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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강해 오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
요한복음 20장 30-31
요절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실상 오늘 말씀으로 요한복음은 끝이 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한복음의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한 저자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말하며 요한복음을 끝 맺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부록의 성격이 강합니다. 요한복음 21장도 모든 사본에 들어있습니다. 21장은 요한이 요한복음의 결론을 내고 출판 전에 요한이 덧붙여 쓴 기록으로 보입니다.
오늘 말씀은 3절밖에 안 되는 짧은 말씀이지만 한 번의 주일말씀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중요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면서 동시에 성경 전체를 기록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요한복음을 정리하면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알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생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사도 요한이 7가지의 표적을 기록한 목적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2)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21장에 보면 그것을 다 기록하면 세상에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고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7가지 표적을 선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까지 요한복음에서 7가지 표적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표적은 기적과 다릅니다. 표적은 의미 있는 기적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기적입니다. 요한은 표적만을 선별하여 7가지 표적을 기록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앞에 표적이 나오고 그 표적의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이 뒤에 길게 이어져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7가지 표적이 어떤 점에서 에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 참여해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서 초상집과 같은 세상을 혼인잔칫집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포도주는 잔칫집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포도주는 잔칫집을 기쁘게 하는 것이요, 신랑신부를 축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표적에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아담의 후손으로 저주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죽고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야하는 슬픈 존재입니다.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슬픈 존재입니다. 이 세상을 엄밀히 보면 초상집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초상집을 잔칫집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슬픈 자를 포도주와 같이 기쁜 존재로 바꾸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이 저주를 받으시고 지옥까지 경험하심으로 예수님은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우리를 꼭 필요한 존재요, 기쁨이 충만한 존재요, 복을 나누어 주는 복덩어리요, 영생을 얻은 존재로 변화시키십니다. 지옥에 갈 자를 천국에 갈 자로 변화시켜주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둘째 표적은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하여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셔서 자신의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신하에게 너희는 기적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병고치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표적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회개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의 표적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신뢰하며 다시 한 번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신하는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의 아들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가지 않으시고 말씀으로만 아들의 병이 나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에 내려갔습니다. 집에 가 보니 아들은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순간에 병이 나았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일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천 년 전에 유대 땅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 여기서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양자역학에 얽힘이론이 있습니다. 두 개의 입자가 있을 때 한 입자가 좌회전을 하면 수억 광년이 떨어져 있어도 다른 입의 쌍은 우회전을 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곧 바로 영향을 주는 것을 얽힘이론이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시공을 초월하여 계신 말씀입니다. 이천 년 전에 3천 오백년 전에 하신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제가 처음 은혜 받은 말씀이 창세기 일장 일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인데 그것은 3천 오백년 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할 때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표적은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하여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38년간 병을 낫고자 하였으나 낫지 못한 그는 살았으나 죽은자와 방불한 자였습니다. 38년 동안 일년에 한 번 물이 움직였다면 그는 38편을 실패한 사람입니다. 소망이 없이 절망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이 오랜 줄을 아셨습니다. 그의 절망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며 낫고자 하는 소원을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말씀을 듣기만 하였습니다. 그가 단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생명을 얻고 힘을 얻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이와 같은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아납니다. 무덤에 있는 자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듣는 자는 살아날 것입니다.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 우리는 지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말씀 자체가 생명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단지 말씀을 하심으로 절망하는 자에게 소망을 심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넷째 표적은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생명의 떡임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주신 것은 다만 배고픔을 채워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떡은 먹어도 또 배가 고릅니다. 떡은 많이 먹어도 결국은 죽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어도 떡을 주는 사람은 많습니다. 선진국은 떡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주신 것은 다만 육신의 떡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떡을 달라고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니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살이 찢기심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고 죄사함을 받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생명을 얻고 육신이 죽어도 다시 새로운 몸으로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현재도 결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참 만족과 함을 주십니다.
