현대수필의 지향을 충실히 실천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의 글은 특별한 사건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집 한 채, 한마디 말, 몸의 작은 변화, 한 줄의 글, 한 줄기 빛과 같은 일상적 소재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사소한 체험이 깊은 성찰로 이어지고, 개인의 기억이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되는 과정은 그의 수필이 지닌 가장 큰 미학적 특징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의 문학이 체험과 철학, 신앙과 문학을 자연스럽게 통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에서 신앙은 교리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힘이며, 문학은 명성을 위한 창작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의미로 바꾸는 성찰의 과정이다. 또한 노년은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인생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지혜의 시간으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정신적 깊이는 그의 수필을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존재의 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제12수필집 『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는 이러한 고수부 문학의 특징이 가장 원숙하게 집약된 작품집이다. 표제에서 드러나듯 꽃은 유한한 생명을 상징하고, 빛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정신과 가치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이 수필집은 한 인간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면서 동시에 문학이 어떻게 삶을 빛으로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정신의 기록이다. 이 수필집에 수록된 열네 편의 작품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일관된 정신적 흐름이 존재한다. 첫째는 일상의 경험을 존재의 지혜로 승화시키는 삶의 성찰이며, 둘째는 글쓰기의 의미와 문학의 소명을 탐구하는 창작정신이고, 셋째는 신앙과 희망, 인간애를 통해 삶을 완성하려는 윤리적 세계관이다. 이 세 갈래는 서로 분리된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 구조를 이루며, 고수부 문학의 근간을 형성한다. 이 글에서는 『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를 삶의 성찰, 문학의 자의식, 신앙과 희망의 인간학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수부 수필이 어떻게 평범한 일상을 존재의 철학으로 승화시키며, 문학을 인간을 밝히는 빛으로 형상화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그의 제12수필집이 한국 현대수필에서 갖는 문학사적 의의를 조명하고자 한다.
1. 문학은 삶을 견디는 방식이다
- 프롤로그에 나타난 문학적 자의식
제12수필집 『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의 프롤로그는 단순한 출간 인사를 넘어 한 평생 문학과 동행해 온 작가의 창작론이자 삶의 철학을 담은 문학적 선언이다. 여기에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문학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오롯이 배어 있다. 작가는 삶을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장면 하나, 인사 한마디가 긴 여운으로 자라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수필을 그 여운을 빛에 비추어 다시 바라보고, 그 빛을 독자와 나누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는 수필을 단순한 체험의 기록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고 존재를 성찰하는 예술 행위로 이해하는 성숙한 문학관이다. 삶과 문학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비추는 관계라는 그의 인식은 이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적 토대가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독자의 격려 한마디를 어떤 문학상보다 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진정한 작가에게 문학은 명예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소통의 예술임을 이 대목은 조용히 증명한다. 문학의 가치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울림을 남기는 데 있다는 그의 믿음은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글을 써온 작가의 품격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써 온 창작의 리듬이다. 영감만으로는 열두 권의 수필집을 완성할 수 없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생활의 규율, 문학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매주 원고 앞에 자신을 세우는 성실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학사는 천재보다 성실한 창작자의 시간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다.
한국 수필문단에서 개인이 수필집을 열두 권까지 지속적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노년에도 창작의 열정을 잃지 않고 오히려 삶을 더욱 깊이 응시하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확장해 간다는 점은 한국 수필문단에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 성취이다. 이는 단순히 열두 권의 책을 펴냈다는 양적 기록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 문학을 삶의 방식으로 실천해 온 시간의 두께를 보여주는 정신사의 기록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열둘'이라는 숫자가 지닌 상징성이다. 인류 문화에서 12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완성과 질서를 의미하는 수로 이해되어 왔다. 1년을 이루는 열두 달, 하루를 나누는 열두 시간, 동양의 십이지(十二支)는 모두 순환과 충만, 질서의 상징이다. 성서에서도 예수는 열두 제자를 세워 자신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도록 했으며, 열둘은 공동체와 사명, 계승과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상징적 맥락에서 볼 때, 고수부의 열두 번째 수필집은 단순히 한 권이 더해진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기록하고 성찰하며 독자와 나누어 온 오랜 문학 여정이 하나의 완결된 원을 이루는 지점이자,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는 상징적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의 열두 권의 수필집은 각각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한 사람의 생애와 정신세계를 증언하는 '열두 개의 문학적 증언'을 이룬다. 예수의 열두 제자가 복음의 빛을 세상으로 전하는 사명을 맡았듯이, 고수부의 열두 권 수필집 또한 삶의 체험과 희망, 신앙과 사랑, 성찰과 위로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열두 개의 등불과도 같다. 여기에서 열둘은 단순한 권수의 숫자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밝히려는 한 작가의 오랜 소명과 성실한 실천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표지가 된다. 제12집은 바로 그 성실성이 이룩한 결실이다.
프롤로그의 마지막에는 손자의 "글은 쓸 수 있을 때 써야 한다"는 말이 등장한다. 수필집을 내고 이렇게 많은 독자의 독후감 편지를 받는 작가를 평자는 처음 본다. 여기에 고수부 문학의 진수가 있는 것이다. 이 손자의 한마디는 세대 간의 격려를 넘어 문학의 본질을 일깨우는 명제가 된다. 문학은 미루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쓰는 사람의 것이며, 창작은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생명이 허락하는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임을 보여준다.『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라는 제목처럼 꽃은 시들어도 그 꽃이 남긴 빛은 오래 지속된다. 이번 프롤로그는 바로 그 빛을 믿는 한 작가의 고백이며, 열두 권의 수필집이 가능했던 문학정신의 가장 아름다운 증언이다. 이러한 창작의 지속성과 성실성은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국 수필문단의 귀중한 자산으로 기억될 만한 의미 있는 성취라 할 것이다.
Ⅱ. 고수부의 인간세계
- 삶을 완성하고, 문학도 완성하다
고수부 수필가의 삶은 한 편의 대하소설을 닮아있다. 학문과 군인정신, 국가에 대한 봉사와 문학적 성찰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명문 고려대학교에서 산림자원을 공부하고,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한 학문적 기반 위에 월남전 맹호부대 장교, 미8군 연락장교, 육군대학 졸업, 육군중령 예편, 전쟁기념관 학예관을 거치는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들을 온몸으로 통과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생애는 단순한 이력의 나열이 아니라 시대의 부름에 응답해 온 한 지식인의 여정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조국을 위해 군복을 입었고, 중년에는 전쟁의 기억을 역사로 보존하는 일을 맡았으며, 노년에는 그 모든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후세에 남기고 있다.
국가를 지킨 군인이 이제는 인간의 삶을 지키는 문학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인생은 봉사의 대상만 달라졌을 뿐 평생 한결같은 소명의 길을 걸어온 삶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문학이 늦은 등단 이후 더욱 왕성하게 꽃피었다는 사실이다. 2003년 순수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쉼 없이 창작을 이어오며 『댓돌 위의 갈색 구두』에서 『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에 이르기까지 열두 권의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작가에게 한 권의 책은 몇 년의 시간과 삶이 응축된 결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열두 권의 수필집은 단순한 출판 실적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하루하루를 문학으로 살아낸 시간의 총합이며, 한 인간의 정신사가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진 거대한 문학적 성취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쟁과 평화, 가족과 사랑, 신앙과 감사, 노년과 배움, 죽음과 희망을 아우른다.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길어 올린 경험은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시대를 통과한 기억은 공동체의 자산이 된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개인의 회고록에 머물지 않고 한 시대를 증언하는 생활문학이자 인간학의 기록으로 읽힌다. 수상 경력 또한 그의 문학적 깊이를 뒷받침한다. 전쟁문학상과 순수문학 대상,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에세이문예사가 주는 에세이문예문학상 등은 작품성을 인정받은 결과이며, 대통령 표창은 문학 이전에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삶에 대한 공적 평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생애에서는 국가가 인정한 공로와 문단이 인정한 작품성이 하나의 축으로 만난다.
오늘의 고수부는 단순히 열두 권의 수필집을 낸 작가가 아니다. 그는 군인으로 시대를 지켰고, 공직자로 역사를 지켰으며, 문학인으로 인간의 삶을 기록해 온 사람이다. 일 주일에 한 편씩 줄기차게 글을 성실하게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한 생애가 국가와 역사, 문학이라는 세 영역에서 모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 사례는 한국 수필문단에서도 매우 드물다. 고수부의 문학은 글을 잘 쓰는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낸 삶이 문장이 된 결과이다. 그의 수필은 삶을 통과한 사람이기에 쓸 수 있는 문학이며, 그의 열두 번째 수필집은 한 작가의 성취를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의 정신적 자서전이라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Ⅲ. 고수부의 수필세계
1. 삶을 성찰하며 길을 찾다
- 인생의 경험에서 존재의 지혜를 길어 올리는 수필
고수부 수필의 가장 큰 미덕은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데 있다. 「남향집」, 「의사는 놓쳤고 나는 찾아냈다」, 「정답은 내 안에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 「지금이라는 코트에서」는 그러한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수필들이다. 이 작품들은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체험을 존재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킨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무엇보다 작가는 일상의 작은 경험을 단순한 회상으로 끝내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삶의 진리로 확장한다.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은 철학적 사유와 자연스럽게 결합되면서 생활 속에서 철학을 길어 올리는 수필의 미학을 구현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 작품은 체험의 기록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성찰수필의 모범이라 평가할 수 있다.