다섯째 표적은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와서 괴로이 노젓은 제자들을 도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하여 우리가 괴롭게 살고 있을 때 찾아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인 후에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역풍이 불어와서 제자들은 괴로이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피곤하였습니다. 그때는 캄캄한 밤이라 제자들은 두려움이 시달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괴로이 노젓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돕고자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오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하고 두려워 소리질렀습니다.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모셔들이니 역풍이 그치고 순풍이 불어왔습니다. 제자들은 순풍에 돛단 듯이 건너편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괴로운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도 이런 괴로운 일이 있습니다. 그런 때는 예수님이 안 계시고 사탄이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찾아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바벨론 포로시에 유다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생활하는 유대인들을 찾아가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출바벨론 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사자가 물지 않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이 불속에도 들어가자 하나님이 불속에 들어가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섯째 표적은 눈먼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불행도 섭리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을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운명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소경도 운명적인 생각으로 일을 하지 않고 거지로 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운명적인 생각으로 맹인이나 자신들이나 세상을 슬프게 보고 있었습니다. 운명적인 생각이 영적인 눈이 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맹인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선을 이루실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행을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바라보셨습니다. 우리의 불행에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하면 불행도 선을 이루고 영광스럽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불행을 보면 인생이 어둡게 보입니다. 운명적이고 슬프게 보입니다. 자포자기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밝게 보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섭리의 눈으로 보는 것은 어둔 세상을 밝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섭리를 믿으면 우리는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어둔 우리의 운명적인 생각을 밝은 섭리의 생각으로 바꾸어주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일곱 번째 표적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하자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시고 나를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살아서 믿으면 현재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부활의 때에 우리는 썩어서 재가 되고 흙이 되어도 영광스럽고 강하고 썩지 않는 새 생명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부활의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으면 마지막날 다시 새로운 몸으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곱 가지 표적을 통하여 에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표적보다 더 큰 표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그리스도인 표적을 구하자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사흘 있다가 살아났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사흘 있다가 살아난 표적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었으니 우리는 죽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으니 너는 일어나 힘껏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면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갖고 힘을 내어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닫고 그 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이기고 성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죄와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최고의 표적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합니다. 부활은 단지 죽었다가 살아나는 소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몸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실재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에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여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우리가 거듭나 새생활을 하게 도우십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새로운 몸으로 부활한 사람은 없습니다. 부활하여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을 때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생명은 우리의 육신적인 생명이 아닙니다. 영적인 생명이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새로운 생명입니다. 우리가 이 생명을 얻는 것을 우리는 거듭났다고 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현재적인 의미와 내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적인 의미는 예수님 안에서 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현재 성령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지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는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미래에는 이 생명은 부활 생명입니다. 성령을 소유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몸으로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영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내가 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은혜 충만하고 지혜 충만하고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년 전보다 지금이 낫고, 오년 전보다 지금이 낫고, 일년 전보다 지금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때가 우리가 죽을 때입니다. 이런 사람이 신앙이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옛날이 좋았다고 옛날을 그리워하면 그 사람은 신앙이 퇴보한 사람입니다. 옛날과 같다고 하면 신앙이 현상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하는 사람은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입니다. 똑같이 천국에 가지만 신앙이 성장한 사람은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커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은 점점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예수님만 보이고 세상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를 가나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이 성장하여 더 미래가 기대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요한 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믿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말하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말하고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가 잘 먹고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성공하고 번영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이런 것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예수님이 오신 주 목적인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 주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의 전체 요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그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현재 영생을 얻고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은 후에 지옥에 가지 않고 부활하여 천국에 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런 주제의식을 갖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런 인생의 목적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 번영 축복은 관심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건강과 번영과 축복도 덤으로 주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삼서에서 우리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성경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영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병이 들어고 가난해도 영혼이 잘 되어 천국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혼이 잘 되면 하나님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가운데 영생을 얻고 생명을 풍성히 얻다가 다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20장 강해 오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
요한복음 20장 30-31
요절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장 강해 오부 끝.