집은 몸을 쉬게 하는 장소인 동시에 마음이 귀향하는 공간이며, 한 인간의 생애와 기억이 축적되는 정신의 터전이다.「남향집」은 집을 이야기하는 수필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가치를 향해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삶의 철학이며, 평범한 일상을 깊은 존재의 성찰로 변모시키는 고수부 수필문학의 높은 문학적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것이다. 이 수필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삶의 방향과 인간의 안식처를 사유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작가는 공간을 물리적 개념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삶의 온기와 인간적 품성을 품는 존재의 장소로 확장한다. 집은 결국 살아온 인생의 얼굴이며, 인간 존재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파트만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도 방향이 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아무리 좋은 직장에 다녀도 인생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꽃나무가 햇빛 없이 시드는 것처럼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인생의 정남향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정직, 공정, 성실, 신뢰라고 생각한다. 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 마음의 창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빛을 받기도 하고 그늘에 머물기도 한다. 북향집에 있던 꽃들이 아무리 버티려 해도 결국 시들어갔듯이 마음의 방향을 잘못 잡은 인생은 어느 순간 힘을 잃는다. 반대로 정면으로 햇살을 받아들이는 인생은 오래도록 싱싱하게 성장한다. 오늘도 나는 베란다 앞에 놓인 의자에 잠시 앉아 꽃나무들을 바라본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작은 웃음소리를 낸다. 햇살을 받은 잎사귀의 반짝임은 마치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남향집> 중에서
이 대목은 「남향집」이 단순한 생활수필을 넘어 존재론적 성찰의 경지에 이른 작품임을 보여주는 핵심 장면이다. 작가는 '남향 아파트'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인간 삶의 방향성이라는 보편적 철학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특히 햇빛을 향하는 꽃나무의 생태를 인간의 윤리적 삶과 연결하여 '정직 공정 성실 신뢰'를 인생의 정남향으로 제시한 발상은 추상적 도덕률을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뛰어난 문학적 성취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의 방향을 삶의 방향으로, 햇빛을 가치의 빛으로 전환하는 은유는 수필의 사유를 한 단계 끌어올리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좌표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과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를 통해 생명의 기쁨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앞선 철학적 사유를 서정적 이미지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이는 관념을 이미지로 환원하고, 체험을 보편적 진실로 승화시키는 현대수필의 모범적인 창작 방식이라 평가할 수 있다.
현대인은 건강을 병원과 의학기술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첨단 의료가 발전할수록 정작 자신의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는 둔감해지는 역설도 함께 커지고 있다. 몸은 질병의 대상이기 이전에 삶을 비추는 거울이며, 존재의 상태를 가장 먼저 말해 주는 언어이다. 「의사는 놓쳤고 나는 찾아냈다」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기 인식에 관한 성찰이다. 현대인은 자신의 몸을 전문가에게 맡기며 살아가지만, 삶의 진실은 오히려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때 발견된다는 사실을 작품은 일깨운다. 몸의 작은 변화에서 삶의 의미를 읽어내는 작가의 시선은 질병을 넘어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통찰로 나아간다. 의학적 진단보다 자기 성찰이 더 깊은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삶의 해답을 자신의 내면보다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성공담이 넘쳐나지만, 타인의 정답은 결코 자신의 정답이 될 수 없다. 삶은 모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자기만의 진실에 이르게 된다. 「정답은 내 안에 있었다」는 인생의 해답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현대인들에게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경험과 사회의 기준을 좇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답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는 자기 확신을 강조하는 선언이 아니라, 오랜 삶의 경험 끝에 도달한 성숙한 깨달음이다. 정답은 지식이 아니라 삶의 체험 속에서 완성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자기 성찰의 문학이라 할 만하다.
인생은 목적지보다 여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오래된 진리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먼 미래만 바라보며 현재의 한 걸음을 소홀히 하곤 한다. 삶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걸음이 쌓여 이루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보느냐보다 지금 무엇을 보고 어떻게 걸어가느냐이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은 인생의 길을 가장 아름답게 비유한 작품이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먼 미래를 한꺼번에 밝히지 못하지만, 지금 당장 가야 할 길만은 분명하게 비춘다. 작가는 이 단순한 사실을 통해 인간의 삶 역시 미래 전체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비추어진 만큼 성실히 걸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삶의 불확실성을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이러한 인식은 노년의 지혜가 도달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목표보다 한 걸음의 진실을 중시하는 태도는 고수부 문학의 절제된 미학을 상징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깊이는 달라진다.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를 붙잡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는 사이 가장 소중한 현재를 놓치기 쉽다. 결국 삶은 '지금'이라는 한순간이 축적되어 완성되는 시간의 예술이다. 인생은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염려하는 사이 가장 소중한 '지금'을 놓치기 쉽다. 「지금이라는 코트에서」는 시간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현재라는 삶의 무대를 운동장의 코트에 비유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지금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삶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때 비로소 완성되며, 오늘이라는 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를 이룬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어느새 오른손이 올라가 라켓을 휘두르는 흉내를 낸다. 멋진 샷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나이스!”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그러나 목소리는 마음속에서만 맴돈다. 한때 나는 저 코트 안에서 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코트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이다. 허리 수술을 하고 난 뒤로는 테니스를 칠 수 없다. 가끔은 마음 한켠이 시려온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친구들도 있다. 걷지 못해 집에만 있는 사람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한탄하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기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걷는 두 다리와 글을 쓰는 손이다. 눈은 아직 글자를 읽을 수 있고 머리는 아직 생각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지금이라는 코트에서> 중에서
이 대목은 「지금이라는 코트에서」의 문학적 성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작가는 테니스 코트 안과 밖이라는 공간의 대비를 통해 신체적 상실을 정신적 성숙으로 전환시키는 삶의 역설을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특히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걷는 두 다리와 글을 쓰는 손이다."라는 문장은 결핍보다 남아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고수부 문학의 핵심 정신을 압축한 결정적 문장이다.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하지 않고 아직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인식의 전환은 단순한 자기위안이 아니라 오랜 삶의 체험에서 길어 올린 존재의 지혜이며, '걷는 두 다리', '글을 쓰는 손', '글자를 읽는 눈', '생각을 만들어 내는 머리'라는 구체적 이미지는 감사라는 추상적 가치를 생생한 현실로 형상화한다. 이처럼 개인의 체험을 인간 보편의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키는 구성력과 절제된 문장, 그리고 독자의 삶까지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여운은 이 수필을 성찰수필이자 고수부 문학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 다섯 편은 모두 일상의 사물과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결코 체험담에 머물지 않는다. 집은 삶의 방향으로, 몸은 자기 인식으로, 길은 희망으로, 시간은 존재의 현재성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러한 확장은 수필이 단순한 회고나 감상의 문학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탐구하는 사유의 장르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들은 독자에게 삶의 해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체험을 조용히 내어놓음으로써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것이 고수부 수필이 지닌 미덕이다. 그의 문장은 교훈을 앞세우지 않지만 깊은 깨달음을 남기고,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지 않지만 오래 지속되는 여운을 남긴다. 결국 이 범주의 작품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오래된 질문에 대해,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성실하게 살아낸 한 인간의 경험으로 답하는 존재론적 수필이라 평가할 수 있다.
2. 문학은 삶을 밝히는 빛이다
- 글쓰기와 예술의 의미를 탐구하는 문학적 성찰
문학은 삶을 살아가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삶을 기억하는 예술이다. 특히 수필에서 글쓰기 자체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은 작가의 문학관과 창작정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수부는 글을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존재를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인식하며, 문학이 인간을 시간 너머로 이어 주는 가장 깊은 정신적 유산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제12수필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영역은 단연 문학과 글쓰기를 직접 성찰하는 작품들이다.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 「Publish or Perish」, 「한 줄기 노래, 한 줄의 글」, 「한마디가 나를 다시 쓰게 한다」는 창작의 과정과 문학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품들로, 고수부 문학의 창작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중심축을 이룬다. 삶을 노래한 수필은 많지만,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이처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한 작품은 흔치 않다.
문학은 인간이 시간에 맞서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다. 삶은 유한하지만, 삶을 담아낸 언어는 세대를 건너 새로운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한 편의 좋은 글은 한 시대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정신을 오래도록 이어주는 생명의 흔적이 된다. 표제작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는 이번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는 문학적 선언이라 할 만하다. 꽃은 피고 지는 자연의 운명을 상징하지만, 글은 시간을 넘어 기억과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문화의 유산이다. 작가는 생명의 유한성과 문학의 지속성을 대비시키며, 인간은 결국 육체보다 정신으로 오래 살아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이는 글쓰기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간을 이기는 인간 정신의 창조 행위로 이해하는 그의 문학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행사 중간에 두 딸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큰딸 주연이는 “아버지가 허리 수술을 앞두고 걱정이 많으셨을 때 안국동 지하철을 지나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대목에서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고 함께한 회원들의 마음에도 파문이 일렁이는 듯했다. 둘째 딸 역시 준비해 온 글을 또박또박 읽으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표현했다. 나는 속으로 감사하며 이 자리가 단순히 나 혼자의 자리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에는 회원들의 발언 시간도 주어졌다. 서로의 소감을 나누며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케이크를 자르고 꽃바구니 세 개가 무대 옆에 놓였다. 붉은 장미, 분홍빛 백합, 하얀 국화가 어우러져 눈부신 빛을 냈다. 그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글을 응원하는 마음이 모여 한 아름의 꽃다발로 피어난 듯했다.
<꽃은 피고 글은 남는다> 중에서
이 대목은 「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의 정서적 절정을 이루는 장면으로, 개인의 출판기념회를 가족과 독자, 문학공동체가 함께 완성하는 삶의 축제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특히 두 딸의 진심 어린 축사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단순한 가족애를 넘어 한 사람의 문학 인생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지지하는 인간적 연대로 형상화되며, 절제된 서술 속에서도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작가는 감정을 과장하거나 눈물을 앞세우지 않고, 딸의 울먹임과 자신의 뜨거워진 눈시울, 그리고 회원들의 공감을 담담하게 포착함으로써 오히려 진정성을 극대화한다. 이어 꽃바구니를 "내 글을 응원하는 마음이 모여 한 아름의 꽃다발로 피어난 듯했다."고 형상화한 결말은 사물을 감정의 상징으로 승화시키는 뛰어난 비유 감각을 보여준다. 꽃은 시들지만 그 꽃에 담긴 사랑과 문학에 대한 존경은 오래 남는다는 표제의 의미와도 자연스럽게 호응하면서, 삶의 순간을 문학적 상징으로 확장하는 고수부 수필의 원숙한 미학을 잘 드러낸다.
문학은 완성되는 순간보다 독자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아무리 뛰어난 사유와 체험이라도 글로 쓰여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기억으로만 남을 뿐이다. 창작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사회와 나누려는 책임 있는 실천이다.「Publish or Perish」는 학문과 문학에서 널리 알려진 명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성찰한다. 본래 '발표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의미를 지닌 이 표현은 작가에게 경쟁의 구호가 아니라 창작자의 윤리로 전환된다. 글은 세상과 만나야 비로소 생명을 얻으며, 쓰는 일은 자기 존재를 사회와 연결하는 책임 있는 행위라는 인식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여기에는 명성을 위한 출판이 아니라, 삶을 성실하게 기록하려는 창작자의 소명이 담겨 있다.
「한 줄기 노래, 한 줄의 글」은 예술의 본질을 가장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 줄의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듯, 한 줄의 글 역시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작품을 관통한다. 작가는 문학을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예술로 이해한다. 좋은 문장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진실한 삶에서 태어난다는 그의 문학적 신념은 이 작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한 줄의 노래, 한 줄의 글」은 창작이 결코 혼자만의 작업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독자의 진심 어린 격려, 한마디의 공감은 작가에게 또 다른 작품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문학은 작가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독자의 응답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관계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따뜻하게 증명한다. 독자의 한마디를 최고의 문학상보다 귀하게 여기는 작가의 자세는 문학의 본질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소통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가 마지막 인사에서 말했다. “저는 아직 노래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도 작은 불씨가 일어났다. ‘나도 글을 멈추지 말자. 쓰는 한 나도 살아 있다.’ 음악은 단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삶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영혼의 리듬이다. 조용필의 무대는 나에게 예술의 힘이 얼마나 크고 오래가는가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한 줄의 노래, 한 줄의 글>
이 대목은 「한 줄의 노래, 한 줄의 글」의 핵심 주제를 가장 아름답게 형상화한 장면이다. 작가는 조용필의 "저는 아직 노래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멈추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마디를 자신의 창작 의지로 전환시키며, 예술이 예술가에게 또 다른 예술을 낳게 하는 생명의 연쇄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나도 글을 멈추지 말자. 쓰는 한 나도 살아 있다."라는 내면의 독백은 글쓰기를 단순한 창작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지속시키는 삶의 방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의 결정적 문장이다. 노래와 글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 장르를 하나의 생명 원리로 연결하고, 음악을 "삶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영혼의 리듬"으로 형상화한 표현은 뛰어난 비유 감각과 예술적 통찰을 보여준다. 이처럼 타인의 예술적 감동을 자신의 문학적 성찰로 재창조하는 구성은 체험을 보편적 예술론으로 확장시키는 고수부 수필의 원숙한 미학을 잘 드러내며, 예술은 끝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오래된 빛이라는 사실을 깊은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이 네 편은 각각 다른 소재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왜 우리는 글을 쓰는가.' 고수부는 그 질문에 화려한 이론으로 답하지 않는다. 삶이 있었기에 글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기에 문학이 있었으며, 독자가 있었기에 창작은 계속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문학은 책상 위에서 탄생한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과 만난 사람들, 그리고 삶에 대한 감사가 축적되어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범주의 작품들은 단순한 창작론이 아니라 고수부 문학의 정신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글을 통해 이름을 남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남기려는 사람이다. 꽃은 언젠가 시들지만, 그 꽃을 바라보며 쓴 한 편의 글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바로 이 믿음이 고수부가 평생 붓을 놓지 않은 이유이며, 열두 권의 수필집을 가능하게 한 창작의 원동력이다. 문학은 삶을 기록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 행위이다. 진정한 작가는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을 현재의 생명으로 되살리는 사람이다. 고수부는 일상의 체험을 단순한 추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인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창작 태도는 그의 문학이 한 개인의 자전적 기록을 넘어 시대와 세대를 잇는 정신적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원동력이다.「꽃은 지고 글은 남는다」를 중심으로 한 이 네 편의 수필은 고수부 문학의 창작 철학을 집약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삶은 유한하지만 문학은 기억을 통해 시간을 넘어선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생명을 빛으로 바꾸는 작업이며, 문학이 인간 존재를 가장 오래 살아 있게 하는 예술임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증명하고 있다.
3. 신앙과 희망, 그리고 인간의 따뜻한 동행
- 삶을 견디게 하는 믿음과 사랑의 미학
인간은 누구나 삶의 고난과 상실을 경험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힘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실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고수부의 수필은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일상의 체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어 올리며, 믿음과 희망, 사랑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 토대로 형상화한다. 고수부 문학의 근저에는 인간을 끝내 절망에 머물게 하지 않는 정신적 힘이 자리하고 있다. 「말씀과 함께」, 「빛을 기다리는 눈」, 「수생수사 그 뜻을 다시 바라보면서」, 「흔들려도 빛을 향해」, 「평생의 보호자」는 바로 그 정신적 기반을 이루는 작품들이다. 이 수필들은 신앙을 종교적 교리로 설명하지 않고, 삶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언어이자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윤리적 실천으로 형상화한다. 여기에서 신앙은 삶을 초월하는 관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중심을 필요로 한다. 그 중심이 흔들릴 때 삶은 방향을 잃고, 반대로 굳건할 때 시련은 성숙의 계기가 된다. 신앙은 이러한 삶의 중심을 세우는 힘이며, 일상을 더욱 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내면의 원동력이다. 「말씀과 함께」는 작가의 삶을 지탱해 온 정신적 근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말씀과 함께」는 작가의 삶을 지탱해 온 정신적 근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말씀'은 단순히 종교적 텍스트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나침반이며, 흔들리는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내면의 중심축이다. 작가는 말씀을 삶과 분리된 신앙의 영역에 두지 않고, 일상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실천되는 삶의 원리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을 교훈으로 설파하기보다 체험으로 증명하는 수필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오늘 아침 우리는 마태복음 5장을 공부했다. 이미 귀에 익은 구절이었지만 새벽의 고요 속에서 다시 들으니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말씀은 늘 새롭고 늘 생명을 준다. 우리 교회의 표어는 ‘말씀과 함께’다. 교회 정면에도 이 문구가 크게 붙어 있다. 말씀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든든하다. 나는 오늘도 성경말씀으로 무장하고 세상의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리라 다짐한다. 말씀은 나의 등불이며 내 삶의 길잡이다. 그리고 그 말씀과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나는 다시금 글 앞에 선다. 글이 빛난다면 그것은 내 문장이 아니라 말씀의 여운일 것이다.
<말씀과 함께> 중에서
주제를 가장 응축하여 보여주는 결말로, 신앙과 문학이 하나의 정신세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성경 말씀을 단순한 종교적 교훈으로 제시하지 않고, 삶을 견디고 방향을 바로 세우는 실천적 힘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말씀은 나의 등불이며 내 삶의 길잡이다. 그리고 그 말씀과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나는 다시금 글 앞에 선다."는 대목은 신앙이 창작의 원천이자 문학적 윤리의 토대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문장이다. 이어 "글이 빛난다면 그것은 내 문장이 아니라 말씀의 여운일 것이다."라는 결구는 창작의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는 겸허한 작가의식과 신앙인의 자세를 동시에 드러내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교리를 설명하거나 신앙을 권유하는 대신, 일상의 체험과 내면의 고백을 통해 신앙이 어떻게 삶과 문학을 밝히는 빛이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 점에서 이 작품은 종교적 수필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가치와 창작의 본질을 성찰한 원숙한 수필로 평가할 수 있다.
희망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믿고 기다리는 인간의 정신이다. 시련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빛은 어둠을 경험한 사람에게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빛을 기다리는 눈」은 희망의 미학을 가장 섬세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읽힌다. 눈은 단순히 빛을 바라보는 기관이 아니라 희망을 기다리는 영혼의 창이다. 어둠이 길어질수록 빛의 의미는 더욱 깊어지고, 기다림이 길수록 희망은 더욱 단단해진다. 작가는 삶의 고난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을 통과한 사람만이 빛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역설을 통해 인간 존재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준다.
수필은 특별한 사건만을 다루는 문학이 아니라, 익숙한 사물과 언어를 새롭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의 의미를 품게 된다. 사유하는 작가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존재의 진실을 발견하는 사람이다.「수생수사 그 뜻을 다시 바라보면서」는 작가 특유의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나의 문구를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익숙한 말속에 숨어 있던 삶의 진실을 발견한다. 이는 단순한 언어 풀이가 아니라, 사물과 언어를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려는 수필가의 성찰적 태도이다. 고수부는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언어 하나에도 삶의 철학이 스며 있음을 보여주며, 수필이 사유의 문학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이 범주의 중심에 놓인 「흔들려도 빛을 향해」는 제12수필집 전체를 대표하는 정신적 표상이라 할 만하다. 흔들림은 인간의 숙명이며, 빛은 인간이 끝내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 작가는 인생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흔들림 자체가 아니라 어느 방향을 향해 흔들리느냐라고 말한다. 절망을 향한 흔들림이 아니라 희망을 향한 흔들림, 포기를 향한 흔들림이 아니라 빛을 향한 흔들림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메시지는 그의 문학세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빛'은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문학인에게는 진실이고, 인간에게는 희망과 양심을 상징하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삶의 가장 깊은 힘은 서로를 돌보고 지켜 주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기억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를 품고 보호하는 사랑으로 이어진다.「평생의 보호자」는 사랑과 헌신의 가치를 따뜻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보호자는 단순히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는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품어 주는 관계의 이름이다. 가족일 수도 있고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는 절대적 존재를 의미할 수도 있다. 작가는 보호받는 삶의 감사와 누군가를 보호하는 삶의 책임을 함께 이야기하며, 인간은 관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문득 웃음이 났다. 나는 아내의 보호자라고 생각하며 병원을 따라다녔는데 아내 역시 나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평생 한쪽만 보호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아내가 내 팔을 붙잡아 준다. 내가 길을 안내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아내가 내 마음을 위로해 준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택시를 탔다. 동국대학교 앞을 지나고 신라호텔과 장충체육관을 스쳐 지나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초여름 거리에는 싱그러운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며칠 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근심도 조금씩 풀어지는 듯했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자 푸른 나무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단풍나무, 무궁화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대추나무, 라일락과 모과나무까지 저마다의 잎을 흔들며 초여름 바람 속에서 춤추고 있었다. 은은한 향기가 번져왔다.
<평생의 보호자> 중에서
이 인용부는 「평생의 보호자」의 주제를 가장 따뜻하고 원숙하게 형상화한 장면이다. 작가는 '보호자'를 일방적으로 돌보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탱하며 함께 늙어가는 관계로 재해석함으로써 사랑의 본질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특히 "아내 역시 나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깨달음은 관계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작품의 전환점이자, 인간은 서로에게 보호받고 보호하는 존재라는 보편적 진실을 함축한 결정적 문장이다. 이어 병원을 나와 초여름 햇살과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근심에서 평안으로 옮겨가는 내면의 변화를 자연 풍경과 조화롭게 결합시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단풍나무, 무궁화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대추나무, 라일락과 모과나무를 차례로 호명하는 섬세한 묘사는 생명의 충만함과 삶의 회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비추는 상관물로 기능하게 한다. 이처럼 일상의 체험을 관계의 철학으로 승화시키고, 서정적 풍경으로 감동을 완성하는 구성은 고수부 수필의 원숙한 문학성과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다섯 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빛'이다. 말씀은 삶을 밝히는 빛이고, 희망은 어둠을 이기는 빛이며, 사랑은 인간을 따뜻하게 하는 빛이고, 보호는 존재를 지켜 주는 빛이다. 결국 빛은 고수부 문학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한다. 그 빛은 눈부신 성공이나 영광의 빛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과 같은 빛이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독자에게 거창한 감동을 강요하기보다 삶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조용히 건네준다. 고수부의 신앙은 배타적 교리를 내세우지 않고 보편적 인간애로 확장된다. 그의 희망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이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끝내 선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신념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범주의 작품들은 종교수필의 범주를 넘어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정신의 문학으로 읽힌다.
인간은 물질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정신적 가치 속에서 삶의 의미를 완성해 간다. 문학 또한 이러한 내면의 가치를 언어로 형상화하며, 인간 존재를 더욱 깊고 넓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예술이다. 고수부의 수필은 신앙을 교리로 설명하지 않고 삶의 체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냄으로써 보편적 인간학의 차원으로 확장된다.「말씀과 함께」에서 시작된 믿음은 「빛을 기다리는 눈」에서 희망으로 자라고, 「수생수사 그 뜻을 다시 바라보면서」에서 성찰로 깊어지며, 「흔들려도 빛을 향해」에서 삶의 방향으로 완성되고, 「평생의 보호자」에서 사랑의 윤리로 귀결된다. 이러한 구조는 제12수필집이 단순한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인간 삶의 가장 근원적인 가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완숙한 정신의 기록임을 보여준다.
4. 독자가 증명하는 인간미와 작품성
- 문학적 진정성은 독자의 마음에 남는다
이 수필집에 실린 독자후기들은 단순한 독후감의 차원을 넘어선다. 독자들은 작품을 분석하거나 문학적 기교를 논하기보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소환하며 작가의 이야기에 응답한다. 이는 좋은 수필이 독자를 감상자로 머물게 하지 않고 삶의 동반자로 이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후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작가의 인간미에 대한 깊은 신뢰이다. 독자들은 고수부의 글에서 화려한 수사보다 진솔한 삶의 태도를 읽어낸다. 노년의 아픔과 배움, 가족에 대한 사랑, 신앙, 군 생활의 기억, 실패와 극복의 과정까지 꾸밈없이 드러내는 그의 고백은 독자들에게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 보는 듯했다', '인간 고수부의 삶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는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반응은 작가가 문장 이전에 먼저 신뢰받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독자들은 '수필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울림이 있었다', '단숨에 읽었다', '삶의 의미와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글'이라고 말한다. 이는 작품이 단순한 체험의 기록을 넘어 독자의 정서와 사유를 움직이는 문학적 힘을 지녔음을 방증한다. 특히 연령과 직업, 지역이 서로 다른 독자들이 한결같이 공감과 감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수필이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 삶의 언어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독자후기 자체의 진정성이다. 후기마다 자신의 부모와 자녀, 직장생활, 신앙, 병원 생활, 군 복무, 노년의 삶 등을 함께 이야기하며 작품과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이는 작가의 글이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불러내는 촉매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첫째 손자 민석 군의 독자후기는 이 수필집이 세대를 넘어 공감과 감동을 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뜻깊은 증언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글에서 '솔직함과 일상에서 찾는 삶의 의미와 지혜', 그리고 '군대와 전쟁이라는 특성'을 고수부 문학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읽어낸다. 이는 단순한 가족의 애정 어린 격려가 아니라, 작품의 핵심 미학을 정확하게 짚어낸 문학적 독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무엇보다 "할아버지 책만의 맛이 느껴진다"는 표현은 문학에서 가장 높은 평가 가운데 하나이다. 문학은 뛰어난 문장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문체와 세계를 구축할 때 비로소 작가의 고유성을 획득한다.
손자 민석 군은 평론가의 전문용어 대신 생활의 언어로 고수부 문학의 독창성을 간명하게 표현해냈으며, 오히려 그 순수한 감각이 작품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손자가 할아버지의 삶과 문학을 하나의 인격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인의 삶에서 비롯된 책임감, 일상을 성찰하는 따뜻한 시선, 그리고 삶의 경험을 지혜로 승화시키는 문학정신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읽어낸 그의 후기는, 고수부 문학이 단순히 한 세대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도 삶의 가치와 품격을 전하는 살아 있는 정신적 유산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세대 간의 공감과 계승은 문학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결실 가운데 하나라 할 것이다.
문학이 독자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때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는 수용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반응은 이 수필집의 문학적 성취를 입증하는 귀중한 증거라 할 수 있다.『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는 삶의 진실을 담담하게 기록한 개인의 회고록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의 인간적인 품성과 성실한 삶의 태도가 문학적 진정성과 만나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독자들은 다시 자신의 삶으로 응답하였다. 미국 거주 아내 친구인 이희자 여자의 독후감, ‘독자들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글’도 감동을 준다. 이처럼 작품과 독자가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될 때, 수필은 비로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Ⅳ. 로그아웃
세계현상에 작용하는 우주의 오묘한 섭리를 파악하려는 작가, 수필가 고수부의『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는 단순히 열네 편의 수필을 엮은 작품집이 아니다. 이 수필집은 일상의 체험을 존재의 성찰로 승화시키고, 글쓰기의 의미를 문학의 소명으로 확장하며, 신앙과 희망을 인간 보편의 가치로 형상화한 완숙한 정신의 기록이다. 삶의 경험은 철학이 되고, 철학은 다시 따뜻한 문장으로 독자에게 돌아온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 작가 고수부의 수필은 체험의 진실성과 사유의 깊이, 그리고 문학적 품격이 조화를 이룬 현대수필의 모범적 성취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수필집이 제12번째 수필집이라는 데서 한 권의 신작을 넘어 고수부 문학의 총결산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열두 권의 수필집은 우연한 다작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 가까운 삶과 성실한 창작이 축적된 문학적 자산이다. 인류 문화에서 '열둘'이 완성과 충만, 계승의 상징으로 이해되어 왔듯이, 그의 열두 번째 수필집 또한 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정표이다. 이는 개인의 창작 이력을 넘어 한국 수필문학이 축적해 온 한 시대의 정신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문학적 성과라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수부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작품의 양보다 그 품격에 있다. 그는 화려한 수사나 인위적인 기교에 기대지 않고, 삶의 진실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신뢰를 한결같은 문장으로 길어 올려 왔다. 문학 이전에 성실한 삶을 살았고, 작가 이전에 겸허한 인간으로 살아온 그의 인품은 작품 곳곳에 은은한 향기처럼 스며 있다.
이러한 고결한 인품과 흔들림 없는 창작정신이 있었기에 고수부의 수필은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신뢰와 감동을 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수필문단에서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열두 권의 수필집을 꾸준히 발표하며 작품세계를 심화시켜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문단사적 업적이다. 더욱이 군인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공직자로 역사를 기록하며, 문학인으로 인간의 삶을 성찰해 온 그의 생애는 작품과 삶이 하나로 일치하는 드문 문학적 모범을 보여준다. 『꽃은 지고 빛은 남는다』는 꽃은 져도 빛은 남는다는 제목처럼, 한 인간의 삶은 유한할지라도 문학이 남긴 정신의 빛은 오래도록 독자들의 마음을 밝힐 것임을 증명하는 작품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제12수필집은 고수부 개인의 작품을 넘어, 한국 현대수필문학사에 오래 기억될 뜻깊은 이정표이자 지속적인 창작정신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제13집에 이어 제20집까지 줄곧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그의 쾌거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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